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뜨겁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61
채호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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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기 시인의 시집을 읽는 지난 몇달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시집 앞부분의 산과 강을 보면서 쓴 시편들은 읽는 사람에게 너무나 즐거움을 주었다. 지난 시집의 주제인 "수련"을 지나 더 감미로운 환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 시집은 이러한 시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수련" 시집 앞의 "밤의 공중전화"의 시와 비슷한 시도 혼재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시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수련"풍의 시만을 모아서 읽고 싶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별로 향수나 스킨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경계에 아슬하게 서있는 시가 '손가락이 뜨겁다'가 아닐까 한다. 향수 냄새가 나야할것 같은 장면인데, 이상하게 향긋한 흙냄새가 나는듯 했다. 벌거벗은 등을 보면서 느껴지는 손의 감촉...

손가락이 뜨겁다

 하늘의 별은 뜨겁다. 밤은 차갑다. 벌거벗은 네 등

은 차갑다. 내 손은 뜨겁다. 비가 오고 들판에서 피

어오르는 뿌연 수증기. 내 손가락들이 수증기에 갇힌

다. 물렁물렁해진 진흙에 발이 빠지듯 네 등을 산책

하는 손가락들이 빠져든다. 네 등에 손톱 끝으로 고

랑을 내며 글씨를 쓴다. 씨앗을 뿌린다.

 

 흙이 글자를 끌어당긴다. 네 등에 묻힌 글자에서

싹이 돋고, 들꽃들이 피어났다. 밤은 뜨겁다. 꽃은

뜨겁다. 꽃의 향기는 시가 되어 손가락 끝에 만져진

다. 네 등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영원히 새겨졌다.

별은 뜨겁다. 손가락도 뜨겁다.

손가락 사이로 등의 감촉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이 시와 조금은 다른 시로 '강물의 심장'이 떠올랐다. 전혀 다른 시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막상 다시 읽고보니 매우 유사한 감각을 주고 있었다.

......(중간략)......

손을 집어 넣어 물고기처럼 퍼덕대는

마음을 거머쥐듯

강물에서 돌을 따낼 것이다.

 

......(중간략)......

신경과 흥분과 육체의 떨림을

이곳에서 편지의 글자를 낚아챈

손으로 생생하게 감지한다.

 

'강물의 심장' 중에서

이 시도 역시 손의 감각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다만 '손가락이 뜨겁다'와 달리 "밤의 공중전화"에서 느껴지는 향수냄새는 없고, 숲의 향기와 빗깔만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좋다.

 

이 시집에서 가장 좋은 시는 무엇일까? 처음 읽으면서는 왜 '손가락이 뜨겁다'가 표제시인지 이해를 못했다. 나는 '편지', '강물의 심장', '물결', 어둠 속 강가를 서성였네', '물 밑바닥', '한번 들여다 보세요', '마음은 어쩔 수 없지'등의 앞부분의 시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나타난 몇가지 다른 풍의 시들. 오히려 앞에서 언급한 시들보다 오히려 먼저 쓰여진 시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그녀', '애인이 애인을...'과 같은 시는 잘 읽히지 않았다. 이는 순전히 개인적 취향이다. 아마도 채호기시인에겐 이런 시가 개인적으로는 더 기억에 남는 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한 경계선에 '손가락이 뜨겁다'와 같은 시가 있지 않은가 느껴진다.

 

(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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