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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50가지 거짓말 - 배신과 왜곡이 야기한 우리가 모르는 진짜 세계사
나타샤 티드 지음, 박선령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10월
평점 :
얼마전 로마제국 다큐를 보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야기를 들었다. 탁월한 정복자로 후세에까지 알려진 그는, 아직 공화국이었던 로마에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쌓아올리기 위해 전쟁을 벌였고, 그 뛰어난 전쟁술로 얻은 성과로 인하여 결국 로마의 독재관의 자리에까지 오른 후 급기야 황제가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폭로하는 카이사르의 진실은 자못 충격적이다. 바닥에서부터 신분상승의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올라온 카이사르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고, 그를 해결하기 위해 갈리아 지방의 풍요로움을 약탈하였다는 것이다. 죄없는 갈리아 지방 부족들을 공격하여 자신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한 그는 이를 일종의 성공방정식으로 이해하고, 이후로 자신의 약탈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갖은 명분들을 꾸며내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된 전쟁보고서 "갈리아 전기"라는 것이다. 갈리아 전기로 꾸며낸 거짓말을 통해 그의 사적인 약탈은 정당한 전쟁의 공적인 성과로 인정받게 되었고, 카이사르는 결국 권력의 정점에 오른다. 당대에는 국가적인 인정과 지지를 받아 체제 자체를 뜯어고쳤을 뿐 아니라, 후세에는 길이길이 위대한 정복자로 남았다. 그러나 매우 최근의 연구를 통해 당시 그가 아군의 성과와 적의 규모에 대해 의도적으로 과장하였음이 드러났고, 그를 시작으로 갈리아전기의 의도와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은 꾸준하고 일관된 거짓말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꾸며주고는 한다. 자신의 경력과 경험에 대해 허풍과 과장을 지속적으로 늘어놓는 사람들이, 현실은 본인의 주장과 10%의 사실만이 일치하고 실은 그마저도 거짓 위에 쌓아올린 성과였음에도, 사회로부터 50% 이상의 인정을 받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 자신이 주장한 100%를 모두 인정받는 것은 아니더라도, 거짓말로 막대한 이득을 거저 챙겨가는 것이다. 책의 소개문구처럼 승자의 기록인 역사가 아니라, 승자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 책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꾸어버린 결정적인 거짓말들을 소개한다.
특히 유대인들에 대한 거짓말은 멘데빌 여행기에서부터 시온의정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유럽사회에서 반복된다. 종교적으로 심대한 차이에 기반하여 싹튼 혐오는 세기를 뛰어넘어 불어나고, 그 오랜 세월 누적된 거짓말이 한 국가의 사회적 혼란과 불행에 결합함으로서 인종학살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잘 이해할 수도 있다.
거짓말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앞서 카이사르의 이야기처럼, 정당하지 않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자신을 정당화한다. 자신의 정당화 명분을 위해서 타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고 그는 획득한 명분을 이용하여 이익을 차지한다. 혐오의 대상이 된 이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끝없이 공격받으며, 심지어 시간이 흐르면서 이 거짓말들은 그 꾸준함에 의하여 마치 사실처럼 기록되고 시간은 기록을 더욱 부풀리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것이 사회적 거짓말의 무서움이다.
영국저자가 쓴 만큼 주로 서양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중간에 임진왜란의 한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에서 가장 코믹한 거짓말의 순간이다. 우리에게 위험하고 아픈 역사로 남겨져 있지만, 전쟁의 중간에서 마치 시트콤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단 이순신이라는 혁신적인 영웅이 23번의 해전에서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는 것만큼은 절대 사실이라는 점을 짚어주는 것도 인상적.
영제는 <A Short History of the World in 50 Lies>로, 그만큼 짧은 역사 이야기들이 마치 단편처럼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가 너무 길지 않고, 핵심적인 이야기들을 꼬집고 넘어가기에 빠른 텐션으로 가볍게 읽힌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서적을 휴대하며 틈날때 잠깐씩 한챕터를 읽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