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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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 생물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몇 해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황우석 사건이다. 희대의 사기극으로 결론 지어진 당시의 사건은 우리 나라 과학계의 어두운 이면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단지 황우석 개인의 거짓과 위선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관습이 보태어진 고질적인 악습과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는, 그래서 "천사마저도" 유혹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과학계의 비열한 생리가 더 문제였다. 맘놓고 연구에만 매진할 수 없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현실은 젊고 유능한 과학자들을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보낸다. 또한 비즈니스를 잘 하는 연구팀이 더 많은 연구 지원비를 받게 되고, 상대적으로 쇼비즈니스에 약하지만, 적절한 스폰서나 연구팀을 만나지 못한 재능 있는 과학자들은 도태되어 영영 과학자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일본 과학계가 처한 현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랐다.

모든 것엔 최초의 발견자가 있게 마련이지만, 실상은 서로가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은밀한) 협공하에 이루어낸 협조물인 경우도 많고, 또 동시다발적으로 “헤우레카”를 외치며 위대한 발견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을 것 이다. 그래서 진리 탐구가 목적인 과학계에선 네이처지 등의 공신력있는 잡지에 논문을 먼저 올리는 것이 발견의 순서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우리는 흔히 “과학적” 이라는 단어를 무언가 합리적이고 100% 정확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하지만, 정작 이 책 속에서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는 과학계, 그 중에서도 분자생물학계의 현실들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때로는 비열하다. 때로는 비이성적이기도 해 보인다. 게다가 비 과학적이다. 재밌는 사실은 비과학적인 것들에서 때로는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너무나 솔직한 자기 고백 처럼 느껴진다. 같은 일본인, 그리고 같은 과학자로서 일본 본국에서는 ‘슈바이처’로 까지 승격화 되어 천엔짜리 신권에도 등장하는 “노구치 히데오”에 대한 냉엄한 미국 학계의 혹평을 기술하고 있는 이 책의 작가가 그래서인지 조금은 역사 왜곡에 정통한(?) 일본인들의 습성과는 거리가 있어보여,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어찌보면 과학자로서 그리고 과학자 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솔직하고 진실된 사실을 기술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겠지만, 실상 우리 <현실>은, <진실>에 여러 가지 플러스 마이너스의 화학 작용을 일으켜, 많은 것을 변질 시킨다. 그래서 보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된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떠올랐던 물음 중 하나는 DNA니 RNA니, 생명의 본질은 무엇이니,아니면 생물과 무생물을 가르는 정확한 경계는 무엇이니 하는 것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도대체 진실이란 무얼까? 하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다. 어릴적엔 흑백논리로 단숨에 풀 수 있었던, “진실과 구라 사이”의 명확했던 경계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모호해 짐을 느낀다. 과연 이 책 속에서 저자가 그동안 왜곡되었던 진실을 새롭게 조명하고 풀어가는 과정은 순도 몇 퍼센트의 진실일까?

<What Mad Pursuit!>
위와 같은 고차원적인 의혹까지 유발시키고 있는 이 책은 일반인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분자생물학계의 눈부신 영광과 그 영광의 빛에 그늘 드리워진 채 숨죽이며 지내야만 했던 숨은 영웅들, 그리고 은폐와 조작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 과학계의 어두운 이면들이 마치 연예계 뉴스나 가십거리를 늘어놓 듯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설명되어 있다. 마치 황우석 사건 당시 미디어가 최대한 뉴스를 시청하는 일반 시청자 입장에서 어려운 과학 용어들, 가령 줄기세포니, 배아줄기니, 동물 복제니 하는 것들과 그 원리를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덕에 아예 모른척 알기를 포기 하고 말았을 학술적 내용들에 대해 일반인들이 조금이나마 자신의 지적 한계를 뛰어 넘을 용기를 갖게되었던 일화 처럼, 이 책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과학을 쉽게 풀어 쓰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읽기를 포기할만한 변명과 구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이상한 과학책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내가 천재가 된 듯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DNA의 구조나 복잡한 샤가프의 퍼즐 등이 연예계 뉴스만큼 명확하게 이해되진 않는다. 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저자에게 물을 비양심적 알리바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분명 내 집중력과 지력의 한계의 어느 부분에선가 남몰래 부끄러운 폭발음이 울리는 순간이 있었으리라 ..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동경해 마지 않는 로망의 도시 뉴욕 ! 그 뉴욕이라는 산뜻한 배경 설명으로 시작되고 있는 이 책은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여러 역사 속 과학자들의 위대한 발견 과정과 인물들 간의 상관 관계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간다. 마치 인물간의 갈등 구조나 음모, 계략이 주축을 이루는 드라마 '여인천하"나 "장희빈"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중간 중간의 재미 속에서도 저자는 분명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똑 뿌러지게 이어 가고 있다. 마치 DNA가 얼기설기 이중 나선형 대칭구조를 이루며 상보적인 관계로 짜여져있 듯, 이 책 역시 재미와 지식을 적절히 배열하고 있다. 그래서 “What Mad Pursuit!” 을 연거푸 외치면서도, “DNA에 대해 이렇게 까지 자세히 알고싶은 마음은 없었는데?!”하는 의아한 생각을 하면서도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되는 듯 하다.

“과학의 출구가 반드시 전문적인 논문일 필요는 없다.”는 저자의 인터뷰 기사 처럼, 이 책은 저자가 일반 대중들을 겨냥하고 집필한 듯한 흔적이 군데 군데 녹아 있다. 그래서 어느 부분은 놀랍도록 쉬운 비유로 설명되어 있다. 물론 어느 부분엔 비유에 실패를 한 듯 혹은 포기를 한 듯한 부분도 있다. 솔직히 이 책을 통해 “과학 에세이”라는 장르에 처음 접하게 되어 이와 비슷한 다른 책을 읽어본 경험은 없지만, 이 책 자체를 놓고 평가한다면, 난이도 상과 하의 문장들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 처럼 상보적으로 적절히 잘 짜여져 있어 재미(흥미)와 정보(지식)를 적절히 잘 배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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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40년을 준비하는 40대 인생경영 - 마흔세 살 김부장의 새로운 직업 찾기
김병숙 지음 / 미래의창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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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은 유혹의 나이?!>

내가 막 신입사원이던 시절 우리 회사에는 이제 막 40을 목전에 두고 계신 분들이 몇 분 계셨다. 어린 나이에 느꼈던 이 분들에 대한 나의 공통적인 인상은 딱 한 가지 였다. 그건 바로 "더 이상 인생에 꿈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집-회사를 기계적으로 왕복운동하며, 유일한 취미는 음주나 낚시정도가 고작이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분도 없었고, 운동을 하더러라도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하시는 분들은 전무했다. 그래서 한 마디로 꿈을 잃은 듯, 그냥 저냥 회사에 다니시는 듯 한 인상이 지배적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40을 목전에 두고 계셨던 분 들께서 어느새 정말 40의 나이를 순차적으로 맞이하는 날이 계속 되었다. 이 분들께 40대에 접어드신 소감을 어쭈어 보았다. 40을 불혹의 나이라고 하는데 정말 더 이상 인생에 미혹 이나 흔들림이 없으신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오히려 "40은 유혹의 나이인 듯 하다"는 말씀 이었다.

꼭 누군가가 손을 뻗어 나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마음 속에서 거센 풍랑이 불고 무수한 파도가 일렁이고 사춘기 때 겪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다시 겪어야만 하는 또 다른 인생의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요즘 대한민국 40대의 솔직한 모습들이다. 대한 민국 40대는 누구하나 제대로된 안정을 누리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모험과 스릴을 과감하게 즐기는 사람은 더욱 드물어 보인다. 무언가 정체된 듯 하고, 겨우 자신이 정체되어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비참해 질대로 비참해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나이 .. 그게 요즘 우리 대한민국 40대의 사회상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기에는 그 모험 수위가 이미 최고조인 나이이고, 그렇다고 가만 있기에는 더 좌불안석인 나이 .. 그게 바로 요즘 40대를 바라 보는 나의 시각이다. 그래서 인지 나는 정말 기필코 내 인생의 40대만은, 30대를 어영부영 얼떨결에 맞이했던 것 처럼 대책없이 맞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막연히 어릴적엔 40살이 되면 무조건 도라도 닦은 듯 모든 인생의 미혹이 사라질 것 만 같았다. 마치 10대와 20대 시절 서른이 되면 진짜 어른이 되어 확고한 인생관이 자동으로 세워져 있을 줄 믿었던 것과 유사한 착각이랄까? 어느날 문득 서른이라는 나이가 날 찾아 왔듯이, 그렇게 문득 40이라는 나이도 날 찾아올 것 만 같은 불안감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아직 조금은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30대를 제대로 준비 없이 맞이했었다는 자책에, 40대 만큼은 가능한 누구보다 빨리 차곡 차곡 열심히 준비해서 멋지게 맞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풍기는 뭔가 전문적인 냄새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약 반이상이 사례 중심으로 전개 되어 있다. "나이 마흔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그리고 "우리 주변의 다양한 40대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구어체 형식을 빌어 소개되고 있다. 어떤 40대의 모습들은 부러울 정도로 멋지기도 하고, 또 어떤 40대의 모습들은 안타깝고 한심스럽고 더러는 끔찍기 짝이 없었다.

누군가 그랬다. "십년 후 자신의 모습을 미리 본다면, 오늘을 좀 더 열심히 살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고 말이다. 이 책은 이제 겨우 삼십대를 막 넘긴 내 입장에서 보았을 때, 고작 십년 후면 직면할지도 모를 현실의 다양한 가능성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물론 어쩌면 내 40대의 모습은 이 안에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정신이 번쩍 든다. 마치 구두쇠 스쿠루지가 미래 자신의 임종 모습을 미리 보고, 현재의 삶을 뉘우치 듯, 이 책은 그저 환상적인 장밋빛의 40대 모습들만을 보여주어 동기유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미 많은 40대들의 현실이 되어버린 암울한 모습들도 여실히 보여 줌으로써 강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나 처럼 30대가 이 책을 읽게되면 적잖은 충격요법을 받을 듯 하다. 이런 충격 요법이 얼마나 약발을 발휘할 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책을 곁에 두고 나태해 질 때 마다 채찍의 도구로 활용고, 이 책의 후반부에 제시되어 있는 또 다른 40년을 준비하는 법을 일찍 부터 잘 익히고 실천 한다면, 지금껏 살아온 30~40년 보다 앞으로 살아갈 40년 혹은 그 이상의 삶이 훨씬더 보람차고 뜻 깊은 인생의 전성기가 되어 주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지금 나는 이 책을 읽고는 좀 더 구체적으로 40대를 맞이한 나의 모습을 떠올려 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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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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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단숨에 읽었다 .. 그런데도 많은 것이 가슴에 남는다 .. 왜 일까?


"2008년 일본 서점 대상 1위"라는 다소 현란한 수식어를 달고 있는 이 장편 소설은 그 두께가 약 500백여 페이지에 달한다. 우리나라 배우 정준호를 닮은 서글서글한 눈매의 잘생긴 남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표지가 은근 여심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막상 책을 열여 보았을 때엔 뜻 하지 않은 세심한 책의 구성과 편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특히 등장 인물이 많은 일본 소설을 읽을 때면,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이 어찌나 헷갈리던지 나중엔 인물들의 이름과 특징을 포스트 잇에 적어 두고 마치 경찰이 용의선상에 올라온 범죄 후보들의 이름을 적어 놓고 요목 조목 분석하며 수사망을 좁히 듯, 주요 등장 인물들을 정리한 노랑색 포스트잇 종이를 책의 앞부분에 붙여두고 헷갈릴 때 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찾아서 확인해 가며 읽게 된다. 뜻 밖에도 이 책은 나 처럼 "다마내기 상"이나 "쓰메끼리 상"과 같이 3자리를 넘는 성과 이름의 조합을 가진 일본인들의 비슷 비슷한 이름들에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주요 등장 인물을 따로 정리 해 주는 센스를 보여 준다. 게다가 심플하지만 일목요연한 차례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또한 주인공 "아오야기 마사하루"와 그의 조력자 이자 옛 애인이었던 "히구치 하루코"와 그녀의 딸 "나나미"의 자그마하고 귀여운 실루엣이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표시해 주며 다음에 있을 이야기의 관점을 시사해 주는 독특한 구성도 재미를 주었다.    

500여 페이지나 되는 이 책은 위와 같이 그 구성이나 책의 디자인에 은근히 귀여운 요소와 아지자기한 배치가 있어 읽는데 지루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용 역시 박진감 넘치다. 처음에 받았던 책의 두께가 주었던 무시 무시한 압박은 책을 차차 읽어 나가면서 아쉬움으로 변했다. 책이 워낙 재밌어서, 앞으로 읽을 부분이 점차 줄어들게 되자, 책을 덥고 나머지 부분은 여름 휴가 때 아껴서 읽을까 하는 고민이 살짝 들기도 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야"라는 말 이었다. 주인공은 어느 날, 난데없이 암살범으로 지목되어 누명을 쓰게 되고, 책의 3부(사건 20년 뒤)와 5부(사건 석 달 뒤)에도 끝내 그 정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 권력을 쥔 사람"의 음모로 인해 점차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되고, 주인공은 물론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 까지 위태로운 처지가 된다. 하지만, 죽음으로 결말이 계획되어진 음모의 늪 속에서 주인공이 끝까지 목숨을 유지하고 탈출구를 찾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열쇠는, 바로 주인공이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던 사소한 "습관과 신뢰"였다. 어찌보면 이러한 주인공의 사소한 습관과 버릇 까지도 잊지 않고 세세하게 기억하고 또 믿어주는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 보다 더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예전에 영화 [제 5원소]에서 결론적으로 지구를 구할 마지막 다섯번 째 원소는 "사랑"이라는 다소 황당 무계하고 추상적인 결론을 마주대하고 있는 쌩뚱맞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야" 라는 문장은 여러 번 책 속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되뇌인다. 그래서 마치 책의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한 것은, 결국 주인공 자신의 평소 성실하고 올바른 "습관과 신뢰"라고 소리쳐 주장하는 듯 하다. 

만약 내가 주인공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우리 가족, 그리고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던 나의 사소한 습관과 신뢰들은 얼마나 나를 든든하게 지지하고 지탱해 줄 수 있을지 .. 문득 나 스스로를 돌아봄 으로써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 책을 읽고 순간 의심이 많아진 나는 "이 책 .. 이거 .. 이거 .. 혹시 일본 시민들이 성실한 시민으로서 올바른 습관과 신뢰로 국가에 대한 반항이나 주변사람에 대해 폐 끼치는 행동 없이 그저 착실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일본 정부의 음모 아니야 ?" 하고 반문하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안그래도 겉으로는 남에게 폐 끼치는 일에는 가뜩이나 소름끼쳐하는 일본인인데 말이다.

처음엔 막연히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순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그로인해 발생 가능한 음모와 힘없는 자들의 억울함들에 대한 고발이라고만 생각했다. 꼭 작가가 내 생각 처럼 대단한 이념과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저술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그저 소재가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글을 풀어가는데 손쉬웠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야 어찌되었건, 내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위와 같이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단순한 흥미나 재미로만 이 책을 본다면 분명 놓치는게 많을 듯 하다. 또한 아래 책 소개 처럼 완벽한 짜임새나 퍼즐을 풀어가는 듯한 복선들과 그 복선들의 정교한 구성력을 기대한다면 솔직히 이 책은 어느 부분 실망스럽기도 할 듯 하다. 왜냐면 이 책의 뒷 이야기나 전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여러 가지 음모이론들에 익숙한 독자들 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고, 또 군데 군데 '내가 주인공 이었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텐데' 혹은 '내가 작가라면 이 부분은 다르게 설정했을 텐데'하는 엉성한 구석도 없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엉성한 요소들에 집중하여 논리적으로 파고들고 분석할 만큼의 충분한 시간과 틈을 주지 않는 스피디한 사건 전개와 흐름에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전반부에 뿌려놓은 복선의 조각들이 중반 이후로 기분 좋게 작동한다. 짜임새가 완벽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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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딸들의 하나님
데이비드 갈런드.다이애너 갈런드 지음, 임금선 옮김 / 도마의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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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이 상처 받았다고 느낄 때, 혹은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당했을 때 입버릇 처럼 내 뱉는 말이 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 

이 책의 표지에는 이러한 심정을 대변하는 아래의 두 가지 질문들이 적혀 있다.

"내가 왜 이런 상처를 받아야 하는 걸까?"

"그때, 하나님은 왜 나를 혼자 두셨을까?"

누구나 세상을 살다보면 힘든 일을 겪게되고 때로는 답답하고, 또 때로는 한 없이 억울하고 가끔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조차 나를 몰라주는 것 만 같아서 군중속의 고독을 느끼며 외로운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래서 인지 이 책의 제목과 표지는 인간의 가장 여리고 나약한 감성 그리고 본질적인 고독과 외로움을 자극한다.

상처입고 찢긴 가슴을 치유하지 못한 체 아픔을 묻어 두거나 온전히 끌어 안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 이제 갖 입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보듬어야 할지 그 방법을 몰라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들 .. 그들이 만약 이 책의 표지를 보게된다면, 분명 이 책에서 희망을 찾고 기대고 싶은 마음에 책을 열어 보게 될 것 같다. 

나 역시 너무 오래 전의 일 이어서 그저 잊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가슴 속에서 미처 완벽하게 치유되지 못한 상처의 흔적들이 부유하고 있다. 그저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로 위로하면서 보듬고 방치했던 크고 작은상처들 .. 그리고 점차 시간의 흐름 속에 무뎌진 아픔들 ..  나 역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이와 같은 완치되지 못한 상처들을 이 책을 통해 치유받길 무의식 중에 간절히 원했던 듯 하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을 정도로 절박한 사람들" 혹은 "상처 받은 사람들" 혹은 "가슴에 치유되지 못한 상처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 속 환부를 도려내고, 치료받고자 9,800원이라는 돈을 선뜻 약 값 처럼 지불하게 만드는 멋진 표지와 추천사를 가지고 있다. 이 9,800원 짜리 약을 구입한 사람들은 이 책이 묘약 처럼 절대적인 치유력을 발휘해 상처를 위로해 주리라 기대할 것이다. 이런 기대감들을 이 책은 마케팅에 잘 활용한 듯 하다. 

하지만 책의 제목과 표지의 정보 그리고 추천사들을 통해 이 책에 대해 처음 가졌던 기대감들은 점차 책을 읽어 나가면서 조금씩 어긋난다. 제목과 내용이 조금은 미스매치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인지 오히려 책의 원제인 "Flawed Families of the Bible by Brazos Press"가 이 책을 더 솔직하고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는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책은 성경속에서 상처 입은 여러 여인들의 삶을 보여 준다. 전반적으로 책 속에서 소개되고 있는 성경속의 상처입은여인들 대부분은 문제 해결력이 부족한 듯 하다. 이들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나 모습은 때때로 답답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물론 시대 정황상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이전의 태고적 시대를 살아가던 여인으로서 최선의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조차 이미 구시대적인 유물 처럼 여겨지는 변화 무쌍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여성의 시각으로 보면 안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마도 작가는 성경 속 비극의 인물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같이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나 혼자만은 아님을 일깨워 주고 이를 통해 독자가 위로 받길 원했던 듯 하다.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동일한 상처를 입고서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햇던 사람들의 말문을 열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을 격려하고 치료할 수 있다."

어느 부분 저자의 위와 같은 논리는 약발을 발휘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는 못한다. 이 책 속의 여인들이 고난을 당하는 순간 중에 어찌 보면 하나님은 너무도 무심해 보이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왜 이런 상처를 내게 주시는가?"하는 질문에 답을 얻기 보단 오히려, 이 책도 무심하고 하나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은 매우 현실적이다. 자신이 처한 고통과 아픔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왜냐면 이 책 마저도 때로는 너무 무심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성경의 이야기들을 매우 재밌게 전달한다. 그래서 원제 "Flawed Families of the Bible by Brazos Press"의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진다. 성경속의 인물들이 이루고 있는 가정 그리고 그 가정에 속한 인물들의 실수나 결함들이 다각도로 분석되어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어떤 인물이 처한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치유책은 경우에 따라선 너무나 장기적이다. 그래서 겨우 백년을 살다 가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순간을 보지만, 하나님은 영원을 보시기에 이 책을 읽다보면 더 크신 하나님의 시야를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느끼고 헤아려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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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가서 빼먹지 말아야할 52가지
손봉기 지음 / 꿈의날개(성하)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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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유럽을 다녀온 후 제일 아쉬웠던 점은 촉박한 일정 때문에 어느 한 곳 여유를 부리며 찬찬히 음미하고 만끽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 경우엔 패키지 상품으로 여행을 다녀와서인지 여러 나라를 짧은 시간 동안 광대역으로 "넓은 지역을 빠르게" 옮겨 다녔다. 그래서 구석 구석 여행지 저마다의 매력을 깊이 있게 충분히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또한 사전 준비나 공부 없이 무턱대고 패키지 상품에 의존해서 모든 일정을 맡긴 탓에 “보고도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도 많았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황금의 가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거대한 황금덩어리를 마주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 이었다. 그래서 유럽 여행 이후 가장 뼈저리게 느낀 진리 중 하나는, 여행은, “특히 유럽 여행”은 “아는 만큼 더 많이 누리고 만끽할 수 있다”는 점 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행 준비의 시작 단계에서 예습서로, 그리고 여행 준비의 마지막 단계에선 최종 여행 일정의 체크리스트 처럼 활용하면 아주 유용할 것 같다.

한 십년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여행서적들은 보통 외국의 론리플래닛 여행 시리즈 같은 책들을 무작정 베낀 듯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책들이 많았다. 요즘 한창 붐을 이루고 있는 “에세이” 형식의 여행서적들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나누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전의 여행서적들은 단순한 정보나 사실의 전달이 목적이었고, 여행지의 인기도나 중요도와는 무관하게 가능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이 책 역시 여행서적의 이와 같은 트랜드에 적극 편승하여 제작된 느낌이다. “에세이” 형식에 더 많이 의존하여 만들어진 이 책은 유럽의 수많은 여행지 모두를 욕심내어 소개하기 보다는, 책 제목과 같이 딱 52군데의 “엑기스” 여행지만을 골라 소개한다. 저자가 경험했던 특별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 등이 재미난 이야기 형식으로 읽기 편한 문제로 쓰여져 있다. 마치 방금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로 부터 듣는 흥미로운 여행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드는 책 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여행지에 대한 다양하고 폭 넓은 정보를 기반으로 선택의 폭을 넓게 가지고 여행 준비를 시작하고자 하는 독자에겐 다소 정보가 협소하고 한정적인 느낌을 줄 듯 하다. 반면, 하나라도 제대로 정확히 알고 깊이 있게 경험하고자 하는 욕심을 가진 독자에겐, 좀 더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이 책에 소개된 여행지들은 저자 개인 혹은 일부 여행 매니아들에게만 알려진 생소한 미개척지 이거나 이제 막 새롭게 발견된 신 개척지 같은 곳들은 아니다. 누구라도 한 번 쯤 들어봤을 법한, 신문 여행 상품 광고지면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이름 있는 여행지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보편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유명인들에 대해 좀 더 개인적이고 사적인 정보를 얻어 친밀도를 높여가는 것과 비슷하다. 왜냐하면 유럽의 유명 여행지들의 이름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긴 하지만, 친밀하게 접하기에는 거리상 그리고 기타 여건 상 제한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12년째 배낭여행 중 이라는 유럽여행에 정통한 저자만의 특별한 에피소드들과 유럽에 대한 가치관들이 녹아 있다. 유럽이라는 광활한 대륙이 간직한 복잡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특성들이 재밌는 동화와 전설처럼 이야기 되고 있어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유럽에 대한 환상과 로망이 피어오른다.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이 책은 여행의 구체적인 일정표와 시간대별 이동 경로 등을 세세하게 계획하기에 앞서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지에 대한 로망과 환상을 일깨우는 데 더 제격이다. 그래서 교통 수단이나 지도 등등의 디테일한 정보보다는 여행에 대한 굵직한 테마나 목적 내지는 방향성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꼭 여행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그저 재밌는 여행담이 듣고 싶거나, 여행을 좋아하거나, 유럽 문화와 좀 더 친숙해 지고 싶다거나, “상상속의 여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겐 이 책이 딱일 듯 하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양보단 질을 추구하는 고품격(?!) 여행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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