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제2판 34곳 삭제판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식민지화란 구성원 누구나가 분열증을 앓게 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p.207)
더군다나 ‘동화assimilation’와 ‘차별’을 동시에 겪어야만 했던 한반도에서는 그 분열증이 더욱 극심하였다.

누구나 식민지의 모순을 이야기하지만, 누구나 그 식민지의 모순을 들여다본 것은 아니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에 관한 우리 사회의 공식 기억에서 그 모순을 보려 했다. 물론, 위안소에서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 사이에는 애틋함 같은 것도 있었다는 전 조선인 ‘위안부’의 증언 일부와 박 교수의 분석은 ‘감히’ 받아들이거나 수긍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떤 조선인 ‘위안부’에게는 그건 진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 수많은 말들을 뱉으려다 삼키고, 수많은 문장을 쓰려다 지우는 것은, 그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책에서 한국 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날카롭게 분석했던 것처럼, 자신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을 일이니, 박 교수를 무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와 같은 과격한 서술로 인한 지나친 주목과 비난 속에 묻혀버린, ‘강제연행’과 ‘사죄’에 관한 박 교수의 분석이다. 이 두 가지야말로 사실은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이고, 한‧일 역사 갈등의 핵심인데도.

강제연행은 있었는가.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 증언, 그리고 <귀향>-물론, 요시다의 위증과 <귀향>을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은 일본 관헌이나 군경이 와서 ‘사냥’하듯 소녀들을 ‘위안부’로 끌고 가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러나 대부분이라 할 만한 증언들은, 강제 연행의 주체로 ‘조선인 업자’들을 지목한다. 그들은 동시에 위안소를 운영하며, 조선인 ‘위안부’들을 노예로 만든 또 다른 주체이기도 했다. 증언들 속에, 그들은 일본군 이상으로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재의 지원 운동은 분명 ‘조선인 업자’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물론 사회 운동이란 의외로 총체적이고 복잡하기보단 부분적-그것이 물론 전체일 수도 있지만-이고 단순한 진실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가능한 것이고, ‘조선인 업자’를 함께 다룰 경우 일본에 대응하기가 곤란해진다는 점은 고려할 만하나, 조선인 ‘위안부’의 이 또 다른 비극은 여전히 망각되고 있다.
물론, 박 교수는 강제 연행의 주체가 ‘조선인 업자’들이었다고 하더라도, ‘살인교사’에 비유되는 일본군의 책임 또한 분명히 드러낸다.

사죄는 했는가. 항상 나를 고민스럽게 했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일본의 사죄는 없었고, 사죄를 요구하는 보도 이후 얼마 지나면, 다시 고노 담화, 수상의 편지와 같은 것들이 보도되었다. 이 때문에 사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항상 혼란스러워, 한때는 내 머리를 의심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박 교수는 일본이 가장 전향적으로 사죄에 나섰을 때조차도 한국 정부, 지원 단체는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전향적이었느냐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인식되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정치적 구조라는 한계 안에서 최대한의 사죄 방안을 고려한 각료들의 노력이, 일부 언론이나 단체의 왜곡된 보도로 한국 사회에서 공분을 일으켰던 일이라든지, ‘쓰구나이’라는 일본어가 한국에서는 atonement가 아닌 compensation으로 받아들여져-저자의 번역가다운 식견을 볼 수 있다-일을 그르치는 등, 그 때의 결정은 옳은 결정이었는가, 하는 생각 또한 든다.

그밖에 정대협이 대표하지 않으려 하는, 때로는 대립하기까지했던 또 다른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 한국군 ‘위안부’, 기지촌 문제에 관한 서술 또한 살펴볼 만하다.

책의 수많은 부분들은 ○○○와 같은 식으로 삭제되어 있다. 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으로, 박유하는 이를 식민지 시대의 풍경이라 불렀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이 ‘금서’ 쯤 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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