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 저택의 피에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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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시 한 번 읽고 나면 계속 보고 싶어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한 권 다 읽은 후 곧이어 그의 책을 하나 더 집었다.

빠른 전개 속도와 군더더기 없는 설명, 깔끔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결말까지 그의 작품 답게 읽는 동안 즐겁게 몰입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초반에 시작되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의 배경은 실제 십자 모양으로 지어서 십자 저택이라 불리는 건물이다. 

다케미야 산업의 창업주가 지은 후 기업을 물려받는 인물들이 대를 이어 거주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회사의 경영을 맡은 창업주의 큰 딸(주인공의 이모)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후 49재를 치르기 위해 친척들과 관련인들이 모이게 된다. 

그 날 밤 2명이 죽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이내 그 건물에서 묵었던 사람들 중에 범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목에 등장하는 피에로는 한 인형사가 만든 인형으로 불행을 몰고 온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작품 속에서는 자살한 창업주의 큰 딸이 구매해 자살 현장 당시 복도에 있었던 것으로 처음 소개된다.

특이하게도 인형이지만 마치 CCTV처럼 이 인형의 시각으로 사건이 관찰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이 전체 사건의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상세히 기술하지는 않겠지만 추리물을 읽으면서 '내가 꼭 이 미스터리를 풀어보겠어!'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인형의 시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등장인물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하나씩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한번에 모두 소개된 후 끝까지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지 않는다. 

따라서 처음에는 누가 누군지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이를 배려한 것인지 책 서두에 등장인물 소개 페이지가 들어 있다.

나처럼 일본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주 들춰가며 읽기에 좋았다.

이 페이지와 더불어 초반에 건물의 평면도가 등장하는데 작품 속 미스터리를 풀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그림도 자주 들춰보게 될 것이다. 


책 후미에 다른 일본 작가가 쓴 해설이 있는데, 그 해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라는 평가를 한다.

책을 덮은 후 그 말에 공감이 갔는데, 실제로 읽다보면 두께가 그리 얇지 않음에도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는 부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등장인물들이 딱 필요한 만큼만 소개되고, 딱 필요한 말과 행동만 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인상깊은 구절도 없다는 건 다소 아쉽다.)

그의 작품들 중에는 '추리소설을 표방하면서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은 채 반전만 꾀한다'는 비평도 더러 받은 것으로 아는데

이 작품만큼은 그런 비평에서도 자유로울 것 같다. 

나중에 미스터리가 모두 풀린 후 다시 생각해보면 충분한 정보를 사전에 모두 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 역시 엄청난 반전이라는 느낌 보다는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 있었다. 


여하간 재미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었다. 

또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독서생활이 정체된다고 느낄 때 단비가 되는 작가임에도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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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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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을 하얗게 불태우던 게임이 리마스터된 뒤로 손에 책이 잡히질 않았다.
유일하게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취미인 독서를 이렇게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럴 땐 역시 재미난 소설을 읽어야 한다. 
이번엔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 하나를 선택했다.

이번에도 역시 초반에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시작점이다.
한 여인이 이혼한 전남편의 스토킹에 못이겨 충동적으로 그를 살해하고 만다. 그 과정을 아직 학생인 여인의 딸도 돕게 된다.
평소 그 여인을 흠모하고 있던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인 옆집 남자가 그 일을 발견하고는 두 사람을 도와 살인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이를 수사하는 한 형사와 그의 친구인 물리학자 교수가 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제목 그대로 용의자 X가 어떻게 헌신하는가가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직 작품을 접하지 않았다면 스포를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이 작품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답게 엄청난 몰입도를 자랑한다.
다소 집중이 어려운 환경에서 책을 집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읽었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전개는 물론이고
예상하기 어려운 반전과 결말까지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읽는 동안 특별히 인상적인 구절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쫓는 추리물이지만 그 속에 색다른(?) 형태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좋았다.
사람마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랑은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였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범죄인 '살인'마저도 감싸주고 싶은 사랑.
게다가 상대방에게 그 어떤 보답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의 행복만을 바랬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에서의 사랑이 그저 뒤틀린 한 사내의 사랑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줄거리만 요약한다고 하면 '누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싶을 이야기지만 저자가 워낙 밑밥을 잘 던져놓기 때문에 
책을 덮고 나면 수긍이 가는 스토리였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빌드업이 엄청나다.)

이미 상당히 유명한 작품이라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다고 하니 한번 찾아 봐야겠다.
워낙 다작을 한 작가여서 다음에 읽을 작품을 고르는 재미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역시 독서에 손이 가지 않을 땐 재미난 소설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처방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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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커다란지 알려 줄까? -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들 자연 속 탐구 쏙 1
레이나 올리비에.카렐 클레스 지음, 스테피 파드모스 그림, 김미선 옮김 / 상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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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내가 밖에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아서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여행을 많이 경험하게 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원이나 아기 동물 먹이 체험장 등 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는 꽤 자주 가졌던 것 같다.

처음에는 양이나 염소 등 비교적 큰 초식동물들도 무서워하더니 요즘은 당근을 들고 꽤 가까이 다가가 먹이도 곧잘 주곤 한다.


평소에 자주 볼 수 있는 개나 고양이가 아닌 동물들은 아무래도 보다 낯설고 신기할테니 흥미가 더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딸도 몇 년 전 아주 꼬꼬마일 때 봤던 돌고래 쇼 이야기를 지금도 하는 걸 보면 평소에 구경하기 힘든 동물이 주는 신비로움이 

아이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책은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거대 동물들만 소개하고 있다고 해서 접하게 되었다.

표지에서도 보이듯이 기린, 코끼리, 하마, 타조 등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거대 동물들은 물론,  

남극하트지느러미오징어, 흰긴수염고래 같이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나 볼법한 동물도 소개되어 있다. 


아동용 서적이니 전체 페이지 수나 글자 수가 아주 많지는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량은 적지 않다.

동물들의 크기도 사람 크기 대비로 잘 알 수 있게 보여주고 있고, 거대 동물들의 생활습관, 먹이, 서식지, 천적 등

읽으면 그 동물에 관한 어지간한 정보는 다 알 수 있게 되어 있어 좋았다. 

 

(좋은 아빠 코스프레에는 책만한 것이 없다.)


동물 책을 하도 좋아해서 일반적인 도감 책은 이제 좀 식상해 하는 편인데 이 책은 책 자체도 이름답게 거대하고

그림도 큼직큼직해서 아이의 이목을 확 잡아끄는 것 같다. 

단순히 동물들이 많이 나열된 책도 좋지만 이렇게 소수의 동물들을 상세히 알 수 있도록 비슷한 컨셉으로 다른 시리즈들이

추가적으로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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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친구 웅진 세계그림책 216
샬롯 졸로토 지음, 벵자맹 쇼 그림, 장미란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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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배기 우리 딸에게는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단짝 친구가 있다. 

지금은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매일 같이 등원, 하원에 끝나고 놀이터까지 함께하고 있다. 

매일 보는 친구인데도 어린이집 등원 버스를 기다릴 때 만나면 서로 부둥켜 안으며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연출하곤 한다. 


하지만 그 친구가 곧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어른들끼리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아직 이야기해주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단짝 친구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주면 좋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좋은 책을 만났다.


제목만 읽으면 마치 방금 친구를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즐겁게 논 후 헤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어른인 나도 애잔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동용 책이어서 줄거리는 심플하다. 

주인공 꼬마(노란 머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단짝 친구인 갈색 머리 친구가 있었다.

둘은 많은 것들을 함께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갈색 머리 친구가 다른 친구와 함께 자신과 했던 놀이들을 하며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게 된다.

주인공 꼬마는 슬펐지만 다른 친구가 생길꺼라 믿으며 자신의 상처를 다독인다.


이제 나에게도 새로운 친구가 생기겠지요?

새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가 생각날 거에요.

더없이 소중했던 갈색 머리 친구가. (pg 31-34)


책의 후반부 4페이지에 걸쳐 글자 수는 위의 문단이 전부인데도 감성적인 그림과 곁들여지니 애잔한 감동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어 준 후 딸아이에게 곧 있으면 단짝친구가 이사를 가서 어린이집을 못다니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막상 지금은 실감이 안나서 그런지 아이가 썩 슬퍼하는 기색은 없었다;;

쿨하게 '다른 친구랑 놀면 되요'라고 하는데 실제로 이사를 가더라도 큰 슬픔 없이 잘 이겨낼 수 있길 바란다.

아이의 남은 삶 자체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일테니 말이다. 


끝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쓴 글이지만 내용이 좋았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아이들에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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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 현대지성 클래식 39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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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따라서 시간이 우리의 진정한 지배자다.

모든 것이 변하는 걸 보려면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두기만 하면 된다. (pg 105)



요즘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현상이지만 똑똑한 사람들도 무리를 이루면 이상한 결정들을 내릴 때가 많다.

최근에도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의사협회와 정부 사이에 있었던 의사 정원 확대 논란 당시 의대생들이 시험을 거부하는 등

일반적인 국민의 눈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목격한 바 있다. 

여하간 개인이 모여 형성된 것이 집단일텐데 왜 개인은 하지 않을 결정을 집단이 하게 되는지 늘 궁금했었는데 

이 책이 군중에 관한 연구의 초석이 되는 책이라 하여 접하게 되었다. 


책 내용을 정리하려면 역시 '군중'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저자는 개인의 집합이면서도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갖는 집합들을 분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군중'이란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정 상황에서 형성되는 개인의 무리는 그 무리를 구성하는 개개인과 무척 다른 특성을 드러낸다.

의식을 지닌 개성을 사라지고 개인의 감정과 생각이 집단화되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다.

그리고 일시적이지만 매우 두렷한 특징을 보이는 집단정신이 형성된다. (pg 32)


이런 군중들이 어떤 특징들을 갖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이런 군중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읽으면서 가장 특이했던(?) 점은 저자가 군중이 매우 열등한 사고를 하는 집단으로 못박아두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군중을 형성하는 순간 감성의 지배를 받으며 논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고 단언한다.

때문에 그 어떤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군중이 되는 순간 야만인과 다를 바 없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이 120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야겠다.

책 중간중간 나오는 민족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적 색채가 독서하는 내내 신경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군중의 고유한 특성 중에는 충동성과 과민성, 이론적 추런 능력의 부족, 판단력과 비판 정신의 부재, 과장된 감정 등이 있고,

그 밖에도 여성이나 야만인, 어린아이처럼 진화가 덜 된 열등한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여러 특성이 있다. (pg 44)


위 문장을 읽고 나면 대체로 '응?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도 그랬다.

썩 기분 좋은 문장들은 아니지만 지난 120년 동안 일반 대중의 인식이 이 정도로 발전했다는 증거로 삼으면 될 것이다.


그 밖에도 특정 민족에 대한 편견들도 많이 등장하는 편이고, 저자가 자신은 '순전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다고 썼지만 

지금의 독자들이 보기에는 그저 과거 사실에서 귀납적으로 추리된 결론이 전부여서 아주 과학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20년이 지난 지금 사회에 적용해도 뭔가 맞는 것 같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다. 

때문에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는 모양이다. 


인상깊은 구절들과 함께 책의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군중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군중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연상되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군중의 상상력에 충격을 주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고 제시되는 방법이다.

'응축'이란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지만, 사건들이 응축되며 군중의 정신을 채우고 떠나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군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을 줄 안다면 군중을 지배하는 법을 터득한 것과 진배없다. (pg 85)


또한 군중의 의견과 신념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민족과 전통, 시간, 정치제도, 사회제도, 교육 등의 요인이 있다고 말한다. 

이 중 가장 큰 요인이 바로 민족과 전통이다.

죽은 자들의 세월이 겹겹이 쌓여 지금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민족과 전통은 쉽게 바뀌거나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군중이 어떤 특성을 갖는지는 민족과 전통의 틀 안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프랑스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촛불 집회를 본다면 '쟤넨 저렇게 해서 의사결정이 바뀔 거라 생각하나' 싶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의 집회를 본다면 그저 성난 폭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이런 면에서 분명 민족과 전통이 사람들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밖에 요인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지만 아래의 구절들로 정리하고자 한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읽어보면 지금도 통용될 수 있는 구절들이다. 

특히나 교육방식에 대한 그의 비판은 지금 한국사회에 적용해도 크게 틀리지 않은 지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해, 라틴식이라고 불러도 되는 이런 교육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심리학 지식, 즉 교과서를 암기하면 지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 기반을 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중략-

이런 교육이 그저 쓸모없기만 하다면, -중략- 불쌍한 아이들을 동정하는 데서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 무척 위험하기도 하다. 

그런 교육을 받은 학생은 자신이 태어난 환경을 극도로 혐오하며 거기서 벗어나려는 강렬한 욕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계속해서 노동자로 남기를 원하지 않고, 농부도 더는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는다.

중위계층에서도 최하층에 속한 사람들은 자기 아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오직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pg 112-113)


아래의 구절에서는 단어가 군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는 지금도 정치인들이 툭하면 활용하는 전략 중 하나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당명을 바꾸는 것도 큰 범주로 보면 아래의 내용에 해당될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 중 하나는 군중이 싫어하는 옛 명칭을 대중적이거나 적어도 중립적인 단어로 

바꾸는 것이다. 

단어의 힘은 실로 대단해서 지극히 혐오스러운 대상도 신중히 선택한 새 명칭을 붙이면 군중이 받아들일 만한 게 된다. (pg 128)


책의 중반부 이후 부터는 군중의 지도자와 그들이 활용하는 수단에 대한 분석이 나온다.

군중은 필연적으로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데, 저자는 군중의 지도자에 대해 아래와 같은 시각을 갖고 있다. 


군중의 지도자는 대부분 사상가가 아니라 행동가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고, 앞으로 갖출 가능성도 무척 낮다.

혜안은 대부분 의심과 신중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중략-

그들이 옹호하는 사상이나 추구하는 목적이 아무리 불합리하더라도 그들의 확신 앞에서는 이성적 추론이 힘을 잃는다. -중략-

군중으로 모인 개인은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자신이 잃어버린 의지력을 여전히 갖고 있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의지한다. (pg 141)


복음서에 믿음에 산을 옮길 만한 힘이 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에게 믿음을 부여하면 그의 힘이 열 배는 더 커진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건은 자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 말고는 내세울 것 없는 무명의 신념가에 의해 일어났다. 

세계를 지배한 거대 종교를 세우고 지구 반대편까지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사람은 

학자나 철학자가 아니었고 회의론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pg 142)



지금까지 정리한 바로 보면 저자는 군중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책이 등장한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도 있을텐데, 프랑스 혁명과 파리 코뮌이라는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저자는 군중이 가진 무시무시한 파괴의 힘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군중의 시대가 올 것이라 저자는 단언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군중이 가진 힘에 경외심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군중의 종류와 예시를 들어주고 있는데 이 중 배심원 제도와 보통선거 관련 내용들이 특히 흥미로웠다. 

배심원 제도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 매우 재밌는데, 판검사들은 배타적인 폐쇄집단이므로 일반적인 군중에 비해 

더 위험하고 해로운 결정을 내리기 쉽다는 의견이었다.


물론 군중의 힘도 두려워해야 하지만 배타적인 폐쇄집단의 힘은 더더욱 두려워 해야 한다.

군중은 설득할 수 있어도 폐쇄집단은 절대 뜻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pg 207)


보통선거에 대한 의견도 그렇다.

저자가 계속해서 군중은 저열한 판단을 하기 쉽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엘리트 위주의 선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할 것 같지만, 

저자는 어차피 엘리트들도 모이면 군중이 되기 때문에 저열한 판단을 하는건 마찬가지일거라 말한다. 


그렇다면 능력에 따라 선거권을 제한하면 군중의 투표가 개선될 거라고 가정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가능성이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앞에서 설명했듯이 집단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든 모두 다 정신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이다.

군중 속의 개인들은 언제나 서로 비슷해질 것이며,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 투표할 경우 

40명의 학자나 40명의 물장수나 투표 결과는 동일하게 나을 것이다. (pg 221)


따라서 학자들로만 선거인단을 구성하더라도 투표 결과가 지금보다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각자의 감정과 당파심에 따라 투표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현재 겪는 어려움이 여전히 계속될 것이고, 오히려 폐쇄집단의 답답한 전횡을 덤으로 겪게 될 것이다. (pg 222)


그밖에도 현재 정치나 사회의 모습이 떠오르는 구절이 상당히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아래의 구절이 최근에 끝난 더불어민주당 경선 결과를 잘 설명해주지 않나 생각했다. 


지도자가 이성적 추론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위신을 앞세워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지도자가 위신을 잃으면 영향력도 상실한다는 사실이 이 점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pg 228)


유권자로서 군중은 특정 개인이 가진 위신을 크게 생각한다. 

따라서 무슨 출신, 무슨 역할을 했는지가 중요한데 이 위신에 타격을 받을 경우 어지간해서는 군중의 선택을 받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사면 이야기, 국회의원 사퇴 등 위신에 타격을 받은 한 후보가 무슨 짓을 해도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었던 

최근의 사례가 오버랩되는 구절이었다. 


뒤에 해제를 제외하면 250페이지가 조금 안되서 분량에서는 부담이 없었지만 저자가 예시로 드는 사례들이 대체로 유럽의 근현대사 

특히 프랑스 근현대사의 인용이 많기 때문에 나처럼 관련 지식이 없다면 예시 이해가 조금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이 어려운 문체로 쓰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핵심 내용 이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위에서도 서술했듯이 지금의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과는 상당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사회상이기 때문에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꽤나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읽으면서 어떤 부분이 지금은 개선되었고 어떤 부분이 지금도 유효한지 찾아보면서 읽는다면 좋은 독서가 될 것이고, 

그 불편함에 지쳐 책을 놓는다면 좋은 인상으로 남기 어려운 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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