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정체성을 지닌 이가 칼럼을 쓰는 것이 반드시 연구와 무관한 일일까요? 제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는 마치 연구대상에 탐침봉을 넣듯이, 자신의 칼럼 이곳저곳에 다양한 센서를 장치한 뒤에, 사회에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가 어디서 버튼을 누르는지, 어떤 센서에는 반응을 하지 않는지 등을 알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저는 제 연구의 대상인 이 사회와 저 자신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물으면 사실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

김 교수는 찰나의 행복보다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 같은 소소한 근심을 누리는 건, 그것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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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에서는 대대적인 탈출이 시작되었다. 21세기의 엑소더스였다. 섬사람들은 어떤 실감도 느끼지 못한 채 소식들을 접했다. 며칠 있자, 공산품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그제야 상황이 피부에 와닿았다. 섬에는 공장이 거의없었고, 본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슈퍼에 가서 평소에 좋아하던 캐러멜 초코바를 박스로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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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다 쌓고 그다음에는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하셨대?
그런 걸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거고,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 거지. 그러다 보면 이것저것 섞여서 본래 마음에 가까워지는 거지.
본래 마음이 뭔데.
그건…… 바다 같은 거지.

신뢰와 경멸의 배합으로 사람을 어떻게 단련시킬 수 있는지 그곳에서 조금 배웠다.
나는 단련되었던가? 모르겠다. 나는 나빠졌다. 매일 조금씩 나빠지다가 어느 순간 급격히 나빠졌다.

나는 자주 그런식으로 걸었다. 길은 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끝이 없으니까, 지쳐 화날 때까지 걷다가 포기하는 사람.

맨눈으로 밤하늘을 볼 때는 별이 거기 있는 것을 전혀 기이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망원경으로 그 실체를 자세히 보면, 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 저런 게 대체 왜 저기 있는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잡다한 생각을 끝없이 하다 보면 결국 허무해졌다. 그건 나쁜 허무가 아니었다. 광활한 허무였다. 나를 160센티미터짜리 인간에서 해방시키는 담대한 허무.

이미 망친 그림에 아무리 덧칠을 해 봤자 더 흉측해질 뿐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 지금 나는 혜지에게 개새끼다. 개새끼에서 시작해야 한다.

진심에는 노력이, 때로는 가장 큰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나의 행복과 안락을 원한다. 그것을 얻으려면 사람답게 살아야 하나?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사람답게 살 때 나는 평안이나 위로를 얻을 수 없었다.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살았다. 사람다운 삶이란 걱정과불안에 잠식된 삶인가?

됐다. 하루 이틀 일이냐.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너처럼 그렇게……..
‘어떻게 그러려니 합니까.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란 말이야. 니 인생이나 잘 살라고.
형님, 내가 지금 내 인생 살지 남의 인생 사는 것처럼 보여요?
남 일에 함부로 간섭 말라는 거야.
이게 어떻게 간섭입니까. 내가 탄 버스에서 벌어진 일 인데.

내 욕망의 크기를 줄이며 살 수는 있었지만 가족이나 연인의 욕망까지 내 사이즈에 맞출 수는 없었다.

우선 우주한테는 네가 미세 먼지인지 몰라도 나한테는 네가 미세 먼지가 아니야. 나도 미세 먼지가 아니다. 그리고 너나 나나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고 분 명히 있어. 또 네 말처럼 우리가 아무리 미세 먼지 같은그런 존재라고 해도 나는 우리가 사라지는 게 아쉽고 슬프다.

조는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포기하는 사람을, 포기조차 포기해 버리는 경우를 생각해 보곤 했다.

주로 대단히 혼자인 사람들이 와서 조용히 있다가 가요.

나란 인간 자체는 너무 거칠고 날것으로 볼품없으니 그것을 말이나 글로 가공해야 했는데, 나는 말에 서툴렀다. 말은 피곤했고 가벼웠다. 일단 뱉으면 고칠 수도 없었다. 하여 나는 기록으로 나를 꾸몄고, 꾸며진 나를 기억했다. 본래의 나보다 훨씬 그럴듯한 나를.

희망은 손에 쥐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뭉개지고 절망 하며 형성된 감각의 심지를 한데 뭉쳐 몸속 깊이 심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려면 우선 홀로 그에게가야 한다. 그를 만나야 한다. 만나기 위해 건물과 차와사람 속에 뒤섞여야 한다. 무서워도 사랑해야 한다. 그러다 다시 방을 뛰쳐나와 이른 아침 버스에 홀로 몸을 싣게 되더라도.

나는 여전히 희망을 모르지만 사람을 믿지 않을 수는 없다. 단념 다음에 오는 긴 여백을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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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소설 쓰는 일은 매번 그랬다. 마음과 감정의 일로알 것 같아서 쓰려고 생각하지만 쓰다보면 영 엉뚱해지고 다 쓸 무렵에는 안다고 여긴 마음을 가장 알 수 없게 됐다.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어쩌면 스무 번,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두 손을 모아, 때로는 동그랗게 엎드려 기도했을 텐데, 저마다 비슷한 무게로 절박했을 그들의 염원을 고유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그 염원의 안쪽에 펼쳐진 개개인의 고통을 절대적으로 동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거기서 뭘 하느냐고 이리 와서 절 올리라고 말했더니 처가 쪽 산소엔 벌초도 하지 않는 법이라고 잡소리를 하기에 너무 당혹스럽고 열받아 말이라고 하냐고, 얼른 절 올리라고 역정을 냈는데 그걸 듣고도 뒷짐지고 서 있더라며 그뒤로 야속하고 징그러워 같이 오자고하지 않았다고, 네 아버지와 동행한 것은 그것 딱 한 번으로 그쳤다.
고 이순일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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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에서 가장 약한 동물, 무리가 사냥감이 되도록 두고 가는 동물, 결코 끝까지 무리에 속할 수 없는 동물은 항상 일정 비율로 태어나지 않을까? 그렇게 태어난 게 나라는 걸 왜 인정하지 않을까? 그냥 무리에서 멀어지도록 좀 놔둬 주면 좋을 텐데.

🖍기도 확보하는 법,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 흉골 압박 심마사지를 가르쳤는데 설령 태반이 까먹고 일부만이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중 한 사람이 언젠가 누군가를 구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 멀고 희미한 가능성을 헤아리는 일을 좋아했다. 멀미를 할 때 먼 곳을 바라보면 나아지는 것과 비슷한 셈이었다.

🖍"너는 말이야, 캐릭터 문제야."
"뭐라고?"
"장르를 잘못 택했단 말야. 칙칙한 호러물이 아니라 마구 달리는 소년만화여야 했다고. 그랬으면 애들이 싫어하지 않았을 거야. 그 꼴로 다치지도 않았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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