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심리실험
이케가야 유지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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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기억은 우리의 개성을 만드는 원형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 근거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내 기억은 내 인격을 형성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축적된 소중한 보물이다. 

잊지 말자.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억이 뇌 회로를 따라 미래의 자신에게 전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pg 137)



개인적으로 한 책에 여러가지 잡지식을 때려넣은 책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한 주제를 심도있게 다룬 책들보다는 상대적으로 깊이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제공되다 보니 

다 읽고 나서는 막상 머릿속에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그럼 읽지 않으면 될텐데 또 이런 종류의 책은 이상하게 한번쯤 들춰보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무래도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은 현대인에게 많은 지식을 단시간에 제공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상당히 크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특히나 책을 읽음으로써 무언가 '아는 체'를 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욕구인데 이 욕구를 채우기에

이런 형식의 책보다 더 좋은 형식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서점에 들르면 비슷한 책이 쏟아져 나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비슷비슷한 책들 가운데서도 이 책은 보기 좋은 표지가 먼저 이목을 끈다. 

게다가 뇌과학자가 쓴 심리실험 관련 책이라니.

도저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나 출판사가 나름 고민을 많이 하고 준비한 책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한 책에 63가지 심리실험을 심도있게 다루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할 뿐더러 일반적인 독자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지식을 짧게 전달하면서도 읽는 사람들이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 끝에 취한 전략이 사례들을 최대한 비슷한 카테고리로 묶는 것, 적절한 스토리를 섞는 것,

그리고 예쁘고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곁들이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책을 다 읽을 때 쯤 되니 그런 고민들을 한 흔적들이 느껴졌다.


모든 실험 결과들은 먼저 저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나 누구나 알법한 우화, 최신 기술 트렌드 등 일종의 '썰'을 풀어내며 시작된다. 

그런 뒤 관련된 실험 과정과 결과를 간략히 소개하고 저자의 생각과 결론을 제시하여 마무리하는 형식이다.

꼭지가 63가지나 되기도 하고 책 자체도 400페이지 정도로 약간 두꺼운 정도지만 한 꼭지의 길이가 3-4페이지 정도로 짧고

일러스트도 많은데다 서술에 있어서도 최대한 전문용어를 배제하고 있어서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워낙에 가짓수가 많다보니 실험들 하나하나를 소개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으니,

기억에 남는 것들만 관련된 구절과 함께 몇 개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지루함에 대한 연구가 기억에 남는다.

실험자들에게 전기충격기를 한번 쏘여 불쾌감을 느끼게 하고, 그 전기충격기를 작동시키는 버튼을 앞에 두었다.

그런 뒤 그 버튼 외엔 아무것도 없는 실험실에 15분동안 가만히 앉아있게 했다.

이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기충격기 작동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즉, 심심한 것 보다는 고통스러운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이 2배나 더 누른 빈도가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재미있었다.

생각해보면 요가나 명상 등 아무것도 없이 가만히 있기 위한 훈련을 따로 해야 할 정도로 요즘 사람들은 지루함에 노출될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또한 어린 아이의 기억에 대한 연구도 기억에 남는다.

과연 인간은 언제까지의 기억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을까?

연구를 해보니 놀랍게도 태아였을때의 기억도 의식적으로 꺼내지 못할 뿐 머릿속에 존재하기는 한다고 한다.


임신 후기에 어머니의 몸 밖에서 <반짝반짝 작은 별>멜로디를 일주일에 다섯 번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생후 4개월 된 아기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신기하게도, '반짝반짝 작은 별'을 들을 때만 뇌파에 반응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실험 결과는 우리가 '기억'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경험이 뇌 회로에 각인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pg 136)


기억은 우리의 개성을 만드는 원형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 근거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내 기억은 내 인격을 형성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축적된 소중한 보물이다. 

잊지 말자.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억이 뇌 회로를 따라 미래의 자신에게 전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pg 137)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불현듯 이제 22개월이 된 딸 생각이 났다.

딸 아이가 커서 지금의 일상을 의식적으로 기억해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내가 아빠로서 했던 모든 부족한 모습들도 이미 머릿속에 각인은 되어 있겠구나 싶어 지난 모습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위와 같은 사례 외에도 '뇌과학' 편 답게 줄기세포를 이용해 만들어낸 인공 뇌가 과연 인격을 갖는지, 인공지능이 점차 생활에 도입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인공지능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등 꼭지가 많은 만큼 다루고 있는 주제도 방대하다.

방대한 주제에 대해 짧막하게나마 생각하면서 읽어간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읽고 나서 기억에 많이 남는 책이었다는 느낌은 역시나 별로 들지 않는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읽기에 즐거운 책임에는 틀림없었다.


기억은 천천히, 약간 모호하게 습득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그래야 우리 뇌가 실패 경험을 통해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험 결과로 허츠펠드 교수팀은 '우리 뇌는 이번 실패를 과거의 실패 경험과 대조해 정확하게 인식하는 과정에서 발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러 의미에서 심오한 결론이다. (pg 84)


일반적으로 기분이 좋을 때는 'OO해서 좋았다' 등으로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잘 짚어낼 수 있다.

반면, 기분이 언짢을 때는 '이유 없으 짜증이 난다'와 같은 말이 있을 정도로 본인조차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유 없는 짜증은 무언가 '다른 일'을 참고 또 참으며 자아를 소모한 탓이다. 

다행스럽게도, 자아 소모를 극복하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포도당 보충'이다. (pg 78)

유전자로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우리 뇌는 유전자로 작성된 디폴트 상태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가능성'이라는 능력을 내재하고 있다.

그 능력이야말로 동물이 '뇌'라는 장기를 진화시킨 이유다. (pg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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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 차별과 혐오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나카노 노부코 지음, 김해용 옮김, 오찬호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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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란 배타적인 존재라는 점, 그것은 쉽게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인정하는 것, 인식하는 힘이 '메타인지력'입니다.

집단 괴롭힘은 뇌에 새겨진 기능입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뇌를 속이거나 그 기능을 조절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pg 177)




'학교 폭력'이라는 단어는 이제 보편적인 용어가 된 것 같다.

단순한 물리적 폭력행사 뿐 아니라 집단적인 괴롭힘이나 따돌림까지 넓은 의미의 폭력으로 부를 수 있다면 

학교 폭력이 없는 학교가 대한민국에 과연 존재할지 의문이 들 정도다. 

특히 왕따 문제는 많은 학생들이 이 문제로 삶을 마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를 예방하고자 하는 제도나 교육은 시행되고 있는 것 같지만,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 보다는 오히려 그 수법이나 방식이 점점 더 잔인하고 교묘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학교라는 조직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어릴 때부터 소속되는 조직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집단에 의한 폭력에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고 성장하고 나서는 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눈 앞에 두고도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그런 집단적인 괴롭힘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그 해결을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사실 문제가 심각한 만큼 이런 책들은 워낙에 많이 있다. 특히 '차별'이라는 주제를 다룬 책들은 관심이 많아 읽어본 경험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이 책의 색다른 시각과 접근 때문이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책은 대부분 사회적인 측면에서 고찰하고 문제의 원인을 문화나 역사, 경제 상황, 법 제도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특이하게 사회학자가 아닌 일본의 뇌 과학자이다.  

뇌 과학자의 책 답게 집단적인 괴롭힘의 문화가 사실은 우리의 진화 과정과 호르몬 작용에서 비롯된 것이라 서술하고 있다.

이는 제도나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개선하면 자연히 현상이 개선될 것이라 주장하는 다른 책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접근이어서 

관심이 갔다. 


책 내용을 내가 이해한 바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강한 발톱이나 이빨이 없는 인류는 진화하면서 사회, 즉 집단의 힘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집단의 힘으로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단이 생존에 필수라는 것을 깨달은 인류는 집단의 유지를 위해 불필요한 개체를 선별하고 배제하는 능력도 갖추기 시작했다.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이 과정이 바로 '생크션(sanction, 제재)' 과정이다. 


 

(pg 31)


이 과정에 우리의 호르몬들이 작용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이다.

옥시토신은 애정이나 친근감을 느끼게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호르몬인데, 이 호르몬이 충분히 있어야 집단을 구성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하면 질투나 시기의 감정도 높아지게 되는데, 주로 생크션의 대상을 색출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또한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있는데 이 호르몬의 작용을 돕는 '세로토닌 트렌스포터'가 일본인에게는 미국인에 

비해 유전적으로 더 적다고 한다. 

즉 일본인들이 미국인들에 비해 유전적으로 불안감을 더 잘 느낀다는 의미이고 때문에 생크션의 발현도 더 자주 나오게 된다. 

실제로 학교에서 발생되는 집단 괴롭힘의 빈도도 더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조사한 자료가 없지만 유전적으로 미국인보다는 일본인과 유사할 가능성이 더 높을테니 조사하면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위 두 호르몬이 생크션을 유발하는 간접적인 호르몬이라면 도파민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호르몬도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도파민은 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데, 생크션 과정에서 도파민이 나온다는 것이다. 

(즉 이 과정에 개입한 개인이 쾌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이는 단순히 약자를 괴롭히는 것에 대한 쾌감이 아니라, 생크션이라는 과정이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점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저런 녀석이 우리 반(집단)에 있는 것이 너무 싫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 존재 자체가 민폐다.'라고 규정된 대상을 

괴롭히고 배제하는 것은 집단으로 볼때는 정의로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호르몬들의 영향으로 생크션의 대상이나 정도가 과도하게 발현되는, 이른바 오버 생크션이 발생하게 되며 저자는 이것이 집단 괴롭힘의 본질이라 말하고 있다. 


여하간 나중에 기억나지 않을까 길게 정리했지만 짧게 말하면, 

우리의 DNA 속에 집단에 융화되지 못하는 존재를 감지하고 배제하고자 하는 매커니즘이 수 세대를 거쳐 쌓여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문화나 제도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시각이다.

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자를 찾아내고 이를 배제하고 싶은 충동이 '생물학적 본능'이라면 집단적 괴롭힘은 자연스러운 현상 아닌가?

그렇다면 그 자연스러운 현상을 없애려는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생물학적 본능을 느끼고 이를 충족시키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회나 제도로 규제된 틀 속에서 충족시키고 있다. 

배고프다고 해서 남의 음식을 빼앗아 먹지는 않는다. 또 음식을 도둑질한 자는 자는 처벌을 받는다. 

또한 한편으로는 분명히 배고픈 사람들을 줄이기 위한 정책도 함께 펼치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집단을 지키기 위한 심리 매커니즘이 작동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제도나 문화적으로 충분히 규제할 수도, 개선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개선을 위한 핵심은 바로 '공동체 의식'의 약화다.

난 이 포인트가 이 책이 읽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집단 괴롭힘 문제를 공동체 의식의 '강화'로 해결하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다 같은 우리 학교 학생, 다 같은 우리 반 친구, 다 같은 조직 구성원'이라는 측면이 약하기 때문에 괴롭힘이 일어나고, 

따라서 이를 강조하면 괴롭힘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공동체라는 점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 공동체의 목표에 조금이라도 적응하지 못하거나 발목을 잡는 구성원이 있으면 

이를 배제하는 경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모두가 비슷해야 하고 동료 의식이 강해서 집단 괴롭힘이 생기는 거라면, 각자의 개성을 살려 균일성이 낮은 집단을 만들면 

개인의 목표도 다르고 누가 무임승차를 했는지도 드러나지 않아 제재 행동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애당초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집단을 위해 누가 희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동조 압력도 없어집니다. (pg 148)


반에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있고, 모두가 자기 의견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교사가 조성해줘야 합니다.

협력해서 해야 할 교내 행사를 위해 일시적으로 동료 의식을 갖는 건 괜찮지만, 

전반적으로는 꾸준히 균질성을 낮추는 방법을 실행해야 집단 괴롭힘을 줄일 수 있습니다. (pg 149)



또한 학교 구석구석과 교실에 CCTV를 설치하는 등 보다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해결책도 함께 제시해주고 있다.

책 두께가 얇은 편인데 많은 정보를 담고 있고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어서 나름 알찬 느낌을 주는 책이다. 

게다다 어려운 생물학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고 문장도 구어체로 쓰여 있어서 술술 넘어가는 맛에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집단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법' 부분 등 다소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해당되는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질투할 건덕지를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인데...

집단 괴롭힘의 원인을 피해자의 귀책으로 돌리는 발상인지라 이 부분에서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차별'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줄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었다.

서평에 미처 담지 못한 좋은 구절들을 마지막으로 인용해 둔다. 


우리도 평소 일상적으로 '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리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죠. 문제는 그런 의식이 지나쳤을 때 발생합니다.

학급이나 동아리 활동에서 그룹 대립이 있는 경우 이 실험은 좋은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자'는 메시지나 함께 먹고 노는 것보다는 

어쩔 수 없이 두 그룹이 힘을 합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주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pg 44-45)


학급은 물리적인 구조나 심리적인 구속감 때문에 그 배제 행위에서 도망치는 게 어렵습니다.

이제는 그런 점을 고려해 학급으로 운영되는 구조의 한계와 동료 의식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어른들에게 1년은 순식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특히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에게 1년은 영원 같은 시간일 수 있습니다. (pg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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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완전판 스페셜 박스세트 - 전15권 이타카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미치하라 카츠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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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경로로 돌고 돌아 결국 사게 된 은하영웅전설 박스 세트.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딱히 봐야겠다는 생각은 안했었는데 어느 날 애니가 새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기존 애니는 워낙 옛날 느낌도 강하고 분량도 너무 많아서 생각도 없었는데 새로운 애니라면 이참에 한번 보자 싶어서 보게 되었다가...

"우주를 손에 넣겠다, 키르히아이스" 에 뻑가서 빨리 다음편을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무려 15권이라는 분량과 17만원이 넘는 가격 때문에 많이도 망설였다.

절충안으로 8권짜리 만화책 세트가 있길래 그걸 샀더니 왠걸 만화책 세트는 원작의 아주 일부분만 커버하고 있다는 걸 다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원작 소설을 봐야겠다 싶어 도서관에도 찾아보고 중고로 한 권씩 사는 방법도 생각해봤는데 결국에는 그냥 눈 딱 감고 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소설과 만화책 세트가 모두 책장에 꽃혀 있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정말 한 달 가까이 열심히 읽었다. 심지어는 애 재우고 늘 하던 게임도 멈추고 밤잠을 줄여가며 읽었다. 

본편만 10권에 외전까지 합하면 총 15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지만 읽는 동안 지루하기는 커녕 오히려 남은 책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이 작품과 더불어 SF대작으로 불리는 파운데이션을 읽은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 비교해가며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푸른 글씨는 원문에서 발췌하였다. 작품 중간중간 감명깊은 구절을 찍어 두었는데 몇 권에서 나오는지를 같이 기록하지 않아 부득이

 페이지만 수록하였다.)

(아래부터는 소설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음을 밝힌다.)



작품의 스토리라인은 길이에 비해 단순한 편이다.

우주를 손에 넣겠다며 혜성같이 등장한 독재자 라인하르트와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자 원치않는 전투를 이어가는 양 웬리.

이 숙명의 라이벌 두 사람의 대결이 소설의 기본 골자이다.


이 작품은 SF를 표방하고 있지만 앞서 읽은 파운데이션과 마찬가지로 함선간의 전투나 은하계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원정 등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물론 파운데이션에 비하면 함선간, 개인간의 전투장면이 비교적 많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비중이 다소 딱딱하게 흘러갈 수 있는 정치대결의 곁다리로 흥미를 이끌어가기 위한 정도이지 작품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전장의 묘사도 아주 구체적이라기 보다는 '전세가 이러저러 하다가 어떤 상황의 변화로 이렇게 흘러갔다' 정도로 간략히 묘사되는 편이다.

게다가 전투 장면 묘사의 대부분은 신념에 따라, 혹은 따르는 주군의 명령에 따라 전장에 나선 고위 군인들의 죽음은 물론,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쟁터로 끌려와 희생 당하는 병사들의 무수한 죽음을 허무하고 참혹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잔인함과 무의미함을 비판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작품을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내용은 라인하르트로 대표되는 전제정치와 양 웬리로 대표되는 민주정치 간의 이념 대립이다.

이 주제는 지금도 누구나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정치과정의 결과만 놓고 보자면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정치'가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좋은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정치에서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배웠다.

또한 '철인'이 등장할 가능성과 등장한다 하더라도 장기간 변질되지 않고 통치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더 우월하다고 믿는다.

이 책은 그런 배움과 믿음이 어디까지 확고할 수 있는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한 귀족이 죽어 1만 명 평민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이 짐에게는 바로 정의다.

 굶어 죽기 싫다면 일을 하라. 평민들은 500년간 그리 해왔으니까." (pg 253)


저런 말을 하는 평민 출신의 젊은 독재자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이성적으로는 그래도 민주주의가 갖는 우수함을 믿는다.

라인하르트라는 독재자는 너무도 이상적어서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매력적인 유혹인 건 사실이다.

정말 저런 독재자가 나타난다면 그를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도 제법 많지 않을까?


더욱이 소설 속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중우정치의 폐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국가 차원에서의 전략적 판단 보다는 차기 선거와 자신의 표를 의식해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몬다.


"인간 사회에 흐르는 사상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생명 이상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생각과,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야.

 인간은 전쟁을 시작할 때는 전자를 구실로 삼고, 전쟁을 끝낼 때는 후자를 이유로 들어.

 그걸 수백 년, 수천 년 동안이나 계속했단 말이지..." - 중략 -

"앞으로 몇천 년이나 그런 짓을 계속할까?" (pg 369)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사회가 더 바람직한 사회인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런 측면 때문에 이 작품이 장르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 내리며 명작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답을 정해두고 있다. 하지만 그 답을 받아들이거나 반박하는 것은 역시 독자의 자유이다.


"국민을 해칠 권리는 국민 자신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루돌프 폰 골덴바움, 또한 그보다도 훨씬 소인배지만

 욥 트위니히트 같은 자를 권좌에 앉힌 것은 분명 국민 자신의 책임입니다. 남을 책망할 수 없지요.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전제정치의 죄란, 국민이 정치의 해악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 죄악의 크기에 비하면 100명의 명군이 베푸는 선정도 조그맣게 보일 정도지요.

 하물며 각하처럼 총명한 군주가 출현하는 일이 지극히 드문 것을 고려해 본다면 장단점은 명백해지지 않을지요..." (pg 355)



역시 명성답게 주옥같은 구절들이 정말 많았다.

먼 미래의 상상 속 이야기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한번쯤 생각해봄직한 문구들이 다 옮겨적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추리고 추려 아래 정도로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추려보았다.


본디 인간이란 자기 의사만으로 역사와 세계를 움직이지는 못하는 법이다.

꽃가루를 날라 황무지에 새로운 꽃을 피우는 바람에 의지는 없으나, 이는 분명 바람의 공적인 것이다. (pg 31)


인간은 자신이 악이라는 인식을 견뎌낼 만큼 강하지 못하다.

인간이 가장 강하게, 가장 잔혹하게, 가장 무자비하게 변모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했을 때다. (pg 167)


지상에서 가장 단단한 탄소결정체 다이아몬드가 생성하려면 막대한 지질의 압력이 필요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

권력과 폭력에 저항해 자유와 해방을 갈구하는 정신이 함양되기에는 강자의 억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자유에 좋은 환경이란 자유 그 자체를 타락시킬 뿐 아닐까. (pg 359)


인간의 생명은 별빛이 반짝이는 한순간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정도는 예로부터 누구나 잘 안다.

그래도 별의 영원함과 인간사의 한순간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지, 별이 아니다. (pg 339)



명성에 걸맞게 좋은 스토리와 좋은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이었지만 10권이라는 긴 호흡으로 읽어가면서 그 결말이 용두사미처럼

끝나게 된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두 주요 인물이 모두 작품 속에서 최후를 맞게 되는데 양 웬리의 죽음 이후 작품의 몰입도가 급격히 감소하는 면이 없지 않다.

(실제로 그 이후 읽는 속도가 좀 느려졌었다.)

물론 양 웬리라는 인물에 잘 어울리도록 작가가 의도한 죽음이라는 점은 잘 와닿았다.

다만 그 이후 스토리 전개가 다소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주요 인물의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아쉬움은 오히려 라인하르트 쪽이었다.

소설을 끝내기 위해 약간은 툭 던져놓듯한 죽음이어서 허탈한 느낌도 들었다.  

이번 세트에서는 각 권의 후미에 작가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작가가 이 부분을 나름대로 설명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느낀 아쉬움이 덜어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 한번 보고 싶다고 한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었다.

(작품의 주요 소재가 전쟁이니만큼 다소 남성중심적인 세계관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이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다.)

재미도 보장되면서 아주 생각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대한 분량을 짧게 정리하느라 두 인물 외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양국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각각이 상당히 개성 넘치고

그들 사이에서 보이는 다양한 정략과 모략, 충성과 배신도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그들을 통해 권력과 사회 구조가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찰도 함께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난 해를 마무리하는 책으로 이 작품을 접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아주 기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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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코리리 꼬마 공룡 스티커북
서울문화사 편집부 지음 / 서울문화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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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치고 스티커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 딸도 예외가 아니어서 스티커를 보면 사족을 못쓴다.

그 중에서도 공룡이라면 아주 난리가 난다.


그런 딸을 위해 접하게 된 스티커북이다.

표지를 보면 누구나 알법한 트리케라톱스와 티라노 사우루스가 의외로(?) 뒤에 가 있고

앞에는 웬 노란 쥐 같은 것이 주인공처럼 포즈를 잡고 있다.

알고 보니 이 녀석 이름이 '코리리'고 이 녀석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 있다고 한다.

찾아보니 주인공인 코리리는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발견된 백악기 포유동물인 '코리아살티페스 진주엔시스'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이 외우기에도 이름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귀엽게 코리리 라는 별칭을 붙여준 모양이다.

(이름 정보 출처: https://namu.wiki/w/%EB%82%B4%EC%B9%9C%EA%B5%AC%20%EC%BD%94%EB%A6%AC%EB%A6%AC )


요렇게 생긴 스티커북이다.


펼쳐보면 이렇게 스티커들이 잔뜩 들어 있고,
 


이렇게 붙일 수 있는 칸들이 그려져 있다.

형식은 다른 아동용 스티커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나 배송 오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딸.

택배 비닐을 뜯자마자 '우와'부터 시작한다.
 


'아빠 그거 사진 찍고 주면 안될까'를 얘기하기도 전에 한 조각 뜯어내신다.
 


캐릭터 스티커 뿐만 아니라 재미난 의성어 스티커도 있고 악기나 청소도구 등 소품 스티커도 많아서 다채로운 느낌을 준다.



아이가 워낙 좋아해서 구입하고 얻고 한 것들이 모이니 벌써 꽤 많은 양이 모였다.

이런 책들을 접하다보니 역시 스티커북도 '캐릭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티커북이 실상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음식, 동물, 탈것, 가족 등등 같은 컨텐츠를 다루고 있지만 다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지속적인 구매를 이끌어낼 수 있으려면

캐릭터가 달라지는 방법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코리리 애니메이션도 아이에게 틀어주면 참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코리리 캐릭터 상품들로 아이의 시선이 넘어갈테니 기업 입장에서는 짭짤한 수익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커북은 스티커를 다 붙이고 나면 수명이 다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가 다 붙여진 스티커북을 들춰보며 떠드는 것도 좋아하는 걸 보니 생각보다 그 수명이 길다는 느낌이 들어 다행이었다.


다만 다른 스티커북에 비하면 스티커 수가 다소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스티커의 절대적인 갯수는 사실 다른 책들과 비슷한데 캐릭터보다 자잘한 배경이나 소품 스티커가 많아서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

아무래도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들어가다보니 비용을 맞추려면 스티커 분량을 줄일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치만 이미 애니메이션이 존재하는 검증된 캐릭터이니만큼 그 하나하나의 색상이나 디자인 퀄리티가 훌륭하기 때문에

아이가 확 좋아하는게 느껴지긴 해서 부모된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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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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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이건 네 잘못이 아니란 걸 알지?" 엄마가 말했다. -중략-

"하지만 가끔은 올바른 행동만으로 부족하잖아요?" -중략-

"전부 다 제대로 해도 가끔 상황이 안 좋은 경우가 있죠.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하고 있는 걸 멈추면 안 돼요." (pg 158~159)


간만에 낯설지만 민감한 주제를 풀어낸 소설을 접했다.

작가는 미국 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주제로 45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소설을 발표했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큰 인기를 끌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마블의 팔콘으로 유명한 앤서니 매키도 출연한다고 한다.)

게다가 이 책이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놀라움과 궁금함이 더해져 접하게 되었다.

특히 국내에도 난민 문제가 큰 화두가 되고 있어서 국내에 주는 시사점도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더 읽고 싶었다.


이런 민감한 주제를 가진 책을 평하기란 좀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다.

조금만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을 지적해도 레이시스트처럼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흑인들도 비하하는 동양인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을 조금 남겨보고자 한다.



이 책은 '스타'라는 이름을 가진 십대 소녀의 삶을 통해 현재 미국 내 저소득층 흑인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스타는 저소득층이 모여사는 마을인 가든 하이츠에 살고 있다. 

주민 중 대부분이 흑인이며 마약을 파는 두 갱단이 세력 다툼으로 판을 치고 치안이 불안한 곳이다.

스타의 부모는 이런 마을에서 아이들을 지키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 무리를 하며 아이들을 집에서 멀리 떨어진 

백인들이 주로 다니는 사립 고등학교에 보낸다. 


스타는 이런 곳에서 두 가지의 자아를 갖게 된다.

가든 하이츠의 주민이자 흑인으로서 가지는 자아와 주로 백인 부유층이 다니는 학교의 재학생으로서 가지는 자아이다.

상충하는 두 자아 사이에서도 가족에게는 사랑받는 딸이자 누이로, 학교에서는 백인 남자친구를 사귀며 운동도 잘하는 학생으로

둘 사이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스타에게 얘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난다.

해외토픽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한번씩 등장하는 소재인 백인 경찰이 비무장 상태의 흑인을 쏘아죽이는 사건이었다.

스타는 그 사건으로 소꿉친구였던 칼릴이라는 친구가 눈 앞에서 총에 맞아 숨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후로 총을 쏜 경찰을 구속해야 한다는 흑인들의 견해와, 피해자가 마약상이었고 총기를 휴대할 수 있었던 정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백인 경찰측의 견해가 치열하게 맞서며 소설이 전개된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초입까지이며 이후의 스토리는 지나치게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생략하고자 한다.)



책은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십대 소녀의 심정과 내면의 변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경찰에 대한 트라우마, 소꿉친구의 부당한 죽음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감, 자신이 빈민마을에서 일어난 그 사건의 핵심 목격자라는 것을 

부유한 백인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부끄러움, 자신을 위로하고 지켜주려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 관심에 대한 부담감까지.

이 모든 감정들이 긴 호흡으로 충분하게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내 추악한 진실을 마주한다면 난 가든 하이츠와 그 속의 모든 것이 부끄럽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바보같지만.

내가 어디 출신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바꿀 수 없는데 왜 날 만들어준 것들을 부끄러워했을까?

그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다. (pg 447)


그러면서도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 시각도 놓치지 않고 있다.

언론이 보여주는 양면성(흑인 측면의 미디어와 백인 측면의 미디어가 모두 등장한다.)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고,

미국 사법 시스템, 특히 배심원제가 갖는 맹점도 빠뜨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이 약하기 때문에 미국처럼 배심원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된다.

 이 소설을 보고도 그 주장에 100% 동의할 수 있을지는 읽는 사람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난 우리 동네, 우리 집이 화면에 등장하는 것을 긴장한 채로 쳐다보았다.

방송은 최악인 부분만 꼭 집어 보여주는 것 같다.

마약 중독자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허물어진 시더 그로브 구역, 비행 청소년 집단의 점멸 사인, 흰 천이 덮인 길가의 시신.

룩스 부인의 케이크는? 루이스 아저씨네 이발관은? 루벤 아저씨의 식당은? 병원은? 우리 가족은? 나는? (pg 250)


저자가 하고픈 말이 많아서인지 450페이지라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전개가 빨라 술술 읽어갈 수 있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무거운 감정만 느끼는 것도 아니다.

십대들의 이야기이니만큼 십대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말투를 살린 개그코드들도 곳곳에 숨어있다.

(흉악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늘 우울하게 사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 같기도 하다.)

힙합이나 드라마 등 미국 문화를 잘 아는 독자라면 더욱 공감가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감상은 다소 복잡하다.

누군가 이 책이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를 거부감 없이 잘 전달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주저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흑인을 너무 억지스럽게 피해자화 한다거나 백인을 일방적으로 악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아서

내 나름으로는 균형을 잘 살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집단의 일부가 갖는 특성이 그 집단 전체를 매도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이는 요즘의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보여준 난민에 대한 혐오는 이 책에서 숨진 칼릴을 바라보는 스타의 친구, 헤일리의 시각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난민에 대해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이 '소설로서 재미가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난 대답을 다소 망설일 것 같다.

왜냐하면 중반을 넘어서기 전에도 대충 이야기의 흐름이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고 별다른 반전이나 서사의 변화 없이

그대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쉽게 별 다섯개로 이 책을 평가하기가 어려웠다.

(심지어는 누가 다치거나 죽고,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 스타가 무슨 행동을 하게 될지까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큰 목소리를 내는거죠? 우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까요."

"그렇단다. 우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럼 저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네요." (pg 176)


저 구절이 450페이지 중 176페이지에 등장하는데, 이쯤 읽을 때 '대충 이런저런 스토리로 흘러가겠군' 했었는데

역시나 그대로 이야기가 끝이 나서 다소 아쉬웠다.


이미 미국에서는 영화가 개봉을 한 모양이다.

유투브 등을 찾아보면 이미 영화의 트레일러가 올라와 있는데, 책을 읽고나서 트레일러를 보니 느낌이 아주 색달랐다.

아무래도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했던 등장인물들과 실제 배우 캐스팅이 완벽히 매칭될 순 없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 책을 접하고 싶은 사람들은 트레일러를 먼저 보고 책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아쉬움을 남기는 책이었지만 영화가 국내에도 개봉이 된다면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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