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캐트린 댄스,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

인기 있는 시리즈가 계속되다 보면, 그 시리즈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몇몇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운 시리즈로 독립해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죠. 영화 터미네이터도, 영국 드라마 닥터 후도 그런 스핀오프 시리즈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가히 전세계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한 캐릭터가 자기만의 시리즈를 만들어 ‘독립’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동작학 전문가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 도로변 십자가입니다.

 

1권 잠자는 인형에서 잔인한 살인마였던 다니엘 펠 사건을 마무리하고 윈스턴 켈로그 역시 기소했던 캐트린 댄스는, 2권 도로변 십자가에서 새로운 유형의 살인마와 맞서게 됩니다. 인터넷에서 자신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던 사람들을 피해자로 삼고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표적에 접근하는 소년이지요. 게다가 이 소년은 현실과 다름없는 리얼한 게임에 사로잡혀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심각한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을지도 모르며, 불특정다수를 공격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캐트린 댄스는 이 소년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소년의 행방은 좀처럼 찾을 수 없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캐트린의 어머니인 이디 댄스가 후안 밀라의 안락사 혐의로 체포됩니다. 동료인 오닐은 다른 사건으로 바빠서 통 볼 수 없고, 사건은 점입가경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댄스는 한계에 몰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요. 과연 사건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그녀만의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반가웠던 것은 캐트린 댄스 시리즈가 링컨 라임 시리즈와는 다른 캐트린 댄스 시리즈만의 분위기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전작인 잠자는 인형은 아직까지 제프리 디버의 새로운 시리즈라는 느낌보단 디버의 스탠드얼론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었는데, 도로변 십자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노선이 잡혀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디버의 메가히트작이자 대표작인 링컨 라임 시리즈가 쉴 새 없는 반전과 촘촘한 플롯으로 독자들의 눈을 잡아챈다면, 캐트린 댄스 시리즈는 일종의 스핀오프 시리즈이면서도 아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차분하며, 텐션은 느리지만 차분히 정통 스릴러의 길을 밟는 느낌이에요.

 

아마 그것은 역자님이 말씀하시듯 디버가 이번 책에서 이미 독자들에게 검증받은 촘촘한 플롯과 반전 대신 현실적인 수사과정에 집중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캘리포니아 연방수사국 소속 수사관인 캐트린 댄스는 상대적으로 법집행기관 내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좋은 인물이지요. 매 작품을 쓸 때마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참고자료를 빠뜨리지 않는 디버에게 캐트린 댄스는 디버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캐릭터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링컨 라임 시리즈의 빠른 텐션과 예측할 수 없는 반전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만일 좀 더 사실적인 느낌의 스릴러를 좋아하신다면 캐트린 댄스 시리즈도 아주 좋은 선택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익명성, 그리고 군중심리

인터넷을 통한 마녀사냥과 개인정보 유출은 이미 우리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이므로 아마 익숙하게 느끼실 독자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도로변 십자가에서는 진실을 밝힌다는 미명 아래 교묘하게 여론을 선동하는 블로그가 등장해 현대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비인간성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군중심리와 익명성이 결합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블로그 칠턴 리포트는 결국 끔찍한 결과를 낳지요.

 

기술의 발전은 현대 사회를 문명화시켰고, 인간을 편리 아래에 두었지만 한편으로 비인간성을 극대화시키는 역할도 했습니다. 제프리 디버가 이번 책에서 지적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정보의 바다라는 별칭답게 인터넷 상에서 우리는 좀 더 빠르고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어떤 정보를 믿고, 어떤 정보를 믿지 않아야 하는지 알기 어렵게 되지 않았나요? 단순히 신뢰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보가 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할 때,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그것을 부추긴 사람들에겐 책임이 없는 것일까요? 쉽게 내뱉은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때, 그들에게는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제프리 디버가 이번 책에서 던져 놓는 화두는 다양하고도 어렵습니다. 우리 주변에 만연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한 적 없었던 문제들을 디버는 허구라는 틀을 빌려 어렵잖게 제기하지요. 저처럼,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고민에 빠지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디버의 이번 책 도로변 십자가는 단순히 스릴러로써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를 담아낸 소설로도 꼭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해요.

 

 

마치며

걸출한 작품 혹은 시리즈를 낳은 작가들의 딜레마일 테지만, 디버의 작품 역시 링컨 라임 시리즈가 아닌 다른 시리즈를 읽을 때는 링컨 라임 시리즈에 비해 인상이 다소 약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캐트린 댄스 시리즈를 읽으며 드디어 링컨 라임 시리즈가 아닌 캐트린 댄스 시리즈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갖추기 시작한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었네요. 디버의 팬이건 그렇지 않건, 무조건 일독을 권합니다. 훌륭한 스릴러를 만나실 수 있으리라 보장합니다. 추천해요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밀실살인게임 3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타노 쇼고가 돌아왔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밀실살인게임 시리즈를 들고요.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는 쇼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아끼는 작품은 아니지만, 확실히 쇼고의 신본격 작가로서의 재능이 가장 빛나는 책들임엔 틀림없습니다. 넵, 오늘 리뷰할 책은 밀실살인게임 시리즈의 세번째 책인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입니다.

 

 

 일단 가장 처음 받은 인상은 얇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소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시리즈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두께는 담보하기 마련인데 생각보다 책이 작고 얇아서 읽기 전부터 의아했습니다. 왜 이리 얇은가 했더니…. 생각 외의 반전이 등장하더라고요. 조금 놀랐습니다. 그 반전이 맘에 들건 들지 않건, 이 시리즈를 꾸준히 봐 온 사람이라면 아마 예상치 못한 반전이지 싶어요. 쇼고가 두 권에 걸쳐 독자들의 뇌리에 심어놓은 고정관념을 깨는 반전입니다. 쇼고는 이 시리즈를 계속 이어갈 생각도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시리즈 자체의 형식을 깨버리는 단편도 한번쯤은 나와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다만 그 시점이 지금인가에 대해서는 저도 다른 분들처럼 의문이 드네요. 보통 3부작으로 끝을 맺기 마련인데, 이게 완결작이라고 하면 너무 힘이 약하고, 작가 스스로도 외전격이라고 했으니 제대로 된 3부작의 완결을 들고온다면 좋겠지만…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말이 나온 김에 잠시 이 시리즈에 대해서 딴소릴 해 보자면, 밀실살인게임 2.0을 보면서부터 느낀 거지만 이 책들은 새로운 형태의 ‘시리즈’이긴 한데 롱런할 수 있는 시리즈로서의 생명력을 갖고 있느냐에 대해선 회의감이 들어요. 시리즈가 생명력을 갖고 숨쉴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시리즈에선 명확한 캐릭터가 다섯이나 존재하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기도 하니 말입니다(전 그래서 이 시리즈가 1권인 왕수비차잡기에서 끝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도 살아있고, 당시에 볼 수 없었던 새롭고 충격적인 이야기였으며, 예상치 못한 반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으니까요). 시리즈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 밀실살인게임 시리즈가 롱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캐릭터가 보여주는 스토리 없이는 그저 트릭이 가득 찬 단편집과 다를 바 없을 뿐이고, 독특하고 기발한 트릭이 가득 찬 단편집이라면 사실 이 책 외에도 많으니 말입니다. 만일 3권이 나온다면, 그 정도가 이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한계가 아닐까 해요.

 

 

 여튼 약간은 실망스러운 한 권이었습니다. 만일 이 책이 아닌 새로운 책이 이 시리즈의 완결을 짓는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써는 좋은 피날레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1, 2권의 텐션으로 돌아가서 훌륭한 트릭과 기발한 스토리를 갖춘 좋은 완결권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닝 와이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9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스터리/스릴러 장르 마니아들에게는 여타의 평가를 막론하고 신간이 나오면 필히 구입하는 작가나 시리즈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저에게는 링컨 라임 시리즈가 그와 같은 책 중 하나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홉 권째 링컨, 그리고 아멜리아와 함께 하고 있으니 이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이제는 질릴 법도 한데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니, 이것 참 묘한 일이지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링컨 라임의 팬들이 같은 생각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넵, 오늘 리뷰할 책은 오랜만에 찾아온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신작, 버닝 와이어입니다.

 

 

 뉴욕 시 전체에 대량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앨곤퀸 전력 회사의 전력실에 연이어 ‘치명적 오류’ 메시지가 뜨기 시작합니다. 다섯 개의 변전소로 나누어 들어가던 전기가 57번가의 MH-10 변전소로 몰리기 시작하고, 단 하나의 작은 수도꼭지로 어마어마한 저수지의 물이 흘러나오려는 상황이 되죠. 앨곤퀸에서 사건을 해결할 새도 없이, 압력을 견디지 못한 변전소는 폭발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맙니다. ‘시계공’ 리처드 로건을 쫓던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즉시 사건에 투입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유래없는 대량의 사상자를 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이 미지의 살인자와 맞서게 됩니다.

 

 

 이번 이야기에서 제프리 디버는 범인에게 무기로 전기를 쥐어주었습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각 권마다 범인들의 독특한 개성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이번 편은 범인이 무자비한 학살의 도구로 전기를 사용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이 학살 도구는 칼이나 총과는 달리 원거리에서 무차별 대량 학살이 가능하며, 문명화된 현대 사회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고, 폭탄과 달리 탐지하기도 쉽지 않지요. 게다가 무형의 도구이기 때문에 칼이나 총처럼 현장에 흉기로 특정지을 수 있는 증거나 미량 증거물 역시 남기지 않습니다. 십수년을 함께 온갖 살인 사건에 맞서 온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 역시 전기라는 새로운 개념의 살인 도구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어떠세요, 제프리 디버가 참으로 독특하면서도 탁월한 도구를 골랐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사실, 제프리 디버는 이미 링컨 라임 시리즈 여섯번째 권인 12번째 카드에서 전기를 무기로 이용한 적이 있습니다. 범인이 전기로 아지트에 경찰을 잡기 위한 덫을 놓아둔 장면이었지요. 아마 제프리 디버는 그 때부터 전기를 이용한 살인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이유처럼 전기는 범인에게는 참으로 유리한 살해 도구이며, 링컨 라임의 팀에게는 새롭게 맞이하는 또 다른 고난이 될 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제프리 디버에게 이번 책이 그의 회심의 한 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브로큰 윈도를 보며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 가장 높은 텐션을 이끌어낼 만한 범인은 정신적 기만과 물리적 위협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브로큰 윈도의 범인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라임의 팀을 제압하긴 했지만 사실 라임과 손에 땀을 쥐는 두뇌 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아멜리아조차 제압할 신체적 기술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죠. 그게 브로큰 윈도 전체를 통틀어 서사에 텐션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하지만 모든 범인이 천편일률적으로 총과 칼, 혹은 폭탄만을 이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독자에게 적절한 소재로 기술의 발전 - 15년간 이어져오는 이 시리즈에서, 무려 JPG가 뭔지 설명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D - 을 보여줘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 이번 작품에서, 디버가 상기의 목적들을 꽤 훌륭히 만족시켰다고 생각해요. 버닝 와이어의 범인은 정신적 기만과 물리적 위협을 모두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기라는 아주 독특한 살인 도구를 이용하죠. 물리적 위협을 줄 수 있는 독특한 도구, 그리고 그 중에서도 기술의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면 전기만큼 좋은 소재가 있을까요.

 

 

 또한 링컨 라임 시리즈의 팬으로서, 한가지 더 제가 이번 시리즈에서 반가웠던 것은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름의 변화를 만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위기를, 어떤 사람은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며, 어떤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여태껏 독자들이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요. 오랜 세월간 계속되는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캐릭터이고, 캐릭터가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정체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버닝 와이어에서 보여준 스테디 멤버들의 새로운 모습은 독자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 책을 읽으며 몇몇 부분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드디어!”라고 외치실 분들이 계실겁니다 :)

 

 

 시리즈의 전작인 브로큰 윈도가 다소 아쉬웠던 사람으로서, 이번 책은 오랜만에 링컨 라임 시리즈의 초기작을 읽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은 어떻게 해결될지, 라임을 비롯한 멤버들이 본인 앞에 닥친 새로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손에 땀을 쥐고서요.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최근작이 다소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는 평가에 마음 아프셨던 링컨 라임의 팬이시라면, 망설이지 말고 집어드시기 바랍니다. 만족스러운 한 권이 되시리라 보장합니다. 추천해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이번 책 안주는 전작인 흑백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따뜻하고 귀여운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작가 본인의 말처럼, 흑백이 슬프고 무서운 이야기라면 안주는 귀여운 느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네요. ‘괴담’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흑백이 다소 읽기 힘드셨던 독자분들께는 안주가 더 좋은 선택이 될 듯 합니다.

 

 

2. 전작인 흑백과 비교해 안주의 테마는 어떨지 궁금해 하실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흑백이 치유와 관련된 이야기였다면, 안주는 변화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인생을 살며 수없이 많은 상처를 입게 되고, 가끔 다시는 자신의 인생이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고 생각되는 위기를 맞게 되기도 하지요. 흑백은 그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오치카도 그러했고, 오치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도 그랬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서로를 치유해주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자리에서 상처를 딛고 일어나기도 하는 이야기가 바로 흑백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해서 단숨에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아직도 오치카는 ‘요시스케’라는 이름에 숨이 턱 막히고, 세이타로는 누님이 매화가 핀 절경을 보며 저택의 풍경을 떠올리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안주는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닌가 해요. 상처를 인정하고, 자신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말입니다.

 

 

3. 다만, 개인적으로는 흑백에 비해 몰입도가 떨어지는 느낌은 받았습니다. 아마도 오치카의 이야기가 책 전체의 흐름을 이루고 있던 흑백과는 달리, 안주는 상대적으로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는 이야기가 없어 단편집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다정한 아가씨 오치카가 등장해 많은 사람들의 기이한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흑백에서는 오치카의 숨겨진 사연이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책 전체의 흐름에 눈을 꽉 붙들어두었다면 안주에서는 그 정도로 독자들에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는 적지 않았나 해요. 꼽자면 책 제목과 같은 ‘안주’가 책 전체의 주제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며, 가장 흥미로웠던 토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야베 미유키의 이 괴담 시리즈가 그녀의 에도물 가운데서 가장 읽어볼만한 책들이라는 생각은 변치 않았습니다. 흑백이야 워낙 뛰어난 작품이었고, 안주 역시 미야베 미유키만의 다정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어요.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에겐 신간이 발매되면 내용이나 장르, 평가에 관계없이 꼭 그것을 읽어보는 몇몇 작가가 있습니다. 일본 미스터리의 여왕인 미야베 미유키가 그러하고, 신본격의 귀재라 불리는 우타노 쇼고도 그러하며, 혹은 반전의 대가 제프리 디버라거나 뒤늦게 한국에 완역판이 번역되고 있는 엘러리 퀸 역시 저에게 그런 작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책도 바로 그런 작가의 작품이지요. 신작이 나오면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게 만드는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인 왕복 서간입니다.

 

왕복 서간이라는 제목답게, 책은 사건과 관계된 주인공들이 주고받은 편지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책은 서로 다른 세 가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편지를 주고받는 주인공들은 모두 과거의 사건에 관련된 진실을 찾고 있지요. 사고를 당하고 자취를 감춘 친구의 행방을 찾는 동창들의 이야기를 담은 십 년 뒤의 졸업문집, 은사의 부탁을 받아 스무해 전 사고와 관련된 학생들을 찾아다니는 제자의 이야기인 이십 년 뒤의 숙제, 뜻하지 않은 화재사고로 함께하게 된 연인들의 이야기인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모두 과거의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고풍스러운 편지 형식입니다.

 

 

왜 ‘오가는 편지’ 형식일까?

등장인물들의 대화 사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화나 문자, 혹은 이메일 등의 간편하고 빠른 통신 수단이 존재하는 현재에 굳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상당히 고전적이면서도 이색적인 연락 방법입니다. 미나토 가나에가 서술 방식으로 굳이 이런 서간문 형식을 선택한 것은 왜일까요?

 

가장 먼저, 미나토 가나에가 즐겨 쓰는 옴니버스식 서술 방식에 서간문이 적합하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고백, 속죄, 야행관람차 등 미나토 가나에의 기존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뛰어난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서간문은 한 가지 사건에 대해 각자의 시점을 재구성해 보여줄 수 있고 기본적으로 의사 소통 방식에 해당하기 때문에 관계된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에도 좋지요.

또한 빠르고 즉시 전달되며 수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인스턴트 메시지의 성격을 띄는 전화, 문자, 이메일 등과 달리 작성하고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지는 좀 더 정성스럽게 시간을 들여 작성하게 되고, 따라서 수신인도 독자도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읽는 재미를 찾게 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요, 목소리를 직접 들려줘야 하는 전화와 상대방의 전화기를 갖고 있어야 하는 문자 혹은 계정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는 이메일과 달리 편지는 집 주소만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상대를 위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트릭이나 반전을 숨길 수 있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편지는 주고받는 서로 간에 고전적인 향취를 불러일으켜 소설 전체에 클래식한 분위기를 가미해주므로 ‘왕복 서간’의 주제에 걸맞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편지는 다대일, 혹은 다대다가 아닌 일대일의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수신인을 정해놓고 훨씬 더 내밀한 속사정을 터놓기가 쉽다는 점에서 역시 작가로서는 매력적인 서술 형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미나토 가나에스러우면서도, 또한 그녀답지 않은

옴니버스 방식으로 글을 서술하는 작가는 많지만 미나토 가나에만큼 옴니버스 서술 형식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작가는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데뷔작인 고백은 한 가지 사건에 얽힌 사람들 각각의 관점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해서 보여준 작품이였고, 속죄 역시 십수년 전 일어난 끔찍한 사고와 관련된 아이들 각각의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떤 사건에 대한 입장은 관련된 사람들 수만큼 존재하고, 그에 대한 관점 역시 보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는 말을 이전에 쓴 적이 있지만,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미나토 가나에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책에서도 미나토 가나에는 ‘편지’라는 소재를 이용해 한 가지 사건에 대한 각자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구성해 보여주고 있는데, 데뷔작 고백에서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던 그 솜씨만은 여전합니다.

 

다만,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 중 고백이나 속죄만을 본 독자라면 아마 왕복 서간에서 보이는 미나토 가나에의 변화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실 수 있을 겁니다. 고백과 속죄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인간 본성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이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오히려 희망적인 관점으로 결말을 열어놓은 것이 돋보이는데, 특히 두 번째 단편 이십 년 뒤의 숙제와 세 번째 단편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에서 그러한 관점이 두드러집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단지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보여준 것은 아니긴 합니다. 전작인 야행관람차에서도 이와 같은 변화를 찾아볼 수 있는데, 다만 그것이 야행관람차에서 아직 덜 다듬어진 것처럼 다소 겉도는 느낌을 주었다면 왕복 서간에서는 그러한 관점이 조금 더 잘 무르익은 느낌을 주어 독자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특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한편,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은 어쩌면 가장 미나토 가나에스러운 점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요, 소설 내에 치밀하고 촘촘하게 복선을 깔아놓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야기를 전복시켜버리는 미나토 가나에의 솜씨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각 단편을 보면서 결말에 대해 대략 예상하고 있던 독자들까지 다시금 탄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결말에서 보여주는 반전도 반전이려니와 짧은 이야기 속에서 복선과 반전을 안배하고 준비해 놓는 실력이 전작들보다 한층 더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 가지 단편에서 반전이 있으리라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숨겨진 또 다른 반전에 완전히 뒷통수를 맞았는데요, 아마 다른 많은 독자들도 이런 재미를 발견하실 수 있을겁니다 :)

 

 

자기복제는 쉽지만 크게 성공한 기존의 스타일을 버리고 다른 것을 시도하는 것은 창작자에게 가장 큰 위험이자 모험일 것입니다. 게다가 추리/미스터리 장르의 도서들은 특성상 인간이 저지른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므로 추리 소설을 쓰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이야기 속에 담아낸다는 것이 어렵기 마련인데, 심지어 다른 사람도 아닌 미나토 가나에가 이런 이야기를 쓰다니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먼 훗날에도 그녀의 이름이 사랑받는 미스터리 작가로 인구에 회자되리라는 확신이 드는 한 권이었습니다. 추천해요:D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