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C 월드
플레이어 지음 / PAGE NOT FOUND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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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 제목도, 저자도, 표지도 마치 게임 관련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세상이 지금 게임처럼 한순간 닫힐지도 모르며 우리는 그 안에 존재하는 NPC와 다름없다는 강력한 경고를 담고 있는 사회학 책이다.

특이하게도 저자에 대한 소개가 일절 없다.

그저 NPC에서 플레이어가 되려고 다짐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만 밝히고 있을 뿐이다.

본격적으로 책 내용을 소개하려면 NPC가 무엇인지, 저자는 왜 우리가 NPC가 되었다고 말하는지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NPC란 게임 용어로 게임을 하다 만나는 상점 주인이나 미션을 주는 동네 주민 같은 존재들을 말한다.

즉 플레이어가 특정 행동을 하면 그에 맞는 반응을 보여주는 데이터 덩어리라는 의미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이라는 게임의 NPC라는 말은 곧 우리가 알고리즘과 AI가 이끄는 대로 반응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하철만 타봐도 이제 본인의 디스플레이에서 시선을 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만취한 사람들도 소중한 연인을 바라보듯 자기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문제는 우리가 보는 콘텐츠들이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처음 한두 번 우리가 선택한 것들을 학습한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다음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한다.

물론 우리에겐 언제든 끌 자유가 있다.

하지만 자기도 몰래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었던 경험이 과연 없었는가?

그리고 그 사이에 본 모든 콘텐츠들이 다 순수하게 본인이 선택한 것이었으며 본인에게 의미가 있었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었는가?

이 모든 대답들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면 우리 역시 저자가 말하는 NPC와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점은 누구도 이런 모습을 우리에게 강요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편안함의 가격은 생각의 깊이다.

얕아진 깊이에서 번거로운 과정들은 귀찮음으로 분류된다.

그렇게 되면 정말 그때부터는 '자동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말이 좋지, 사실상 '프로그래밍된 삶'과 다를 게 없다.

알고리즘과 AI가 분석해서 내려준 일상을 살아가는데, 그게 NPC와 다를 게 무엇인가.

(pg 106)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NPC라면, 우리를 조종하는 플레이어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당연히 우리를 조종하는 알고리즘과 AI를 보유한 자들일 것이다.

필터 버블 현상은 이 책이 아니라도 숱한 책에서 지적해 온 소셜 미디어의 대표적인 폐해다.

필터 버블을 통해 자신의 관념에 갇히게 되면 어지간해서는 반대편의 의견을 듣기가 어려워진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다른 책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필터 버블 때문에 양 극단에 속하게 된 사람들이 사회를 양극화하고 있다는 당연한 지적을 넘어서, 양 극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역시 이 체계를 유지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비록 극단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시스템을 방관하는 것은 곧 그 시스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 논리를 입증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순응했던 중도층이 미친 폐해들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사회의 문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책임이라는 저자의 시각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 자신은 어느 한 진영에 치우친 사람이라 할 수 있어서 그런지, 반대 진영은 당연히 이해가 안 되고, 상황이 이 지경임에도 양쪽이 다 나쁘다거나 그놈이 그놈이라며 무관심이나 무지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 역시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열렬한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대충 표를 던져 계엄 주정뱅이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한 사람들도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 지경까지 놔둔 이 쪽의 책임도 물론 크다.)

적어도 중간을 표방할 거라면, 완충 역할이라도 해줘야 한다.

양측 서로의 말을 연결하고 과열을 식히되, 기준선을 지키게 해야 한다.

기준선은 말뿐이 아니다. 절차 준수, 정보 공개 같은 구체적 행동이다. - 중략 -

균형은 권한의 균형이다. 권한의 균형은 참여와 공개, 절차와 독립에서 나온다.

이것이 무너지면 어느 날부터 질문하는 것 자체가 위험해진다.

위험해지면 질문을 하지 않는다. 질문이 사라지면 결정은 좁아진다.

좁아진 결정은 반복된다. 반복되면 사람들이 그게 정상이라고 믿는다.

정상이라고 믿는 순간, 당신도 그 안에 들어간다.

(pg 145-146)

물론 모든 사회현상이 다 그렇듯이 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쉽고 해결책은 어렵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하지만 이미 편해져 버린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감수하며 주체성을 찾으라는 주문은 비유가 아니라 문장 그대로 소 귀에 경을 읽는 것보다 어려울지 모르겠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의미를 찾는 존재다. 의미는 복잡성과 함께 온다.

복잡성을 감당하지 않으면 인생은 단순해지고, 단순한 인생은 쉽게 조작된다.

기억의 원본을 되찾는 일은, 결국 삶의 해석권을 되찾는 일이다. (pg 198)

따라서 이 책 역시 이런 책들이 갖는 필연적인 결말을 맞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은 이 책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살아갈 가능성이 크고, 딱히 읽지 않았어도 그나마 주체성을 유지하려 애쓰던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읽게 될 것이라는 운명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이 책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에, 미약하지만 이러한 글을 통해서라도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사실 자신이 NPC 임을 자각하는 자가 NPC 일 수는 없다. (그런 게임이 있다면 몰입도가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NPC 월드'라는 말 자체가 이 세상을 잘 빗댄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한 번쯤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 싶다.

한 문단을 읽고 네 줄의 설명과 주석을 다는 행위는 보다 느리지만,

뇌는 그 시간 동안 맥락을 다시 짠다.

캡처가 순간을 붙잡는다면, 문장은 이유를 붙잡는다.

이유를 붙잡는 사람이 성장할 수밖에 없다.

(pg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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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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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e북으로 읽었으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 발췌문에 페이지는 생략함)

이미 좋아하는 작가라고 망설임 없이 밝힐 수 있는 저자의 연작 소설집이다.

저자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SF 장르이며, 제목처럼 화성을 주 무대로 삼고 있다.

작품 속 지구는 역시나 기후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

그 결과로 현재에도 많은 과학자와 기업인들이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는 화성으로의 이주를 막 시작하는 단계를 그리고 있다.

테라포밍은 아직 꿈도 못 꾸고, 과학자 위주로 파견된 1세대 화성인들이 화성 정착 후 2세대가 막 사회에 나오려고 하는 시기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아직 화성의 대부분은 미개척 상태로 남아있고,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 모여 살면서 인프라나 사회 제도를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다.

책에는 이러한 공간적인 배경을 공유하는 여섯 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개척 초기에는 당연히 소수의 엘리트 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화성으로 출발한다.

그들이 인간이 살 수 있는 시설을 건설하면 조금씩 사람들이 더 도착하고, 그 사람들이 힘을 합쳐 또 인간의 영역을 넓히는, 인간의 시간으로는 지난한 세월이 걸리는 과정이 인구가 몇 천 명, 몇 만 명이 될 때까지 반복된다.

포문을 여는 작품인 '붉은 행성의 방식'에서는 그렇게 초기 사회를 유지하던 화성에 드디어(?) 살인이라는 강력 범죄가 발생하게 되는 이야기다.

당연히 그런 사건을 처리할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이 야기된다는 예상 가능한 전개지만,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이후의 이야기들이 펼쳐질 공간적인 배경을 잘 알 수 있게 된다.

이어지는 '김조안과 함께하려면'에서는 화성에 진출하게 되는 초기 엘리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엿볼 수 있다.

인류의 생활권을 우주 밖으로 확장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사람들이므로 엄청난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함은 물론이고, 그들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지식과 역할도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엘리트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를 비교적 일반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그려낸 작품이었다.

세 번째 작품은 마치 반환점을 돌고 잠시 쉬어가듯이 수록작 중 가장 가벼운(?) 고민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든 것이 부족한 화성에서 갑자기 간장게장이 먹고 싶어진 사람의 이야기로, 화성에 익히지 않은 꽃게를 반입할 수 있어야 한다며 관련 위원회를 설득하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코믹한 내용이지만, 픽션이라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결말은 아니므로 저자가 그려낸 화성 개척지라는 세계의 현실성을 높여주기에 중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작품에서는 지구와 화성 사이에 인적, 물적 자원이 이동하는 방법을 엿볼 수 있다.

물론 화성이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이기는 하지만, 버스처럼 두 목적지를 왕복하는 이동 수단을 운영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거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우주선이 화성과 지구 궤도가 겹치는 구간을 공전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이동시키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인류는 서로 사랑을 하고,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타인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굴 보니까 드는 생각인데, 네가 행복하면 나는 된 것 같아.

이거 보이지? 나도 지금 너의 세계에 들어와 있고, 그래서 네 선택을 이해해.

그래, 커다란 천구 어딘가에 지금처럼 작게 머물러줘.

그러면 너와 내가 어디에 있든, 행성 두 개만큼 네가 보고 싶을 거야.

('행성 탈출 속도' 中)

마지막 작품에서는 지구의 '그린벨트'에 해당하는 '레드벨트'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지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결국 화성까지 가야만 했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욕심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만들어낼 사회의 모습이라는 것도 결국 지구에서의 사회와 비슷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결코 우리의 현재를 그곳에 그대로 옮겨두지 않기를 원하는 저자의 강렬한 열망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보통의 '작가의 말'에는 작품과 관련된 저자의 생각들이 나열되는지라 딱히 인상적인 부분을 찾기 어려운데, 이 책의 작가의 말에는 눈에 쏙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경력 20년의 작가인 저자가 소설 쓰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자신의 작업 과정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고백이었다.

그래도 분명한 건, 내 몸에 익은 노하우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비로소 내 작업 과정을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다.

작가는 사실 자기가 뭘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른다. - 중략 -

그냥 쓰면 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中)

부끄럽지만 나 역시 2년 전부터 직장에서 신입 직원들에게 문서 작성 강의를 하고 있는지라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가르칠 수준에 이른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노력을 수반하는 일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족이 길었지만, 역시나 저자의 작품은 재미가 있었고 의도하지 않게 직업적으로도 좋은 철학을 하나 얻어 가는 계기도 되었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가 자신의 화성 연구 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있는데, 그만큼 이 작품에서의 화성은 단순한 공상의 결과물이 아니므로 꽤나 현실성과 개연성이 높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자가 아주 하드한 SF를 추구하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진입 장벽은 높지 않으므로 가을에도 계속 더운 지구가 걱정이라면 인류의 미래는 어떨지 이 책을 통해 한번 상상해 보는 계기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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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카프카 단편선 소담 클래식 7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배인섭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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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나치게 유명한 작품의 경우 여러 경로를 통해 이미 줄거리나 결말을 알고 있어서 정작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카프카의 변신도 그런 작품이었다.

문학 작품들을 읽기 시작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난해하다고 들어서 손이 잘 가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단편선이 새로 나오게 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책에는 '화부', '선고', 그리고 책의 제목이기도 한 '변신'까지 총 세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역자 후기까지 합쳐도 200페이지 초반으로 그리 두껍지 않아서 읽는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읽고 나서는 역시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문학 작품의 어려움은 논픽션이 주는 어려움과는 차원이 좀 다른 것 같다.

후자의 어려움이 대체로 나의 지식수준과 책이 담고 있는 새로운 지식의 격차가 커서 발생한다면, 전자는 대체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도무지 감이 안 올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선고'라는 작품은 부자지간에 말싸움을 벌이다가 아버지가 '나가 죽으라'라고 하자 진짜로 나가 죽는 이야기인데, 대체 이걸 읽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막막했다.

게다가 이 작품이 카프카의 단편 중 최고로 평가받는다는 해설을 보니 '역시 나의 문학적 소양은 일천하구나'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럼에도 세 작품을 읽고 느낀 개인적인 감상을 남겨보려 한다.

저자는 수록된 세 작품을 묶어 '아들'이라는 책으로 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 작품 모두 아들의 시각에서 진행되는데, 작품 속 아들들은 모두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려다가 본의 아니게 그 시도가 좌절되고 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든 아들들은 생애 주기 중 어느 시점부터는 '아이'에서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리고 아이가 아닌 남자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은 물론 다른 누군가까지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요즘이야 결혼이나 출산을 꼭 해야 한다고 인식하지는 않지만, 아이를 키워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하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다.

'화부'에 등장하는 아들은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에 낯선 타인을 도와주려 하지만,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선고'에 등장하는 아들은 더욱 무력하다.

아버지의 날선 말에 제대로 반박조차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기까지 하니 말이다.

'변신'에서 벌레로 변해버린 아들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와 여동생까지 성실하게 먹여 살리던 그였지만, 벌레가 되고 나자 여태까지 그가 보여준 희생과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게다가 수동적이었던 가족들 모두가 스스로 살기 위해 변해가면서 그의 존재 자체가 짐처럼 느껴지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음식까지 거부하면서 가족들의 관심을 사려고 노력해 봤지만 결국 '알아서 좀 사라져줬으면 좋겠다'라는 말까지 들어버리고 절망한 그는 결국 바싹 말라죽고 만다.

결국 내가 느끼기에 이 세 작품들은 아이에서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예나 지금이나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싶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성장하지만 성장 후에는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위치가 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사실을 은연중에 깊히 체득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도 아득바득 자신이 설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짧은 작품들이었지만 읽는 과정보다는 소화하는 과정이 더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도 그의 작품 세계를 직접 만나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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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까지 다섯 걸음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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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e북으로 읽었으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 발췌문에 페이지는 생략함)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스스로를 장편 혹은 논픽션 작가라고 평한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단편도 못지않은 인상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 역시 저자의 단편집 중 하나로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다.

총 21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책인데 21작품이나 수록되어 있다고 하니 감이 올 것 같은데, 각각의 작품 길이는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장르도 SF에서 판타지까지 저자가 시도한 바 있는 모든 장르를 망라하고 있는 것 같다.

수록작 중 제목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재미난 작품이 제목에 '종말'이 들어간 다섯 작품들이다.

연작 형식을 띄면서 각 테마별로 띄엄띄엄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한 세계를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인물들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지구에 문명은 물론 모든 생명이 소멸할 정도의 소행성이 충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이를 피할 방법은 우주선을 건조해 총 5천 명이 다른 생명체 유전자를 가지고 우주로 탈출하는 것뿐이라는 배경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다.

당연히 그 5천 명의 선발을 두고 끊임없는 갈등이 일어난다.

5천 명에 선발된 사람들, 선발되지 못해 폭동에 나서는 사람들, 폭동을 막는 사람들, 결국 탈출에 성공하는 사람들, 지구에 남기로 결정한 사람들 등 여러 사람들의 시각에서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어떻게 될지를 관찰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재미도 있었지만 진짜 종말이 다가온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전망이 꽤나 현실적인 결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은혜 갚은 까치'라는 전래동화를 까치 새끼 입장에서 풀어낸 작품도 기억에 남는다.

'은혜'라는 개념 자체가 자연에는 없는 인간 고유의 가치라는 발상에서 출발한 작품이었다.

우리는 은혜를 입으면 어떻게든 갚으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고, 은혜를 잊은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평을 받기도 하는 만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저자의 다른 책에 수록되었던 작품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처음 접하는 작품이었다.

많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리 길지는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마법과 악마가 등장하는 판타지부터 좀비 이야기까지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저자를 좋아한다면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으로 읽기에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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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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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e북으로 읽었으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 발췌문에 페이지는 생략함)

읽을 게 없을 때나 집중하기 쉽지 않을 때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저자의 작품을 꺼내드는 것이다.

이번에는 기나긴 출장길 기차 안에서 저자를 만났다.

이전에 읽었던 '명탐정의 규칙'과 비슷한 느낌의 작품으로, 많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집필해온 저자가 작가라는 직업을 자조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작품 안에 또 다른 작품이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시작을 여는 작품부터 심상치 않다.

이제 막 인기를 얻어 돈을 벌기 시작했던 한 작가가 연말정산을 앞두고 세금을 줄이기 위해 비용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작품을 수정해간다는 내용인데, 그 과정이 슬랩스틱 코미디보다 더 우스꽝스럽다.

다음으로는 미스터리 장르에 이해도 잘 안되는 과학 지식들을 욱여넣어 폼 잡는 작품들을 비꼬는 '이과계 살인사건'과 미스터리의 결말을 내지 못해 결말을 공모식으로 받아보려 한 작가의 이야기인 '범인 맞추기 소설 살인사건'이 이어진다.

두 작품 모두 이야기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직업인으로서 저자가 생각하는 수준 이하의 작가란 어떤 것인지를 블랙 코미디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어지는 '고령화 사회 살인사건'은 제목 그대로 작가와 독자 모두가 늙어가는 사회에서 책이라는 매체가 함께 도태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어내고 있다.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연령층의 독자가 계속해서 생겨나지 않는다면 책이라는 매체의 생명력도 거기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씁쓸한 웃음으로 빗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일본인들은 점점 책에서 멀어져 책이 팔리지 않게 되면서,

작가로 먹고살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젊은 사람 중에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 수십 년간 소설계에서 활약한 얼굴에 변화는 거의 없다. - 중략 -

독자 역시 노화했다. - 중략 -

그리고 그들은 새삼 새로운 작가의 책을 찾으려 들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을 간신히 읽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책의 쇠퇴 현상은 마지막 작품인 '독서 기계 살인사건'에서도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걸맞게 책을 넣으면 자동으로 읽고 분석해 주는 기계가 나와서 벌어지게 되는 일들을 다룬 작품으로, 제목과는 달리 이 작품 속에서는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와 평론가, 독자라고 하는 역할 자체가 기계에 의해 대체되고 만다.

점차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제거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작품의 제목에도 '살인'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이러한 상황이 곧 작가와 평론가, 독자라는 역할 모두가 죽음을 맞은 것과 다를 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묘한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별로 읽지 않은 주제에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책이 그리 팔리지 않는데도 베스트셀라 탑텐이 발표된다.

일반 독자가 전혀 모르는 문학상이 늘었다.

책이라는 실체는 사라지는데 그것을 둘러싼 환상만은 아주 요란하다.

독서란 도대체 뭘까. 요미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저자의 작품을 읽으면서 재미가 없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저자의 블랙코미디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장르가 가진 클리셰들을 통렬하게 비웃고 있는 이 작품도 틀림없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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