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참담한 기분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늘 마음에 달라붙어 있었다. 언어를 자유롭게 알아듣고 쓰지를 못하니나라는 인간 자체의 능력이 몹시 저하된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를 그 타향의 침대 위로 데려간 것도 하루키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들과 함께 나는내가 원래 속했던 곳에서 나날이 멀어져갔다. 나날이 낯설어져갔다. 나날이 가벼워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 어느 시절의 내가 간절히 바라던 바였다.

물론 별 네 개나 다섯 개짜리 리뷰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망작이라는 표현은 부당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가령 스피디하게 읽혀서 독서 포만감을 줬다거나, 하루키 특유의 유머와 은유가 마음에 들었다거나, 구조가 흥미로웠다거나, 스토리 자체가 재미있었다거나(눈치채셨겠지만 나는 지금 필사적으로 이 책의 좋은 점을 찾아보고 있으나 갈수록 아전인수가 되어가는 느낌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아아…). 그러나 내게는 손목 통증을 참아가며, 귀중한 자유시간을 바쳐가며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가장 유감스러운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하루키는 "편파적인 사랑이야말로 내가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편파적으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했고, 어쩌면 나 역시 하루키를 편파적으로 사랑해서 그의 신간이라면 무조건 구매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하루키가 이름만으로 책을 파는 작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과거 일본 문학에 열광했던 독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요시모토 바나나나 무라카미 류, 에쿠니 가오리를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끔 쓸쓸하게 느껴진다. 같은 쓸쓸함을 하루키에게서만은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오랜 팬으로서의 내 솔직한 심정이다. 팬이라서 어쩔 수 없이 사는 책이 아니라 너무좋아서 안 살 수가 없는 책. 그런 책을 나의 최애 작가가 또다시 쓸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팬이 작가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성원이 아닐까. 나는 그런 성원을 하루키에게 지속적으로 보내고 싶다. 모쪼록 다음 신간에서는 기대를 실망이 아닌 감탄으로 바꾸 어주기를.

몇십 년 동안 잊지 못한 첫사랑과 재회라도 한 양 내 가슴에서는 그리움과 반가움과 즐거움과 애 틋함이 폭죽처럼 펑펑 터졌다. 먹고살기 위해 마음 에 쌓아둔 담이 손쓸 도리 없이 무너지며 거기서 흘러나온 것들이 내 발을 적셨다. ‘아, 너무 좋아. 내가 원한 건 바로 이거야. 나는 이 일을 해야 해.‘ 이 일 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부분의 일이 그렇듯 정말이지 무모한 자기 확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창하게 비유하자면, 무라카미하루키가 1978년 4월의 어느 날 진구 구장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데이브 힐턴이 띄워 올린 2루타 를 보고 자신도 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던 순간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떤 맥락이나 근거가 없더라도 인생은 때로 그런 마법을 부리는 모양이다.

그는 배가 고팠는지 광속으로 접시를 비우다가, 마지막 한 숟가락이 남았을 때 내 몫의 요리가 절반도 채 줄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내가 다 먹을 때까지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기다렸다. 호감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고양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놀랄 만큼 몸집이 컸는데, 특히 디는 흰색, 갈색, 노란색, 검정색의 긴 털이 어우러져 있어서 흘끗 보면 레서판다나 너구리 같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 집에 놀러온 친구가 돌아앉아 닭 가슴살을 먹는 디의 뒷모습을 보고 "저게… 뭐야?"라고 공포에 질려 물은 적도 있다.

았지만 나는 내심 이런 관계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귀국해서 환경이 바뀌면 연락이 뜸해지고 그러다 자연스레 관계가 소멸될 것이라고 미래를 성급하게 속단했다. 만약 그렇다 해도 나는 그것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섣부른 체념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급히 동사무소에 갈 일이 있어서 허겁지겁 뛰어가다가 길 한복판에서 노브라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노브라 여성들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얼떨 결에 나도 실천하게 될 줄이야. 이 상황이 좀 웃겨서 K와 다른 절친들이 함께 있는 카톡 대화방에 "나 지금 노브라로 나왔네. 그냥 오이처럼 침착하게 이대로 갈까?"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ㅋㅋㅋㅋㅋ"로 점철된 말풍선들 끝에서 K가 말했다. "하루키적 모먼트네."

하루키에 얽힌 나의 과거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내또래 다른 사람들은 그의 글을 어떻게 처음 접했는지, 예전에는 어떤 느낌으로 읽었으며 현재는 어떤감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윤정- 하루키도 변했고 우리도 변했지. 시대 보정을안 하면 참을 수 없는 지점이 많아.

윤정- 남성 작가들이 훨씬 안정적으로 작업을 하고, 비평에서도 많이 다뤄지고, 그래서 여성 작가에 비해서는 더 새로울 필요가 없는 면도 있는 것같아.

지수- 나는 지금 와서 하루키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게 좀 망설여질 때가 있어.
윤정- 왜 부끄러워진 걸까? 다들 너무 많이 좋아해서 그런가?
여진- 시대가 변했지.
지수- 난 최근의 소설에 실망했기 때문인 것 같아.

구달- 그런데 내가 더는 읽고 싶지 않거나 이제는 부정하고 싶다 해도, 그것에 계속 묶여 있기는 한것 같아. 그래서 어렸을 때 읽는 책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어.
여진-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은 있지만 어쨌든 이 사람은 잘 쓰는구나 싶어. 그건 인정.
지수- 출판사 편집자님이 그러시더라고, 하루키 팬인아내분이 "하루키는 젊을 때 읽어야 한다. 나이들어서 읽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셨다고. 그러면서 편집자님이 왜 청춘일 때 하루키를 읽어야 되느냐고 나한테 물어보셨는데 나는 그

때 제대로 대답을 못 했어.
윤정- <아무튼, 하루키>가 너의 대답이라고 해. (일동폭소) <데미안>도 그렇잖아. 나이 들어서 읽으면 어릴 때만큼 좋지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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