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는 악세인가
서영택 지음 / 모아드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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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국민 4대 의무 라고 하는, 근로, 국방, 교육, 납세의 의무 중 내 개인적으로 제일 피하고 싶은 의무는 바로 납세의 의무였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만, 법정스님의 무소유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않는 이상, 그리고 비범한 정신세계의 소유자가 아니고서 세금을 즐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세금을 통해 내가 받는 혜택은 피부로 와 닿지 않는 반면, 단 한 푼이라도 세금이 빠져 나가는 것은 뼛 속까지 시릴 정도로 절실하게 와 닿기 때문이다.

"세금 : 부자를 가난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 수는 없다."

책 읽기에 앞서 책의 표지에 적힌 위의 글에 붙들려 한 동안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이민이나 유학을 떠나지 않는 한, 평생 동안 대한민국 조세 제도와는 무관할 수 없는 사람이다. 껌 한 통을 구입해도 그 안에 세금이 포함되고, 은행에 저금을 해도 비과세나 세금 우대가 무언지 알아야 불이익 없이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세금이 책정되고, 관련법들이 만들어 지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무지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내가 내는 세금이 과연 적정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운용되는 것이 바람직 한지, 그리고 과연 나는 세금이 어떻게 쓰여지길 희망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그리 많지 않았다. 연말 정산에 즈음하여, 다급하게 절세 방안을 찾고, 가끔씩 "유리지갑"이라는 기사가 오르면 끓는 냄비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단 두줄로 표지에 박혀 있는 위의 글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케 하였다. 과연 나는 ’세금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도 부유해 질 수 있길 원하는가?’ 아니면 단순한 ’빈민구제 정도만을 원하고 내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세금을 가급적 최소화 하고 싶은가?’ 하는 자문도 던져 보게 되었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신세는 악세인가?!’ 라는 다소 파격적인 화두를 던지신 저자 서영택님이 다름아닌 전직 국세청장직을 맡으셨던 분이라는 사실이었다. 관련 분야의 깨어 있는 선각자 내지는, 학자, 아니면 적어도 조세제도의 정책 입안 실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지은 책일 것 이라는 막연한 상상과 선입견에 적잖은 파격과 신선한 충격을 주는 대목이었다. 중이 제 머리 못깎고,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 속담 처럼, 정작 자신이 오래 도록 몸담고 해오던 일에는 점점 타성과 아집이 생겨서 변화나 새로움을 꾀하지 못하게 되고, 아무런 문제 의식도 없이 오히려 치부를 가리는데에만 급급해 지거나, 아예 나태해 지게 마련인데, 전 국세청장 그리고 공직자의 신분으로서 이 같은 고민들을 던져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많은 귀감이 될 듯 하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하면서 봉사 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정부에 많이 모여드는 공직사회를 꿈꾸는 저자의 바램 또한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은 고희를 맞은 저자가 30여년 자신의 공직생활 중 몇 가지 경험과 일화를 기록으로 남기고 정리 함으로써, 자기 반성과 소회(所懷)의 기회로 삼고자 쓰여졌다고 하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마치 회고록 한편과 조세제도 관련 논문 한편이 합쳐져 있어 일석이조의 꿩먹고 알먹는 느낌을 주는데, 우리나라 조세 제도 역사의 변천사와 세금에 대한 이해는 물론 저자 개인적인 삶을 통해서도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뒷편 저자 연보에 나와 있는 이력과 함께 책의 내용들을 읽다보면 저자 서영택님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세 명의 대통령 통치기간을 거치면서 건설부 장관을 비롯 우리 나라 조세 분야에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해 오신 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해 태곳적 부터 응당 존재해왔을 것만 같은 부가가치세를 저자가 하버드에서 처음 배우고 이 제도가 우리 나라에 도입 되는 과정에서 함께 일조 하셨던 일화를 읽으면서 마냥 신기하고 새로웠다. 

새로운 세금은 아무리 그 신설 목적에 타당성과 정당성이 있고 이론적으로 완벽하다고 해도 국민에게는 일단 전에 없던 새로운 세 부담을 안겨 주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홍보를 잘 해도 국민에게는 악세일 뿐며, 이 때문에 신세의 도입과 시행에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고, 이를 담당하는 책임자나 입안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이 일들이 피를 말리는 과업이라는 설명이 특히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좋은 세금"이 만들어 지려면 우선 세금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세금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돕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좋은 세금", 즉, 악세가 아닌 선세를 만들어 내려면 이와 관련된 공직자들의 노력과 고민이 절재적인 것이 틀림없지만 말이다.  많은 공직자 들이 이 책의 저자 처럼, 자신이 해 온 일들에 전문성과 사명감을 갖고 끝없이 공부하며 고민하며 국민들과 함께 투명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선진국으로 갈 수록 세율이 높게 책정되어 있는 반면 복지 혜택이 많다는 인식이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그래서 그간의 정부 정책들을 보면, 점차 세제를 선진국화 하여 세율을 높이겠다는 발표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일본과 미국의 소득세율을 우리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중산층의 세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령 우리 나라에서 5천만원을 버는 월급생활자의 세율은 17% 인 반면 일본은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이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저소득 층이라고 무조건 세 부담을 면제해 주는 것보다는 적은 액수라도 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국민이 자기 노력으로 돈을 벌고 그에 상응하는 공정한 세금을 냄으로써 납세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국민개세(皆稅)주의’나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원칙’이 바람직하다는 견해 이다. 나 역시 이에 크게 공감하며,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피할 수 없는 세금"을 즐길 수 있게 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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