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마지막 왕은 누구인가? - 역사의 대척점에 선 형제, 부여융과 부여풍
이도학 지음 / 주류성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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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고대 국가 중 하나인 백제의 역사는 상당부분이 베일에 쌓여있다. 동시기에 공존하였던 신라는 삼국을 제패하며 끝까지 살아남아 승자의 역사를 썼고, 고구려는 비록 신라와 협공한 당나라에 망하였으나 후손들이 기어코 계승의식을 이어나간 끝에 후기의 이름인 고려를 되살려내었다. 그러나 후삼국 혼란기를 고려가 정리하면서 백제 유민의식은 붕 뜨게 되었다. 영토가 북한과 만주 일대에 속하여 현대의 우리가 쉽게 조사하지 못하는 고구려나 발해와는 달리, 한반도의 가장 알짜 지역을 차지했던 백제는 영토가 여전히 우리나라 땅에 그대로 속하고 있음에도 자료가 많이 부족하여 아쉽다.

특히 백제의 멸망은 오해를 많이 받는데, 궁녀 삼천명을 거느렸던 의자왕이 사치와 향락 끝에 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삼천궁녀설은 근거조차 없으며 의자왕은 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라이벌 신라를 궁지에 몰았던 꽤나 능력있는 군주였다고 한다. 신라 영토를 탈환하며 자신의 위세를 세우고, 그 업적을 활용하여 내부 정치에서도 귀족들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귀족들의 파워가 강했던 백제에 갑작스레 카리스마있는 군주가 나타나 정계를 휘어잡으며 갈등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당나라의 대군이 나타나자 빛나는 전공을 자랑하던 의자왕이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백제는 신라와 근 백년간 철천지 원수가 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였는데, 의자왕은 한술 더 떠 틈만 나면 신라를 공격해온 정복군주였으니, 원수인 신라로부터의 모함과 의자왕으로부터 권력을 빼앗긴 후 신라에 귀순한 백제 귀족들의 원망이 모두 의자왕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닐까.

<백제의 마지막 왕은 누구인가>는 백제의 멸망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때 당의 관심사는 고구려였으며 백제에는 관심이 적었다고 한다. 백제는 신라가 이를 갈던 대상이었으나, 동맹의 주도권을 갖고있던 당은 백제의 멸망보다는 복속 정도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당의 의도 역시 백제의 빠른 항복에 주요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각보다 항복한 백제에 대한 당의 대접은 박했고, 의자왕과 귀족들에게 가해지는 모욕 속에 백제인들 사이에서는 속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부흥군이 꿈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백제를 함락한 당나라는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을 앞세워 백제땅을 다스리게 하였다. 백제에 웅진도독부라는 이름을 붙여 자신들의 지방으로 임명한 것이다. 사실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중국의 여타 지방호족세력들과 같이 백제 세력의 명맥은 이어졌을 것이나, 그러려니 하는 당에 비해 동맹인 신라는 기회가 왔을때 백제의 씨앗을 말려버리고 싶은 철천지 원수였다. 한편, 군대를 가졌음에도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긴 백제 세력은 충실한 우군인 왜국으로 나가있던 부여풍을 데려와 추대하여 백제부흥전쟁을 벌인다.

부여융과 부여풍은 각기 다른 백제세력으로 맞붙었다. 백제의 영토를 거진 회복했던 부흥군은 명목상 세웠던 풍의 생각 이상으로 강한 에고에 내분이 일어나 버렸고, 상대적으로 유약해 보이는 부여융이 당과 함께 이끄는 세력에 패배한다. 풍은 고구려로 도망가 저항하지만 고구려마저 무너지면서 그 마지막 희망도 달아나게 된다. 융은 통일을 완성하겠다며 줄기차게 공세하는 신라를 도저히 못버텨 결국 당으로 달아나 버린다. 백제는 그렇게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일찍이 한강유역과 한반도 최고의 알짜 곡창지대를 독차지하고 전성기에는 일본과 중국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강성했던 백제 역사의 소실은 후손으로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백제의 최후를 결정지은 백강전투가 한중일이 모두 맞붙은 동아시아 국제전이었다는 사실이다. 백제 부흥군-왜/ 백제유민-당-신라 로 나뉜 이 전투가 향후 고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때 신라에게 크게 당한 왜군은 이후로 영영 신라에 적대감을 갖고 심지어 통일신라 침공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비록 계획에 그치다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후 역사적으로 일본 정치 세력들이 주기적으로 꺼내드는 한국에 대한 적개심의 직접적인 뿌리가 바로 형제국과 같던 백제의 멸망과 백강전투 대패로 인한 신라에의 감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백제의 마지막 왕은 누구인가>에는 기존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백제 멸망과정에 비하여 훨씬 더 자세하고 정확한 탐구들이 실려있다. 예식과 예식진이 동일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 여전사 계산 공주 설화, 교과서에 이름만 짤막하게 언급되는 복신과 도침, 흑치상지의 행적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미스터리한 백제 멸망사를 비교적 합리적인 추론으로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어 읽고 난 후 긴 여운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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