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강의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어령 선생은 일찍이 작가로 시작하여 교육자를 거쳐 문화기획자 등등 우리나라 문화계에 전방위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쳐왔던 사람이다. 특히 그는 평생의 모든 커리어를 통합한 듯한 행정가의 자리인 문화부 장관에 올라, 재직 시절 한예종과 국립국어원을 설립하는 등의 위업을 남기기도 하였다. 은퇴 후 다시 작가로서 남긴 <디지로그> 등의 저술들은 좋은책으로 꼽히며 남녀노소 불문 많은 이들에게 지혜와 영감을 주었다. 일찍이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여 오랜시간 동안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 여러모로 영향을 끼쳐왔던 그가 2022년에 작고하였다고 한다. 뒤늦게 알게 된 그의 소식은 정말 한 시대가 끝났다는 느낌을 주어, 왠지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어령의 강의>는 그가 생전에 가졌던 강연 중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10편을 모아 글로 담은 책이다. 그는 나이와 경력에 비해 언제나 새로운 것과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재해석하는 사람이었고, 구시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새로운 시대를 품은 그 사상은 언제나 젊은이들에게 좋은 가르침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 그의 장관 시절 한예종이 설립되었는데, 이것이 그저 그 시기에 행정을 도맡은 정도가 아니라 이어령 선생 본인이 직접 제안하여 몸소 시작한 사업이라고 한다. 기존 대학에서의 틀과 관념에서 벗어나 아티스트를 창조해낼 수 있는 자유로운 학교를 만들고자 하였고, 실제로 구현된 것에 비해 그의 구상은 훨씬 더 자율적이고 진보적인 형태였다고 한다. 기존 학습의 틀에서는 새롭게 생각하는 예술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인터넷과도 거리가 가깝지 않은 세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미디어의 가능성을 깨닫고 사용자 창작 미디어의 적극 활용을 권장하기도 한다. 이제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시대가 끝나고 개개인이 스스로 재해석한 컨텐츠를 내놓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생각들은 시대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책을 읽으며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다보면, 도저히 일제시대에 태어나 6.25전쟁과 산업화, 민주화를 모두 지나온 고령의 인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가 현 시대와 새로운 문물에 날카롭고도 지혜로운 시각을 갖고있는 것을 깨달을 수 밖에 없다.

이어령은 마치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현자 같다. 그의 글과 강연을 읽다보면 지혜와 감동, 용기를 받게 된다. 또 그만큼 어떻게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인이 세상의 흐름에 대해 이렇게 정확하고 날카로운 식견과 통찰을 갖고 있는지 놀라게 된다.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 그 어떤 젊은이보다도 맑고 또렷한 정신의 소유자였던 그가, 요즘같은 장수시대에 10년은 이르게 가신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우리 곁에서 그 혜안을 나누어주었다면 우리 사회에는 그만큼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생전에 남겨둔 그의 말들을 통해서만 그만의 시각을 엿볼 수 있게 되었으나, 여전히 유효한 그의 통찰력들에 감탄하며 이어령이라는 인물을 마음에 담아본다.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리뷰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