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부터가 시선을 잡아끈다.

영문 제목은 "Being Mortal", 즉 "유한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 혹은 어떻게 살아야만 할 것인지를 떠드는 책은 너무도 많다. (유시민의 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당장 내일, 1년 후, 10년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치열하게 생각하지만 어떻게 죽게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행복하게 살다가 잠들듯이 죽었으면 좋겠다' 정도로 두루뭉실하게나 소망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논리적 명제를 설명할 때 항상 드는 예시가 사람은 죽는다-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아니던가.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급작스러운 병(메르스?)으로 비명횡사하지 않는다면 대체로는 늙어가면서, 병들어가면서 죽는다.

급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하기란 당사자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이 책에서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대체로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겪게될 노환과 병환으로 인한 죽음의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누구나 늙어가면 행동에 제약이 오게 마련이다.

감각이 둔해지고 몸도 무거워진다. 할 수 있었던 것들의 목록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물론 한 50대까지야 나이 먹으면서 할 수 있게 되는 것들이 늘어난다고 보여질 수 있다. 판단력도 좋아지고 아는 것도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건 70, 80이 넘어가면 판단력도, 알고 있던 지혜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특히 신체적 활동들은 서른, 마흔만 넘어가도 금방 표시가 난다.

오죽하면 홍진호가 프로게이머도 서른만 넘으면 몸이 못쫓아간다고 떠들지 않겠는가.


이처럼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게 되면 독립적으로 살던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해지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 때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어떤 심리와 태도를 보이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대가족이 일반적인 가족 형태였을 때에는 노인을 자식이 부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인과 자식이 떨어져 사는 형태가 보편화 되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부갈등, 장서갈등 등 같이 살면 노인과 자식 모두 불행하게 마련이다.

이럴 때 손쉬운(?) 해결책이 바로 요양원이나 실버타운 등 전문 기관에 맡기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문 기관이 과연 노인들을 '인간답게' 케어하고 있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독립적으로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노인 전문 기관은 '안전'과 '위생'이라는 절대 목표 아래 노인들의 사생활이나 욕구, 행복 추구에 대한 제한사항을 두게 마련이다.


물론 안전과 위생은 너무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말 인간이 안전하고 위생적이기만 하면 행복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스스로는 자율권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길 바라는 게 인간이라는 거에요." (pg 168)


사실 안전과 위생은 그러한 시설에 노인들을 위탁하는 가족들에게나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이 늙거나 아프기 전에 했던 소소한 활동들을 이어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데 어떤 할머니는 매일 6시에 '6시내고향'을 꼭 봐야 하는데 단체생활을 하면 그 시간에 반드시 저녁을 먹어야 한다.

그 할머니는 그 시간에 저녁을 먹으면서 과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우리 할아버지처럼 기댈 수 있는 대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그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통제와 감독이 계속되는 시설에 갇혀 사는 수밖에 없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도록 설계된 삶이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삶이다. (pg 172)



저자는 인간에게는 안전과 위생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고,

이를 추구하는 것이 단순히 시설에 갇혀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설령 너무도 하찮아보이는 일일지라도 그것의 경중을 타인이 결정하게 두는 것은 비인간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이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개성과 기억을 지워 버릴 위험이 있는 심신의 변화를 가장 끔찍한 고통으로 여기는 것이다. (pg 218)


의학 기술은 의식이 없어지고 신체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각 기관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게다가 죽어 가는 사람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질 때까지 의학적 처치를 해 대는 마당에

환자가 생각하는 바와 바라는 바를 돌볼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pg 242)



물론 나 역시 아직은 사회적으로 볼 때 젊은 나이여서 죽기 직전의 사람이 어떤 것을 원할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당장 내일모레 죽게 생겼다면 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일까는 생각해볼 수 있다.

대체로는 엄청난 어떤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하기 보다는 익숙한, 소중한 사람들과 소소한 것들을 하고 싶어할 것이다.

 

(심각한 질병을 앓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통을 피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주변과 상황을 자각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완결됐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pg 240)



이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망성 없는 치료를 위해 병원이나 시설에 가둬두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종결시킬 선택권을 갖는 것이다.

환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한 달을 병원에서 더 사는 것인지, 1주일을 가족과 함께하다 가는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환자는 물론 가족들과 의사들까지도 분명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가족들의 경우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붙잡고 싶어하고, 의사들도 최선을 다해보고 싶은 욕심에 이런저런 치료들을 더해가면

결국 환자는 죽기 직전까지 더 큰 고통을 겪게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되면 저자는 하기 싫은 대화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라 말한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의학으로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분명히 이해하는 과정은 서서히 진행된다.

갑작스런 직관과 통찰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 아니란 얘기다. (pg 278)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생명체로서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천하를 헤맸던 진시황을 비웃을 수 없는 이유도 우리 모두 죽고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한 친척이 뇌졸증으로 쓰러져 죽을 고비에 있었다. 의사는 3일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가족들은 식물인간이어도 좋으니 깨어나만 달라고 빌었다.

기적적으로 그 분은 깨어났다.

하지만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기억의 상당부분을 잃고,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이제 그 분은 하루 종일 소리치며 병원에서 도망치려 하고 가족들은 간호하며 말리기에 급급하다.  

가족들은 깨어나길 빌었던 것이 가족들에게나 환자 본인에게 과연 좋은 일이었는지를 묻게 되었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는 우리가 삶이라는 형태로 써 나가는 이야기의 종결을 짓는 것이다.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떻게 우리 이야기를 종결지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또한 아주 높은 확률로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을 먼저 떠나보내게 된다.

이 때 자식으로서 어떻게 보내드리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아툴 가완디라는 이름은 이 책으로 처음 접했다.

의사이면서 철학자라는 배경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글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본인이 의사로서 겪은 수많은 환자들의 사례(본인의 아버지까지도)를 상세히 소개하며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 나가는데,

이것이 결코 지루하거나 현학적이지 않다.

명료하면서도 논리적이고, 그러면서도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묘한 설득력을 지닌 책이었다.

게다가 번역이 매우 깔끔해서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아니면 이 책을 쓴 사람이 외국인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을 정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므로,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픈 책이었다.

인간에게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단위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전체적인 구도는 의미 있는 순간들, 즉 무슨 일인가 일어났던 순간들이 모여서 결정된다. (pg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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