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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랜드 - 재미와 놀이가 어떻게 세상을 창조했을까
스티븐 존슨 지음, 홍지수 옮김 / 프런티어 / 2017년 2월
평점 :
<원더랜드>는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를 쓴 스티븐 존슨이 또다른 저서인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로 시작된 혁신에 관한 시리즈의 두 번째 저작입니다. <원더랜드>는 '쓸모없어 보이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의 TED동영상
서양 독자들이 잘 접해보지 못했을법한(현대 문명이 대부분 서양 중심이라 동양 사람이 우리나라 독자들도 잘 알지 못할 수 밖에 없는) 이슬람 시대의 도서인 <기발한 장치들의 지식을 담은 책>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책에 실려있던 장치들이 유럽에 나타난 1천년 후로 이어집니다. 저자는 18세기 런던 멀린 기계박물관에 전시되었던 자동 기계들이 마르크스에게 노동의 미래를 고민하는 영감을 주었고, 배비지가 오늘날 컴퓨터의 전신인 미분기를 만들게 했고,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고 에드거 앨런 포가 탐정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수많은 혁신들이 규칙을 깨고 새로운 관행일 시도해보는 행위인 놀이로부터 시작되었답니다.
짧은 들어가는 말과 맺음말을 빼면 책은 옥양목에서 시작해 패션과 쇼핑에 대해 이야기하는 1장, 뼈로 만든 피리에서 시작해서 음악에 대해 말하는 2장, 후추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를 통해서 맛에 대해 풀어가는 3장, 유령 제조라는 이름으로 각종 시각적인 환영에 대해 다루는 4장, 체스와 지주 게임을 비롯해 각종 게임을 살펴보는 5장, 가만히 생각해보면 별로 쓸모없어 보이지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공장소에 대한 6장까지 모두 여섯 개의 이야기 꾸러미가 있습니다. 각각의 장들은 서로 전후관계가 없기 때문에 읽고싶은 부분부터 읽을 수 있습니다.
대항해시대를 다룬 게임을 즐기면서 자란 저는 후추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에 대해서 다룬 3장을 가장 먼저 읽었습니다. 일본 코에이사에서 만든 대항해시대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인도까지의 항로 개척입니다. 게임 상에서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어찌어찌 인도까지 항로만 개척이 되면 그 뒤로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역사 교과서 안에서 혹은 게임 안에서 막연히 알고있던 후추와 각종 향신료 교역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너무 흥미진진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쓸모없어보이지만 흥미로운 대상에 대한 이야기라 손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즐거운 내용만 적혀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읽은 3장에만 해도 엄청난 경제적인 이득을 만들 수 있었던 향신료 무역을 위해서 행해진 인류의 잘못에 대해서도 나옵니다. 1장에는 목화 농사를 위해서 노예를 착취한 이야기도 나오고 6장은 아예 계급제라는 잘못된 관행에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저자인 스티븐 존슨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중요한 아이디어나 제도의 탄생에는 대부분 여가와 유희가 관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재미있거나 놀랍다는 사실 말고는 딱히 수긍 가는 이유 없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습관, 관습,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원더랜드>에 실었습니다. 대개의 역사는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지만, 한쪽 방향으로 흐르든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계기들은 결국 별 생각없이 즐기던 '무언가'였고 그런 '무언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원더랜드>입니다. 재밌습니다. 목차를 펼치고 흥미가 가는 장부터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런 후에 우리 시대에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을 놀이는 뭐가 있을지 찾아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