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의 미래 - 기억의 정치 끝에서 기념문화를 이야기하다
최호근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가 단위의 사안은 인구 2천여 명의 한 마을과는 사정이 다르다. 거대한 구조에 가려있다고는 하나, 국가적 사안에서는 최종 책임자와 중간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권한이 부여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얼마만큼의 책임을 얼마나 물어야 할지가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아무런 사법적 소추나 최소한의 정치적 고백도 없이 국가 단위에서 화해를 전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해롭다. 상황의 불가피성과 조직 논리를 국가 단위에서 거론하는 것은 매우 불순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p.97, <화해와 상생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곳> 中

“4‧3은 온 제주를 피로 적셨고 그 피가 마른 자리들을 슬픔이 채웠다. 이 때 발생한 그 어느 죽음인들 참혹하지 않겠나? 어떤 이야기인들 먹먹하지 않겠나? 그럼에도 진 할머니에게 우리 마음이 유독 이입되는 이유는 그 일 후에 그녀가 웅크리고 지내온 세월이 너무도 길었기 때문이다.” p.119, <아름다운 풍광, 서러운 이야기> 中

“진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규명되는 것이다.” p.127, <시멘트 벽 총흔의 증언> 中

“약자가 강자를 이길 힘은 진실에서 나오며, 진실은 기록을 통해 채굴된다. 기록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다.” p.167, <작지만 견실한 기억의 터> 中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합창과 제창을 요구하는 각각의 입장 가운데,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훨씬 더 간절하게 요구하는 방식을 수용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왜냐하면 5‧18 기념식은 희생 당사자와 시민사회가 국가폭력에 대해 국가가 져야 할 것으로 요구해 온 책임을, 그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거행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pp.184-185, <자책의 사슬을 풀어준 포옹> 中

“맞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피를 치루는 것만이 자유를 보장하는 방법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게, 공공의 일에, 국가적 사안에 국민이 처음붙 관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도 ‘공짜’가 아니다. 싸워 이길 수 있는 준비태세 확립은 군의 목표이지 국가의 목표가 아니다.” pp.213-214, <진부하지만 울림이 있는 공간> 中

“뮌헨에는 나치당 중앙당사NSDAP-Parteizentrale가 있었다. ‘갈색집Braune Haus’으로 불렸던 이 건물이 대변하는 것처럼, 뮌헨은 나치당의 성장과 권력 장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뮌헨이 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뮌헨 시민이 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p.245, <기억을 새기는 가해자의 방법>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제2판 34곳 삭제판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식민지화란 구성원 누구나가 분열증을 앓게 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p.207)
더군다나 ‘동화assimilation’와 ‘차별’을 동시에 겪어야만 했던 한반도에서는 그 분열증이 더욱 극심하였다.

누구나 식민지의 모순을 이야기하지만, 누구나 그 식민지의 모순을 들여다본 것은 아니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에 관한 우리 사회의 공식 기억에서 그 모순을 보려 했다. 물론, 위안소에서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 사이에는 애틋함 같은 것도 있었다는 전 조선인 ‘위안부’의 증언 일부와 박 교수의 분석은 ‘감히’ 받아들이거나 수긍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떤 조선인 ‘위안부’에게는 그건 진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 수많은 말들을 뱉으려다 삼키고, 수많은 문장을 쓰려다 지우는 것은, 그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책에서 한국 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날카롭게 분석했던 것처럼, 자신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을 일이니, 박 교수를 무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와 같은 과격한 서술로 인한 지나친 주목과 비난 속에 묻혀버린, ‘강제연행’과 ‘사죄’에 관한 박 교수의 분석이다. 이 두 가지야말로 사실은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이고, 한‧일 역사 갈등의 핵심인데도.

강제연행은 있었는가.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 증언, 그리고 <귀향>-물론, 요시다의 위증과 <귀향>을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은 일본 관헌이나 군경이 와서 ‘사냥’하듯 소녀들을 ‘위안부’로 끌고 가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러나 대부분이라 할 만한 증언들은, 강제 연행의 주체로 ‘조선인 업자’들을 지목한다. 그들은 동시에 위안소를 운영하며, 조선인 ‘위안부’들을 노예로 만든 또 다른 주체이기도 했다. 증언들 속에, 그들은 일본군 이상으로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재의 지원 운동은 분명 ‘조선인 업자’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물론 사회 운동이란 의외로 총체적이고 복잡하기보단 부분적-그것이 물론 전체일 수도 있지만-이고 단순한 진실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가능한 것이고, ‘조선인 업자’를 함께 다룰 경우 일본에 대응하기가 곤란해진다는 점은 고려할 만하나, 조선인 ‘위안부’의 이 또 다른 비극은 여전히 망각되고 있다.
물론, 박 교수는 강제 연행의 주체가 ‘조선인 업자’들이었다고 하더라도, ‘살인교사’에 비유되는 일본군의 책임 또한 분명히 드러낸다.

사죄는 했는가. 항상 나를 고민스럽게 했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일본의 사죄는 없었고, 사죄를 요구하는 보도 이후 얼마 지나면, 다시 고노 담화, 수상의 편지와 같은 것들이 보도되었다. 이 때문에 사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항상 혼란스러워, 한때는 내 머리를 의심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박 교수는 일본이 가장 전향적으로 사죄에 나섰을 때조차도 한국 정부, 지원 단체는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전향적이었느냐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인식되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정치적 구조라는 한계 안에서 최대한의 사죄 방안을 고려한 각료들의 노력이, 일부 언론이나 단체의 왜곡된 보도로 한국 사회에서 공분을 일으켰던 일이라든지, ‘쓰구나이’라는 일본어가 한국에서는 atonement가 아닌 compensation으로 받아들여져-저자의 번역가다운 식견을 볼 수 있다-일을 그르치는 등, 그 때의 결정은 옳은 결정이었는가, 하는 생각 또한 든다.

그밖에 정대협이 대표하지 않으려 하는, 때로는 대립하기까지했던 또 다른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 한국군 ‘위안부’, 기지촌 문제에 관한 서술 또한 살펴볼 만하다.

책의 수많은 부분들은 ○○○와 같은 식으로 삭제되어 있다. 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으로, 박유하는 이를 식민지 시대의 풍경이라 불렀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이 ‘금서’ 쯤 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의 선물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송태욱 옮김 / 저녁의책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읽지 않은 책이 읽은 책보다도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돈의 역사 1
홍춘욱 지음 / 로크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게 경제 이론은 아직도 생소해서 과거의 여러 사실들을 똥해서나 조금씩 이해되는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본 삼국지 2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1
나관중 / 범우사 / 1999년 8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방통: 주유! 주유! 너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