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 봐 바꿔 봐 뾰족뾰족 미운 말 - 5-9세를 위한 첫 대화법 연습책 소중해 소중해 시리즈
사이토 다카시 지음, 가와하라 미즈마루 그림, 권남희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아이가 학교를 가면서 여러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말투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손위 형제가 있는 아이들은 욕이나 은어가 들어간 거친 말투를 어릴 때부터 배워서 쓰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아이들을 보며 다른 아이들도 물이 들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신경을 톡톡 건드리는 표현들이 가끔씩 들려서 주의를 주고는 하는데, 아이가 좋아했던 책의 저자가 바른 언어생활에 대한 책을 냈다고 해서 아이에게 선물해 주게 되었다.

뾰족하게 날이 선 말투가 타인을 기분 나쁘게 한다는 사실은 아이들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매몰돼서 좋지 않은 표현들이 툭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 점을 잘 캐치해 아이들에게 단순하게 바른 표현을 사용하라고 말하는 대신,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좋지 않은 표현들을 좋은 표현들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이들이 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놀이터에서의 상황을 소개한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많이 하는 놀이 중 하나가 높은 철봉에 매달린다던가, 줄넘기로 이단 뛰기를 하는 등 자신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보여주는 놀이다.

보통은 누군가가 먼저 하면 다른 아이들도 자기도 할 수 있다며 다 따라 하고는 한다.

그럴 때 잘 따라 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으면 "이런 것도 못해?"라며 놀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말을 들은 아이는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괜찮아, 원래 좀 어려워."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놀이가 더 재미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툭툭 내뱉기 쉬운 날 선 표현들을 바르게 바꿔볼 수 있는 방법이 서른 가지나 수록되어 있다.

표지에 '5-9세를 위한'이라고 적혀 있듯이 그 나이대의 어린이들이 읽기 편하도록 글씨와 그림이 큼직한 편이고, 글의 양도 많지 않아 부모가 읽어주기에도 좋다.

책을 잘 읽는 초등학생이라면 다소 시시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언어 습관이 급작스럽게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 읽게 하면 효과가 좋을 것 같다.

아이들 책이지만 내용 자체는 어른들에게도 유효하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때 명령조로 말하는 대신 질문을 한다거나, 잘못된 행동을 비난하는 대신 올바른 행동을 부탁하고, 타인의 감정을 고려해 보다 부드러운 표현을 찾아보는 등의 노력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필요한 스킬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아이에게 말을 할 때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즐겨 읽던 책의 작가인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잘 모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잘 풀어내는 능력이 정말 탁월한 것 같다.

언어습관은 한번 굳어지면 다시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

어릴 때 바른 언어습관을 키워주고자 고민하는 부모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밀한 파괴자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추리소설 같은 제목이지만 원제는 '가스라이트 효과'로 우리가 흔히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르는 용어를 학문적으로 처음 정립한 책이다.

이제는 언론에서도 자주 쓰는 용어라 일반인들도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면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아는 것 같은데, 이 용어가 정확히 무슨 현상을 의미하고 또 어떻게 하면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피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가스라이팅은 자신이 항상 옳다고 여기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현실감을 좌우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가해자는 피해자를 어떤 방식으로든 '판단'하며 피해자는 가해자의 판단이 (실제로는 그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참모습이라고 믿게 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저자가 초반부터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가스라이팅이 곧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호작용으로만 발생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가스라이팅 탱고'라고 부르고 있는데, 마치 탱고처럼 가해자가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려고 할 때 피해자가 여기에 장단을 맞춰주지 않으면 결코 심각한 상황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물론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가해자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피해자 역시 자신이 가스라이팅에 취약하지 않은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가스라이팅을 받기 쉬운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실제로 매우 강하고 똑똑하고 유능하더라도,

이상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 한다.

가해자의 인정이 없이는 자신을 훌륭하고 능력 있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pg 79)

놀라운 사실은 이런 사람들의 경우 공감성이 매우 높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성이 너무 높아서 가해자가 자신을 부당하게 비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이 하는 말이 틀릴 리가 없어. 내가 무언가 잘못을 한 것이 틀림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스라이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가해자들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공감성이 극도로 낮은 경우가 많았다.

단순하게 가해자들을 소시오패스로 분류하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타인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견과 사고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없으면 타인에게 그런 언행을 보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가스라이팅 역시 진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전문가를 찾지 않고, 그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전문가를 찾는 정신병자의 역설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가해자를 총 세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가장 관찰하기 쉬운 유형인 '난폭한 가해자는 말이나 행동으로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경우 주변 사람들이 관찰하기도 쉽고, 피해자 역시 객관적으로 가해자가 나쁘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비교적 피해에서 벗어나기가 쉽다.

하지만 '선량한 가해자'나 '매력적인 가해자'의 경우 그 언행이 보다 교묘하기 때문에 주변 지인들이 피해자의 피해를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피해자 역시 가해자를 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함으로써 피해를 더 키우게 된다.

특히 피해자가 자신을 부정하고 가해자의 사고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라 믿는 경우 가스라이팅의 피해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할 수 있다.

상담을 받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은

"문제가 있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좋은 점은 유지하고 나쁜 측면만 제거할 수 있는가"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pg 178)

저자는 가스라이팅도 그 정도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단계의 경우 피해자가 일찍 깨닫기만 하면 좀 더 단호하게 자신과 상대의 관계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질 수 있지만, 2단계, 3단계에 진입하고 나면 이미 심리적인 장악이 너무 많이 진행돼서 스스로의 의지로는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워진다.

특히 3단계의 경우 중증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정도여서 글로 읽음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책의 후반부에는 이러한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계별, 유형별 맞춤 대책들이 수록되어 있다.

솔직히 나는 단순히 가스라이팅의 개념이 궁금해서 읽었던 것이라 이 부분은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관계를 끊으면 될 일을 왜 이렇게까지 고민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만큼 가해자가 자신의 중요성을 피해자에게 교묘하게 인식시켰기 때문에 피해자는 무엇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조차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깨닫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원하는 삶을 만들겠다는 다짐,

가스라이팅을 배제하려는 노력이다.

그런 노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떨쳐버리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가장 친한 친구와 절교하거나

이상적인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pg 254)

저자 역시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므로 관계를 개선하기 어렵다면 과감하게 끊을 필요가 있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개인적으로도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모든 관계는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라는 것이다.

시작도 나의 의지였듯이 관계의 종료도 내 의지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교묘하게 나를 조종하려는 가해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지금은 너무 일반명사화돼서 친구들끼리도 조금만 의견 충돌이 있으면 '어? 가스라이팅이네?'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지만 책에 소개된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의 사례는 정말 숨 막히는 것이었다.

실제 사례들을 보고 나니 함부로 그런 농담을 던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운이 좋아 마흔이 넘게 살면서 아직 한 번도 이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지만, 사회적으로 충분히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일이기에 관계가 괴로운 사람들이라면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사이클러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전염병으로 인류는 멸망 직전까지 줄어들고 이틈을 노린 대기업들이 정치권력을 모두 독점하며 미래의 서울은 '뉴소울시티'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SF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드디어 발매되었다.

전작들을 모두 읽었던 입장에서 어떻게 대미를 장식할지 기대가 되어 이번 작품도 읽어보게 되었다.

당연히 기업인들에게 넘어간 도시가 정의로울 리 없으므로 세 작품 모두 디스토피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이 책은 시간상으로 앞선 두 작품의 중간에 해당한다.

즉 시간상 순서는 사사기 - 리사이클러 - 쥐독 순이고, 발매 순서는 쥐독 - 사사기 - 리사이클러 순이다.

어떤 순서로 읽어도 무방하겠으나, 저자의 의도대로 발매되었을 터이니 발매 순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작품의 제목인 '리사이클러'는 죽은 사람의 신체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해 잡다하고 위험한 일들을 도맡아 하는 일종의 생체 로봇이다.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를 재활용하는 것이어서 주어진 명령에만 복종할 뿐 별다른 의식이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작품은 이 리사이클러와 함께 사건사고가 터지면 사고를 수습하는 직업을 가진 '동운'이라는 남자의 시각에서 전개된다.

초반에 동운은 자신이 췌장암 말기이며 남은 삶이 반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의사는 빨리 체념하고 리사이클러나 되라는 충고를 건네지만 동운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더 이어가려 발버둥 친다.

이미 앞선 두 작품을 통해 '뉴소울시티'를 지배하는 지배세력은 마인드 업로딩 방식으로 영생을 누린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동운을 괴롭히는 건 그러한 혜택이 1구역을 살아가는 특권 계층에게만 돌아가고 2구역에 사는 자신은 꿈도 꿀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특권 의식에 저항하는 세력이 나타나 끊임없이 사보타주를 이어가지만 죽음을 앞둔 동운에게는 그저 처리해야 할 귀찮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린 통조림이 아니다! 모두 고약한 악몽에서 깨어나라!

탐욕으로 가득한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와라!

(pg 197)

하지만 동운은 1구역에서 있었던 화재를 진압하던 중 금속으로 된 케이스 하나를 몰래 숨기게 되었고, 그 안에 신체를 새롭게 재구조할 수 있는 불로초와 같은 약물이 들어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 약물을 얻고자 노력하는 동운과 체제 전복을 꿈꾸는 자들, 그리고 그들을 막고자 하는 정부 세력의 갈등이 작품 중후반의 이야기다.

저자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았다면 그 끝이 그다지 해피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 작품 역시 그렇다.

당연히 시간 순서상 '쥐독'의 세계가 펼쳐져야 하므로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은 꽤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저자는 세 작품을 통해 기술을 독점한 자가 자본을 축적하고 정치권력까지 가지게 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소수의 지배계층은 영생과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그렇지 못한 나머지 인간들은 정해진 기간을 노동으로 착취당하고 죽어가야 하는 비참한 미래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약 200페이지 중반으로 시리즈 중 가장 얇다.

그만큼 전개도 빨라서 금세 읽은 것 같다.

이 작품 내에서도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있기 때문에 전작들을 반드시 읽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읽고 나면 아무래도 이야기에 더 빨리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무언가 완전히 끝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어서 저자가 마음만 먹으면 동일한 세계관으로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를 더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저자의 말에서 이제 시나리오를 쓰는 삶으로 돌아갈 것 같다고 밝혔지만, 또 재미난 소재가 떠오르면 다시 '뉴소울시티'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우리는 남을 혼내는 것을 멈추지 못할까? - 혼내는 사람, 혼내지 않는 사람을 혼내는 사회
무라나카 나오토 지음 / 도서출판 더북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혼낼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혼이 나서 풀 죽어 있는 아이를 보면 또 마음이 아픈 것이 부모인지라 되도록이면 혼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쑥불쑥 혼을 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책 제목을 보는 순간 꼭 읽어봐야 될 것만 같았다.

저자는 '혼낸다'는 행위를 먼저 정의한다.

언어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여

상대의 행동이나 인식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행위

(pg 25)

꽤 넓은 정의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혼을 내는 입장에서는 화를 내거나 차근차근 말하는 등 차이가 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상대방이 '혼이 나고 있다'라고 인식한다면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즉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해 방어적인 자세가 된다면 그 언행이 모두 '혼을 내는' 행위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저자는 이러한 행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혼을 내는 행위에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의 교정 효과가 없기에 그만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가 즉각적으로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혼을 내지만, 혼이 남으로써 변화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고 한다.

게다가 혼을 내는 원인이 대부분 자신의 만족감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상대의 잘못에 대해 처벌을 하는 행위 자체가 곧 심리적인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심리적으로 보상 회로가 자극되기 때문에 약물에 중독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혼을 내는 행위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행위가 SNS의 발달로 타인의 부적절한 언행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문화가 생겨난 원인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의 과도한 비난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다 우리가 처벌이라는 행위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부적절한 사례의 하나라는 것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혼낼 때, 그 과정에서 자기 효능감이나 처벌 욕구의 충족과 같은

내적 보상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보상이 반복되면, 혼내는 행동 자체가 강화되어 무의식적으로

더 자주 반복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만약 혼내기가 일종의 정서적 쾌감으로 이어진다면,

문제가 실제로 해결되지 않더라도 혼내기를 멈추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습니다.

(pg 61)

물론 혼을 내는 입장에서는 그 행위가 상대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인내를 통해 상대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논리인데, 저자는 이 주장에 단호히 반대한다.

강요된 인내는 결코 사람을 바람직한 결과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혼내고 싶은 욕구가 들 때 그 욕구의 근원이 상대의 변화라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좋고, 욕구의 근원이 단지 상대를 처벌하고 싶거나 자신의 화를 타인에게 전가시키고 싶을 뿐이라면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처벌의 욕구는 본능적인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본능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본능을 억제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는 목소리는 주로 발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즉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더 많은 주목을 받고, 더 큰 발언권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반드시 던져야 합니다.

"혼나는 과정을 통해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은,

어쩌면 말하지 못한 다수의 상처와 침묵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닐까?"

(pg 108)

"우리는 정말 사람을 바꾸고 싶은 것인가요, 아니면 단지 혼내고 싶은 것인가요?"

이제는 진지하게 묻고 대답해야 할 때입니다.

(pg 159)

책의 후반부에는 혼내는 상황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혼을 내는 행위는 곧 상대의 바람직하지 못한 언행이 전제된 것이므로 사후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대응하는 사전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한다.

육아를 예로 들면, 아이가 혼이 날 수 있을법한 상황을 미리 예상해 보고 이를 아이에게 인지시킴으로써 혼을 내야 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우리는 혼을 내는 행위의 효과를 믿고 있고, 또 그러한 행위에 일정 부분 중독되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혼을 내는 행위에 그다지 교정 효과가 없다면 화를 내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딱히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고, 때문에 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에도 공감이 되었다.

200페이지 정도로 얇고 서술도 친절해서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꽤 알찼던 것 같다.

혼을 낸다는 행위는 가정뿐만 아니라 학교, 직장 등 사람들이 모인 자리라면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므로 스스로 누군가를 혼내는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봄직한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병과 마법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SF는 좋아해도 판타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그냥 지나칠 뻔했다가 현란한 표지에 적힌 저자의 이름을 보고 읽게 된 책이다.

이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들이 모두 SF였는데 이번에 판타지에 도전한 모양이다.

SF 작품을 쓸 때에도 아주 하드한 SF를 추구하기보다는 그 안에 서사를 재미나게 잘 이끌어가는 작가였기에 이번에는 판타지의 형식을 빌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되었다.

제목에 충실하게 한 기병과 마법사가 세계의 위협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만 정리하면 상당히 심심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세계관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일단 판타지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해리포터 식의 서양풍 배경이 아니라 고대 몽골 제국이 떠오르는 동양적인 배경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제목의 기병 역시 플레이트 갑옷의 기사가 아닌 몽골의 기마병처럼 인마일체의 경지에 다다른 기병을 뜻하고, 마법사 역시 지팡이 들고 파이어볼 날리는 마법사가 아니라 봉황과 같은 상상 속 동물을 소환하는 소환술사에 가깝게 그려진다.

작품의 배경은 '사라'라는 가상의 국가로, 우리나라처럼 북쪽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접경 지역에는 유목민(작품 속 용어로는 '마목인')과의 분쟁이 있다.

사라의 왕은 12년간 선군 코스프레를 하며 지방 세력을 잠재운 후, 본색을 드러내 폭정을 시작한다.

작품의 주인공인 '윤해'는 왕의 조카로, 아버지가 왕의 형인 왕족의 딸이다.

아버지는 동생의 서슬 퍼런 칼날이 두려워 역사책 속에 오로지 한 줄로만 남고 싶다며 폭정에 눈 감은 채 은둔 생활을 이어간다.

그렇게 아버지를 따라 은둔 생활을 하던 윤해에게 한 신흥 귀족 집안에서 혼사가 들어오게 되고, 눈에 띄지 않게 살라던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그 혼사를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만 윤해를 탐탁지 않아 하던 남편감이 윤해를 살해하려 하고, 윤해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구출 받게 되지만, 사고의 책임을 지고 북쪽 변방으로 쫓겨가게 된다.

이후로는 쫓겨간 변방에서 자신에게 감춰진 힘과 운명을 조금씩 알아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까지가 초반의 이야기인데, 솔직히 초반부터 아주 흥미롭지는 않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 윤해가 접혀있던 자신의 날개를 조금씩 펴기 시작하면서 몰입도가 상당히 높아진다.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후반을 제외하면 잘 만들어진 사극을 보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는 전투와 치열한 정치 싸움이 버무려져 상당히 현실감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후반에 들어서야 윤해가 자신의 힘을 온전히 깨닫게 되면서 '마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등장하지만, 그러한 요소가 터무니없이 튀어나오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느낌이었다.

문체나 인물들의 대사 역시 동양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며 판타지라기보단 무협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 작품의 세계관과 어우러져 읽는 맛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지만 판타지 장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집어 들었던 작품인데 중반 이후로는 걱정이 싹 사라졌다.

빠르게 이끌어갈 때와 천천히 감정을 끌어올려야 할 때를 너무도 잘 아는 듯한 그의 완급조절이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어서 300페이지 후반으로 두께감이 있는 작품임에도 금세 읽은 느낌이다.

올해가 저자의 데뷔 20주년이라 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앞으로 발표할 작품들도 계속해서 기대가 될 것 같다.

다음엔 또 어떤 작품세계를 보여줄지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보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