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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비행, 골드핀을 향한 도전
마이크 멀레인 지음, 김은영 옮김 / 풀빛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1986년 챌린저호 폭발
1986년 아직 어린 아이였던 나에게도 엄청난 공포와 충격으로 다가 왔던 챌린저호의 폭발 사건은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머릿 속에 떠오르는 구체적인 영상의 기억들 이라기 보단, 가슴에서 얼룩져 쌓여있던 안타까움의 슬픈 기억에 더 가깝다. 어린 가슴에도 한 동안 이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었다.
이륙한지 73초 만에 챌린저 호에 탑승했던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저 세상의 사람들이 되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참사였다. 또한 그 중엔 교사 출신 민간인 우주비행사 크리스타 메컬리프가 언론의 집중을 받고 있었기에, 그녀의 훈련 과정을 촬영한 영상, 발사를 기다리던 학생들의 모습까지 생방송 되던 중 이었? 또한 미모의 여성 우주비행사로 이 책의 저자 마이크 멀레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류 부티크의 마네킹 같은 몸"을 가진 주디(주디스 알렌 레스닉) 역시 서른 여섯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는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이 책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에게, 우주 저 너머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을 것만 같았던 어린시절의 기억 한 부분을 고스란히 다시 이 푸른 행성으로, 그리고 내 가슴 속으로 불러왔다. 세계적인 천재들로만 구성되어 감히 평범한 내 두뇌로는 영원히 접근 불가할 것 같았던 최고 엘리트 집단 NASA,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 그리고 우리나라는 백만년이 걸려도 해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우주 비행을 멋지게 펼쳐나가는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물론 지금은 한국과 미국의 능력을 보다 넓은 시야에서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추천/소개의 글에 100% 동감하다
대부분의 책들이 유명인사들의 간략한 추천/소개의 글들을 서문이나 책 뒷 표지에 담고 있다. 하지만 책의 실제 내용과 동떨어진 것들이 너무 많아 과연 책을 제대로 읽고 쓴 글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의 뒷 표지에 적혀 있는 아래의 추천/소개의 글들엔 100% 이상 공감 하고 말았다. 아래의 글 들에 딴지 걸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 이다. 철저히 항복하고 말았다.
“NASA가 우주를 제대로 묘사하고 싶었다면, 시인을 뽑아서 우주에 보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마이크 멀레인 이야말로 우주에 가보지 못한 우리들을 위해 이렇게 멋진 책을 쓴 시인 우주비행사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 우주의 경이를 보고, 듣고, 느끼고, 심지어 맛까지 볼 수 있다. <우주비행, 골드핀을 향한 도전>은 우주왕복선 시대의 승리와 비극의 순간들을 눈부시게 포착한, 뛰어난 작가의 눈을 통해 우주 시대의 절정에서 미국의 영광과 실수를 되짚어 본 책이다. 이 책이 여러분을 저 높은 우주로 안내할 것이다.” -호머 히컴, 영화 <옥토버 스카이>의 원작
“때로는 설득력 있고, 때로는 으스스하고, 때로는 저속하지만, 때로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기기도 한다. 마이크 멀레인은 우주비행사의 갈망과 성취감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한편, 그들이 속해 있는 조직의 관료적인 문제점 도한 가감 없이 드러냈다.” – 월터 보인 <와일드 블루>의 저자, 미국 국립 항공우주박물관장
“NASA의 그럴 듯한 허울 이면을 엿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비로 이 책이 그 답니다! 이 책에는 우주왕복선을 타고 배행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싶었던 것 그 이상이 담겨 있다. 마이크 멀레인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잔인할 정보로 솔직하다. 이런 책은 과거에도 볼 수 없었지만, 아마 앞으로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 월터 커닝핸 <올 아메리칸 보이스>의 저자 · 아폴로 7호 우주 비행사
솔직하고 위트있는 마이크 멀레인에 반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너무 재밌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오락적인 재미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의 육체적인 성장뿐 아니라 사회적인 성장 그리고 여기에 정신적 성장까지 모두 함께 엿볼 수 있는 책 이다. 저자 마이크 멀레인은 많은 사람들이 꿈속에서만 남몰래 선망하고 현실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NASA(이 책에선 "절대즉답회피" 즉, Never A Straight Answer의 약자라는 NASA 우주인들만의 재밌는 별칭도 소개된다)의 우주비행사다. 평생 3번의 우주왕복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고도 80.45 킬로미터 이상 비행을 해야만 수여되는 골드핀을 거머쥔, 우주비행의 황금시대를 몸소 체험한 "정식 우주비행사"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성장 환경에 기인한 장애가 있었다. 자칭 "발달장애 행성 출신의 비행사"라는 표현 처럼, 전문직 여성과 협력이나 교류를 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시대적/가정적인 환경에 기인한 것 이었다. 이 환경적 장애로 인해 마이크 멀레인은 동료 여자 우주인들에 대해 우주비해운련 시작 부터 그릇된 선입관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 또한 자신과 출신 배경이 다른 박사후 연구원 출신의 우주인들에 대해서도 겪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얕잡아 보는 우를 범한다. 하지만, 우주 비행사로서 자신의 임무를 멋지게 수행 하는 주디나 다른 여자 우주 비행사 그리고 박사후 연구원들을 통해 마이크 멀레인은 차츰 "차별의 의미와 결과"를 똑똑히 배우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이와 같은 "발달장애 행성 출신"으로 비롯된 과거의 과오와 결함을 솔직히 고백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이 결함을 위트로 까지 승화 시킨다. 마이크 멀레인의 이와 같은 정신적 성장을 통해 나는 열린마음으로 세상을 배워나가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위트와 솔직함에 반해버렸다.
"내가 죽으면 아마 두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월, 수, 금요일에는 유황불이 이글거리는 성경 지옥에 갈 것이다. 악마들이 불에 달군 삼지창으로 나를 고문하겠지. 나머지 요일엔는 페미니스트 지옥에 떨어져, 내 몸에서 가장 값나가는 부분이 불에 달군 바이스에 끼워질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한 짓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성경의 지옥과 페미니스트의 지옥 외에, 나는 박사후 연구원의 지옥에서도 불타게 될 것이다."
또한 선구자로서 "장벽을 깨뜨리는 것에 수반되는 온갖 위험"들을 무릅쓰고, "우주로 간 역사상 두 번째 미국 여성"으로서 당당함을 보여 주었던 주디에게도 매료되었다. 이 책의 309쪽에도 나와 있듯이 우주 왕복선에 탑승한 대원들은 한자리에 모여 궤도상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자동 타이머를 맞춰두고 골프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찍은 아래의 사진은 주디의 구릿빛 다리가 사진의 정중앙에서 시선을 사로잡아 치어리더의 피라미드를 연상 시키고 여성들의 지위를 격하시켰다는 이유로 당시 페미니즘 운동가들의 비난과 항의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 우주비행사를 당연하게 받아 들일수 있는 지금의 환경에 감사하고, 이와 같은 인식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이끌러준 주디와 같은 선구자들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에 대해서도 참으로 많은 생각을 갖게 하게 하는 책 이었다.
골드핀을 달게되다
"좌뇌의 지배라는 저주"를 받은 우주 비행사들은 눈으로 본 것을 말로 표현 하는 데는 비참할 정도로 무능력하다고 마이크 멀레인은 말 하지만, 이것은 지나친 겸손이다. 그는 우주 비행사의 세계를 놀랍도록 탁월히 묘사 하고 있다. 여기에 군데 군데 톡톡 발휘되는 재치와 유머까지 ! 감탄이 절로 난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우주비행사의 길은 나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다른 세계, 상상 조차 어려운 세계였다. 하지만 이책을 읽고나니, 마치 내가 우주비행사가 되는 모든 과정을 직접 겪고 성공적으로 우주 비행을 마치고, 가슴에 골드핀 달고 있는 정식 우주비행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주비행사의 세계가 나와 가까운 세계 .. 그리고 어쩌면 미래 우주여행을 통해 내가 직접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로 변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실버핀을 달고 성공적으로 우주비행을 마치고 돌아와 마침내 가슴에 골드핀을 달게 되는 멋진 경험이었다.
지구에서는 단 5분이면 끝났을 일(용변보는 일)이 우주에서는 30분 가까이 걸린다는 사실도, 이럴 때 마다 우주 비행사들이 중력을 사무치게 그리워 한다는 사실도, STS-41D 승무원들을 실은 디스커버리호가 초속 8KM로 이동했다는 것도, 무중력 상태에 척추뼈가 서로 떨어지면서 2~5 센티미터 가량 키가 커진다는 것도, 우주비행사들이 "등반사고로 죽어서 꽁꽁 언 다른 등반자의 시신을 밟고 산 정상을 향해 묵묵히 올라가는 에베레스트 등반가"와 같은 심정으로 죽음 보다 훨씬 더 큰 공포, 즉 정상에 못 오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힘을 얻는 사람들 이라는 것도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