다산어록청상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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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맑은지 되짚게 하는, 이야기

  내 어머니는 잔소리를 하신다. 큰소리는 절대 내지 않고 도란도란 잔소리를 하시는데, 나는 그 잔소리를 들으면서 잔소리 속에 어머니의 삶이 알알이 엮여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잔소리란 아무리 옳은 소리가 담겨 있다 해도 듣기 싫은 것이지만, 어머니의 삶이 스며있다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어머니의 잔소리를 싫어할 수가 없다. 가끔은 다정한 넋두리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 머리가 굵어질수록 어머니의 잔소리도 길고 깊어지는 것을 들어보면, 내가 클수록 어머니의 삶의 양도 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나이 무렵 어머니가 살았던 30년 전과 내가 사는 현재는 많이 다르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자면 그건 아니잖아요,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크게 어긋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사는 이치는 삼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옛날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해오다가 옛날과 지금이 얼마나 같은가를 생각하게 되면 파드득 놀라고야 만다. 3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바뀐 것도 없는 것처럼, 18세기와 21세기도 크게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 18세기의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이 21세기의 나에게 곰팡내 풍기는 옛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오히려 놀랍도록, 21세기의 세상을 꿰뚫고 있는 느낌을 준다.




  무릇 직책은 보잘 것 없는데 재주가 넘치면 간사해진다. 지위는 낮은데 아는 것이 많으면 간사해진다. 노력은 조금 들였는데 효과가 신속하면 간사해진다. 나는 홀로 능히 오래 있는데 나를 감독하는 사람이 자꾸 바뀌면 간사해진다. 나를 감독하는 사람 또한 반드시 바름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간사해진다. 아랫사람의 무리가 많은데도 윗사람이 혼자 어두우면 간사해진다.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보다 약한지라 이를 두려워해서 고발하지 못하면 간사해진다. 내가 꺼리는 자가 모두 범한 것을 붙들어 고발하지 않으면 간사해진다. 형벌에 원칙이 없고 염치가 확립되지 않으면 간사해진다. 어떤 이는 간사해서 망하고, 어떤 이는 꼭 간사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간사하다 말하며 망하게 되면 간사해진다. 간사함이 일어나기 쉬운 것이 이와 같다.

- <다산어록 청상> 18p, ‘간사함의 원인’ 중에서




  예를 들어, 위의 글을 보자마자 나는 누군가 머리를 두드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세상은 특히 간사하다. 옛날은 이보다는 순박했을 것이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세상살이는 언제 어디서나 같다는 깨달음이 왔다. 분노나 냉소가 아니라 차분한 어조로 세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글이,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 없는 다산 선생의 됨됨이를 느끼게 했다. 산 같은 분이라기보다는 숲 같은 분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사람을 드러내는 거울이라 하더니, 어떤 위인전이나 역사서를 본 것보다도 정약용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게 된 느낌이다.

  겉멋에 찌들어서 하는 말이 아닌, 오래 생각하고 마음을 담아 쓴 말이기 때문일까. 다산 정약용 선생이 하는 말은 어딘지 내 어머니의 잔소리를 닮았다. 단지,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기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국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인물의 말을 엮어놓은 것을 잔소리라고 하면 웃길까? 하지만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은 하나같이 자신의 삶과 그에서 얻은 생각을 다시 자신에게 곱씹어주는 느낌이라서, 역시 나에게는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잔소리 같은 느낌이다. 애정이 없으면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 잔소리에는 애정이 있다.

  엮은이가 <다산어록 청상>에 정약용 선생의 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옆에 풀어놓은 것처럼, 나도 책을 읽으며 메모지에 내 생각을 적어보았다. 다 읽은 후 보니 책이 빵빵해졌다. 메모를 쭉 훑어보니, 문답의 느낌이 났다. 옳다, 맞다, 그렇다, 라는 말이 제일 많았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 그만큼 많이 공감했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만큼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하셨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고전이란, 어렵고 고리타분하며 지루한 글이라는 느낌을 막연하게 준다. <다산어록 청상>을 읽으면서 처음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그건 어머니의 잔소리를 되도록 듣고 싶지 않아하는 내 심리와 맞닿아 있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면 좋든 싫든 현재의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건 굉장히 하기 싫은 일이다. 현재의 나에게 만족하며 살아가면 편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잔소리는 자꾸 현재의 나를 점검하게 만든다. 나의 문제점을 생각하고,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하게 만든다. <다산어록 청상>도 그러했다. 이 책을 읽으며 “이미 그렇게 살고 있어요.”라는 메모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슬프지만, “되새기고 곱씹어도 잘 되지 않는다.”라는 메모는 있었다는 게 기뻤다. 그 메모가,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치에 더하거나 덜함이 없이 올곧게 살기 위해 고심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모습처럼,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한 말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되었으면. 그런 욕심이 생겼다. 다시 한 번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을 읽을 때에는 ‘나도 그렇게 살고 있어요.’라는 메모가 끼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든, 모름지기 모든 것은 나를 다스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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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가 틀렸다 패러독스 4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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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바야르의 추리비평 3부작 중 세 번째 책, <셜록홈즈가 틀렸다>. 1편은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이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내는 구성이다. 2편은 <햄릿 : 귀머거리들의 수사>인데 아직 국내 번역이 안 되었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극작 '햄릿'에서 아버지 햄릿의 살인범을 찾아내는 구성이다. 그리고 3편이 바로 <셜록 홈즈가 틀렸다>로,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중 '바스커빌 가문의 개'에서 범행을 저지른 진범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피에르 바야르의 책은 6개월에 한 권씩 번역되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순서가 좀 아스트랄해서 아쉽다. 최소한 시리즈라도 집필순서대로 펴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셜록 홈즈가 틀렸다>에 <햄릿 : 귀머거리들의 수사>를 참고하라는 부분이 꽤 있어서 더욱 아쉽다. 

  <셜록 홈즈가 틀렸다>에서 피에르 바야르가 주목하는 것은, 아서 코난 도일과 셜록 홈즈의 미묘한 관계이다. 작품이 작가를 잡아먹은, 혹은 작가에게 미움받는 주인공 셜록 홈즈. 피에르 바야르는 도일이 홈즈를 너무 미워한 나머지 진범을 놓쳤다고 말한다. 

  도일과 홈즈의 관계는 흥미로웠으나 어쩐지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보다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너무 막바지에서 급하게 범인을 잡아낸 느낌이다. 덕분에 이 사람이 범인이다, 하는 논리에서 미진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셜록 홈즈가 틀렸다> 또한 재미있었다. 작가는 자신이 어떤 괴물을 만들어냈는지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 떠오른다(이 문장을 어디서 봤더라?). 이미 완결된 추리소설에서 '숨겨진 범인'을 나름의 논리로 잡아내는 건 언제나 즐겁다.
    

  추리비평 시리즈의 나머지 한권, <햄릿 : 귀머거리들의 수사>가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2010.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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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표절 - 문학과 예술의 전통적 연대기를 전복하여 무한히 확장된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다 패러독스 3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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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바야르의 세 번째 책(한국 출간 순서로 세 번째이다). 이번에는 <읽지않은 책을 말하는 법>과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와 다른 번역가이다. 
  
  <예상 표절>은, '시간'이란 개념을 재정의해서 그런지 어렵다. 예상 표절이란 말 그대로 과거의 사람이 미래의 사람을 표절했다는 것인데 언뜻 이해가 힘들다. 표절은 과거사람 <- 미래사람 이렇게 흘러간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미래사람 <- 과거사람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차분히 읽어가다 보면, 이건 말 그대로의 표절이라기보다는 문학사를 새롭게 묶어보려는 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에르 바야르는 늘, 생각지 못한 재미있는 주장을 하는 것 같다. 
  
   


2010.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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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수사학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5
손택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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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의 수사학>은 솔직히, '나무의 수사학 1'이라는 시 때문에 구입했다. 나는 이 시가 참, 뭐랄까, 사회생활의 비애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읽기 힘들어하는 산문시도 아니고(난 이상하게 산문시 읽기가 참 힘이 든다), 시어들도 굉장히 쉽게, 일상어처럼 씌여 있는데, 평범하게 말해서는 알 수 없는 느낌들이 꽉 차 있다.
 
  <나무의 수사학> 속 시는 밝지 않다. 그렇다고 아주 어두운 것도 아니다. 서민들이 도시에서 부대끼며 사는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는 시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기에 쓰인 시어는, 제목처럼, '나무' 등의 자연물들이다. 나무, 동태, 빙어, 개, 이런 것들. 그래서 나는 왠지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처럼 시인이 나에게 반어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연인데 왜 그렇게 퍽퍽한 느낌이 들까? 이상한 일이지.
 
  이상해서 몇 번을 읽었는데, 읽을 수록 시가 더 괜찮아졌다. 처음 읽을 때는 '나무의 수사학 1' 이외에는 그럭저럭 읽고 넘어갔는데 한 두세번을 읽으니 마음에 드는 시가 점점 늘어났다. 나와 파장이 맞나보다. 
  
   


201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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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 - 그림 형제의 기묘한 이야기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9
그림 형제 지음, 김양미 외 옮김 / 인디고(글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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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고에서 나온 아름다운 고전시리즈 중 하나. 그림형제가 쓴 동화들이 담겨 있으니 무난하게 그림동화라고 해도 됐을 텐데, 백설공주라고 한 것은 차별화하기 위함일까?^^ 그림동화보다는 백설공주가 훨씬 느낌이 살긴 한다.
 
  다들 옛날에 한 번 쯤은 읽어본 기억이 있을 동화 15편이 들어 있다.
  단지, 그림동화의 원작에 가깝게 번역을 해서 옛날에 어린이용 동화책 속 내용만 생각하면 조금 놀랄 수도 있겠다. 다른 부분이 꽤 많이 있다. 잔인한 부분도 있고......
  읽으며 옛날에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옛날은 마냥 주인공 생각만 했는데, 다른 쪽에 눈이 가는 것도 재미있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의 장점은 예쁜 삽화인데, <백설공주>의 삽화는 예쁘다기보다는 묘하다는 쪽에 가깝다. 대충 쓱쓱 그린 것 같달까? 그런데도 자꾸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워낙 그림동화 속 삽화가 다양하니, 그냥 봐서 예쁘장한 그림을 넣어놓으면 아름다운 고전시리즈라기보다는 그냥그런 동화책 느낌이었을 지도.
  내가 삽화에서 제일 마음에 든 것은 색깔이다. 색깔이 아주 예쁘다. 은은하고 부드럽다.
 
  한 숨 돌리고 싶을 때 한 번씩 꺼내보면 좋을 듯 싶다.


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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