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가면 쿠바가 된다 - 진동선의 포토에세이
진동선 지음 / 비온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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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나라, 혁명의 나라 ... 내게 쿠바는 환상을 품어주는 여행지 이기보다는 무언가 막연한 거리감과 공포감을 주는 나라 였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계속에서 나는 쿠바의 어둠을 먼저 보았기 때문이다. 깨끗한 도시의 이미지나 빼어난 자연경관의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나는 쿠바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예쁘고 좋았다. 낯설지만 이국적이고 왠지 멋스러운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라는 이름들 역시 좋았다. 요즘 말로 강한 Force와 카리스마가 묻어 있는 이름들이 마냥 멋스럽게 느껴졌었다. 

만약 내가 쿠바를 찾게 된다면,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쿠바라는 나라의 빛 바랜듯한 사진 속 풍경들이 사라지기 전에 카메라에 담고 기록 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무엇이든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것들은 0순위로 사라져 버리는 새마을 운동의 나라, 기록본능을 자극하는 싸이월드의 나라에서 살다보니, 자연 스레 생긴 습성인 듯 하다. 며칠전 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장사를 하던 골목 어귀의 구멍가게가 오늘 귀가길에 보니 사라지고 없는 경험들을 숱하게 하다보니, 쿠바와 같이 우리 나라의 60~70년대 풍경을 담고 있는 듯한 풍경들을 보면 곧 사라질까 조바심이 난다. 사진 이라도 찍어둘걸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순간들이 너무도 많다. 책 속에는 작가의 말대로 미국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3~40년대 미국 풍경이나, 우리나라의 7~80년대 모습에 걸맞는 쿠바의 풍경들이 아련하게 가슴을 치고 다가 서는 순간들이 많다. 

책 속 사진들 속 쿠바의 이런 아득한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의 흐름이 어느 한 순간을 깃점으로 오래도록 정체된 듯한 진공관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아늑하고 노곤해진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속에서 꿈틀 끔틀 요동치는 사람들의 뜨거운 심장이, 인간 삶의 가슴 벅찬 온갗 희노애락을 미쳐 작은 심장 하나에 다 담지 못해 고뇌하고 눈물흘리고 벅차 하는 듯한 표정들이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쿠바를 찾은 사진가들의 꿈은 하나 같이 색에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쿠바의 풍경들 속에는 바람과 시간의 색이 공존 하고, 그것이 빛과 만나서 더할 수 없이 묘하고 그윽한 느낌을 자아 낸다. 겉에 보이는 화려한 파스텔 색조의 건물들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지층을 켜켜히 쌓은 바람과 시간의 색을 담고 싶어, 삶의 가장자리, 후미진 골목길도 마다 하지 않는 작가의 모험심에 반하게 된다. 열정이 식으면 지혜가 오고, 청춘이 가면 황혼이 오고, 새벽 다음 아침이 오고, 하루 해가 지면 밤이 온다고 담담히 말하며, 경쾌함 속에서도 우수와 애잔함을 보고 느낄 줄 아는 작가의 감성이 마음을 울린다. . 

특히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따라 옮겨지는 작가의 시선들과 생각의 흐름들이, 뜻 밖에 받은 선물 처럼 큰 기쁨을 주었다. 헤밍웨이는 1928년 낚시 여행을 위해 쿠바에 처음 발을 딛여 1960년 혁명으로 추방 당하기 까지 무려 30여년 이나 쿠바에서 창작을 하며 보냈다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어쩌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책 속 작가 연보를 꼭 챙겨 읽는 편이어서, ’노인과 바다’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작품을 읽으면서 헤밍웨이의 쿠바의 행적을 읽었을게 분명 하지만, 그닥 기억에 담아 두진 않았던 모양이다. 

헤밍웨이의 30여 년 문학적 궤적과 족적을 따라 "헤밍웨이가 달렸을, 보았을, 안았을" 무수한 길들을 달리며 "문학이 옷을 입으면 사진, 사진이 옷을 벗으면 문학" 이라는 말을 되뇌이는 작가의 모습이 사랑 스러웠다. 1961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헤밍웨이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자살로 인한 충격을 극복해야 했고, 험한 파도, 야생 사냥, 비행기 추락 등 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긴 모험가였다고 한다. 책 속 사진 한 장 한장 모두가 헤밍웨이의 삶의 행적들과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가슴을 울린다. 특히 텅빈 보르네오 티크 책상 하나가 꽉차게 담겨진 사진 한장은 잊혀 지지 않는다. 인터넷에 올려진 사진들보다 작가가 실재 가서 본 풍경이 훨씬 좋았다고 하니, 나 역시 당장 쿠바로 날아가 대문호의 체취와 숨결을 직접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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