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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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e북으로 읽었으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 발췌문에 페이지는 생략함)

읽을 게 없을 때나 집중하기 쉽지 않을 때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저자의 작품을 꺼내드는 것이다.

이번에는 기나긴 출장길 기차 안에서 저자를 만났다.

이전에 읽었던 '명탐정의 규칙'과 비슷한 느낌의 작품으로, 많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집필해온 저자가 작가라는 직업을 자조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작품 안에 또 다른 작품이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시작을 여는 작품부터 심상치 않다.

이제 막 인기를 얻어 돈을 벌기 시작했던 한 작가가 연말정산을 앞두고 세금을 줄이기 위해 비용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작품을 수정해간다는 내용인데, 그 과정이 슬랩스틱 코미디보다 더 우스꽝스럽다.

다음으로는 미스터리 장르에 이해도 잘 안되는 과학 지식들을 욱여넣어 폼 잡는 작품들을 비꼬는 '이과계 살인사건'과 미스터리의 결말을 내지 못해 결말을 공모식으로 받아보려 한 작가의 이야기인 '범인 맞추기 소설 살인사건'이 이어진다.

두 작품 모두 이야기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직업인으로서 저자가 생각하는 수준 이하의 작가란 어떤 것인지를 블랙 코미디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어지는 '고령화 사회 살인사건'은 제목 그대로 작가와 독자 모두가 늙어가는 사회에서 책이라는 매체가 함께 도태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어내고 있다.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연령층의 독자가 계속해서 생겨나지 않는다면 책이라는 매체의 생명력도 거기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씁쓸한 웃음으로 빗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일본인들은 점점 책에서 멀어져 책이 팔리지 않게 되면서,

작가로 먹고살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젊은 사람 중에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 수십 년간 소설계에서 활약한 얼굴에 변화는 거의 없다. - 중략 -

독자 역시 노화했다. - 중략 -

그리고 그들은 새삼 새로운 작가의 책을 찾으려 들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을 간신히 읽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책의 쇠퇴 현상은 마지막 작품인 '독서 기계 살인사건'에서도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걸맞게 책을 넣으면 자동으로 읽고 분석해 주는 기계가 나와서 벌어지게 되는 일들을 다룬 작품으로, 제목과는 달리 이 작품 속에서는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와 평론가, 독자라고 하는 역할 자체가 기계에 의해 대체되고 만다.

점차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제거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작품의 제목에도 '살인'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이러한 상황이 곧 작가와 평론가, 독자라는 역할 모두가 죽음을 맞은 것과 다를 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묘한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별로 읽지 않은 주제에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책이 그리 팔리지 않는데도 베스트셀라 탑텐이 발표된다.

일반 독자가 전혀 모르는 문학상이 늘었다.

책이라는 실체는 사라지는데 그것을 둘러싼 환상만은 아주 요란하다.

독서란 도대체 뭘까. 요미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저자의 작품을 읽으면서 재미가 없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저자의 블랙코미디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장르가 가진 클리셰들을 통렬하게 비웃고 있는 이 작품도 틀림없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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