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골든 슬럼버>가 나왔다는 건 진즉 알았는데 선뜻 손이 안 가서 미적대다가, 영화 <골든 슬럼버> 개봉을 계기로 얼른 샀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읽어야지, 하고 손에 잡고서는 끝날 때까지 정신없이 읽었다. 

  줄거리 :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평범한 택배 배달원. 어느 날 대학 동창의 부름을 받아 불려나간 곳에서 동창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다. 때마침 거리 저편에서 행해지던 퍼레이드 중 폭탄이 터져 총리가 암살당한다. 그리고 아오야기는 영문도 모른채 총리 암살의 범인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쫓기기 시작하는데.......

  구성이 독특하다. "사건의 시작", "사건의 시청자", "사건 20년 뒤"가 나온 뒤에야 본편 격인 "사건"이 나오고 에필로그와도 같은 "사건 석달 뒤"가 따라붙는다. 이 구성이 번잡스럽다는 이야기도 봤는데, 나는 좋았다. 사건 당사자가 아닌 세간의 시선을 보여주고, 사건의 의문점을 보여준 뒤에야 사건으로 들어가서 오히려 더 사건에 대한 의문이 깊어지게 한다. 만약 이 구성이 달랐다면(보통의 글처럼 시간 순서대로였다면) 느낌이 매우 달라졌을 것 같다. 

  <골든 슬럼버>는 도망과 추적이 주된 내용이지만, 그보다 더 관심이 가는 건 언론과 일반 사람들의 반응이다. 사람들은 언론이 내보내는 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아오야기가 총리 암살범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오싹해진다. 판단을 남에게 미뤄버리고 세간에서 말하는 대로 끌려가는 사람들, 그와 나는 다른가? 나도 스스로 판단하고 싶어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대부분은 얄팍하게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세상 모두가 적이 된 상황에서, 아오야기는 열심히 도망다닌다. 거대한 것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는 일밖에 없다는 게 참 억울하고 화나면서도 현실감있는 설정이라 뭐라고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장르소설로 끝날 수 있는 얘기를 뭔가 다르게 만들어주는 건 이사카 코타로의 특이한 현실감각인 것 같다. 그의 글을 읽자면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옳은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망다니는 아오야기보다 심각하게 와닿은 것은 그 주변 사람들이 당하는 폭력이었다. 특히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히구치 하루코와 납치 위기까지 겪는 나나미의 모습은 너무 상상이 잘 되어서 속상했다. 그리고 누구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섬찟했다. 

  <골든 슬럼버>의 미덕은 그러나, 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두 아오야기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진 않는다는 데 있다. 총리 암살범 누명을 쓴 아오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도와준다.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 힘들은 아오야기가 '사건 20년 후'를 보게 만드는 데 큰 힘이 된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는 말이 있다. 진실은 느리지만 시간을 따라 천천히 다가온다. 자칫 피폐해지기 쉬운 상황을 나열하면서도 골든 슬럼버가 따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도 그 때문인 듯 하다.

 

  덧붙임 

  아오야기 마사하루의 아버지가 당신 아들이 총리 암살범이라며 소감이 어떠냐 떠드는 매스컴에게 자신의 이름을 걸라고, 그 정도 각오는 하라고 소리치는데 아무도 이름을 대지 않는 부분에서 멈칫했다. 마치 인터넷의 악플 같아서.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떠들어대는 언론,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나열하는 악플. 안전한 곳에서 일방적으로 떠드는 건 비겁하지만 어떻게 보면 참 인간적이다. 

 

2010.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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