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관심이 끌려, 그녀가 눈을 들어 쳐다본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시선을 계속 다른 데에 두지만, 시야 가장자리에는 자신을 지켜보는 그녀의 모습이 줄곧 걸려 있다. 메리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는 그들끼리의 비밀이 완전히 지켜질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에게 자신에 대해 무엇이든, 심지어 이상한 것까지도 다 말해줄 수 있고, 그녀가 결코 그 말을 옮기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녀와 단둘이 있는 것은 마치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등 뒤로 그 문을 닫아버리는 것과 같다. 그는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실 그녀는 꽤 너그러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 근처에 있기는 두렵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황스러운 행동을 하고, 평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말들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메리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위해, 그 생각을 종이 위에 몇 번이고 적어보았다. 그녀가 어떤 모습인지, 그녀가 어떻게 말하는지를 글로 정확히 묘사하고 싶은 욕망에 그는 가슴이 뭉클하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 점심시간에 그녀가 학교 구내식당에서 읽는, 민트 색 책등에 표지에는 어두운 분위기의 프랑스 그림이 그려져 있는 『스완네 집 쪽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그녀의 긴손가락.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같은 종류의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 그녀는 때때로 세상을 무척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해 그가 스스로를 무식하다고 느끼게 하지만, 이내 더없이 순진무구하게 굴기도한다. 그는 그녀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싶다.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그가 문득 무언가를 말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메리앤은 곧 ‘뭔데?‘라고 물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 이 ‘뭔데?‘ 라는 질문에는 무척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의 침묵에 대한 범죄 과학 수사 수준의 세심한 관찰력, 완전한 의사소통에 대한 갈망, 그리고 비밀은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달갑지 않은 장애물이라는 판단까지 말이다. 애초에 이런 요소들이 있기에 ‘뭔데?‘ 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때때로 그는 이러한 것들을, 마치 메리앤을 정확히 복사해서 인쇄물로 재현하고 싶은 것처럼, 마치 장차 회고하기 위해 그녀를 온전히 보존해두고 싶은 것처럼, 숨이 막힐 만큼 많은 세미콜론으로 종속절들을 연결해 긴 무종지문(두 개 이상의 문장이나 독립된 절을 접속사 없이 연결한 것 옮긴이)으로 적어둔다. 그런 다음 자신이쓴 문장을 보지 않도록 공책을 새 페이지로 넘긴다.

그러면 우리 둘 다 더블린에 있게 되는데. 그가 말한다. 장담하는데, 우리가 우연히 마주치면 너는 나를 모르는 척할걸.
메리앤은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는 점점 더 긴장하며, 어쩌면 그녀가 정말로 그를 모르는 척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자 그는 메리앤에 대해서뿐 아니라, 그의 미래, 그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겁에 질려 망연해진다.
그 순간 그녀가 입을 연다. 나는 절대로 너를 모르는 척하지 않을거야.

그는 대학의 많은 문학인들이 책을 주로 교양 있어 보이기 위한하나의 방편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날 밤 스태그스 헤드에서 누군가가 긴축 조치와 관련된 시위를 언급하자, 세이디가두 손을 번쩍 들며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안 돼, 부탁이야! 낭독회에 대한 코넬의 처음 평가를 뒤집을 만한 반증은 없었다. 그것은 계급 분리를 보여주는 공연 문화였다. 문학은 교육받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감정적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서, 그들이 즐겨 읽은 소설속에서 그들을 대신해 그 여행을 경험하는 사람들, 즉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맹목적인 숭배를 받았다. 설령 작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 그의 책이정말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모든책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마케팅이 되고, 모든 작가가 어느 정도는 이 마케팅에 가담한다. 아마 이것이 문학계가 돈을 버는 방식일 터였다. 문학은, 이런 공개적인 낭독회에서 드러나듯, 무언가에저항하는 형식으로서는 발전 가능성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도 코넬은 그날 밤 집에 가서, 그가 새로운 소설을 위해 적어둔 메모들을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보았고, 예전처럼 만족스러운 느낌이 몸속에서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완벽한 골을 지켜보는 것 같았고, 나뭇잎 사이로 살랑살랑 스며드는 햇살, 지나가는 차창에서흘러나오는 음악 한 토막 같았다. 삶은 그 모든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환희의 순간들을 기꺼이 내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평소 ‘00 보존의 법칙‘을 굳게 믿는다. 00 안에는 분노, 억울함, 인내 혹은 결핍이 들어갈 수도 있다. 살면서 경험한 결핍은 그사람 안에 평생 일정하게 남아 있다고 믿는다. 어린 시절부터 쌓인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른이 된 내가 나서야 한다. 나라는사람 안에 오랫동안 쌓여온 결핍은 오직 나만이 채울 수 있다.
여전히 나는 구멍 난 여름휴가의 추억을 메꾸면서 산다. 그래서 여름이라는 계절을 이토록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수고를 알아주는 시기, 고단함을 위로하는 시기. 여름은 내게 한없이 너그러워지기 좋은 계절이니까.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자주 떠나고 싶다. 가급적 여름에, 여름인 곳으로, 뜨거운 여름 안에서 실컷 널브러지고 맘껏 누리고 싶다. 나에게는 여전히 나에게 받을 여름휴가가 많이 남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실 우리나라는 환경문제의 많은 부분을 과학보다 공학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미세먼지 농도 저감 방안으로 인공 강우 등의 공학적 해결책만을 찾는것도 그 예다. 최근에는 이처럼 지구환경에 대해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경을 조절하려는 지구공학적 접근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환경문제는 과학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1943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1952년 12월 영국 런던에서 발생했던 스모그 문제에 미국이나 영국은 과학에 기반한 장기적인 정책들을 세우고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우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바로 이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구환경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면밀한 과학적 이해 없이 성급하게 인공적인 환경 조절을 시도하는 것을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특별한 목표도 꿈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평범하게 보내왔지만 순간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멈추지 않았더니 나란 사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내 취향들을 하나로 모으니 나만의 브랜드가 탄생했다. 무언가 대차게 추진하는 게 두려워서 그저 소소하게 기록해왔을 뿐인데 그 기록들이 결국 나를 움직이게 했다. 계속 쌓여가는 기록들이 또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지 무척이나 설렌다.
문득 5년 뒤의 내 모습이 궁금해졌다. 이제까지의 삶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꾸준히 흔적을 남긴다면 분명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잠들기 전 내가 만든 영상을 다시 되돌려보는 시간이 무척이나 좋다. 내가 직접 기록한 것이기에 자막 한 줄 한 줄에 격하게 공감할 수 있고,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끄집어내 추억할 수 있다. 타인의 근사한 기록과 견주어도 어설픈 나의 기록이 나는 제일 재미있다.

나는 한 분야에 지식이 해박한 것도 아니고, 고퀄리티의 영상을 제작할 만큼 기술력이 있거나 아이디어가 기발하지도않다. 그렇기에 그저 꾸밈없이 일상을 영상에 담아내고 있다.
처음엔 10명이라도 보면 일기장을 들킨 것 마냥 민망했는데, 3년이 지난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나의 일상에 대한 영상을 봐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렸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하고자 하는 일은 열정이 있을 때 꼭 해요. 그 열정은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자고 있었어?
- 아냐 무슨 소리야. 눈 뜨고 책 보고 있었는데.

눈을 보고 눈이다 낮게 탄성을 지르고 큰 창으로 다가가고 눈에도 무게가 있잖아. 함박눈이 아니라 가볍게 흩날리는 눈을 보며 문득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시간이 너무 지난 것 같아 우리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고 울리는 가벼운 외침을 각자의 가슴속에서 느꼈다. 왜 아이처럼 시간이 막연할 정도로 많지 않을까? 우리는 일을 하고 차를 타고 운전을 한다.

눈은 흔적도 없었다. 올해는 눈을 제대로 못 봤네. 나는 어느 해 겨울에 본,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쌓이고 치우고 내리고를 반복하던 도시를 떠올렸다. 눈이 보고 싶어졌다.
차미의 배에 나의 시린 손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차미는 먀- 조용히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갔다.
이런 한주. 긴 겨울에 해내는 몇가지 일들.
어디서 들고 왔는지 차미는 세이코 시계를 다시 꺼내와 앞발로? 손인가요? 마구 때렸다.
나는 시계를 서랍에 넣었다. 방 안을 청소하고 테이블 위를 치우고 버릴 것들을 버렸다.
이렇게 간신히 해내는 몇가지 일들.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탐정 사람은 살아가고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은 언제나 사무실에 화분처럼 연필깎이처럼 존재한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끝까지 없앨 수 없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 해가 바뀌자 시간은 가속도를 밟으며 흘러갔고 연말은 왠지 먼 옛날 같았다. 회사는 우울했고 나는 내가 탐정의 사무실 연필깎이 같다고 생각했다. 해결이 안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