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가 와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는 익숙했던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느껴본 그 거리감은 모든 걱정과 인간관계에서 나를 자유롭게 했다.

하지만 나는 경외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같은 날 파스콸레같은 어두운 매력이 있는 청년의 관심을 받았고, 새로운 학문을 향한 문이 눈앞에 열린 데다, 얼마 전까지 같은 동네 더군다나 우리 집 맞은편 건물에 살던 사람이 책을 출판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특히 마지막 사실은 우리도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릴라가 옳았음을 증명했다.

유년 시절부터 열네 살이 되는 그해까지 살아온 우리 삶의 수많은 조각이 짜맞춰지며 드디어 어떠한 선명한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눈앞에 나타나기는 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나는 릴라의 삶의 일부분을 놓침으로써 내 삶의 밀도와 중요성까지도 희석될 것 같아 두려웠다.

이 일은 내게 없는 것이 그녀에게 있고 그녀에게 없는 것이 내게 있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해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계속되는 이 게임은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괴로웠지만 우리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다.

"이제 다시는 네가 쓴 글을 읽고 싶지 않아."
"왜?"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를 아프게 하니까."

나는 ‘엘레나 그레코‘라는 내 이름이 종이에 인쇄되어 나오는 순간 내 존재가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비밀스러운 확신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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