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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 하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평점 :
일시품절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원작 소설이다. 문학 전공이 아닌 역사 전공의 작가가 마치 당대 전쟁사를 재구성하듯, 철저한 사료 고증에 기반하여 써내려갔다. 26년간 3차에 걸쳐 지속된 여요전쟁중에서도 거란의 2차 고려 침공을 다루고 있는데, 하편에서는 고려의 반격과 처절한 막바지의 전투를 그린다.
우리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배울때, 1차 침공시 서희가 담판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형식상 들어주면서 대군을 물러가도록 합의하였고, 3차 침공시 강감찬의 귀주전투가 대첩이라 불릴 정도의 통렬한 승리를 거두며 거란을 영영 격퇴하였다는 것을 주로 이야기한다. 반면 소설 <고려거란전쟁>에서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언급이 적었던 2차 전쟁을 다룬다.
사실 이 2차 전쟁은 매우 처절한 싸움이었다. 외교로 승부를 본 1차, 상당한 병력이 준비되어 있었던 3차 전쟁에 비해서 매우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고려 내부의 정치적 혼란으로 왕이 교체되고 권력층이 뒤바뀌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맞이한 침공이었으나, 거란측에서는 황제가 직접 현지의 군대를 압도하는 대군을 이끌고 내려왔다.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적을 맞이하자 고려는 초기에 급파된 부대가 대패하는 바람에 개경을 방폐하고 후퇴하였으며, 주력군이 대파되어 전쟁 내내 전면전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맞이한다. 시작부터 이미 함락될 위기에 빠져버린 것이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서경 유수가 항복하려다 뒤늦게 도착한 부대에게 처단을 당하고, 맞서싸우려던 장군이 도망치는 등 더 큰 혼란이 연속하여 일어났다. 급기야는 신하들과 장수들이 수도를 두고 후퇴하는 왕의 곁에 남아있지 않아 왕 일행은 50명도 채 안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왕의 일행과 거란군의 거리가 십몇리까지 가까워지는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렇듯 2차 전쟁은 거의 고려 함락 직전까지 갔던 대사건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처절한 고난이었기에 오히려 우리가 역사를 배울때 덜 언급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도 결과적으로 고려가 살아남은 것은, 왕이 잡히지 않고 피난하는 동안, 고려의 정예 기병대가 거란군을 쫓아다니며 보급로와 후방을 끊임없이 공략한 탓이다.
그 게릴라를 이끌며 성공시킨 이가 바로 "양규"이다. 2차 전쟁만큼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사실상 고려의 함락을 막아낸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영웅이다. 마치 임진왜란의 이순신과 같은 역할을 해냈다. 전면전으로 상대가 안되는 압도적인 병력차 앞에서, 본진 지형의 이점과 기동력을 살려 거란군의 후미를 끝없이 쳐내 수많은 인질을 구출했다. 대부분의 기습타격에는 고려의 포로구출이 동반되었다고 한다. 그 규모조차 알 수 없는 치명적인 기습부대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은 거란군은 친조 조건을 마지못해 수락하며 회군하기에 이르렀고, 말로만 친조를 약속한 후 행동하지 않는 고려에게 한동안 재침공을 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고려군은 철군하는 거란군을 타격하여 압송하는 포로들을 구출하고 상대의 병력을 줄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고려거란전쟁> (하)편에는 이러한 고려군의 처절한 반격이 아주 잘 드러난다. 책 띠지에 나와있는 40만 vs 7백은 바로 양규가 첫 게릴라 타격을 가할때의 정예기병 결사대 숫자이다. 하편 후반부에 들어서면 양규의 부대가 연승하며 기세를 올리고 포로들이 탈출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사실 전투 장면의 한 단면마다 비중을 들인 묘사를 하는 작품은 아니고,(아마 그랬으면 두꺼운 상하권 분량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 마치 실제 전쟁기록을 읽듯 고증과 사료에 기반한 내용과 빠른 전개를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Kbs와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장렬한 전장의 모습을 만나 보기 전에, 원작소설 <고려거란전쟁>을 톺아보며 고려의 영웅들을 먼저 만나본다면 드라마의 감동은 더욱 배가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