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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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 생물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몇 해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황우석 사건이다. 희대의 사기극으로 결론 지어진 당시의 사건은 우리 나라 과학계의 어두운 이면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단지 황우석 개인의 거짓과 위선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관습이 보태어진 고질적인 악습과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는, 그래서 "천사마저도" 유혹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과학계의 비열한 생리가 더 문제였다. 맘놓고 연구에만 매진할 수 없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현실은 젊고 유능한 과학자들을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보낸다. 또한 비즈니스를 잘 하는 연구팀이 더 많은 연구 지원비를 받게 되고, 상대적으로 쇼비즈니스에 약하지만, 적절한 스폰서나 연구팀을 만나지 못한 재능 있는 과학자들은 도태되어 영영 과학자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일본 과학계가 처한 현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랐다.

모든 것엔 최초의 발견자가 있게 마련이지만, 실상은 서로가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은밀한) 협공하에 이루어낸 협조물인 경우도 많고, 또 동시다발적으로 “헤우레카”를 외치며 위대한 발견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을 것 이다. 그래서 진리 탐구가 목적인 과학계에선 네이처지 등의 공신력있는 잡지에 논문을 먼저 올리는 것이 발견의 순서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우리는 흔히 “과학적” 이라는 단어를 무언가 합리적이고 100% 정확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하지만, 정작 이 책 속에서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는 과학계, 그 중에서도 분자생물학계의 현실들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때로는 비열하다. 때로는 비이성적이기도 해 보인다. 게다가 비 과학적이다. 재밌는 사실은 비과학적인 것들에서 때로는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너무나 솔직한 자기 고백 처럼 느껴진다. 같은 일본인, 그리고 같은 과학자로서 일본 본국에서는 ‘슈바이처’로 까지 승격화 되어 천엔짜리 신권에도 등장하는 “노구치 히데오”에 대한 냉엄한 미국 학계의 혹평을 기술하고 있는 이 책의 작가가 그래서인지 조금은 역사 왜곡에 정통한(?) 일본인들의 습성과는 거리가 있어보여,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어찌보면 과학자로서 그리고 과학자 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솔직하고 진실된 사실을 기술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겠지만, 실상 우리 <현실>은, <진실>에 여러 가지 플러스 마이너스의 화학 작용을 일으켜, 많은 것을 변질 시킨다. 그래서 보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된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떠올랐던 물음 중 하나는 DNA니 RNA니, 생명의 본질은 무엇이니,아니면 생물과 무생물을 가르는 정확한 경계는 무엇이니 하는 것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도대체 진실이란 무얼까? 하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다. 어릴적엔 흑백논리로 단숨에 풀 수 있었던, “진실과 구라 사이”의 명확했던 경계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모호해 짐을 느낀다. 과연 이 책 속에서 저자가 그동안 왜곡되었던 진실을 새롭게 조명하고 풀어가는 과정은 순도 몇 퍼센트의 진실일까?

<What Mad Pursuit!>
위와 같은 고차원적인 의혹까지 유발시키고 있는 이 책은 일반인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분자생물학계의 눈부신 영광과 그 영광의 빛에 그늘 드리워진 채 숨죽이며 지내야만 했던 숨은 영웅들, 그리고 은폐와 조작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 과학계의 어두운 이면들이 마치 연예계 뉴스나 가십거리를 늘어놓 듯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설명되어 있다. 마치 황우석 사건 당시 미디어가 최대한 뉴스를 시청하는 일반 시청자 입장에서 어려운 과학 용어들, 가령 줄기세포니, 배아줄기니, 동물 복제니 하는 것들과 그 원리를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덕에 아예 모른척 알기를 포기 하고 말았을 학술적 내용들에 대해 일반인들이 조금이나마 자신의 지적 한계를 뛰어 넘을 용기를 갖게되었던 일화 처럼, 이 책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과학을 쉽게 풀어 쓰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읽기를 포기할만한 변명과 구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이상한 과학책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내가 천재가 된 듯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DNA의 구조나 복잡한 샤가프의 퍼즐 등이 연예계 뉴스만큼 명확하게 이해되진 않는다. 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저자에게 물을 비양심적 알리바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분명 내 집중력과 지력의 한계의 어느 부분에선가 남몰래 부끄러운 폭발음이 울리는 순간이 있었으리라 ..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동경해 마지 않는 로망의 도시 뉴욕 ! 그 뉴욕이라는 산뜻한 배경 설명으로 시작되고 있는 이 책은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여러 역사 속 과학자들의 위대한 발견 과정과 인물들 간의 상관 관계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간다. 마치 인물간의 갈등 구조나 음모, 계략이 주축을 이루는 드라마 '여인천하"나 "장희빈"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중간 중간의 재미 속에서도 저자는 분명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똑 뿌러지게 이어 가고 있다. 마치 DNA가 얼기설기 이중 나선형 대칭구조를 이루며 상보적인 관계로 짜여져있 듯, 이 책 역시 재미와 지식을 적절히 배열하고 있다. 그래서 “What Mad Pursuit!” 을 연거푸 외치면서도, “DNA에 대해 이렇게 까지 자세히 알고싶은 마음은 없었는데?!”하는 의아한 생각을 하면서도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되는 듯 하다.

“과학의 출구가 반드시 전문적인 논문일 필요는 없다.”는 저자의 인터뷰 기사 처럼, 이 책은 저자가 일반 대중들을 겨냥하고 집필한 듯한 흔적이 군데 군데 녹아 있다. 그래서 어느 부분은 놀랍도록 쉬운 비유로 설명되어 있다. 물론 어느 부분엔 비유에 실패를 한 듯 혹은 포기를 한 듯한 부분도 있다. 솔직히 이 책을 통해 “과학 에세이”라는 장르에 처음 접하게 되어 이와 비슷한 다른 책을 읽어본 경험은 없지만, 이 책 자체를 놓고 평가한다면, 난이도 상과 하의 문장들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 처럼 상보적으로 적절히 잘 짜여져 있어 재미(흥미)와 정보(지식)를 적절히 잘 배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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