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오늘의 일본문학 5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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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랑한 갱은 4인이다. 거짓말을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나루세, 수다쟁이에 허풍꾼 교노, 생체시계를 가진 유키코, 소매치기 기술자 구온. 그들은 각자의 생업이 있고 부업으로 함께 은행강도를 뛴다. 그들에겐 나름의 철칙이 있고 분업도 확실하다. 그들은 시종일관 유쾌하여 거칠 게 없어보인다...마는, 작업 끝에 번 4천만엔을 갑자기 툭 끼어든 RV차량 속 현금수송차잭에게 빼앗기고 만다. 명랑한 갱들을 복수를 계획하는데....... 

  범죄극에 복수극이기는 하지만, 명랑한 갱들의 행보에 심각함은 없다. 그래서인지 읽는 사람도 시원시원한 기분이 든다. 

  재미있다. 각 장의 제목이 '악당들은~'하고 시작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진정한 악당이 누구인가 헛갈린다. 명랑한 갱 = 은행을 터니까 악당, 현금수송차 잭 = 은행 돈을 털고 남의 돈도 노리니까 악당, 은행 = 사람들이 돈을 맡기는데 책임도 지지 않고 이자도 주지 않으니까 악당...... 어라, 모두 다 악당 뿐이다! 

  유키코의 배신과 지미치가 현금수송차 잭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어렵잖게 짐작했는데 명랑한 갱이 현금수송차 잭에게 한방 먹이는 방식은 생각 못했다. 책을 다시 한 번 후루룩 넘겨보니 초반에 깔려있던 복선이 솔솔 보인다. 

  보통은 현금수송차 잭의 리더이자 무서운 악당이신 간자키 씨가 최고 악당으로 보여야 하는데 <명랑한 갱>은 보통 소설이면 엑스트라로 끝날 지미치가 최고 악당으로 보인다. 그건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에서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 인물을 개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겁쟁이이고 비열한 소시민 지미치는 딱히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타입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악당들 중에서 명랑한 갱이 악당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자신들이 악당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악당이면서도 악당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201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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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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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인데(제목이 독특해서 그런가?) 한참 안 보다가 드디어 집어들었다. 생각보다 평탄한 내용이다. 

  시나는 옆집 사는 가와사키에게 서점을 털자는 이야기를 듣는다. 시나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와사키의 페이스에 어느 덧 휘말려 서점 뒷문 망을 보는 처지가 되고 말았는데.......

  전체적으로 밍밍하다. 덜 익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야기가 늘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2년 전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가 교차되어 나오는데, 2년 전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좀 몰입을 못하고 산만했다. 2년 전 이야기에는 확실한 긴장선이 있는데(애완동물 살해범들 VS. 가와사키 일당) 현재 이야기에는 그런 게 없어서 그런 듯 하다. 아니면 현재를 말하는 시나가 너무 심심한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고. 간단히 표현하자면 2년 전 이야기는 스릴러, 현재는 일상 미스터리에 가깝다. 그런데 이야기가 딱딱 맞게 이야기가 짜인 게 아니라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드는 틈이 약간씩 보인다.

  뒤로 갈수록 몰입도가 조금씩 높아진다. 2년 전과 현재가 번갈아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가 나오고 나서 깜짝 놀랐다. 반전이다! 2년 전과 현재의 접점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놀라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아쉬웠다. 고토미와 도르지, 가와사키의 심리를 잘 모르겠어서 더 그렇다. 위협을 받고 납치 시도까지 당했는데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뭘까? 

p.116. 

  "...(중략)... 착한 일을 하면 언젠가 보답받는다.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 그 보복을 받는다." 

  "일본에서도 자주 하는 말이잖아." 

  "아니라니까. 일본인은 금세 그 보복이 돌아오길 원하잖아. 부탄 사람들은 안 그래. 지금이 아니라도 돼. 환생한 다음에 그게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일본인은 즉효성을 바라니까 항상 초조해하고 조급해하지. 그에 비하면 부탄 사람은 우아해. 인생이 길잖아."  

 

2010.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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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스호퍼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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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카 코타로 식 킬러 이야기. 처음에는 미적거리다가 후반에 가서는 후딱 읽었다. 이사카 코타로 소설은 초반은 느릿느릿한데 뒤로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이사카 코타로의 글은 익숙한 소재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엉뚱한 곳을 잡고 휙 비틀어버린다. <그래스 호퍼>도 일반적인 플롯을 비튼다. 아내의 복수를 하려고 '영애'에 위장취업한 스즈키는 회사에서 대놓고 의심을 받고, 더군다나 복수의 대상을 다른 사람이 죽이는 것까지 목격한다. 스즈키는 그 사람을 쫓아가는데......

  소설 속 스즈키는 어영부영하다. 뒷골목과 어울리지 않는 어리숙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핵심은 스즈키에게 있지 않다. 구지라, 스즈키, 세미의 시선에서 사건을 말하지만, 잘 보면 실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구지라, 이사가오, 세미, 그리고 데리하라 일당이다. 그래서 뒷골목의 한판 싸움이라는 느낌이 든다. 

  킬러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오는 킬러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헐리우드식의 멋지구리한 킬러와 참 다르다. 밀치기, 자살유도킬러, 그리고 일가족 몰살이 특기인 칼잡이... 어떻게 보면 우습지만 달리 보면 확실하게 의심을 피할 만한 특기들을 가지고 있다. 킬러들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대부분 우리가 뉴스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건/사고/사망과 별 다를 게 없다.

  뒷세계의 이야기인데 어쩐지 내가 사는 세상의 글과도 다를 바가 없다. 도시가 인간을 미치게 한다는 말은 일견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시를 떠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데리하라와 데리하라 아들, 구지라, 세미가 없어졌어도 뒷세계는 잘 돌아갈 테고 생각해보면 뒷골목에서 손을 씻은 사람이 없다는 게 그런 일면을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은 내 착각인가. 

  등장인물의 말에 공감하거나 이입하기보다는 앞으로 얘기가 어떻게 흘러갈까에 집중하게 된다. 대화보다 행동, 캐릭터보다 스토리에 치중한 느낌이다.

 

201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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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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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 슬럼버>가 나왔다는 건 진즉 알았는데 선뜻 손이 안 가서 미적대다가, 영화 <골든 슬럼버> 개봉을 계기로 얼른 샀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읽어야지, 하고 손에 잡고서는 끝날 때까지 정신없이 읽었다. 

  줄거리 :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평범한 택배 배달원. 어느 날 대학 동창의 부름을 받아 불려나간 곳에서 동창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다. 때마침 거리 저편에서 행해지던 퍼레이드 중 폭탄이 터져 총리가 암살당한다. 그리고 아오야기는 영문도 모른채 총리 암살의 범인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쫓기기 시작하는데.......

  구성이 독특하다. "사건의 시작", "사건의 시청자", "사건 20년 뒤"가 나온 뒤에야 본편 격인 "사건"이 나오고 에필로그와도 같은 "사건 석달 뒤"가 따라붙는다. 이 구성이 번잡스럽다는 이야기도 봤는데, 나는 좋았다. 사건 당사자가 아닌 세간의 시선을 보여주고, 사건의 의문점을 보여준 뒤에야 사건으로 들어가서 오히려 더 사건에 대한 의문이 깊어지게 한다. 만약 이 구성이 달랐다면(보통의 글처럼 시간 순서대로였다면) 느낌이 매우 달라졌을 것 같다. 

  <골든 슬럼버>는 도망과 추적이 주된 내용이지만, 그보다 더 관심이 가는 건 언론과 일반 사람들의 반응이다. 사람들은 언론이 내보내는 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아오야기가 총리 암살범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오싹해진다. 판단을 남에게 미뤄버리고 세간에서 말하는 대로 끌려가는 사람들, 그와 나는 다른가? 나도 스스로 판단하고 싶어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대부분은 얄팍하게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세상 모두가 적이 된 상황에서, 아오야기는 열심히 도망다닌다. 거대한 것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는 일밖에 없다는 게 참 억울하고 화나면서도 현실감있는 설정이라 뭐라고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장르소설로 끝날 수 있는 얘기를 뭔가 다르게 만들어주는 건 이사카 코타로의 특이한 현실감각인 것 같다. 그의 글을 읽자면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옳은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망다니는 아오야기보다 심각하게 와닿은 것은 그 주변 사람들이 당하는 폭력이었다. 특히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히구치 하루코와 납치 위기까지 겪는 나나미의 모습은 너무 상상이 잘 되어서 속상했다. 그리고 누구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섬찟했다. 

  <골든 슬럼버>의 미덕은 그러나, 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두 아오야기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진 않는다는 데 있다. 총리 암살범 누명을 쓴 아오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도와준다.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 힘들은 아오야기가 '사건 20년 후'를 보게 만드는 데 큰 힘이 된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는 말이 있다. 진실은 느리지만 시간을 따라 천천히 다가온다. 자칫 피폐해지기 쉬운 상황을 나열하면서도 골든 슬럼버가 따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도 그 때문인 듯 하다.

 

  덧붙임 

  아오야기 마사하루의 아버지가 당신 아들이 총리 암살범이라며 소감이 어떠냐 떠드는 매스컴에게 자신의 이름을 걸라고, 그 정도 각오는 하라고 소리치는데 아무도 이름을 대지 않는 부분에서 멈칫했다. 마치 인터넷의 악플 같아서.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떠들어대는 언론,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나열하는 악플. 안전한 곳에서 일방적으로 떠드는 건 비겁하지만 어떻게 보면 참 인간적이다. 

 

2010.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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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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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 정말 다작하는구나 하는 걸 깨닫고 있다. 정말 꾸준히 책을 낸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읽으면서 딱히 그만 읽자거나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걸 보면, 꽤 취향이 맞나보다. 

  <종말의 바보>는 세상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세상의 종말이 닥친 순간도 아니고, 세상의 종말이 지나간 순간도 아니고, '세상의 종말이 닥쳐오기 3년 전'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종말이라는 단어가 야기하는 절박함 대신에 쉼표 같은 느낌이 소설 전반을 맴돌고 있다.

  소행성이 떨어져서 세상이 끝장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일본 센다이 시의 힐즈타운 사람들. 종말은 5년 전에 예고되었고, 종말이 오기까지는 3년 남았다. 종말이 오지 않아도 세계는 어느 정도 파괴되었다.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 범죄가 횡행하며 자살이 자주 일어난다. 소설 속 세계는 이미 종말이 온 것 같다. 종말이 올지, 아니면 루머일지, 그게 밝혀지지 않아 소설은 '도중'에 멈춰 있지만 진짜 종말이 와도 혹은 종말이 오지 않아도 안타까운 느낌이다. 

  종말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종말의 바보>는 일상의 연장에 놓여 있다. 종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사람들이 제각기 이야기를 한다.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이다. 세상의 종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그들은 얘기를 한다.

  개인적으로 <강철의 킥복서>가 특히 좋았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있겠지? 

p. 210. 

  "나에바, 내일 죽을 거라는 말을 들으면 어쩔 거야?" 

  배우가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했다. 

  "다르지 않겠죠." 나에바 씨의 대답은 냉담했다. 

  "다르지 않다니, 어쩔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로 킥과 레프트 훅밖에 없으니까요." 

  배우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고 한다. 

  "그건 연습 얘기잖아. 아니, 내일 죽는데 그런 걸 한다고?" 

  "내일 죽는다고 삶의 방식이 바뀝니까?" 글자들이라서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나에바 씨의 말투는 정중했을 게 틀림없다. "지금 당신 삶의 방식은 얼마나 살 생각으로 선택한 방식입니까?" 

   어떻게 보면 너무 모범적인 얘기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종말이 온 세계에 내가 있다면, 하는 상상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다.

 

2010.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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