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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대 - 비정한 사회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이승욱 지음 / 레드우드 / 2015년 4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여러분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 (pg 257)
'연대'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사회문제를 다루는 책들을 보면 현실 분석은 충실한데 결론은 '연대'라는 두 글자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이므로 문제 해결에 있어서 다수의 노력은 필수적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기-승-전-연대로 끝난다는 사실은 무언가 찜찜함이 따른다.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앞에 '마음'이라는 것을 덧붙이고 있다.
과연 '마음의 연대'란 어떤 것일까?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저자 역시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정신분석가 답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꽤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
특히 불안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대한민국 전체적으로 보편화된 감정이라 보고 있는데, 상당부분 공감이 되었다.
어려서부터는 자신이 경제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 경제 생활을 시작하면 언제든지 자신이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이 불안함이라는 감정은 학생은 물론 자영업자나 직장인들까지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이다.
이제 더 이상 기업은 고용을 보장해주지 않고, 평균 수명은 늘어나 버렸다.
자아 실현은 커녕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자리 싸움이 세대를 불문하고 일어나고 있다.
경쟁, 경쟁, 경쟁.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이 단어는 모두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때문에 끊임없이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해야 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불안하다.
더욱이 목적지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데 말이다.
현재의 2, 30대의 부모가 국가에 순응했다면 그의 자녀들은 체제의 완전무결함에 순응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여기엔 '자기 계발하는 주체'라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걸맞은 노동 주체의 출현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언뜻 들으면 멋지고, 굉장히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나 실은 자유의지를 자기를 착취하는 데 사용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체제에 복종하는 사람들이다. (pg 95)
그러다보니 대체 불가능한 노동, 의미 있고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회를 휩쓸고 있다.
하지만 정말 대체 불가능한 노동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걸까?
하지만 일은 그냥 일일 뿐이다. 지겹기도 하고 의미 있기도 하고, 하기 싫다가도 하고 싶은 것이 일이란 말이다. (pg 96)
개인의 특질이나 개성을 지지하고 발현할 수 있는 교육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것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일을 잘해서 직업으로 삼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게다가 그 좋아하는 일이 성공을 가져다준다는 보장도 없다.
더욱이 자녀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일이 아닌 경우,
부모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을 바꿔 버린다. (pg 97)
사정이 이러하니 사람들간의 관계가 온전할리 없다.
사람들은 타인을 대할 때 저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무의식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심지어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도 상대방과 결혼하는 것이 본인에게 손해인지 아닌지를 타인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번식'이라는 생물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에서부터 득실을 따져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생물들은 배우자를 신중하게 고른다.
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의 유전자를 온전히 물려줄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것과
상대방이 나의 '급'에 비교할 때 내가 손해인지 이득인지를 따져보는 것은 분명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번식을 위한 관계에서도 이러한데 다른 관계들에서는 얼마나 이익을 따져보게 될 것이며 그러한 관계들은 얼마나 피상적이겠는가.
이러한 상황은 모두를 외롭게 만들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 어떻게 '연대'라는 것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다른 (진보적)사회과학 서적들과 마찬가지로 저자도 이러한 우리의 심리 상태가 상당부분 사회 체계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현 정권에 대한 적절한 비판도 섞여 있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연대'라고 했을 때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연대'라는 단어가 구체적인 실체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닌만큼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어떤 모임을 형성하거나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 등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연대를 위한 시작점이 비슷한 처지의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라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정신 상태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과의 연대'이다.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를 따지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자신과의 연대를 위한 첫걸음이라 말하고 있다.
각자의 고유성, 또는 개인의 독립성에 기초하지 않으면 진정한 연대는 일어나지 않는다. (pg 247)
저자는 이러한 개인들이 모일 수 있을 때 현재와는 다른 모습의 연대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서로의 필요를 서로가 힘을 합쳐 채워가기 위한 교육공동체, 생활공동체 등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여러분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 (pg 257)
상당히 간단한 질문이지만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재산이나 부동산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어떤 삶의 방식을 물려줄 것인지, 더 나아가 후손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로지 자신의 삶을 통해서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다.
개인들의 심리 상태에서 출발한 저자의 현실 분석도 상당부분 공감이 갔다.
후반부로 갈수록 호흡이 다소 쳐지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현학적인 부분이 없고 문장이 간결해 이해하기 쉬웠다.
'비정한 사회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라는 부제도 책을 모두 읽고 나니 참 잘 지은 부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봄직한 책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