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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사랑하다, 떠나다 - 노마드 소설가 함정임의 세계 식도락 기행
함정임 지음 / 푸르메 / 2014년 10월
평점 :
2001년 입대를 앞둔 동생과 함께 떠났던 유럽여행에서 들린 파리는 밤기차로 도착한 역에서 먹은 푸짐했던 패스트푸드점의 아침메뉴와 샹제리제 거리에서 맛본 앤초비 피자로 추억에 남아있습니다. 월드컵 열기로 가득찼던 2002년 여름에 방문했던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나라 몽골은 우리나라 호떡을 닮았지만, 그 기름짐은 어떤 음식도 따라갈 수 없던 호르츠와 찜통에 양고기만 넣고 삶아먹는 몽골 전통요리인 허르헉으로 기억됩니다.
여행 당시엔 그냥 특이했던 한 끼 식사 혹은 간식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되짚어보면, 패스트푸드가 인기있는편이 아닌 프랑스이기에 어느 나라보다 푸짐한 그래서 가난한 여행자 둘이서 나눠먹기에도 충분했던 패스트푸드점의 아침메뉴가 생겼지 않나 싶고, 샹젤리제 거리에서 양식을 먹어보겠다고 시킨 피자에 왜 우리음식인 젓갈이 올라가 있는가 싶었던것은 바로 앤초비였습니다. 몽골의 호르츠는 춥고 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 높은 열량이 필요하기에 그렇게 기름진 음식이 되었을테고, 특별히 채집할 식물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접 키우는 농경사회가 아닌 유목의 역사를 가진 몽골이었기에 채소는 동물들이나 먹는것이고 그래서 허르헉도 단순히 고기만을 삶은 요리가 되었을것입니다.
여행은 새로운 장소로 떠나는 것이고, 알지못하는 문화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지의 음식은 새로운 문화를 알아가는 길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여행가서 보고 먹으면서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뒷 이야기들이 있는가하면, 꼭 직접 떠나지 않아도 맛본듯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는 바로 그런 책입니다. 비록 나는 서울 속의 방 한켠에 앉아있을 뿐이지만, 책을 펼치면 작가와 함께 세계 곳곳으로 떠날 수 있고,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문학을 전공했고, 현재도 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소설을 연구하는 동시에 꾸준히 글을 써온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책 표지 안쪽의 저자소개란에 “소설가, 여행가, 에세이스트, 요리애호가”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한 자리에 있기보다 떠나기를 좋아할꺼같은 인상이 느껴집니다. 지은이의 말에서 이 책은 그런 결과물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새벽까지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중략)…
매일 세 시간 이상 부엌에서 싱싱한 푸성귀와 식재료로 요리를 하고
일 년에 한 달은 저축 통장의 적금을 꺼내 쓰듯 아껴 모은 시간을 헐어
여기가 아닌 다른 곳, 일상이 아닌 낯선 세상으로 떠나 현지에서 보고 듣고 겪고 맛본 시간과 공간의 결과물이다.”
책은 총 열 네개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곳의 음식을 맛보고 즐긴 이야기입니다. 꼭 순서를 지킬 필요 없이 아무곳이나 펼치면 그 나라로 저자와 함께 떠날 수 있습니다. 찬찬히 읽은 부분도 있고, 휙휙 넘긴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유난히 저자가 그냥 맛본 음식 이야기보다 뉴욕에서 직접 음식을 차린 부분이나 파리에서 처음 김치를 담궜다는 대목에서 좀 더 빠져들었습니다. 책 말미의 에필로그에서도 작가는 “직장 생활과 소설 창작, 그리고 가정이라는 세 가지 업”을 동시에 감당하기 위한 힘의 중심에 음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새해 첫 식사로 떡국과 시금치나물을 곁들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꼭 내가 알지 못하는 나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대목에서든 늘 음식이 함께하는 이야기이고, 할 수만 있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요리를 한 저자의 이야기이기에 더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 나에게 삶이란, 곧 예술이란 소설이자 매순간 소설과 함께 떠나는 미지의 여행이다. …(중략)… 그 중심에 음식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