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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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트린 댄스,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

인기 있는 시리즈가 계속되다 보면, 그 시리즈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몇몇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운 시리즈로 독립해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죠. 영화 터미네이터도, 영국 드라마 닥터 후도 그런 스핀오프 시리즈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가히 전세계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한 캐릭터가 자기만의 시리즈를 만들어 ‘독립’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동작학 전문가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 도로변 십자가입니다.

 

1권 잠자는 인형에서 잔인한 살인마였던 다니엘 펠 사건을 마무리하고 윈스턴 켈로그 역시 기소했던 캐트린 댄스는, 2권 도로변 십자가에서 새로운 유형의 살인마와 맞서게 됩니다. 인터넷에서 자신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던 사람들을 피해자로 삼고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표적에 접근하는 소년이지요. 게다가 이 소년은 현실과 다름없는 리얼한 게임에 사로잡혀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심각한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을지도 모르며, 불특정다수를 공격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캐트린 댄스는 이 소년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소년의 행방은 좀처럼 찾을 수 없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캐트린의 어머니인 이디 댄스가 후안 밀라의 안락사 혐의로 체포됩니다. 동료인 오닐은 다른 사건으로 바빠서 통 볼 수 없고, 사건은 점입가경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댄스는 한계에 몰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요. 과연 사건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그녀만의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반가웠던 것은 캐트린 댄스 시리즈가 링컨 라임 시리즈와는 다른 캐트린 댄스 시리즈만의 분위기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전작인 잠자는 인형은 아직까지 제프리 디버의 새로운 시리즈라는 느낌보단 디버의 스탠드얼론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었는데, 도로변 십자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노선이 잡혀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디버의 메가히트작이자 대표작인 링컨 라임 시리즈가 쉴 새 없는 반전과 촘촘한 플롯으로 독자들의 눈을 잡아챈다면, 캐트린 댄스 시리즈는 일종의 스핀오프 시리즈이면서도 아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차분하며, 텐션은 느리지만 차분히 정통 스릴러의 길을 밟는 느낌이에요.

 

아마 그것은 역자님이 말씀하시듯 디버가 이번 책에서 이미 독자들에게 검증받은 촘촘한 플롯과 반전 대신 현실적인 수사과정에 집중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캘리포니아 연방수사국 소속 수사관인 캐트린 댄스는 상대적으로 법집행기관 내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좋은 인물이지요. 매 작품을 쓸 때마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참고자료를 빠뜨리지 않는 디버에게 캐트린 댄스는 디버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캐릭터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링컨 라임 시리즈의 빠른 텐션과 예측할 수 없는 반전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만일 좀 더 사실적인 느낌의 스릴러를 좋아하신다면 캐트린 댄스 시리즈도 아주 좋은 선택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익명성, 그리고 군중심리

인터넷을 통한 마녀사냥과 개인정보 유출은 이미 우리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이므로 아마 익숙하게 느끼실 독자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도로변 십자가에서는 진실을 밝힌다는 미명 아래 교묘하게 여론을 선동하는 블로그가 등장해 현대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비인간성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군중심리와 익명성이 결합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블로그 칠턴 리포트는 결국 끔찍한 결과를 낳지요.

 

기술의 발전은 현대 사회를 문명화시켰고, 인간을 편리 아래에 두었지만 한편으로 비인간성을 극대화시키는 역할도 했습니다. 제프리 디버가 이번 책에서 지적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정보의 바다라는 별칭답게 인터넷 상에서 우리는 좀 더 빠르고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어떤 정보를 믿고, 어떤 정보를 믿지 않아야 하는지 알기 어렵게 되지 않았나요? 단순히 신뢰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보가 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할 때,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그것을 부추긴 사람들에겐 책임이 없는 것일까요? 쉽게 내뱉은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때, 그들에게는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제프리 디버가 이번 책에서 던져 놓는 화두는 다양하고도 어렵습니다. 우리 주변에 만연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한 적 없었던 문제들을 디버는 허구라는 틀을 빌려 어렵잖게 제기하지요. 저처럼,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고민에 빠지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디버의 이번 책 도로변 십자가는 단순히 스릴러로써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를 담아낸 소설로도 꼭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해요.

 

 

마치며

걸출한 작품 혹은 시리즈를 낳은 작가들의 딜레마일 테지만, 디버의 작품 역시 링컨 라임 시리즈가 아닌 다른 시리즈를 읽을 때는 링컨 라임 시리즈에 비해 인상이 다소 약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캐트린 댄스 시리즈를 읽으며 드디어 링컨 라임 시리즈가 아닌 캐트린 댄스 시리즈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갖추기 시작한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었네요. 디버의 팬이건 그렇지 않건, 무조건 일독을 권합니다. 훌륭한 스릴러를 만나실 수 있으리라 보장합니다. 추천해요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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