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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정진규 외 지음 / 작가 / 2009년 2월
평점 :
얼마전 무릎팍 도사라는 TV프로그램에 베스트셀러 시인 원태연 씨가 출연해 오랜만에 학창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원태연의 시가 빅히트 했을 무렵을 전후로 나 역시 그 시절 시집 모으는게 나름 취미라면 취미여서, 3~5천원 가량 하는 시집들을 매달 용돈 받아 한 권 두 권 사들여서 책장에 꽂아 두면 왜 그리도 뿌듯하고 좋았는지 ... 마음만 먹으면 학교 끝나고 서점에 시집을 고르러 가서도 너끈히 10권 정도를 다 읽고 그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시집을 집으로 데려오곤 했었는데, 사회인이 되고서는 점점 더 시 한편이 낯설어 지고 감성도 매말라 가는 것을 느낀다.
살다보면 오히려 더 많은 일들을 겪게 되어 감성이 풍부해 질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성인 혹은 어른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나이가 되고보니, 때때로 감정 표현도 절제 하고, 좋아도 흥~ 싫어도 흥~ 무덤덤해지고 무뎌져야만 맘편히 살아지는 법인지라, 감정 표현이 오히려 더 서툴러 지기도 한다. 시 한 편 읽는데 고작 십분이면 족할 것을 ... 이 책을 계기로 다시 시집을 가까이 해야 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말들의 후광]이라는 김선태 님 시의 첫 구절 처럼,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의 관심 속에서 빛이 나는" 법 인지라, 어느 영화 제목 처럼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닌 "시가 죽은 사회" 속에서도 이처럼 의연하고 꿋꿋하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시들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는 여유롭고 느긋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가져 보게 된다.
이 한 권의 시집 속에 축구 이야기를 비롯, 날카로운 사회 문제나, 다양한 빛깔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인간 삶의 삼라만상 다양한 단상들이 아름답게 녹아 있음에 감탄 하게 된다. [포돌스키]와 같은 시들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장황하고 구체적이어서, 시라고 하기엔 조금 낯설고 오히려 신문의 칼럼과 같은 강렬하고 날카로운 느낌이 더 강하기도 했지만, 시라는 것이 어떤 형식에 구애 받기 시작 하면 자유롭지 못하므로, 시 만큼은 자류로워야 한다는게 나의 개인적 소신이기 때문에, 구태여 시를 난도질 하고 분석하지 말고 그대로 느끼고 그 느낌을 통해 생각의 확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 그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 속에 다소 파격으로 느껴지는 시들 까지 모두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시가 될 수 있다는게 내 개인적인 시에 대한 생각인지라, 개별 시편이나 시인을 어떤 진영이나 이념에 귀속시키고 유형화 하여 노동시, 농민시, 도시시, 해체시로 구분 짓거나, 참여/순수, 저항/순응, 리얼리즘/모더니즘, 민족문학/자유주의 문학 이라는 대립쌍들 가운데 귀속시켜 편가르기 하는 것에 못마땅 하던 차에, 이 처럼 서로 이질적인 분위기의 시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하고 기분 좋았다. 책 서두에서 처럼 시의 이념적 귀속성 보다 선차적으로 시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고심하는 시대에서, 더 이상 원태연의 감성 시라는 장르가 주류 시인들에게 인정 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역으로 원태연이라는 시인이 한국시인협회에 끼지 못한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라 생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