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을해 지음 / 북인더갭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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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삶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언제나 물음이 터져 나온다.

어딘가에 대고 피 터져라 묻지 않을 수 없는 기막힌 삶의 한때를 사람들은 불행이라 부른다. (pg 181)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여름에는 소설을 읽고는 했다.

소설보다는 비소설을 더 선호하는 개인 취향 상 문학 작품을 자주 접하지는 않지만,

날이 더워지면 아무래도 머리 아픈 비소설류 보다는 훅 빠져드는 소설이 땡기게 마련인가보다.

그러면서도 입맛이 이쪽이라 그런지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지닌 소설류를 특히 좋아한다.

'1984'나 '멋진 신세계' 같은 작품들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여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 소개를 읽고선 전체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디스토피아가 떠올라 읽게 되었다.

다 읽은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하면 '딱 내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소설을 리뷰하는 것은 스토리에 대한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조심하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런 걱정을 조금 덜 해도 되었다.

스토리라인 자체는 매우 심플하기 때문이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소설의 주인공은 '마기'라는 젊은 남성이다.

속국 출신인 어머니가 쓴 글을 소수 언어로 번역하여 출판하려다 힐로 끌려온 인물로 묘사된다.

이 문장 하나로도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는 출판과 언론의 자유가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설은 마기가 '힐'이라는 곳에서 체류하는(혹은 갇혀있는) 며칠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다 읽고서 느낀 것이지만, 책의 표지가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홍색 건물에 입구가 뚫려있고 안은 온통 검은색이다.

하늘은 파랗지만 건물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고, 건물은 분홍색이지만 '기분 좋은' 분홍색은 아니다.

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안 들지만 그렇다고 밖에 있기도 싫은 그런 공간.  


이 책의 무대이자 마기가 갇혀 있는 '힐'은 딱 이런 곳이다.

겉보기에는 부족함없이 잘 갖추어진 리조트 같은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실상은 '제국'으로 표현된 전체주의적 국가의 사상 교육을 실시하는 '수용소' 역할을 한다.


음식과 의복, 건강을 위한 약, 쾌적한 방, 틈만 나면 불편한 곳은 없는지 물어보고 도와주는 직원들까지,

힐에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이 곳에 온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딱 한 가지이다.

'자신의 생각을 제국 스타일로 고쳐먹는 것.'

​마기는 자신의 신념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제국에 저항하려하지만, 제국은 강하고 개인은 무력하다.  


몸에는 어떤 폭력의 자국도 없었고 욕지거리도 한번 듣지 않았지만 가방 속에는 모든 게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모욕과 무기력의 무게로 가방이 채워지면 밤은 이미 깊은 후였다. (pg 135) 



힐에는 '간사'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제국의 생각을 힐의 거주자(수감자)들에게 주입하는 역할을 한다.

간사와 마기의 대화 중 이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대사가 등장한다.


"마기 씨야말로...마기 씨는 왜 남들과 다른 거죠?" -중략-

"사람들은 다 달라요. 간사님과 에보스 씨만 봐도, 두 분도 달라요. 같아야 인정받는 이 체제가 위험한 겁니다." (pg 99)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유기체는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서로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국가 속에서

개인의 저항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저항하는 개인은 어떤 심정일 수 있는지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얼핏 '1984'나 '멋진 신세계' 같은 작품들과 비슷해 보일지 모른다.

전체주의 국가라는 디스토피아적 배경 때문일테지만, '힐'은 '힐'만의 독특함이 있다.


앞의 두 작품이 전체주의 국가를 유지하게 하는 다양한 장치들에 대한 묘사에 충실한 면이 있다면,

이 작품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심리 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제국'의 시스템이 어떻게 완벽한 전체주의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이동의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적 자유가 박탈된 채 가축처럼 사육되며

사상 개조를 강요 당하는 인간의 고뇌와 무기력함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1984'나 '멋진 신세계' 보다는 일본만화인 '20세기 소년'에 등장하는 '친구랜드' 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이 작가의 첫 장편이라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다.

다만 서술에 있어서 다소 읽는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맥락을 잠시 놓치거나

등장인물들의 배경 설명이 다소 부족하여 행동의 개연성이 충분치 않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가진 세계관의 매력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힐'이라는 공간 자체가 독창적이면서도 끔찍하게 잘 묘사되어 있고 마기라는 인물의 심경 변화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유지태 같은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해서 영화화 되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철이라 장기간 여행을 가거나 교통체증으로 차 안에 갇혀 있을 때 재미도 있으면서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는 책을 찾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나 역시 강원도의 한 리조트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저녁에 맥주 한 모금 하면서 '제국'이 현재 국가들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으며,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사족이지만, 우연히 책을 접하게 된 일개 독자일 뿐인 나에게 저자가 직접 싸인한 책을 보내주어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앞으로도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기대되는 작가를 한 명 알게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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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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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우리는 "새처럼 자유롭다"는 표현을 쓰면서 날개로 3차원의 모든 공간에서 어느 방향으로나 제한 없이 이동하는 조류의 능력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도도를 잊어서는 안된다.

어떤 새라도 구태여 날개를 사용하지 않고도 잘 먹고 살아갈 방법을 알아낸다면

비행의 특권을 아낌없이 당장 버리고 영원히 땅바닥에서 살아갈 것이다. (pg 21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조지 오웰의 '1984'와 더불어 완벽한 통제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

지금까지도 명작의 반열에 올라있다.


'멋진 신세계'를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그 책을 접할 당시의 나는 회사 생활에 심각한 회의를 느끼고 있던 터라 내 자신이 멋진 신세계 속 엡실론 계층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고민과 '소마'처럼 몸에 부작용 없이 우울함을 없애주는 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따위의 생각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완벽한 통제 사회가 현실로 일어날 가능성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본인 스스로가 묘사했던 사회가 어떻게

현실화 될 수 있는지, 또한 그 현실화가 얼마나 빨리 올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의미로 쓴 책이다.

'멋진 신세계'가 세상에 나온지 20여년 뒤에 나온 책으로 1958년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벌써 나온지 60년이나 된 책인데 이 책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일부 사람들은 헉슬리를 마치 엄청난 예언가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할까?

이 책을 보면서, 60년 전에 그가 예상했던 세계와 지금의 세계를 비교해 봄으로써 과연 그의 예언은 어느 정도 실현되었으며

앞으로의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책의 초반부에서 멋진 신세계의 현실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인구 과잉과 과잉 조직화라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이 쓰일 당시에 비하면 인구는 엄청나게 증가하였고 대도시들도 늘어났다.

여전히 어떤 국가들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어떤 국가들에서는 대도시화로 인한 정신적인 허기짐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헉슬리가 예측한 바 대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


20세기 후반에 사람들은 자손 번식에 대하여 아무런 체계적인 계획도 실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통제를 받지 않고 닥치는 대로 번식을 행하여 지구를 인구 과잉의 상태로 몰고 왔을 뿐 아니라,

더 늘어난 인구의 질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해지게끔 나름대로 확실한 기여까지 한다. (pg 66)


실제로 중국이나 한국 등에서는 인구 통제를 진행한 바 있다.

심지어 그 인구 통제가 아주 '잘' 진행되어서 이제는 인구 감소를 우려하고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인구 통제를 하지 않았던 국가들의 경우에도 젊은 세대일수록 출산률이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헉슬리가 지적했듯이 인구 증가가 인간이라는 종을 생물학적으로 열등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위 주장이 맞으려면 100년 전의 인간이 현대의 인간보다 우수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현재의 국가들, 특히 경제적 발전을 어느 정도 이룩한 국가들의 경우 지금은 인구 증가가 아닌 인구 고령화와 감소를 고민하고 있다.


또한 과잉 조직화가 상당부분 진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더욱 파편화되어 있다.

점점 더 도시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인구 과밀화의 속도도 완화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의 예측이 빗나갔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그가 지적했던 인구증가와 과잉 조직화가 현상적인 수준에서는 지금의 현실과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결과를 따져볼 때엔 비슷한 우려를 안고 있다.

이로 인한 자원의 고갈, 정치적 무관심과 혼란, 사회철학의 부재 등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개인의 관심사에만 몰두하고 있고 정치적, 경제적 실세들은 이러한 상황을 부추기고 있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그들의 삶에서 대단히 큰 부분을 현장이 아닌 곳에서,

지금 현재의 상황 그리고 예측이 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

그러니까 운동 경기나 연속극, 신화나 형이상학 환상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보내는 사회는

그것을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자들의 은밀한 침투와 강탈에 저항하기가 힘들어진다. (pg 98)



이런 상황에서 전체주의적 국가의 출현에 한 몫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선전(선동)들이다.

저자는 특히 정치가 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 종교인들의 전도 활동에도 이러한 선전이 폭넓게 쓰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우리들은 저마다 독특하다.

모든 문화권은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또는 어떤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신조의 이름으로 인간 개체들을 표준화하는 방법을

찾으려 하고, 인간의 생물학적인 본성을 거역하는 폭력을 저지른다. (pg 75)


실생활에서는 '보통 사람'이라는 그런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 신체와 정신에 있어서 타고난 특이성을 지니고, 그들의 생물학적인 다양성을 어떤 문화적인 틀의 획일성에 집어 넣어

맞추도록 노력하는(또는 노력하도록 강요받는) 각별한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만 존재할 따름이다. (pg 179)


이러한 선전들 속에서 개인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심지어는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 될 가능성도 크다.


철학은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사물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반면에 선전은 우리가 의혹을 갖거나 판달을 보류해야 옳다고 여겨지는 문제들을 자명한 개념이라고 받아들이도록 가르친다. (pg 108)



이러한 현실 속에서 '멋진 신세계'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저자는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과잉 인구와 과잉 조직이 가속화되며 대량 소통의 매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능률적으로 응용되는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어떻게 고결함을 간직하고 인간 개인의 가치를 다시금 주장할 것인가? (pg 110)


위 질문이야말로 이 책을 전체적으로 꿰뚫는 하나의 질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자유를 지켜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가야 할 것인가를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자유에 대한 교육은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실에 관한 가치관의 교육-개인적인 다양성과 유전적 특이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의 당연한 추론적 결과인 윤리적 자유와 관용과 상호 박애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pg 196)


자유(그리고 자유의 조건이면서 결과이기도 한 사랑과 지성)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올바른 사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pg 198)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모든 사항들에 대한 회의를 갖고 살아간다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아래와 같다.

개인은 그들의 사회가 보유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데 기꺼이 응할 암시 반응 잠재성을 충분히 갖춰야 하지만,

전문적인 정신 조종자들의 주문에 무기력하게 홀려 걸려들 정도로까지는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pg 200)


물론 그의 해결책은 속된말로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알아도 잘 안되는 것에 가깝다.

대체 위와 같은 상태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추구할 수 있겠는가?

저자도 말로 하긴 쉬워도 현실에서 이루기는 어렵다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이 나온지가 벌써 60년쯤 되었으니 인류는 적어도 60년동안 똑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집중된 부와 권력이 사회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누구나 인간은 동등한 존재이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한국만 보더라도 '갑질'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회 계층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쯤에서 우리는 아주 불편한 질문에-우리는 진심으로 우리가 아는 지식에 따라 행동하기를 원하느냐 하는 질문에 봉착하고 만다.

(pg 212)


우리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우리는 정말 '자유'의 가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자유'의 가치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를 위해 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보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많은 질문을 남겨주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은 '멋진 신세계'를 읽지 않았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조지 오웰의 '1984'와의 비교도 상당부분 있으므로 '1984'의 내용 또한 알고 있어야만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번역의 대가'라며 번역에 역점을 둔 책이라고는 하지만 원문에서도 워낙 문장이 길었기 때문인지

번역된 문장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옮긴이가 무척 애를 쓴 흔적이 보이지만 그래도 읽기 어려운 건 어려운거다.

문장을 국문에 맞게 잘라주는 정도의 배려가 있었으면 원문을 크게 해치는 일이 되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때문에 250페이지 정도의 짦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책이었다.


하지만 앞서서도 밝혔듯이 헉슬리를 무슨 수정구로 미래를 보는 사람처럼 취급하기 보다는

비판적으로 그의 예측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특히 책의 앞 부분에 수록된 크리스토퍼 히친스라는 사람이 쓴 글은 헉슬리의 빛나는 통찰력은 물론 아쉬웠던 부분까지 균형있게

잘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오히려 책을 모두 다 읽고 나서 이 부분을 보면 더 이해가 잘 간다.


본문 뒤에 '멋진 신세계'에 대한 당시의 반응이나 조지오웰에게 보낸 서신도 굉장히 흥미로우니

이 책을 접하게 될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꼭 끝까지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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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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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시선을 잡아끈다.

영문 제목은 "Being Mortal", 즉 "유한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 혹은 어떻게 살아야만 할 것인지를 떠드는 책은 너무도 많다. (유시민의 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당장 내일, 1년 후, 10년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치열하게 생각하지만 어떻게 죽게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행복하게 살다가 잠들듯이 죽었으면 좋겠다' 정도로 두루뭉실하게나 소망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논리적 명제를 설명할 때 항상 드는 예시가 사람은 죽는다-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아니던가.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급작스러운 병(메르스?)으로 비명횡사하지 않는다면 대체로는 늙어가면서, 병들어가면서 죽는다.

급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하기란 당사자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이 책에서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대체로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겪게될 노환과 병환으로 인한 죽음의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누구나 늙어가면 행동에 제약이 오게 마련이다.

감각이 둔해지고 몸도 무거워진다. 할 수 있었던 것들의 목록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물론 한 50대까지야 나이 먹으면서 할 수 있게 되는 것들이 늘어난다고 보여질 수 있다. 판단력도 좋아지고 아는 것도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건 70, 80이 넘어가면 판단력도, 알고 있던 지혜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특히 신체적 활동들은 서른, 마흔만 넘어가도 금방 표시가 난다.

오죽하면 홍진호가 프로게이머도 서른만 넘으면 몸이 못쫓아간다고 떠들지 않겠는가.


이처럼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게 되면 독립적으로 살던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해지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 때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어떤 심리와 태도를 보이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대가족이 일반적인 가족 형태였을 때에는 노인을 자식이 부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인과 자식이 떨어져 사는 형태가 보편화 되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부갈등, 장서갈등 등 같이 살면 노인과 자식 모두 불행하게 마련이다.

이럴 때 손쉬운(?) 해결책이 바로 요양원이나 실버타운 등 전문 기관에 맡기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문 기관이 과연 노인들을 '인간답게' 케어하고 있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독립적으로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노인 전문 기관은 '안전'과 '위생'이라는 절대 목표 아래 노인들의 사생활이나 욕구, 행복 추구에 대한 제한사항을 두게 마련이다.


물론 안전과 위생은 너무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말 인간이 안전하고 위생적이기만 하면 행복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스스로는 자율권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길 바라는 게 인간이라는 거에요." (pg 168)


사실 안전과 위생은 그러한 시설에 노인들을 위탁하는 가족들에게나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이 늙거나 아프기 전에 했던 소소한 활동들을 이어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데 어떤 할머니는 매일 6시에 '6시내고향'을 꼭 봐야 하는데 단체생활을 하면 그 시간에 반드시 저녁을 먹어야 한다.

그 할머니는 그 시간에 저녁을 먹으면서 과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우리 할아버지처럼 기댈 수 있는 대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그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통제와 감독이 계속되는 시설에 갇혀 사는 수밖에 없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도록 설계된 삶이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삶이다. (pg 172)



저자는 인간에게는 안전과 위생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고,

이를 추구하는 것이 단순히 시설에 갇혀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설령 너무도 하찮아보이는 일일지라도 그것의 경중을 타인이 결정하게 두는 것은 비인간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이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개성과 기억을 지워 버릴 위험이 있는 심신의 변화를 가장 끔찍한 고통으로 여기는 것이다. (pg 218)


의학 기술은 의식이 없어지고 신체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각 기관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게다가 죽어 가는 사람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질 때까지 의학적 처치를 해 대는 마당에

환자가 생각하는 바와 바라는 바를 돌볼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pg 242)



물론 나 역시 아직은 사회적으로 볼 때 젊은 나이여서 죽기 직전의 사람이 어떤 것을 원할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당장 내일모레 죽게 생겼다면 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일까는 생각해볼 수 있다.

대체로는 엄청난 어떤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하기 보다는 익숙한, 소중한 사람들과 소소한 것들을 하고 싶어할 것이다.

 

(심각한 질병을 앓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통을 피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주변과 상황을 자각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완결됐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pg 240)



이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망성 없는 치료를 위해 병원이나 시설에 가둬두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종결시킬 선택권을 갖는 것이다.

환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한 달을 병원에서 더 사는 것인지, 1주일을 가족과 함께하다 가는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환자는 물론 가족들과 의사들까지도 분명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가족들의 경우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붙잡고 싶어하고, 의사들도 최선을 다해보고 싶은 욕심에 이런저런 치료들을 더해가면

결국 환자는 죽기 직전까지 더 큰 고통을 겪게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되면 저자는 하기 싫은 대화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라 말한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의학으로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분명히 이해하는 과정은 서서히 진행된다.

갑작스런 직관과 통찰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 아니란 얘기다. (pg 278)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생명체로서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천하를 헤맸던 진시황을 비웃을 수 없는 이유도 우리 모두 죽고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한 친척이 뇌졸증으로 쓰러져 죽을 고비에 있었다. 의사는 3일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가족들은 식물인간이어도 좋으니 깨어나만 달라고 빌었다.

기적적으로 그 분은 깨어났다.

하지만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기억의 상당부분을 잃고,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이제 그 분은 하루 종일 소리치며 병원에서 도망치려 하고 가족들은 간호하며 말리기에 급급하다.  

가족들은 깨어나길 빌었던 것이 가족들에게나 환자 본인에게 과연 좋은 일이었는지를 묻게 되었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는 우리가 삶이라는 형태로 써 나가는 이야기의 종결을 짓는 것이다.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떻게 우리 이야기를 종결지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또한 아주 높은 확률로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을 먼저 떠나보내게 된다.

이 때 자식으로서 어떻게 보내드리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아툴 가완디라는 이름은 이 책으로 처음 접했다.

의사이면서 철학자라는 배경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글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본인이 의사로서 겪은 수많은 환자들의 사례(본인의 아버지까지도)를 상세히 소개하며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 나가는데,

이것이 결코 지루하거나 현학적이지 않다.

명료하면서도 논리적이고, 그러면서도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묘한 설득력을 지닌 책이었다.

게다가 번역이 매우 깔끔해서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아니면 이 책을 쓴 사람이 외국인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을 정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므로,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픈 책이었다.

인간에게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단위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전체적인 구도는 의미 있는 순간들, 즉 무슨 일인가 일어났던 순간들이 모여서 결정된다. (pg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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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대 - 비정한 사회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이승욱 지음 / 레드우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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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여러분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 (pg 257)



'연대'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사회문제를 다루는 책들을 보면 현실 분석은 충실한데 결론은 '연대'라는 두 글자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이므로 문제 해결에 있어서 다수의 노력은 필수적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기-승-전-연대로 끝난다는 사실은 무언가 찜찜함이 따른다.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앞에 '마음'이라는 것을 덧붙이고 있다.

과연 '마음의 연대'란 어떤 것일까?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저자 역시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정신분석가 답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꽤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

특히 불안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대한민국 전체적으로 보편화된 감정이라 보고 있는데, 상당부분 공감이 되었다.


어려서부터는 자신이 경제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 경제 생활을 시작하면 언제든지 자신이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이 불안함이라는 감정은 학생은 물론 자영업자나 직장인들까지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이다.

이제 더 이상 기업은 고용을 보장해주지 않고, 평균 수명은 늘어나 버렸다.

자아 실현은 커녕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자리 싸움이 세대를 불문하고 일어나고 있다.


경쟁, 경쟁, 경쟁.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이 단어는 모두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때문에 끊임없이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해야 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불안하다.

더욱이 목적지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데 말이다.


현재의 2, 30대의 부모가 국가에 순응했다면 그의 자녀들은 체제의 완전무결함에 순응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여기엔 '자기 계발하는 주체'라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걸맞은 노동 주체의 출현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언뜻 들으면 멋지고, 굉장히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나 실은 자유의지를 자기를 착취하는 데 사용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체제에 복종하는 사람들이다. (pg 95)


그러다보니 대체 불가능한 노동, 의미 있고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회를 휩쓸고 있다.

하지만 정말 대체 불가능한 노동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걸까?


하지만 일은 그냥 일일 뿐이다. 지겹기도 하고 의미 있기도 하고, 하기 싫다가도 하고 싶은 것이 일이란 말이다. (pg 96)


개인의 특질이나 개성을 지지하고 발현할 수 있는 교육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것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일을 잘해서 직업으로 삼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게다가 그 좋아하는 일이 성공을 가져다준다는 보장도 없다.

더욱이 자녀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일이 아닌 경우,

부모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을 바꿔 버린다. (pg 97)



사정이 이러하니 사람들간의 관계가 온전할리 없다.

사람들은 타인을 대할 때 저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무의식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심지어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도 상대방과 결혼하는 것이 본인에게 손해인지 아닌지를 타인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번식'이라는 생물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에서부터 득실을 따져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생물들은 배우자를 신중하게 고른다.

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의 유전자를 온전히 물려줄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것과

상대방이 나의 '급'에 비교할 때 내가 손해인지 이득인지를 따져보는 것은 분명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번식을 위한 관계에서도 이러한데 다른 관계들에서는 얼마나 이익을 따져보게 될 것이며 그러한 관계들은 얼마나 피상적이겠는가.

이러한 상황은 모두를 외롭게 만들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 어떻게 '연대'라는 것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다른 (진보적)사회과학 서적들과 마찬가지로 저자도 이러한 우리의 심리 상태가 상당부분 사회 체계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현 정권에 대한 적절한 비판도 섞여 있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연대'라고 했을 때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연대'라는 단어가 구체적인 실체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닌만큼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어떤 모임을 형성하거나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 등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연대를 위한 시작점이 비슷한 처지의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라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정신 상태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과의 연대'이다.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를 따지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자신과의 연대를 위한 첫걸음이라 말하고 있다.


각자의 고유성, 또는 개인의 독립성에 기초하지 않으면 진정한 연대는 일어나지 않는다. (pg 247)


저자는 이러한 개인들이 모일 수 있을 때 현재와는 다른 모습의 연대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서로의 필요를 서로가 힘을 합쳐 채워가기 위한 교육공동체, 생활공동체 등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여러분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 (pg 257)


상당히 간단한 질문이지만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재산이나 부동산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어떤 삶의 방식을 물려줄 것인지, 더 나아가 후손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로지 자신의 삶을 통해서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다.

개인들의 심리 상태에서 출발한 저자의 현실 분석도 상당부분 공감이 갔다.

후반부로 갈수록 호흡이 다소 쳐지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현학적인 부분이 없고 문장이 간결해 이해하기 쉬웠다.

'비정한 사회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라는 부제도 책을 모두 읽고 나니 참 잘 지은 부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봄직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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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블랙북 - 여행스토리가 있는 아티스트 컬러링북
손무진 지음 / 글로세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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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힐링 열풍이 불 무렵, 다양한 힐링 방법 중 하나로 인기를 끌었던 것이 바로 컬러링북이다.

열어보면 하얀 도면에 빽빽히 나눠진 칸들이 있는데 이를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칠하면 되는 책들이다.  

그러다 보면 집중도 되고 자연스레 힐링이 된다 뭐 그런 컨셉이었던 것 같은데 처음엔 별 시덥잖은 짓 다하네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느 날 아내가 컬러링 북을 하나 사 와서 진득히 앉아 색칠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구경하다 보니 재밌어 보여서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집중하는 동안 잡생각이 사라져서 금새 시간도 흘러가고 의외로 성취감도 있어서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었다.  

그러다 작가가 다녀온 멋진 곳들이 담긴 책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접해보게 되었다.


모처럼의 연휴를 앞두고 있었지만 모처럼 전혀 기쁘지 않게 시작했었다.

주말을 반납하고 출근을 하느냐 마느냐가 금요일에 결정되었는데, 나는 출근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이 기분좋게 빗나가면서 뜻밖의 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출근할 줄 알고 전혀 계획을 세우지 않아서 연휴지만 막상 어딜 나서자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저 밥 먹고 멍청히 있던 차에 아내의 제안으로 카페에 가서 컬러링북 채색을 같이 하게 되었다.

준비물은 컬리링북과 색연필 조금이 전부다.

진득하게 작업해야 하므로 시원한 음료와 함께 하기로 했다.


이 책은 다른 책들처럼 도면만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지 않다.

나름 컬러링 팁도 적혀 있고 여행에 관련된 명언이나 생각해 봄직한 글귀들도 적혀있다.

도면들도 단순한 그래픽들이 아닌 손으로 직접 그린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케치 형식이다.

 



이런 식으로 재료도 자기 마음대로, 색깔도 자기 마음대로 쓱쓱 칠하면 그만이다.

같은 그림이지만 그리는 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2페이지짜리 그림을 아내 한 쪽, 나 한쪽 그리기로 했다.
 



완성된 모습.

좌측이 아내가 채색한 쪽인데 확실히 좀 더 선명한 느낌이다.

스케치는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이 배경이지만, 난 뭔가 우리나라 시골의 느낌을 내보고 싶어서 채색을 밋밋하게 했다.

같은 그림을 둘이 나눠 채색하니 확연히 다른 느낌이 재미있는 것 같다.  

 



스케치 중에는 전체를 칠하지 않아도 될법한 것들이 제법 있다.

그림쪽은 잘 모르지만, 아래와 같은 그림은 여성의 상의만 칠해줘도 뭔가 느낌이 있어 보인다.

(자꾸 우리나라 대통령의 뒷모습이 겹쳐 보인다;;;)



작가가 여행한 곳의 흔적들에 색깔을 입히면서 여행에 대한 찬양이 가득 담긴 글귀들을 보고 있자니 부러운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렇게 아내와 함께 조용한 시간을 함께 보내다보니 마치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들어 좋았다.

나의 채색이 작가의 멋진 스케치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지만 그 또한 이 책의 재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저렇게 채색이 다 되고 나면 나중에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채색할 때의 추억도 함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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