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에 산다 비온후 도시이야기 2
박훈하 글, 이인미 사진 / 비온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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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저자는 도시가 제공하는 장밋빛 미래와 스펙터클로부터 빗겨 서서 개인들의 작은 이야기가 도시 속에 다양하게 수렴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나누고 싶었다 말한다. 

접속을 욕망하면 할수록 도시 대중들이 얻게 되는 것은, 접속이 아니라 절연이고 통찰이 아니라 오인일 수 밖에 없는 모순률을 단번에 타파 할 수ㅡ 없지만, 이 처럼 민속지학 혹은 부산이라는 특정 지역학적인 더딘 해법을 통해서 시선을 멀리 두지 않고 우리 주변의 일상적 사건들과 작은 이야기를 통해 사유를 시작한다면, 세계화와 같은 허구성과 일상적 현실을 감쪽 같이 은닉해 버리는 도시의 작위적인 스펙터클에 대해 좀더 객관적이고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머리글에 적혀있는 위와 같은 글들이 처음에는 너무나 철학적이고 피상적인 느낌을 주어 크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머리글이 실려 있는 책장을 넘기자 곧 바로 이어지는 흑백 사진들과 짧은 글들을 하나 하나씩 읽어 가다 보니, 차츰 저자의 생각과 의도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무리난제에 가까운 화두와 달리, 내용은 극적 대조를 이룰 정도로 쉽다. 머리글의 난해함으로 잔뜩 겁먹은 독자가 일순간에 공포감을 떨쳐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본문의 이야기들은 하나 하나 소박하고 진솔하고 일상적이어서, 쉽게 공감이 되었다. 때때로 예리한 저자의 생각들에 아차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을 제목에 걸고 있지만, 정작 저자의 시선은 도시적인 것들속에 숨겨진 사람, 즉, 인간적인 내면에 더 많이 머물러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된다는 건 마주한 것들의 겉이 아니라 속내를 들여다볼수 있다는 것 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나 역시 저자 처럼, ’너무 멀리 바라보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언뜻 책을 펼쳤을 때 온통 흑백 투성이의 사진과 글씨들에 처음에는 당황했고, 조금은 답답한 심정도 있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컬러 사진을 실었으면 좀 더 글들이 돋보였을텐데 싶은 마음도 들었다. 제작 비용의 절감을 위해 사진을 흑백으로 실었구나 하는 오해도 했었다.  하지만, 차츰 저자의 생각과 의도를 이해하면서, 흑백 사진과 글들이 전해주는 담백하고 그윽한 매력에 빠져 들게 되었다. 

나 역시 늘상 자본주의적 매끈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화려하고 세련된 것이 아니면 좀처럼 쉽게 눈길도 마음도 머물지 못한다. 반면 도시적 세련됨이나 화려함 속에 눈에 띄는 초라함에는 나도 모르게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때로는 스스로 도시적 화려함에 압도되기도 한다. 은연중에 도시에 걸맞지 않는 초라하고 남루한 행색의 사람들을 부자연스러워하고 어색하게 여기기도 한다. 

이처럼 화려함은 때때로 독이 되기도 한다. 많은 좋은 것들을 가리고, 시각적 왜곡을 통해 겉모습에만 현혹되도록 만든다. 이것이 도를 넘어서면 사물과 대상의 겉모습에 집착하고 사유화 하려는 욕심을 내게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정작 사람을 위해 도시가 존재 하건 만 주객을 전도시켜 도시에 걸맞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해 내기도 한다. 사람에 걸맞는 도시나 환경을 좀 처럼 따져 보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점점 더 도시는 화려해 지고, 이로 인해 눈요기 할게 많아진 현대 도시인들은 어느 노랫말 처럼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줄을 전혀 모르는 듯 보인다. 과도하게 으리뻔쩍한 풍경과 건물들을 상찬하면서, 점차 자신과 세상사이에 뚜렷한 분별과 경계를 그어 간다. 정작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른 체 살아가는게 요즘 사람들인 듯 하다.

책 표지에 작게 박혀 있는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 책은, 담고 있는 생각도 그림도 모두 아름답고 곱다는 느낌이다. 주변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에서 부터, 관심 받지 못하는 것, 숨겨진 아주 작은 것들에 이르기 까지, 저자가 주변 생활 공간 곳곳에 던지는 시선들은 따사롭고 신선했다. 지나친 과장으로 어색하기 그지 없는 맹목적 도시 찬양이 아니어서 좋았다. 표현이 서투른 부산토박이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한 도시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부분도 좋았다. 글과 사진이 종속관계가 아닌 상호간의 길항이 보장되도록 하는 기획 역시 매우 마음에 들었다. 도시에 살지만, 도시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 이 역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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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가면 쿠바가 된다 - 진동선의 포토에세이
진동선 지음 / 비온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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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나라, 혁명의 나라 ... 내게 쿠바는 환상을 품어주는 여행지 이기보다는 무언가 막연한 거리감과 공포감을 주는 나라 였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계속에서 나는 쿠바의 어둠을 먼저 보았기 때문이다. 깨끗한 도시의 이미지나 빼어난 자연경관의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나는 쿠바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예쁘고 좋았다. 낯설지만 이국적이고 왠지 멋스러운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라는 이름들 역시 좋았다. 요즘 말로 강한 Force와 카리스마가 묻어 있는 이름들이 마냥 멋스럽게 느껴졌었다. 

만약 내가 쿠바를 찾게 된다면,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쿠바라는 나라의 빛 바랜듯한 사진 속 풍경들이 사라지기 전에 카메라에 담고 기록 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무엇이든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것들은 0순위로 사라져 버리는 새마을 운동의 나라, 기록본능을 자극하는 싸이월드의 나라에서 살다보니, 자연 스레 생긴 습성인 듯 하다. 며칠전 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장사를 하던 골목 어귀의 구멍가게가 오늘 귀가길에 보니 사라지고 없는 경험들을 숱하게 하다보니, 쿠바와 같이 우리 나라의 60~70년대 풍경을 담고 있는 듯한 풍경들을 보면 곧 사라질까 조바심이 난다. 사진 이라도 찍어둘걸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순간들이 너무도 많다. 책 속에는 작가의 말대로 미국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3~40년대 미국 풍경이나, 우리나라의 7~80년대 모습에 걸맞는 쿠바의 풍경들이 아련하게 가슴을 치고 다가 서는 순간들이 많다. 

책 속 사진들 속 쿠바의 이런 아득한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의 흐름이 어느 한 순간을 깃점으로 오래도록 정체된 듯한 진공관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아늑하고 노곤해진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속에서 꿈틀 끔틀 요동치는 사람들의 뜨거운 심장이, 인간 삶의 가슴 벅찬 온갗 희노애락을 미쳐 작은 심장 하나에 다 담지 못해 고뇌하고 눈물흘리고 벅차 하는 듯한 표정들이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쿠바를 찾은 사진가들의 꿈은 하나 같이 색에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쿠바의 풍경들 속에는 바람과 시간의 색이 공존 하고, 그것이 빛과 만나서 더할 수 없이 묘하고 그윽한 느낌을 자아 낸다. 겉에 보이는 화려한 파스텔 색조의 건물들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지층을 켜켜히 쌓은 바람과 시간의 색을 담고 싶어, 삶의 가장자리, 후미진 골목길도 마다 하지 않는 작가의 모험심에 반하게 된다. 열정이 식으면 지혜가 오고, 청춘이 가면 황혼이 오고, 새벽 다음 아침이 오고, 하루 해가 지면 밤이 온다고 담담히 말하며, 경쾌함 속에서도 우수와 애잔함을 보고 느낄 줄 아는 작가의 감성이 마음을 울린다. . 

특히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따라 옮겨지는 작가의 시선들과 생각의 흐름들이, 뜻 밖에 받은 선물 처럼 큰 기쁨을 주었다. 헤밍웨이는 1928년 낚시 여행을 위해 쿠바에 처음 발을 딛여 1960년 혁명으로 추방 당하기 까지 무려 30여년 이나 쿠바에서 창작을 하며 보냈다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어쩌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책 속 작가 연보를 꼭 챙겨 읽는 편이어서, ’노인과 바다’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작품을 읽으면서 헤밍웨이의 쿠바의 행적을 읽었을게 분명 하지만, 그닥 기억에 담아 두진 않았던 모양이다. 

헤밍웨이의 30여 년 문학적 궤적과 족적을 따라 "헤밍웨이가 달렸을, 보았을, 안았을" 무수한 길들을 달리며 "문학이 옷을 입으면 사진, 사진이 옷을 벗으면 문학" 이라는 말을 되뇌이는 작가의 모습이 사랑 스러웠다. 1961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헤밍웨이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자살로 인한 충격을 극복해야 했고, 험한 파도, 야생 사냥, 비행기 추락 등 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긴 모험가였다고 한다. 책 속 사진 한 장 한장 모두가 헤밍웨이의 삶의 행적들과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가슴을 울린다. 특히 텅빈 보르네오 티크 책상 하나가 꽉차게 담겨진 사진 한장은 잊혀 지지 않는다. 인터넷에 올려진 사진들보다 작가가 실재 가서 본 풍경이 훨씬 좋았다고 하니, 나 역시 당장 쿠바로 날아가 대문호의 체취와 숨결을 직접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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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정진규 외 지음 / 작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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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무릎팍 도사라는 TV프로그램에 베스트셀러 시인 원태연 씨가 출연해 오랜만에 학창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원태연의 시가 빅히트 했을 무렵을 전후로 나 역시 그 시절 시집 모으는게 나름 취미라면 취미여서, 3~5천원 가량 하는 시집들을 매달 용돈 받아 한 권 두 권 사들여서 책장에 꽂아 두면 왜 그리도 뿌듯하고 좋았는지 ... 마음만 먹으면 학교 끝나고 서점에 시집을 고르러 가서도 너끈히 10권 정도를 다 읽고 그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시집을 집으로 데려오곤 했었는데, 사회인이 되고서는 점점 더 시 한편이 낯설어 지고 감성도 매말라 가는 것을 느낀다. 

살다보면 오히려 더 많은 일들을 겪게 되어 감성이 풍부해 질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성인 혹은 어른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나이가 되고보니, 때때로 감정 표현도 절제 하고, 좋아도 흥~ 싫어도 흥~ 무덤덤해지고 무뎌져야만 맘편히 살아지는 법인지라, 감정 표현이 오히려 더 서툴러 지기도 한다. 시 한 편 읽는데 고작 십분이면 족할 것을 ... 이 책을 계기로 다시 시집을 가까이 해야 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말들의 후광]이라는 김선태 님 시의 첫 구절 처럼,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의 관심 속에서 빛이 나는"  법 인지라, 어느 영화 제목 처럼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닌 "시가 죽은 사회" 속에서도 이처럼 의연하고 꿋꿋하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시들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는 여유롭고 느긋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가져 보게 된다.

이 한 권의 시집 속에 축구 이야기를 비롯, 날카로운 사회 문제나, 다양한 빛깔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인간 삶의 삼라만상 다양한 단상들이 아름답게 녹아 있음에 감탄 하게 된다. [포돌스키]와 같은 시들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장황하고 구체적이어서, 시라고 하기엔 조금 낯설고 오히려 신문의 칼럼과 같은 강렬하고 날카로운 느낌이 더 강하기도 했지만, 시라는 것이 어떤 형식에 구애 받기 시작 하면 자유롭지 못하므로, 시 만큼은 자류로워야 한다는게 나의 개인적 소신이기 때문에, 구태여 시를 난도질 하고 분석하지 말고 그대로 느끼고 그 느낌을 통해 생각의 확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 그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 속에 다소 파격으로 느껴지는 시들 까지 모두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시가 될 수 있다는게 내 개인적인 시에 대한 생각인지라, 개별 시편이나 시인을 어떤 진영이나 이념에 귀속시키고 유형화 하여 노동시, 농민시, 도시시, 해체시로 구분 짓거나, 참여/순수, 저항/순응, 리얼리즘/모더니즘, 민족문학/자유주의 문학 이라는 대립쌍들 가운데 귀속시켜 편가르기 하는 것에 못마땅 하던 차에, 이 처럼 서로 이질적인 분위기의 시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하고 기분 좋았다. 책 서두에서 처럼 시의 이념적 귀속성 보다 선차적으로 시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고심하는 시대에서, 더 이상 원태연의 감성 시라는 장르가 주류 시인들에게 인정 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역으로 원태연이라는 시인이 한국시인협회에 끼지 못한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라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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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는 악세인가
서영택 지음 / 모아드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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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국민 4대 의무 라고 하는, 근로, 국방, 교육, 납세의 의무 중 내 개인적으로 제일 피하고 싶은 의무는 바로 납세의 의무였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만, 법정스님의 무소유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않는 이상, 그리고 비범한 정신세계의 소유자가 아니고서 세금을 즐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세금을 통해 내가 받는 혜택은 피부로 와 닿지 않는 반면, 단 한 푼이라도 세금이 빠져 나가는 것은 뼛 속까지 시릴 정도로 절실하게 와 닿기 때문이다.

"세금 : 부자를 가난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 수는 없다."

책 읽기에 앞서 책의 표지에 적힌 위의 글에 붙들려 한 동안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이민이나 유학을 떠나지 않는 한, 평생 동안 대한민국 조세 제도와는 무관할 수 없는 사람이다. 껌 한 통을 구입해도 그 안에 세금이 포함되고, 은행에 저금을 해도 비과세나 세금 우대가 무언지 알아야 불이익 없이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세금이 책정되고, 관련법들이 만들어 지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무지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내가 내는 세금이 과연 적정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운용되는 것이 바람직 한지, 그리고 과연 나는 세금이 어떻게 쓰여지길 희망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그리 많지 않았다. 연말 정산에 즈음하여, 다급하게 절세 방안을 찾고, 가끔씩 "유리지갑"이라는 기사가 오르면 끓는 냄비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단 두줄로 표지에 박혀 있는 위의 글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케 하였다. 과연 나는 ’세금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도 부유해 질 수 있길 원하는가?’ 아니면 단순한 ’빈민구제 정도만을 원하고 내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세금을 가급적 최소화 하고 싶은가?’ 하는 자문도 던져 보게 되었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신세는 악세인가?!’ 라는 다소 파격적인 화두를 던지신 저자 서영택님이 다름아닌 전직 국세청장직을 맡으셨던 분이라는 사실이었다. 관련 분야의 깨어 있는 선각자 내지는, 학자, 아니면 적어도 조세제도의 정책 입안 실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지은 책일 것 이라는 막연한 상상과 선입견에 적잖은 파격과 신선한 충격을 주는 대목이었다. 중이 제 머리 못깎고,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 속담 처럼, 정작 자신이 오래 도록 몸담고 해오던 일에는 점점 타성과 아집이 생겨서 변화나 새로움을 꾀하지 못하게 되고, 아무런 문제 의식도 없이 오히려 치부를 가리는데에만 급급해 지거나, 아예 나태해 지게 마련인데, 전 국세청장 그리고 공직자의 신분으로서 이 같은 고민들을 던져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많은 귀감이 될 듯 하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하면서 봉사 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정부에 많이 모여드는 공직사회를 꿈꾸는 저자의 바램 또한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은 고희를 맞은 저자가 30여년 자신의 공직생활 중 몇 가지 경험과 일화를 기록으로 남기고 정리 함으로써, 자기 반성과 소회(所懷)의 기회로 삼고자 쓰여졌다고 하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마치 회고록 한편과 조세제도 관련 논문 한편이 합쳐져 있어 일석이조의 꿩먹고 알먹는 느낌을 주는데, 우리나라 조세 제도 역사의 변천사와 세금에 대한 이해는 물론 저자 개인적인 삶을 통해서도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뒷편 저자 연보에 나와 있는 이력과 함께 책의 내용들을 읽다보면 저자 서영택님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세 명의 대통령 통치기간을 거치면서 건설부 장관을 비롯 우리 나라 조세 분야에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해 오신 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해 태곳적 부터 응당 존재해왔을 것만 같은 부가가치세를 저자가 하버드에서 처음 배우고 이 제도가 우리 나라에 도입 되는 과정에서 함께 일조 하셨던 일화를 읽으면서 마냥 신기하고 새로웠다. 

새로운 세금은 아무리 그 신설 목적에 타당성과 정당성이 있고 이론적으로 완벽하다고 해도 국민에게는 일단 전에 없던 새로운 세 부담을 안겨 주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홍보를 잘 해도 국민에게는 악세일 뿐며, 이 때문에 신세의 도입과 시행에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고, 이를 담당하는 책임자나 입안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이 일들이 피를 말리는 과업이라는 설명이 특히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좋은 세금"이 만들어 지려면 우선 세금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세금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돕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좋은 세금", 즉, 악세가 아닌 선세를 만들어 내려면 이와 관련된 공직자들의 노력과 고민이 절재적인 것이 틀림없지만 말이다.  많은 공직자 들이 이 책의 저자 처럼, 자신이 해 온 일들에 전문성과 사명감을 갖고 끝없이 공부하며 고민하며 국민들과 함께 투명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선진국으로 갈 수록 세율이 높게 책정되어 있는 반면 복지 혜택이 많다는 인식이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그래서 그간의 정부 정책들을 보면, 점차 세제를 선진국화 하여 세율을 높이겠다는 발표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일본과 미국의 소득세율을 우리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중산층의 세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령 우리 나라에서 5천만원을 버는 월급생활자의 세율은 17% 인 반면 일본은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이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저소득 층이라고 무조건 세 부담을 면제해 주는 것보다는 적은 액수라도 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국민이 자기 노력으로 돈을 벌고 그에 상응하는 공정한 세금을 냄으로써 납세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국민개세(皆稅)주의’나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원칙’이 바람직하다는 견해 이다. 나 역시 이에 크게 공감하며,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피할 수 없는 세금"을 즐길 수 있게 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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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공황 - 80년 전에도 이렇게 시작됐다
진 스마일리 지음, 유왕진 옮김 / 지상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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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30년 무렵의 세계 대공황에 대해서는 역사 시간을 통해 익히 들은 바 있지만, 정확히 무엇이 발단이 되었고, 또 얼마나 오래도록 공황의 여파가 지속되었는지, 그리고 기업과 각 개인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지 등등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전례 없는 극도의 긴장과 위기 상황에 처한 지금, 과거의 패턴에만 의존하여 섣불리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 역시 무모해 보인다. 그렇다고 넋 놓고 그저 상황을 지켜 볼 수만은 없는 일 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조금이라도 교훈을 찾고, 과거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이 같은 책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리게 된다. 
 
공황이라는 단어는 사전적 정의만으로도 무시 무시한 느낌을 준다. 공황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자본주의의 경제 변동과정을 설명한 사람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칼 마르크스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세계대공황에 대해 함께 공부 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공황에 대한 여러 정의들 중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된 근본적 모순의 순간적/폭력적 폭발”이라는 정의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경기 순환의 한 국면인 경제 활동의 축소 과정이 급격히 진행 되면서, 회복, 번영, 불경기의 각 국면 중 번영의 정점에서 경기의 후퇴기를 겪지 않고 바로 불경기의 밑바닥에 떨어지는 현상이 바로 공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이면에는 사회적 총자본의 축적을 통한 확대 재생산 과정에 있어 필연적으로 생기는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을 그야 말로 “순간적이고도 폭력적인 몸부림”을 통해 균형을 맞춰 가려는 오묘한 이치와 자연적인 섭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공포는 그 대상이 불확실 할 때에 더 극에 달한다. 하지만, 공포의 대상에 대해 하나 하나, 차근 차근 배우고 연구하다 보면, 뜻 밖에 상대의 취약점도 알게 되고, 자신감도 붙게 된다. 이 책은 막연한 불안감에 종지부를 찍고, 좀 더 깊이 있는 눈으로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라 볼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 준다. 또한 1929년 초여름에서 1933년 1사분기 말 까지의 세계 대공황 시점에 미국 정부가 통화, 재정, 무역, 고용, 유통, 가격, 건설, 노동, 사회복지 등의 다양한 분야에 펼쳤던 정책들이 긴박한 당시의 상황 만큼이나, 속도감 있게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다루어 진다. 

공황으로 인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쏠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생산과 경제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함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습은 왠지 거리감이 많은게 사실이다. 그래서 때때로 버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한 번씩 큰 몸살을 통해 자가치료의 과정을 겪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인 듯 하다. 이 책을 읽어 보면 대공황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확실한 보장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있으므로 분명 큰 지혜가 모아져서 지금의 역경이 잘 극복되리라는 희망은 확실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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