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융위기 - 글로벌 동시불황이 왔다
가네코 마사루.앤드류 드윗 지음, 이승녕 옮김 / 지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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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제를 살리자!"라는 구호의 캠페인과 "IMF 경제 체제"라는 단어들이 서서히 잊혀져 갈 즈음, 어언 10년만에 또 다시 맞이하게 된 뜻 밖의 세계 금융위기는 많은 사람들을 막연한 불안으로 몰아가고 있다. 시스템적인 국제 통화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야기된 이같은 글로벌 경제 위기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혹자는 지금 세계 경제 위기는 이미 오래전 부터 예견된 일들의 현실화에 불과하다고 말 한다. 갑작스레 불어 닥친 경제 위기만도 어리둥절한 터에, 이미 오래전 예견된 일이었다는 말은 또 한 번 나를 당혹케 한다. 글로벌 경제 위기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한들 과연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만한 지혜와 배짱을 지닌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냐는 의문도 든다. 그럼에도 좀 더 일찍 이와 같은 경제 위기에 대한 예측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에 힘 입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세밀한 수학적 통계자료들을 바탕으로, "손실을 확정 지을 수 없는 그림자 금융 시스템"의 허구와 진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도표와 차트 분석에 취약한 나로서는 처음에는 다소 생경한 책 이기도 했지만, 손에 딱 잡히는 아담한 사이즈와 적당한 분량 때문인지 조금만 집중하고 읽는 다면 충분히 정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반 부시이즘 입장을 고수해 온 저자는 조지 W 부시를 전쟁과 버블의 대통령으로 규명하며, 지금의 불황은 통상적인 경기 순환에 따른 불황이 아니라, 이라크 전쟁에 의한 군사적 재정적 파탄과 석유 가격의 급등과 버블 경제가 겹친 특수한 스테그 플레이션 상황이며, 증권화와 글로벌 화에 의해 전 세계가 말려든 동시불황의 위험성이 내포된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라 정의 한다. 자칫하면 19세기 말과 1930년 세계 공황에 필적하는 글로벌 경제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고 말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예전에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금융 시스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돈을 '발행한다', 혹은 채권을 '발행한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실상 이 책을 읽다 보면 돈이란 그저 허황된 거품에 불과하며, 그 실체를 가늠하기 힘든 뜬 구름 같은 것으로 재 해석 된다. 그래서 차라리 돈은 '찍어낸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게 요즘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경제 정책이 아닌가 싶다.

 

이제 새로운 공포, 미지의 리스크에 직면한 전 세계는 저자의 말 대로, 온 인류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 때 인 듯 하다. 나는 믿고 싶다. 분명 위기에는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있고, 이를 통해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다고 말이다. 책 말미의 특별 기고문의 비유 처럼, '술자리에서 과음직전 누군가 술 병을 치웠어야 하는 상황'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뤄졌어야 할 거시경제적 조정이 제 때 일어나지 못했던데 대해 이제라도 깊이 반성하고, 경제 시스템적 불완전성에 대해 새롭게 재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암살 배후와 관련하여, 화폐 제도 및 경제 시스템의 취약성에 대한 그의 자각과 개혁 의지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거론 되기도 한다. 지금의 세계 경제 상황을 보면, 이와 같은 배후설이 전혀 사실 무근의 억측같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돈 때문에 사람이 죽고 사는 현실이 된 것이 무엇보다 슬프다. 사람을 살게 하고, 사람답게하는 정직하고 건전한 경제 시스템이 절실함을 깨닫게 해 주는 책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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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의 두 여자 - 자유의 길, 구원의 길, 산티아고 가는 길!
권현정.구지현 지음 / 김&정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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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다큐멘터리를 통해 난생 처음으로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알게 되었다. 일명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고 하는 이 길은 오래도록 나를 매료 시켰고, 열병을 일으켰다. TV 속 산티아고 순례길은 느릿 느릿, 흐릿 흐릿, 여리 여리한 느낌과 빛깔을 풍기며, 마치 빛 바랜 한 폭의 파스텔화 처럼, 마냥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마냥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당시 TV 다큐멘터리는 순례자들이 어떻게 해서 카미노에 오게 되었는지를 묻는 인터뷰를 중심으로, 오로지 순례길 위에서의 모습들만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졌었다. 반면 순례자들이 30일이 넘는 여행일정 동안,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하는지 등등의 세세한 내용 까지는 구체적으로 다루어 지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걷기라면 자신 있는 나로서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신선노름 처럼 마냥 행복하고 고통 없는 길 처럼 여겨졌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막연했던 산티아고 순례 여행에 대한 나의 환상이 무참하게 부서졌다.
환상은 깨어 지고, 달콤 쌉사름하고 때로는 쓴 맛 나는 생생한 현실로 새롭게 산티아고가 다가왔다. 하루 10시간 넘게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걸어야 하고, 걷는 도중 폭우도 만나고, 강렬한 스페인의 태양과도 맞서야 한다. 게다가 순례자 전용 숙박지인 알베르게에서는 고약한 발냄새 부터, 코고는 소리, 커플들이 사랑을 나누는 민망한 소리까지, 참고 견뎌내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거기에 언어의 장벽까지 … 특히나 숙박의 문제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알베르게에 늦게 도착한 날이면, 이미 잠자리가 동이나버려, 성당의 차가운 바닥에서 자거나, 아니면 애써 걸어 온 길을 되돌아 가거나, 계획에 없던 추가의 여정을 뒤 늦게 떠나야 하기도 한다.
 
이 책 속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마치 우리 인생 여정의 작은 축소판 같다. 산티아고의 순례길에서는 모든일이 계획된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생각지 못했던 변수와 어려움도 만나게 되고, 이 것을 용감하게 뛰어넘으면, 뜻하지 않은 축복과 행운과 함께, 영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기도 한다. 어려운 순간 때때로 누군가로 부터 크고 작은 도움도 받게 되지만, 그렇다고 누구도 그 길을 대신 걸어 줄 순 없다. 마치 우리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잘하던 잘못하던, 잘났던 못났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내야하는 것 처럼, 산티아고 가는 길 역시 그러하다. 
 
천주교 3대 순례지로 로마의 성베드로 무덤(일명 십자가의 길), 예루살렘 종려나무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 야고보의 무덤 산티아고(조개껍질이 상징)가 있는데, 나는 이 세 가지 순례길 중 유독 산티아고의 길에 매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환상과 동경을 앞서 언급했듯이, 산산이 조각내고, 심지어는 산티아고 여행에 대한 나의 계획 까지도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난게 천만 다행이었다. 환상을 깨야, 비로소 제대로 진실된 산티아고를 만날 수 있으리란 마음이 들었다. 가볍게 기분 전환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 없겠지만, 산티아고와 같은 순례길의 긴 여정에는 몸도 마음도 많은 단련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산티아고 여행을 준비하는 내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가령 캡 모자만으로는 뜨거운 스페인의 태양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고, 생각지도 못하게 귀에 화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챙이 넓은 모자를 준비해야 한다던가, 벼룩 등의 작은 곤충으로 부터도 여행 중에는 건강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던가, 생존을 위한 간단한 스페인어 정도는 익히고 가는 것이 고생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는 내용 등이 그러하였다. 

여행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는 쇼핑이라 생각했던 내게, 책 속 ’두 여자’는 고행의 순례길 속에서도, 사막의 오아시스를 안내하듯, 비록 아주 소소하지만 쇼퍼홀릭의 갈증을 해소시키기에 충분한 쇼핑 팁들도 잊지 않았다. 순례 여행길 이라는 것이 자의든 타의든 버리고, 비우는 것이 기본이 되는 터라, 자칫 쇼퍼홀릭에게는 지루하기 짝는 고행길 일 수 밖에 없지만, 책 속 '두 여자는' 당당하게도 카미노데 산티아고의 순례길에도 소비미학의 서광을 비춰 준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두 명의 공동 저자에 의해 쓰여졌는데, 마치 남 얘기 하듯 솔직하고 담백한 문체가 시원 시원한 느낌이다. 시작 부터 톡톡 튀는 미시족과 골드미스의 감성과 재치에 웃음 짓게 되며, 마지막 까지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순례자들 사이에서 거북이 시스터즈로 통할 만큼 운동엔 젬병인 '두 여자'가 신체적 약세를 극복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완성해낸 산티아고 순례 여행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물론 명색이 순례 여행이기는 하지만, 이 여행을 통해 두 여자가 완전 새롭게 믿음의 자녀로 거듭나지는 못한 듯 하다. 산티아고 여행 이후 도로아미타불 시스터즈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준과 지니는 카미노데 산티아고를 통해 세상과 인생이라는 여정을 보다 넓게 보고, 보다 멀리 그리고 여유롭게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책 속에 실려 있는 산티아고 여행길의 사진들은 온통 파스텔톤이다. 숨막힐 정도로 고요해 보이고, 지나치게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여백이 많다. 하지만, 지금 그 길들이 소리 없이 나를 부르는 듯, 가슴에 또 다시 산티아고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언젠가 내가 그 길에 닿았을 때,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노라며 그 길이 반가이 나를 맞이해 주겠지? 

내가 먼저 다가서지 않는 한, 나에게 열려 있는 모든 길들은 결코 먼저 내게 다가와 주지 않는다. 내가 결심하고, 용기있게 길을 나서고, 비록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다가서야만 비로소 그 길에 닿을 수 있고, 이 때 비로소 그 길은 나의 길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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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변화 : 미국은 왜 오바마를 선택했는가 - 가장 미국적인 인물이 밝히는 미국의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들
뉴트 깅리치 지음, 김수진.김혜진 옮김 / 지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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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오바마를 선택했을까? 외국의 어느 연구에 따르면, 좋은 인상을 가진 호감가는 외모의 정치인들이 그렇지 못한 정치인들 보다 약 70% 가량 당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잘 생겨서? 아니면, 학벌과 배경이 좋아서? 그가 내 놓은 공약이 훌륭해서?  


미국이 오바마를 선택한 이유에 관하여 여러 가지의 설이 있었다. 그 중 내가 들은 한 가지는 힐러리 로뎀 클린턴의 이름 가운데 로뎀이라는 Family Name이 네덜란드 유대인의 핏줄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그녀의 정치적 주요 지지 기반이 유대인, 즉 쥬요커가 많이 거주하는 뉴욕 등의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상대적으로 다양한 인종의 다국적 핏줄이 흐르고 있는 오바마가 훨씬 더 폭넓은 지지기반을 얻을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이 밖에도 오바마의 당선을 두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가설과 이야기 들이 많았지만, 이 책 처럼 세세하게 미국의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흐름과 맥락에 저자의 철학을 더한 깊이 있는 설명은 처음이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동기는 매우 단순했다. 그건 바로 정치에 무관심하다 못해 무지하기로 소문난 미국인들이 과연 어떤 동기에 의해 오바마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깊이는 내 바램과 단순한 흥미를 훨씬 뛰어 넘어 고차원적으로 미국 정치와 사회의 지난 과오와 실수들에서 비롯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진정 미국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살피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토대로, 저자가 생각하는 미래의 미국이 나아가야할 정책적 방향성 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바탕이 된 사람에게는 더욱 더 흥미롭고 재밌을 것 같다. 마치 한 편의 논문을 펼친 듯, 정교하고 세밀하게 제시된 책 속의 각종 이슈들과 그에 관련된 통계 자료들이 다채롭다. 여기에 개인의 통찰력이 보태진다면, 이 책은 더 완벽하게 빛을 발할 수 있을 듯 싶었다.  


비단 지금 초유의 관심사로 떠오른 경제 문제만이 아니다. 정치, 안보, 노동, 복지 그리고 대외적인 미국의 외교 정치 까지 각종 난제들로 절박함을 뛰어 넘어 국가적 위기 상황에 봉착한 미국이 과연 앞으로 어떠한 선택을 하고 미래를 일궈나갈지 더욱 궁금해 진다. 책 속 저자의 생각과 주장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되도록 겸허하게 열린마음으로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고, 그 중에서 좋은 생각들을 수용하고자 마음먹었다. 어찌보면 자기성찰 내지는 자아 비판적인 저자의 솔직한 미국 사회에 대한 고백과 날카로운 비판들 속에서도, 이상하리만큼 끔찍한 자기애적 애국심이 은연 중 느껴지는 것이 이 책이 갖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나타내는 듯 하다.  


사람이 변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이 처럼 한 개인의 변화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판에, 개인이 뭉쳐 형성된 정당과 기관 그리고 더 나아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진정한 변화를 일궈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각계 각층에서 필요할런지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부디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않고, 보다 넓은 마음으로 세계를 품고, 보다 큰 그림에서 온 인류의 공생을 꿈꾸며 더불어 사는 참된 변화를 일궈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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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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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 김정현의 실제 친구인 '서용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당연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 역시 김정현 작가와 그의 친구 서용준이 태어나고 자란 소백산 자락의 지방 소도시 영주이다. 영주라는 지방의 이름도 매우 낯설었지만, 이 책 속에서 담고 있는 대한민국 아버지의 삶, 그리고 남자들의 우정 역시 낯설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낯설다기 보다는 차라리 무관심 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정도로, 아버지의 삶, 그리고 그네들의 젊은날의 꿈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꿈을 접을 채로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감내하며 살아간다는 것,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며 산다는 것 등등 내가 외면하며 살았지만, 엄연히 이 땅에 존재하는 또 다른 삶의 모습들에 눈뜨고 가슴을 열게 되었다.  

 

남자의 삶, 그리고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이해과 관심이 부족했던 나로서는, 솔직히 주인공 서용준이 처음에는 이해 불가의 못마땅한 인물일 수 밖에 없었다. 스물다섯의 꿈 많은 나이에 뇌사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대신하여 학업도 포기하고, 가장의 책임을 떠맡게 된 서용준은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인생의 포부나 꿈이 없는 것이 제일 큰 문제라고 속단했었다. 게다가 사랑 한 번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선으로 만난 여자와 결혼도 하고 가정 까지 이루는 모습은 기막힐 따름이었다.  

 

이 같은 주인공 서용준의 삶에 대한 빠른 순응과 체념 그리고 포기의 모습이 처음에는 답답하다 못해 마구 화가났었다. 어쩌면 이것이 세대간 생각의 차이일 지도 모르겠다는 건방진 생각도 했었다. 요즘 우리 젊은 세대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이기적인 모습으로 돌변한다. 어찌 보면 당차고 영리한 모습이지만, 또 어찌 보면 살짝 얄미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리사랑에만 익숙한 우리 세대는 자기 살기에도 급급하다. 그래서 거꾸로 거슬러 부모를 공양하고 모시기 위해 자신의 삶과 꿈을 희생한다는 개념 자체가 마냥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나 역시 내리사랑에만 익숙한 응석받이여서 인지, 내가 만약 주인공 서용준의 입장이었다면, 좀 더 다른 삶을 택하고 살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이었다. 현실에 순응하고 안주 하기 보다는, 좀 더 진취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꿈을 쫓아 당당히 나서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그래서 인지 주인공 서용준이 내게는 꿈 없는 껍데기의 사람 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간절히 바라고 뜨겁게 원하는 절실한 꿈 이 없어서, 주인공 서용준은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고, 그저 있는 그대로 주어진 환경의 노예로 온전한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사는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끝 까지 읽게 되자 이와 같은 나의 오만한 생각에도 작은 변화가 일었다. 그리고 주인공 서용준이 결코 비겁자 이거나 꿈없는 껍데기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최악의 상황도 기꺼이 감내하고, 품어낼 줄 아는,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비록 불꽃 튀는 사랑을 느끼지는 못했을 지언정, 결혼을 서약하고, 자신의 선택과 결심에 대해 일생토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처음에 가졌던 주인공에 대한 나의 오해와 편견, 그리고 삶의 가혹함에 대한 원망이 점차 이해와 공감으로 변해가고, 고통 가운데에서도 반드시 존재 하는 삶의 축복에 대한 믿음으로 물들어갈 무렵, 책의 끝 자락에서 뜻하지 않게 마주한 주인공의 또 다른 불운에 나는 다시 한 번 깊은 슬픔과 당혹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 동안 어안이 벙벙했고, 이 책의 결말을 뒤집고 싶은 욕심이 들기도 했다. 주인공 서용준에게 주어진 삶이 너무 가혹하여, 내가 다 억울한 심정이 들기도 했다. 가슴이 미어져서, 한 동안 주인공의 슬픔이 마치 내 슬픔인냥 넋을 잃고 말았다.

 

이 책에는 장밋빛 삶의 환상도, 빛나는 청춘 시절의 화려함이나, 적당한 나른함과 방종도, 우리가 흔히 소설을 통해 기대하는 해피앤딩도, 주인공의 자아도취나 빛나는 모험담도, 초인적인 영웅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화려하게 포장된 삶의 겉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찢기우고 구겨져 형체 조차 제대로 남지 않고, 모든 허울과 위선을 벗어던진 본연의 삶 그 자체를 여실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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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4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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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을 메인 테마로 각 계절의 정취와 감상들이 아름다운 판화와 예쁜 손글씨로 담겨져 있는 이 책은 특이하게도 봄-여름-가을-겨울의 고정관념화되어 있는 순서의 개념을 살짝 뒤집어 겨울-봄-여름-가을의 순으로 이야기를 엮어 가고 있다. 아마도 12월에 출간된 책 인 탓에 계절적인 상황을 배려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게 되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책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가 2008년, 마지막으로 읽은 책으로 기록되었는데, 뜻 밖에도 저무는 한 해를 돌아보며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연말연시의 지금 시점에 너무나도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는 내용의 책이 아닌가 싶다.



책을 받아든 첫 소감은, 일단 감동이었다. 꼼꼼하고 예쁘게 잘 만들어진 양장본이어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소장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쇄체로 제작된 비슷한 형식의 책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인쇄체가 아닌 손글씨로 제작된 이 책이, 마치 기성품이 아닌 수제로 정성스럽게 만든 귀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인쇄체로 만들어진 책들이 디지털 시대의 세련된 느낌을 가지는 반면 다소 차가운 느낌이라면, 손글씨체의 이 책은 아날로그적인 향취를 물씬 자아내며 옛 향취와 정감을 자아낸다. 책의 외양도 그렇고 내용도 그러하다. 다소 느릿 느릿해 보이고, 세련미는 없는 듯 보이지만, 나도 모르게 정이 간다.



친구의 노트를 읽는 기분이 들 만큼 귀여우면서도 친숙한 느낌으로 촘촘히 박혀 있는 손글씨가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하나 하나 예쁘고 사랑스런 판화그림들과 멋지게 잘 어우려져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최고의 매력인 듯 하다. 약 150페이지 분량이어서, 금새 다 읽어 버리면 어쩌나 처음엔 걱정도 앞섰는데, 막상 군데 군데 많은 생각과 상념들에 시간 가는줄 모르게 된다. 생각 만큼 빨리 읽기는 힘든 책이고, 의외로 읽을거리가 많은 책이기도 하다. 그림책과 글씨책, 각각의 약점들은 최대한 배제되고, 강점들만 꼽아 잘 반영한 책 인듯 하다.



이야기는 “눈빛 든 마루에 앉아”라는 이름하에 제일 먼저 겨울을 배경으로 계절의 흐름을 이어나간다. 겨울 편에서는 계절이 추위를 상징하다보니, 작가의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한 문제 의식과 비판이 제일 많이 드러나 있는 듯 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 책 속의 사계절 중에 겨울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든다.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 켜켜히 쌓아 두고, 품어 두었던, 세상에 대한 분노와 노여움이 작가의 글을 통해 속 시원히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 욕심을 채우고, 오로지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데 혈안이 너나 할 것 없이 장사꾼 처럼 변해 가고 있는 요즘 세상에, “싫도록 나누고, 싫어도 나누는” 삶을 살자는 작가의 용감한 외침이 큰 감동으로 전해 진다. ‘추워도 맑은 편이 낫다’는 작가의 배짱도 멋있게 느껴졌다.



다음으로 봄이 메인 테마인 부분에서는 위와 같은 작가의 문제의식도 봄눈 녹듯 잠시 누그러지기는 듯 하다. 그래서 인지 나도 모르게 나른하고 취하는 기분이 든다. 이제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 한 겨울인데, 봄-여름의 감상을 읽고 있자니 솔직히 아주 조금은 “감(계절적 공감과 실감)”이 떨어 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어느 계절 하나 싫은 것 없이 충분히 의미 있고 충분히 좋다. 각 계절의 운치와 여운이 그대로 살아 있다. 하지만, 봄이 되면, 그리고 꼭 여름, 가을이 되면 재철의 맛을 살려 이야기를 곱씹으며 다시 읽어 보고 싶다.



어릴적에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해갈 수록 인생이 점점 더 편안해 지고, 마음도 넉넉해 질 꺼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끔은 채워도 채워도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상대적 부족과 결핍이 문제 일까? 아니면, 그저 내 안에 열망과 욕심이 너무 커서 아직 다 채우지 못해서 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이 나를 점점 더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걸까?



위와 같은 생각들이 많았던 나에게 이 책은 있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잠시나마 마음의 온갖 욕심과 상념들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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