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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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연골 형성 저하증을 가지고 태어난 뛰어난 조각가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미모)와 그의 뛰어난 친구 비올라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다.

그의 조각상에 담긴 비밀을 따라가 보면, 그 이야기 끝에는 비올라가 있다. 누구보다 똑똑했고 한 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현명한 여성 비올라. 사회가 규정한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이 둘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절대 고치지 못할 비정상성이 있어. 그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고 그 점에 관한 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P.595)'라는 문장은 비올라만을 대변하는 문장이 아니다. 연골 형성 저하증을 가지고 태어난 미모 역시 그 점에 관한 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기 때문이니까. 둘은 그래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미모는 조각가의 면모로 사회적 시선을 일부 극복하지만, 당시의 여성인 비올라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비올라의 노력이 헛된 일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분명 날아올랐으니까.

미모가 원석을 깨뜨리고 훼손하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조각가라면, 원래의 세계에 균열을 내면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 비올라는 세상을 조각한 조각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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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왕
마자 멩기스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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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략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부모를 잃고 키다네의 집 하인으로 사는 히루트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히루트의 활약은 사실 굉장히 미미하다. 소설 초반 아버지가 물려준 소총(우지그라)을 키다네에게서 되찾기 위해 노력한 것치고 전쟁터에서 활약은 미미하다. 엑스트라와도 같은 이름 없는 이탈리아 병사 한 명 처리한 게 다니까. 총을 제대로 쏜 적이 있기나 한가 싶다. 오히려 소설 초반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이던 아스테르가 전사의 임무를 수행한다.


소설에서 가장 분노했던 지점은 이탈리아의 침략 이후 국민은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 영국으로 도망간 황제의 모습을 보았을 때다. 그런데도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불사하는 국민의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까웠다. 더욱더 화가 나는 것은 전쟁의 승리 이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복귀하는 황제의 모습을 봐야 했을 때가 아니었을까. 고단한 민족사를 보는 것만 같아서 정말 괴로웠다. (이래서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야 해. 안 그럼 정말 국민만 개고생)


추천사를 쓴 살만 루슈디는 이 소설을 서정적인 신화라고 표현했으나, 좋게 포장해서 서정적인 내용인 것이고, 전쟁 이야기를 다룬 소설치고 긴장감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박진감 넘치는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느슨하게 느껴진 부분이 있던 건 사실이다. 여성들의 활약은 기대보다 떨어지고, 전면으로 나서는 모습이 그리 많지 않아서 대체로 아쉬움이 남았다. 오히려 제목이 ‘그림자 왕’인 만큼 그림자 왕의 임무를 맡은 ‘미님’의 이야기에 비중을 두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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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 앤드 엔솔러지
이서수 외 지음 / &(앤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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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언니, 혹은 자매와의 관계를 그려낸 앤솔러지 소설집이다. 제목에서부터 여성의 연대를 그렸을 것 같아 호기심을 자아냈고, 관심 있는 작가의 라인업이라 궁금했다.

<어느 한 시절>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잠시 코끝이 시큰해졌다. 나는 현시대의 문제를 포착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서수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데, 이번 작품에도 내가 고민했던 지점이 동일하게 들어있어서 더 공감하며 읽었다. <그 언니, 사랑과 야망>은 시대성과 함께 여성 연대를 그려낸 점이 좋았고, 언급된 작품 <러브 누아르>의 이야기까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나를 다문화라 불렀다>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현실적인 문제를 언니와 동생의 관계로 풀어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순영, 일월 육일 어때>는 앤솔러지 제목의 내용이 언급되는 단편이다. 언니라고 부르고 싶었던 순영과 화자의 이야기는 소중했던 존재의 상실과 애틋한 순간을 가만히 풀어내는데, 묘사된 마지막 장면이 아련해서 마음에 더 오래 머물렀다. 나에게도 그런 언니가 있었다. 자매가 아니더라도 ‘언니’라고 부르며 더 가까이 지내고 싶었던 사람들. 나에게는 ‘언니’라는 단어가 주는 포근함, 동경 같은 것이 있었으니까.

여성이라면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해봤을 것 같은 말,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를 읽으며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언니’를 추억해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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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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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만델 복지관의 노인 사교 클럽 구성원들의 좌충우돌 복지관 살리기 프로젝트가 유머러스하게 펼쳐지는 소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일흔을 넘긴 노인이지만, 그들은 무력하지 않고, 상황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간다. 히어로처럼 모든 일을 해결하는 대프니의 숨겨진 과거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도 이 책의 숨겨진 재미 포인트가 아닐까.

이들이 복지관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폭소가 터져 나와서 시종일관 즐겁게 읽었다. 오합지졸처럼 각자 따로 놀던 이들이 의기투합하게 되는 과정들이 재미있었다. 읽으면서 영상화하기 좋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영상으로 제작되어도 유쾌한 내용이라 좋을 것 같았다.

유쾌 상쾌 통쾌한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당장의 근심 걱정이 생각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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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곁에 머물기 - 지구 끝에서 찾은 내일
신진화 지음 / 글항아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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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파 앰배서더 활동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여성 빙하학자라는 점이 이끌려 선택한 책이다. 극지연구소에 대해 어렴풋이 알뿐이지 정확하게 무엇을 연구하는지 알지 못했는데, 저자를 통해 빙하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빙하 연구 및 빙하 시추 과정을 알게 되었다. 빙하를 통해 지구를 진단하고, 과거 기후 환경을 분석하여 미래 기후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롭고 신기했다. 빙하를 연구하는 저자를 통해 듣는 기후 위기의 현주소는 조금 더 생생하고, 무겁게 다가온다. 빙하가 녹는다는 것은 빙하학자인 그에게 “조선왕조실록과도 같은 역사책이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일(P.127)"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비유가 너무 절묘하게 와닿았다. 기후 위기 상황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고 있을 학자의 관점에서 전하는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존재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핵실험을 하자 빙하가 우리에게 건넨 말>이라는 소제목의 내용이 뇌리에 남았는데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지구를 오염시켰는가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제목 <행복하지 않습니다>의 내용은 과학자들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글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R&D 예산 삭감으로 신진 과학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과학자가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사실은 국가적으로도 큰 소실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나는 언제나 과학자가 쓴 글을 볼 때면,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저자는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한 지구를 빗대어 인생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한한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일 뿐(P.261)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연구하던 프로젝트가 실패하고, 논문이 게재되지 못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는 크게 낙담하지 않으려 한다. 매일 작은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지만, 인생 전체로 보았을 때 별거 아닌 해프닝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실패를 거듭 반복하는 우리네 인생도 다시 올라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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