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작가 김정현의 실제 친구인 '서용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당연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 역시 김정현 작가와 그의 친구 서용준이 태어나고 자란 소백산 자락의 지방 소도시 영주이다. 영주라는 지방의 이름도 매우 낯설었지만, 이 책 속에서 담고 있는 대한민국 아버지의 삶, 그리고 남자들의 우정 역시 낯설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낯설다기 보다는 차라리 무관심 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정도로, 아버지의 삶, 그리고 그네들의 젊은날의 꿈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꿈을 접을 채로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감내하며 살아간다는 것,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며 산다는 것 등등 내가 외면하며 살았지만, 엄연히 이 땅에 존재하는 또 다른 삶의 모습들에 눈뜨고 가슴을 열게 되었다.  

 

남자의 삶, 그리고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이해과 관심이 부족했던 나로서는, 솔직히 주인공 서용준이 처음에는 이해 불가의 못마땅한 인물일 수 밖에 없었다. 스물다섯의 꿈 많은 나이에 뇌사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대신하여 학업도 포기하고, 가장의 책임을 떠맡게 된 서용준은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인생의 포부나 꿈이 없는 것이 제일 큰 문제라고 속단했었다. 게다가 사랑 한 번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선으로 만난 여자와 결혼도 하고 가정 까지 이루는 모습은 기막힐 따름이었다.  

 

이 같은 주인공 서용준의 삶에 대한 빠른 순응과 체념 그리고 포기의 모습이 처음에는 답답하다 못해 마구 화가났었다. 어쩌면 이것이 세대간 생각의 차이일 지도 모르겠다는 건방진 생각도 했었다. 요즘 우리 젊은 세대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이기적인 모습으로 돌변한다. 어찌 보면 당차고 영리한 모습이지만, 또 어찌 보면 살짝 얄미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리사랑에만 익숙한 우리 세대는 자기 살기에도 급급하다. 그래서 거꾸로 거슬러 부모를 공양하고 모시기 위해 자신의 삶과 꿈을 희생한다는 개념 자체가 마냥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나 역시 내리사랑에만 익숙한 응석받이여서 인지, 내가 만약 주인공 서용준의 입장이었다면, 좀 더 다른 삶을 택하고 살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이었다. 현실에 순응하고 안주 하기 보다는, 좀 더 진취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꿈을 쫓아 당당히 나서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그래서 인지 주인공 서용준이 내게는 꿈 없는 껍데기의 사람 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간절히 바라고 뜨겁게 원하는 절실한 꿈 이 없어서, 주인공 서용준은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고, 그저 있는 그대로 주어진 환경의 노예로 온전한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사는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끝 까지 읽게 되자 이와 같은 나의 오만한 생각에도 작은 변화가 일었다. 그리고 주인공 서용준이 결코 비겁자 이거나 꿈없는 껍데기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최악의 상황도 기꺼이 감내하고, 품어낼 줄 아는,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비록 불꽃 튀는 사랑을 느끼지는 못했을 지언정, 결혼을 서약하고, 자신의 선택과 결심에 대해 일생토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처음에 가졌던 주인공에 대한 나의 오해와 편견, 그리고 삶의 가혹함에 대한 원망이 점차 이해와 공감으로 변해가고, 고통 가운데에서도 반드시 존재 하는 삶의 축복에 대한 믿음으로 물들어갈 무렵, 책의 끝 자락에서 뜻하지 않게 마주한 주인공의 또 다른 불운에 나는 다시 한 번 깊은 슬픔과 당혹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 동안 어안이 벙벙했고, 이 책의 결말을 뒤집고 싶은 욕심이 들기도 했다. 주인공 서용준에게 주어진 삶이 너무 가혹하여, 내가 다 억울한 심정이 들기도 했다. 가슴이 미어져서, 한 동안 주인공의 슬픔이 마치 내 슬픔인냥 넋을 잃고 말았다.

 

이 책에는 장밋빛 삶의 환상도, 빛나는 청춘 시절의 화려함이나, 적당한 나른함과 방종도, 우리가 흔히 소설을 통해 기대하는 해피앤딩도, 주인공의 자아도취나 빛나는 모험담도, 초인적인 영웅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화려하게 포장된 삶의 겉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찢기우고 구겨져 형체 조차 제대로 남지 않고, 모든 허울과 위선을 벗어던진 본연의 삶 그 자체를 여실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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