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급투쟁 - 난민과 테러의 진정한 원인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희상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새로운 계급투쟁은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난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이 최근 유럽이 직면하고있는 난민문제에 대해서 말한 책입니다. 딱히 유럽 난민 문제에 큰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지젝이라는 철학자의 글을 한 번은 읽어보고싶었다는 이유로 읽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책을 받아서 손에 쥔 순간 너무 얇아서 일단 불안해졌습니다. 책 내용과 지젝 모두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싶은 분홍색 겉지를 잠시 벗겨두고 책을 펼친 순간 간단한 차례 이후에 여는 글이나 서문 따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책으로 인해서 당황했습니다.


 친절한 책은 아닙니다. 새로운 계급투쟁은 ‘이중의 협박, 좌파의 금기를 깨자, 종교의 음란한 이면, 신적 폭력, 난민의 정치경제학, 문화전쟁에서 계급투쟁으로, 그리고 다시 거꾸로, 위협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웃의 경계,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의 제목을 가진 아홉 개의 글이 모여있습니다. 막연하게 지젝의 글이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접한 터라 지젝에 대해서 헤겔이나 라캉의 사상을 기반으로한다는 것과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식으로 막연하게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각 장별로 무슨말을 하는지는 알겠고, 책의 결론이 뭔지도 알겠는데 각 장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좌파의 금기를 깨자’는 제목의 두 번째 장이었습니다. 


적이란 당신이 아직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다.

문화제국주의와 인종차별주의라는 비판을 의식한 나머지 유럽의 역사적 유산인 인류의 해방을 언급하지 않다.

고유의 생활방식 수호 그 자체로 파시즘적 징후이거나 인종차별적이기에 논의를 피한다.

이슬람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거부한다.

정치 세력화한 종교를 광신과 동일시하거나, 이슬람교도를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광신도로 본다.


 뜯어보면 미묘한 의미를 지닌 말인데 지젝은 오히려 생각의 발목을 잡는 금기를 깨야한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 지젝은 유념해야할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모두가 의무적으로 지킬 최소한의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이 제한 내에서 상이한 생활방식에 무조건적 관용을 행해야 한다.


 지젝은 이 두 제안으로 그치지않습니다. 단순하게 서로 존중하는 선에 그치지 말고 함께 투쟁하자고 제안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자 유럽이 직면한 난민문제는 단순히 지역적인 문제가 아닌 글로벌 경제의 대가라고 합니다. 그에대한 충분히 강한 적대성 네 가지로 생태 파국, 사유재산화, 새로운 기술-과학 발달, 새로운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듭니다. 이 중 앞의 세 가지는 공유지의 사유화와 관련되있고, 마지막 적대인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의 적대가 가장 결정적이라고 합니다. 포함과 배제라는 적대를 건성으로 대하면 좌파의 금기처럼 손쉽게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럴 때 새로운 장벽·아파르트헤이트를 만들어내는 글로벌 자본주의로부터 인류라는 공유지 자체가 위협받는다고 합니다. 


 인류의 생존이 아닌 정의와 관련된 네 번째 적대를 해결해줄 누군가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사이에 잘못된 선을 함부로 그어서도 안됩니다. 지젝의 표현대로 그가 말하는 세계적인 연대는 유토피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유토피아는 누군가 가져다 주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다려온 바로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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