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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과 마법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SF는 좋아해도 판타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그냥 지나칠 뻔했다가 현란한 표지에 적힌 저자의 이름을 보고 읽게 된 책이다.
이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들이 모두 SF였는데 이번에 판타지에 도전한 모양이다.
SF 작품을 쓸 때에도 아주 하드한 SF를 추구하기보다는 그 안에 서사를 재미나게 잘 이끌어가는 작가였기에 이번에는 판타지의 형식을 빌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되었다.
제목에 충실하게 한 기병과 마법사가 세계의 위협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만 정리하면 상당히 심심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세계관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일단 판타지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해리포터 식의 서양풍 배경이 아니라 고대 몽골 제국이 떠오르는 동양적인 배경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제목의 기병 역시 플레이트 갑옷의 기사가 아닌 몽골의 기마병처럼 인마일체의 경지에 다다른 기병을 뜻하고, 마법사 역시 지팡이 들고 파이어볼 날리는 마법사가 아니라 봉황과 같은 상상 속 동물을 소환하는 소환술사에 가깝게 그려진다.
작품의 배경은 '사라'라는 가상의 국가로, 우리나라처럼 북쪽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접경 지역에는 유목민(작품 속 용어로는 '마목인')과의 분쟁이 있다.
사라의 왕은 12년간 선군 코스프레를 하며 지방 세력을 잠재운 후, 본색을 드러내 폭정을 시작한다.
작품의 주인공인 '윤해'는 왕의 조카로, 아버지가 왕의 형인 왕족의 딸이다.
아버지는 동생의 서슬 퍼런 칼날이 두려워 역사책 속에 오로지 한 줄로만 남고 싶다며 폭정에 눈 감은 채 은둔 생활을 이어간다.
그렇게 아버지를 따라 은둔 생활을 하던 윤해에게 한 신흥 귀족 집안에서 혼사가 들어오게 되고, 눈에 띄지 않게 살라던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그 혼사를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만 윤해를 탐탁지 않아 하던 남편감이 윤해를 살해하려 하고, 윤해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구출 받게 되지만, 사고의 책임을 지고 북쪽 변방으로 쫓겨가게 된다.
이후로는 쫓겨간 변방에서 자신에게 감춰진 힘과 운명을 조금씩 알아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까지가 초반의 이야기인데, 솔직히 초반부터 아주 흥미롭지는 않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 윤해가 접혀있던 자신의 날개를 조금씩 펴기 시작하면서 몰입도가 상당히 높아진다.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후반을 제외하면 잘 만들어진 사극을 보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는 전투와 치열한 정치 싸움이 버무려져 상당히 현실감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후반에 들어서야 윤해가 자신의 힘을 온전히 깨닫게 되면서 '마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등장하지만, 그러한 요소가 터무니없이 튀어나오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느낌이었다.
문체나 인물들의 대사 역시 동양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며 판타지라기보단 무협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 작품의 세계관과 어우러져 읽는 맛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지만 판타지 장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집어 들었던 작품인데 중반 이후로는 걱정이 싹 사라졌다.
빠르게 이끌어갈 때와 천천히 감정을 끌어올려야 할 때를 너무도 잘 아는 듯한 그의 완급조절이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어서 300페이지 후반으로 두께감이 있는 작품임에도 금세 읽은 느낌이다.
올해가 저자의 데뷔 20주년이라 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앞으로 발표할 작품들도 계속해서 기대가 될 것 같다.
다음엔 또 어떤 작품세계를 보여줄지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