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로 말하라 (양장) - 언어 유진 피터슨의 영성 4
유진 피터슨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처음 책을 접하고 지난 몇년간 내가 읽은 책들은 이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유진 피터슨은 영성 신학자이다. 그가 쓴 많은 책들은 널리 읽히고 있는데, 특히 그는 최근 10년간 '메세지'라는 책을 썼다. 성경을 의역을 한 책으로, 우리나라 말로는 신약까지 번역이 되었다. 성경은 원문인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여러 명이 공동으로 번역하고, 또한 직역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한다. 유진 피터슨은 목사로서 교회를 담임하면서 글도 쓰고 사람들도 가르치면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메우기 위해 성경을 의역하게 되었다. 그가 '메세지' 번역을 하기 바로 전에 저술한 책인 바로 이 유진 피터슨의 영성 시리즈 4권이며, 그 중에 4번째 책인 바로 '언어'에 대해 저술한 '비유로 말하라'이다.

 

언어는 무엇인가. 지난 몇년간 언어, 시, 심리학, 자연과학, 경제학, 리더쉽 등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했던가. 언어의 필요성과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든다. 그러면서 몇가지 간격들 사이에 있는 비움을 메우는 지식, 경험이 필요했다. 그 미묘한 체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많은 저자들을 보았다. 단순히 회사 CEO거나 자연과학자이면서 우리나라 왠만한 소설가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았다. 어떤 생각의 깊이나 연습의 체계가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언어 사용을 최고로 한 사람은 예수님이었다. 어느 영어성경 공부모임에서 어떤 심리학 유사전공의 교수께서 최고의 심리학자로 예수님을 꼽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동일한 의견이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우물에서 남편이 4명이었던 여자와 나누었던 대화는 인간의 언어와 심리체계를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계셨다.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으셨던 '나는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이다'라는 메세지를 인간의 뉴런이 반응하는 신경체계에 제대로된 순서로 입력하고 계셨다.

 

이 책 '비유로 말하라'는 사마리아 여정을 담고 있다. 아쉽게도 위에서 언급한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는 없다. 예수님의 사역 3년차에 마지막으로 죽기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는 여행의 기록이다. 정확히는 그 여행에서 예수님이 해주셨던 이야기들로 1부가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와 은유. 인간의 정신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다. 성경에 나와있는 이야기들이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였는지 유진 피터슨의 해설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각 이야기 하나마다 예수님의 통찰과 깊음과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의 능력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병을 고치는 능력이다. 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눈 먼 자, 귀가 먹은자, 걷지 못하는 자, 귀신에 들린자, 심지어 죽은자, 이 모두를 예수께서는 고치시고 깨우셨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몰려왔다. 하지만 예수님은 몰려온 사람들로 인해 파묻히지 않으시고, 말과 대화와 이야기를 해주셨다. 바로 예수님의 두 번째 능력은 말하기에 있다. 기적은 사람들을 모으지만 변화시키지 못한다. 오직 변화는 인내와 오래참음과 언어에 있다. 대화, 그냥하는 대화가 아니라 인격적인 대화, 그리고 이야기. 사람들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성경은 매우 독특한 종교책이다. 교리나 설교나 교훈이나 지혜의 말이 주요한 내용인 다른 종교책과 달리 이야기가 주요 골격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고 계시다. 그래서 성경책을 읽는 자는 누구든지 변화하게 된다. 특히 다른 종교책처럼 성경내의 교훈의 구절만을 읽는 자들은 변화가 없고 성경내 인물들의 미움과 싸움과 인내와 변화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간은 변화한다. 예수님은 성경 자체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이듯이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의 말씀'이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육신을 입어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야기와 기도를 읽다보면 변화하게 된다. 이 책의 1부는 그러한 예수님의 죽기위한 여행을 하는 도중에 들려주신 이야기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일은 무엇일까? 바로 '기도'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셨듯이 더욱 중요하게 여긴 것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 사람들과의 대화와 하나님과의 대화에 오히려 차이가 없으셨다. 기도는 어떤 것을 바라기 위한 언어적 표현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한 주문이 아니다. 어떤 것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다.

 

기도는 창조주와 나누는 인격적 대화이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 이야기(은유)에 인격적 관계가 빠지게 되면 악한 결과를 얻는다. 특히 대화, 이야기에 능력을 가지 사람이 비인격적 방법으로 사용하게 되면 바람둥이, 사기꾼, 부정직한 정치인, 부정직한 종교인, 심하게는 사이비종교인이 나오게 된다. 기도를 비인격적으로 드리는 많은 종교나 무속신앙의 경우 그들이 얻는 것은 결국 무었인가. 기도는 창조주와 소통하는 인격적 통로이다.

(우리는 언어와 이야기에 대해 배우게 되면 언어를 비인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과 대적해야 한다. 절대로 그들과 같이 언어를 사용하면 안된다. 주의 깊게 말로 사람들을 홀리는 비인격들을 대처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부정직한 사람들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가....)

(시와 문학은 기본적으로 대화이자 이야기이다. 자신과의 대화가 전면에 나와있는 타인과의 인격적 관계가 단절된 작품들을 볼 때면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 비슷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의 2부에는 예수님이 드렸던 기도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은 대화하다가 갑자기 기도하시거나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시기도 하셨다. 즉 사람과의 대화와 하나님과의 대화에 경계가 없으셨다, 바로 옆에 계신 하나님과 친밀하고 인격적인 언어를 나누고 계셨다. 특히 개인적으로 17장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님'이라는 장에 나오는 요한복음 17장 전체를 이루는 기도가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은지 한달이 넘게 지나면서 생각은 가라앉아 가고 내용의 기억들은 지워져가지만 이 17장의 내용은 인상 깊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대화를 하다가 바로 하나님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대화에 제자들과 우리를 끌어들이고 있다.

 

"예수님은 그들이 구하는 것을 주시지 않고, 대신에 그들의 질문을 사용하셔서 미지의 영역으로 그들을 데려가셨다. 그들이 아직은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르는 신뢰와 관계의 영역으로 그들을 이끌고 가셨다. 그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친밀함과 성령을 넌지시 암시하고 계셨다." 유진 피터슨의 설명은 예수님의 언어 패턴을 잘 설명하고 있다. 질문에 대답 대신에 기도로 들어가면서 신뢰(믿음)과 관계(인격)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친밀함과 인격적 관계를 우리는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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