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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 - 머나먼 우주를 노래한 SF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가 쓰는 법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3년 10월
평점 :
이 책은 화씨451, 화성연대기, 민들레 와인 등의 작품들을 대표작으로 둔 SF문학계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2012년 그가 타계하였을때, 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백악관 공식 성명으로 그를 추모하였으며, SF영화계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자신의 뮤즈였다고 추모하였다. NASA는 화성 탐사로봇이 화성에 착륙한 지점을 가리켜 '브래드버리 착륙지'라 명명할 정도로 미국에서 그와 그의 작품이 갖는 위상은 대단하다고 한다. 심지어 화성 탐사로봇에는 그의 작품인 화성연대기 디지털북이 내장되어 있다.
그는 "단편의 제왕"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글을 발표했고, 온 생애를 글쓰기에 애정과 열정을 가진 채 살았다. 그보다도 마치 글쓰기에 중독된 사람같다. 하루하도 글을 쓰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가득해지며, 며칠간 글을 쓰지 않으면 마치 미친 사람과 같은 상태가 된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그는 글을 쓰는 것이 "약"이라고 설명한다. 글쓰기가 나를 살아갈 수 있게 한다고. 유한한 생명을 가진 취약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 자체가 굉장한 괴로움 속에 둘러싸여 벌어지는 일이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끔찍한 것들로부터 쌓이는 독을 글쓰기가 빼내어 준다는 것이다.
하루이틀 글을 안쓰는 것으로는 티가 안날지도 모르지만 그 독은 점차 쌓여 어느새 나를 죽일 수 있으며, 글쓰기는 나를 돌아보고 살아있음을 증명하여 좌절을 딛고 일어날 힘을 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개인적으로 브래드버리의 이 말은, 인간의 모든 창작과 예술 활동을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창작 활동은 나를 표현하는 것이고,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결국 내안의 감정들을 예술의 형태로 꺼내어 놓는 것이다. 그 감정들은 유한한 인간으로써 세상으로부터 받아온 것들이며, 적절하게 표출되지 않고 내 안에 너무 많이 갇히게 되면 감정들끼리 큰 충돌을 일으켜 한사람의 정신이 생을 온전히 이어가기 어렵게 만들어 버리고는 한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물론이고 긍정적 감정들까지도 말이다.
이 창작 활동은 우리가 흔히 예술활동이라고 부르는 것 뿐 아니라, 때로는 개개인의 다양한 노동 일부에서도 발휘된다. 나는 내가 직장에서, 혹은 일로서 쓰는 글도 나의 창작활동 또는 나의 예술의 일부이며, 친구들과 놀때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것까지도 내 예술활동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브래드버리는 그의 내면을 다스리는 가장 강력한 창작활동으로 글쓰기를 꼽은 것이라 생각한다. 글쓰기는 직접적인 언어로 마음을 드러내기에 더욱 그 효과가 강력하고 직관적일 수 밖에 없다.
브래드버리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에세이보다도 그가 창작한 이야기들 속에 그의 경험과 감정과 생각들이 녹아있다. 그는 작품 속 세계관과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서 우회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창작물이지만, 그 창작의 기반이 되는 것은 그의 삶이다. 이 책 <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에는 그의 어린시절부터 작품에 반영하게 된 경험들과 작품을 써나갈 당시의 경험들,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자체로 수필문학으로서 즐길수 있음과 동시에, 훌륭한 글쓰기 교과서로서 참고할 만 하다. 최근 블로그에 쓰는 글이 점점 많아지면서 꼭 한번 읽고 싶은 책이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두루뭉술한 일반론보다도, 오히려 개인적이고 지엽적인 이야기가 더 와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보편적으로 같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솔직하게 묘사하면 듣는이들은 각자 자신의 상황에 이입하여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굳이 나서서 가르치려 드는 책은 아니지만 작가로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드러내기에, 독자는 자연스레 거장의 글쓰기를 배울 수 있다. 오래전 절판후 국내에 재출간되는 책으로 당시의 번역가가 다시 문장을 다듬는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