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정말 재밌게 단숨에 읽었다 .. 그런데도 많은 것이 가슴에 남는다 .. 왜 일까?


"2008년 일본 서점 대상 1위"라는 다소 현란한 수식어를 달고 있는 이 장편 소설은 그 두께가 약 500백여 페이지에 달한다. 우리나라 배우 정준호를 닮은 서글서글한 눈매의 잘생긴 남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표지가 은근 여심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막상 책을 열여 보았을 때엔 뜻 하지 않은 세심한 책의 구성과 편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특히 등장 인물이 많은 일본 소설을 읽을 때면,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이 어찌나 헷갈리던지 나중엔 인물들의 이름과 특징을 포스트 잇에 적어 두고 마치 경찰이 용의선상에 올라온 범죄 후보들의 이름을 적어 놓고 요목 조목 분석하며 수사망을 좁히 듯, 주요 등장 인물들을 정리한 노랑색 포스트잇 종이를 책의 앞부분에 붙여두고 헷갈릴 때 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찾아서 확인해 가며 읽게 된다. 뜻 밖에도 이 책은 나 처럼 "다마내기 상"이나 "쓰메끼리 상"과 같이 3자리를 넘는 성과 이름의 조합을 가진 일본인들의 비슷 비슷한 이름들에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주요 등장 인물을 따로 정리 해 주는 센스를 보여 준다. 게다가 심플하지만 일목요연한 차례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또한 주인공 "아오야기 마사하루"와 그의 조력자 이자 옛 애인이었던 "히구치 하루코"와 그녀의 딸 "나나미"의 자그마하고 귀여운 실루엣이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표시해 주며 다음에 있을 이야기의 관점을 시사해 주는 독특한 구성도 재미를 주었다.    

500여 페이지나 되는 이 책은 위와 같이 그 구성이나 책의 디자인에 은근히 귀여운 요소와 아지자기한 배치가 있어 읽는데 지루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용 역시 박진감 넘치다. 처음에 받았던 책의 두께가 주었던 무시 무시한 압박은 책을 차차 읽어 나가면서 아쉬움으로 변했다. 책이 워낙 재밌어서, 앞으로 읽을 부분이 점차 줄어들게 되자, 책을 덥고 나머지 부분은 여름 휴가 때 아껴서 읽을까 하는 고민이 살짝 들기도 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야"라는 말 이었다. 주인공은 어느 날, 난데없이 암살범으로 지목되어 누명을 쓰게 되고, 책의 3부(사건 20년 뒤)와 5부(사건 석 달 뒤)에도 끝내 그 정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 권력을 쥔 사람"의 음모로 인해 점차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되고, 주인공은 물론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 까지 위태로운 처지가 된다. 하지만, 죽음으로 결말이 계획되어진 음모의 늪 속에서 주인공이 끝까지 목숨을 유지하고 탈출구를 찾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열쇠는, 바로 주인공이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던 사소한 "습관과 신뢰"였다. 어찌보면 이러한 주인공의 사소한 습관과 버릇 까지도 잊지 않고 세세하게 기억하고 또 믿어주는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 보다 더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예전에 영화 [제 5원소]에서 결론적으로 지구를 구할 마지막 다섯번 째 원소는 "사랑"이라는 다소 황당 무계하고 추상적인 결론을 마주대하고 있는 쌩뚱맞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야" 라는 문장은 여러 번 책 속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되뇌인다. 그래서 마치 책의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한 것은, 결국 주인공 자신의 평소 성실하고 올바른 "습관과 신뢰"라고 소리쳐 주장하는 듯 하다. 

만약 내가 주인공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우리 가족, 그리고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던 나의 사소한 습관과 신뢰들은 얼마나 나를 든든하게 지지하고 지탱해 줄 수 있을지 .. 문득 나 스스로를 돌아봄 으로써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 책을 읽고 순간 의심이 많아진 나는 "이 책 .. 이거 .. 이거 .. 혹시 일본 시민들이 성실한 시민으로서 올바른 습관과 신뢰로 국가에 대한 반항이나 주변사람에 대해 폐 끼치는 행동 없이 그저 착실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일본 정부의 음모 아니야 ?" 하고 반문하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안그래도 겉으로는 남에게 폐 끼치는 일에는 가뜩이나 소름끼쳐하는 일본인인데 말이다.

처음엔 막연히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순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그로인해 발생 가능한 음모와 힘없는 자들의 억울함들에 대한 고발이라고만 생각했다. 꼭 작가가 내 생각 처럼 대단한 이념과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저술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그저 소재가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글을 풀어가는데 손쉬웠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야 어찌되었건, 내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위와 같이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단순한 흥미나 재미로만 이 책을 본다면 분명 놓치는게 많을 듯 하다. 또한 아래 책 소개 처럼 완벽한 짜임새나 퍼즐을 풀어가는 듯한 복선들과 그 복선들의 정교한 구성력을 기대한다면 솔직히 이 책은 어느 부분 실망스럽기도 할 듯 하다. 왜냐면 이 책의 뒷 이야기나 전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여러 가지 음모이론들에 익숙한 독자들 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고, 또 군데 군데 '내가 주인공 이었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텐데' 혹은 '내가 작가라면 이 부분은 다르게 설정했을 텐데'하는 엉성한 구석도 없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엉성한 요소들에 집중하여 논리적으로 파고들고 분석할 만큼의 충분한 시간과 틈을 주지 않는 스피디한 사건 전개와 흐름에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전반부에 뿌려놓은 복선의 조각들이 중반 이후로 기분 좋게 작동한다. 짜임새가 완벽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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