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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 ㅣ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4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8년 12월
평점 :
사계절을 메인 테마로 각 계절의 정취와 감상들이 아름다운 판화와 예쁜 손글씨로 담겨져 있는 이 책은 특이하게도 봄-여름-가을-겨울의 고정관념화되어 있는 순서의 개념을 살짝 뒤집어 겨울-봄-여름-가을의 순으로 이야기를 엮어 가고 있다. 아마도 12월에 출간된 책 인 탓에 계절적인 상황을 배려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게 되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책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가 2008년, 마지막으로 읽은 책으로 기록되었는데, 뜻 밖에도 저무는 한 해를 돌아보며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연말연시의 지금 시점에 너무나도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는 내용의 책이 아닌가 싶다.
책을 받아든 첫 소감은, 일단 감동이었다. 꼼꼼하고 예쁘게 잘 만들어진 양장본이어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소장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쇄체로 제작된 비슷한 형식의 책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인쇄체가 아닌 손글씨로 제작된 이 책이, 마치 기성품이 아닌 수제로 정성스럽게 만든 귀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인쇄체로 만들어진 책들이 디지털 시대의 세련된 느낌을 가지는 반면 다소 차가운 느낌이라면, 손글씨체의 이 책은 아날로그적인 향취를 물씬 자아내며 옛 향취와 정감을 자아낸다. 책의 외양도 그렇고 내용도 그러하다. 다소 느릿 느릿해 보이고, 세련미는 없는 듯 보이지만, 나도 모르게 정이 간다.
친구의 노트를 읽는 기분이 들 만큼 귀여우면서도 친숙한 느낌으로 촘촘히 박혀 있는 손글씨가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하나 하나 예쁘고 사랑스런 판화그림들과 멋지게 잘 어우려져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최고의 매력인 듯 하다. 약 150페이지 분량이어서, 금새 다 읽어 버리면 어쩌나 처음엔 걱정도 앞섰는데, 막상 군데 군데 많은 생각과 상념들에 시간 가는줄 모르게 된다. 생각 만큼 빨리 읽기는 힘든 책이고, 의외로 읽을거리가 많은 책이기도 하다. 그림책과 글씨책, 각각의 약점들은 최대한 배제되고, 강점들만 꼽아 잘 반영한 책 인듯 하다.
이야기는 “눈빛 든 마루에 앉아”라는 이름하에 제일 먼저 겨울을 배경으로 계절의 흐름을 이어나간다. 겨울 편에서는 계절이 추위를 상징하다보니, 작가의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한 문제 의식과 비판이 제일 많이 드러나 있는 듯 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 책 속의 사계절 중에 겨울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든다.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 켜켜히 쌓아 두고, 품어 두었던, 세상에 대한 분노와 노여움이 작가의 글을 통해 속 시원히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 욕심을 채우고, 오로지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데 혈안이 너나 할 것 없이 장사꾼 처럼 변해 가고 있는 요즘 세상에, “싫도록 나누고, 싫어도 나누는” 삶을 살자는 작가의 용감한 외침이 큰 감동으로 전해 진다. ‘추워도 맑은 편이 낫다’는 작가의 배짱도 멋있게 느껴졌다.
다음으로 봄이 메인 테마인 부분에서는 위와 같은 작가의 문제의식도 봄눈 녹듯 잠시 누그러지기는 듯 하다. 그래서 인지 나도 모르게 나른하고 취하는 기분이 든다. 이제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 한 겨울인데, 봄-여름의 감상을 읽고 있자니 솔직히 아주 조금은 “감(계절적 공감과 실감)”이 떨어 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어느 계절 하나 싫은 것 없이 충분히 의미 있고 충분히 좋다. 각 계절의 운치와 여운이 그대로 살아 있다. 하지만, 봄이 되면, 그리고 꼭 여름, 가을이 되면 재철의 맛을 살려 이야기를 곱씹으며 다시 읽어 보고 싶다.
어릴적에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해갈 수록 인생이 점점 더 편안해 지고, 마음도 넉넉해 질 꺼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끔은 채워도 채워도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상대적 부족과 결핍이 문제 일까? 아니면, 그저 내 안에 열망과 욕심이 너무 커서 아직 다 채우지 못해서 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이 나를 점점 더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걸까?
위와 같은 생각들이 많았던 나에게 이 책은 있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잠시나마 마음의 온갖 욕심과 상념들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