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가 와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는 익숙했던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느껴본 그 거리감은 모든 걱정과 인간관계에서 나를 자유롭게 했다.

하지만 나는 경외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같은 날 파스콸레같은 어두운 매력이 있는 청년의 관심을 받았고, 새로운 학문을 향한 문이 눈앞에 열린 데다, 얼마 전까지 같은 동네 더군다나 우리 집 맞은편 건물에 살던 사람이 책을 출판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특히 마지막 사실은 우리도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릴라가 옳았음을 증명했다.

유년 시절부터 열네 살이 되는 그해까지 살아온 우리 삶의 수많은 조각이 짜맞춰지며 드디어 어떠한 선명한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눈앞에 나타나기는 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나는 릴라의 삶의 일부분을 놓침으로써 내 삶의 밀도와 중요성까지도 희석될 것 같아 두려웠다.

이 일은 내게 없는 것이 그녀에게 있고 그녀에게 없는 것이 내게 있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해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계속되는 이 게임은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괴로웠지만 우리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다.

"이제 다시는 네가 쓴 글을 읽고 싶지 않아."
"왜?"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를 아프게 하니까."

나는 ‘엘레나 그레코‘라는 내 이름이 종이에 인쇄되어 나오는 순간 내 존재가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비밀스러운 확신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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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 무척 인상 깊은 구절을 보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가장 완벽한 하루를 상상해보는 것에서 시작한단다. 그리고 그 완벽한 하루와 닮은 습관들을 하나씩 만들어나가다 보면 결국에 꿈꾸던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오호, 그렇다면 먼저, 나의 가장 완벽한 하루를 떠올려봐야겠다.

스티커도 같은 판을 여러 장씩 산다. 얼마 전 스티커를 어떻게 그렇게 과감하게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이 질문이 나는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실은 나도 심성이 소심해 매우 아까워하고 아껴두는 편이었는데, 그렇게 아끼고만 있다 보니 있는지조차 모르고 서랍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만 가는 스티커들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나는 쓸데없는 것들의 힘을 믿는다. 생필품들은 삶을 이어나가게 해주지만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쓸모없는 물건들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굳이 수고를 들이는 일들을 좋아한다. 칼로 연필을 깎고, 매일 시계의 태엽을 감고, 일력을 뜯고, 전기포트를 놔두고 가스레인지에 물을끓인다. 이런 비효율성을 감내하는 건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걸 뜻한다(바쁠 땐 일력도 밀리고 시계도 멈춘다). 그래서 나는 내 일상 속에 항상 쓸데없는 일들이 조금씩 자리하고 있기를 바란다.

핸드메이드의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질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물건들 사이에서는 삐뚤빼뚤 고르지않게 손으로 만든 것이 더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아마도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겠지. 정교하고 정확한 작업은 기계에게 맡겨두고, 손으로 하는 일들을 좀 더 많이 찾아서 해야겠다. 그래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손맛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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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참담한 기분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늘 마음에 달라붙어 있었다. 언어를 자유롭게 알아듣고 쓰지를 못하니나라는 인간 자체의 능력이 몹시 저하된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를 그 타향의 침대 위로 데려간 것도 하루키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들과 함께 나는내가 원래 속했던 곳에서 나날이 멀어져갔다. 나날이 낯설어져갔다. 나날이 가벼워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 어느 시절의 내가 간절히 바라던 바였다.

물론 별 네 개나 다섯 개짜리 리뷰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망작이라는 표현은 부당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가령 스피디하게 읽혀서 독서 포만감을 줬다거나, 하루키 특유의 유머와 은유가 마음에 들었다거나, 구조가 흥미로웠다거나, 스토리 자체가 재미있었다거나(눈치채셨겠지만 나는 지금 필사적으로 이 책의 좋은 점을 찾아보고 있으나 갈수록 아전인수가 되어가는 느낌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아아…). 그러나 내게는 손목 통증을 참아가며, 귀중한 자유시간을 바쳐가며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가장 유감스러운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하루키는 "편파적인 사랑이야말로 내가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편파적으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했고, 어쩌면 나 역시 하루키를 편파적으로 사랑해서 그의 신간이라면 무조건 구매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하루키가 이름만으로 책을 파는 작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과거 일본 문학에 열광했던 독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요시모토 바나나나 무라카미 류, 에쿠니 가오리를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끔 쓸쓸하게 느껴진다. 같은 쓸쓸함을 하루키에게서만은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오랜 팬으로서의 내 솔직한 심정이다. 팬이라서 어쩔 수 없이 사는 책이 아니라 너무좋아서 안 살 수가 없는 책. 그런 책을 나의 최애 작가가 또다시 쓸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팬이 작가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성원이 아닐까. 나는 그런 성원을 하루키에게 지속적으로 보내고 싶다. 모쪼록 다음 신간에서는 기대를 실망이 아닌 감탄으로 바꾸 어주기를.

몇십 년 동안 잊지 못한 첫사랑과 재회라도 한 양 내 가슴에서는 그리움과 반가움과 즐거움과 애 틋함이 폭죽처럼 펑펑 터졌다. 먹고살기 위해 마음 에 쌓아둔 담이 손쓸 도리 없이 무너지며 거기서 흘러나온 것들이 내 발을 적셨다. ‘아, 너무 좋아. 내가 원한 건 바로 이거야. 나는 이 일을 해야 해.‘ 이 일 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부분의 일이 그렇듯 정말이지 무모한 자기 확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창하게 비유하자면, 무라카미하루키가 1978년 4월의 어느 날 진구 구장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데이브 힐턴이 띄워 올린 2루타 를 보고 자신도 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던 순간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떤 맥락이나 근거가 없더라도 인생은 때로 그런 마법을 부리는 모양이다.

그는 배가 고팠는지 광속으로 접시를 비우다가, 마지막 한 숟가락이 남았을 때 내 몫의 요리가 절반도 채 줄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내가 다 먹을 때까지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기다렸다. 호감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고양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놀랄 만큼 몸집이 컸는데, 특히 디는 흰색, 갈색, 노란색, 검정색의 긴 털이 어우러져 있어서 흘끗 보면 레서판다나 너구리 같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 집에 놀러온 친구가 돌아앉아 닭 가슴살을 먹는 디의 뒷모습을 보고 "저게… 뭐야?"라고 공포에 질려 물은 적도 있다.

았지만 나는 내심 이런 관계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귀국해서 환경이 바뀌면 연락이 뜸해지고 그러다 자연스레 관계가 소멸될 것이라고 미래를 성급하게 속단했다. 만약 그렇다 해도 나는 그것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섣부른 체념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급히 동사무소에 갈 일이 있어서 허겁지겁 뛰어가다가 길 한복판에서 노브라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노브라 여성들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얼떨 결에 나도 실천하게 될 줄이야. 이 상황이 좀 웃겨서 K와 다른 절친들이 함께 있는 카톡 대화방에 "나 지금 노브라로 나왔네. 그냥 오이처럼 침착하게 이대로 갈까?"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ㅋㅋㅋㅋㅋ"로 점철된 말풍선들 끝에서 K가 말했다. "하루키적 모먼트네."

하루키에 얽힌 나의 과거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내또래 다른 사람들은 그의 글을 어떻게 처음 접했는지, 예전에는 어떤 느낌으로 읽었으며 현재는 어떤감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윤정- 하루키도 변했고 우리도 변했지. 시대 보정을안 하면 참을 수 없는 지점이 많아.

윤정- 남성 작가들이 훨씬 안정적으로 작업을 하고, 비평에서도 많이 다뤄지고, 그래서 여성 작가에 비해서는 더 새로울 필요가 없는 면도 있는 것같아.

지수- 나는 지금 와서 하루키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게 좀 망설여질 때가 있어.
윤정- 왜 부끄러워진 걸까? 다들 너무 많이 좋아해서 그런가?
여진- 시대가 변했지.
지수- 난 최근의 소설에 실망했기 때문인 것 같아.

구달- 그런데 내가 더는 읽고 싶지 않거나 이제는 부정하고 싶다 해도, 그것에 계속 묶여 있기는 한것 같아. 그래서 어렸을 때 읽는 책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어.
여진-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은 있지만 어쨌든 이 사람은 잘 쓰는구나 싶어. 그건 인정.
지수- 출판사 편집자님이 그러시더라고, 하루키 팬인아내분이 "하루키는 젊을 때 읽어야 한다. 나이들어서 읽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셨다고. 그러면서 편집자님이 왜 청춘일 때 하루키를 읽어야 되느냐고 나한테 물어보셨는데 나는 그

때 제대로 대답을 못 했어.
윤정- <아무튼, 하루키>가 너의 대답이라고 해. (일동폭소) <데미안>도 그렇잖아. 나이 들어서 읽으면 어릴 때만큼 좋지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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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그는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이러한 병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고 단정했다. 계획을 수행하는 동안 이성과 의지는 조금도 흐려짐 없이 유지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계획은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웬만한 일은 남에게 양보도 할 줄 알고, 때로는 자기 신념에 어긋나는 일에도 동의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항상 성실과 계율과 신념의 정해진 한계가 있어서 어떠한 사정도 그녀로 하여금 그것을 넘어서게 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가까운 이웃에 돌발적인 불행이 생겼을 때 비록 절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으레 느끼게 마련인 그 야릇한 마음속의 만족을 느끼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문간으로 물러갔다. 사실 누구나 이런 경우 가장 진지한 연민이나 동정을 가지고 있어도 이와 같은 감정이 스며드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는 법이다!

그런 일이 내 결단에 달려 있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예요. 누구는 살아야 하고 누구는 살아선 안 된다는 그런 심판의 권리를 대체 누가 나한테 주었어요!

내가 보기에 당신은 만일 신앙이나 신 같은 걸 발견하기만 하면, 창자를 찢긴다 하더라도 꿋꿋이 서서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빨리 그것을 발견하십시오, 그러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보다 먼저, 이미 오래전에 공기를 일변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자기 자신의 이론도 믿지 않는데 갖고 달아날 게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도망쳐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아, 만약에 내가 혼자뿐이며 누구 하나 사랑해주는 사람도 없고,
또 나 자신도 결코 남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 모든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토록 조잡하고 궁색한 생활을 감수하고 있는 것은 결코 미리부터 생각한 어떤 계획이나 의도 때문이 아니라, 다만 자기 운명에 대한 외면적인 무관심과 부주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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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하고 사적인 사랑 덕분에 우리는 힘을 내어 하루를 살고, 그런 하루들이 모여 인생을 만들어가니까요.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과해서 크게 체하고 난 뒤부터는 삶이 전복되지 않도록 마음의 용량을 여러 갈래로 나누고 있습니다. 요즘 제 일상은 세 가지로 구성됩니다. 일과 덕질과 산책. 세 가지 중에 하나만 없어도, 혹은 하나에만 치중해도 일상의 균형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어요. 일 때문에 힘들 땐 덕질을, 덕질 때문에 괴로울 땐 산책을, 덕질이나 산책에서 얻지 못하는 즐거움은 일이 채워줍니다.

모두에게 이해 받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저는 인생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한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열렬하게 사랑할 수있는 날이 단 한순간이라도 있다면 그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

고집 세고 편협한 우리를 이토록 쉽게 설득할 수 있는건 오직 사랑뿐일 거예요.

글을 쓴 사람조차 자신의 글을 하찮게 보는데 이런 글을 누가 좋아해주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어떻게 읽어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떳떳한 글을 쓰자고요.

한때는 창작자가 아닌 내가 무능하다고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왜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없을까, 나는 왜 빌려 써야만 할까, 하고요. 지금은 알아요. 그런 문장을 발견하는 능력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걸요. 직접 만들 순 없지만 귀한 걸 귀하다고 알아보는 눈 밝은 사람. 그게 저의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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