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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 ㅣ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심리실험
이케가야 유지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12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기억은 우리의 개성을 만드는 원형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 근거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내 기억은 내 인격을 형성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축적된 소중한 보물이다.
잊지 말자.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억이 뇌 회로를 따라 미래의 자신에게 전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pg 137)
개인적으로 한 책에 여러가지 잡지식을 때려넣은 책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한 주제를 심도있게 다룬 책들보다는 상대적으로 깊이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제공되다 보니
다 읽고 나서는 막상 머릿속에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그럼 읽지 않으면 될텐데 또 이런 종류의 책은 이상하게 한번쯤 들춰보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무래도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은 현대인에게 많은 지식을 단시간에 제공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상당히 크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특히나 책을 읽음으로써 무언가 '아는 체'를 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욕구인데 이 욕구를 채우기에
이런 형식의 책보다 더 좋은 형식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서점에 들르면 비슷한 책이 쏟아져 나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비슷비슷한 책들 가운데서도 이 책은 보기 좋은 표지가 먼저 이목을 끈다.
게다가 뇌과학자가 쓴 심리실험 관련 책이라니.
도저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나 출판사가 나름 고민을 많이 하고 준비한 책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한 책에 63가지 심리실험을 심도있게 다루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할 뿐더러 일반적인 독자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지식을 짧게 전달하면서도 읽는 사람들이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 끝에 취한 전략이 사례들을 최대한 비슷한 카테고리로 묶는 것, 적절한 스토리를 섞는 것,
그리고 예쁘고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곁들이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책을 다 읽을 때 쯤 되니 그런 고민들을 한 흔적들이 느껴졌다.
모든 실험 결과들은 먼저 저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나 누구나 알법한 우화, 최신 기술 트렌드 등 일종의 '썰'을 풀어내며 시작된다.
그런 뒤 관련된 실험 과정과 결과를 간략히 소개하고 저자의 생각과 결론을 제시하여 마무리하는 형식이다.
꼭지가 63가지나 되기도 하고 책 자체도 400페이지 정도로 약간 두꺼운 정도지만 한 꼭지의 길이가 3-4페이지 정도로 짧고
일러스트도 많은데다 서술에 있어서도 최대한 전문용어를 배제하고 있어서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워낙에 가짓수가 많다보니 실험들 하나하나를 소개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으니,
기억에 남는 것들만 관련된 구절과 함께 몇 개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지루함에 대한 연구가 기억에 남는다.
실험자들에게 전기충격기를 한번 쏘여 불쾌감을 느끼게 하고, 그 전기충격기를 작동시키는 버튼을 앞에 두었다.
그런 뒤 그 버튼 외엔 아무것도 없는 실험실에 15분동안 가만히 앉아있게 했다.
이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기충격기 작동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즉, 심심한 것 보다는 고통스러운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이 2배나 더 누른 빈도가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재미있었다.
생각해보면 요가나 명상 등 아무것도 없이 가만히 있기 위한 훈련을 따로 해야 할 정도로 요즘 사람들은 지루함에 노출될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또한 어린 아이의 기억에 대한 연구도 기억에 남는다.
과연 인간은 언제까지의 기억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을까?
연구를 해보니 놀랍게도 태아였을때의 기억도 의식적으로 꺼내지 못할 뿐 머릿속에 존재하기는 한다고 한다.
임신 후기에 어머니의 몸 밖에서 <반짝반짝 작은 별>멜로디를 일주일에 다섯 번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생후 4개월 된 아기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신기하게도, '반짝반짝 작은 별'을 들을 때만 뇌파에 반응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실험 결과는 우리가 '기억'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경험이 뇌 회로에 각인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pg 136)
기억은 우리의 개성을 만드는 원형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 근거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내 기억은 내 인격을 형성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축적된 소중한 보물이다.
잊지 말자.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억이 뇌 회로를 따라 미래의 자신에게 전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pg 137)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불현듯 이제 22개월이 된 딸 생각이 났다.
딸 아이가 커서 지금의 일상을 의식적으로 기억해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내가 아빠로서 했던 모든 부족한 모습들도 이미 머릿속에 각인은 되어 있겠구나 싶어 지난 모습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위와 같은 사례 외에도 '뇌과학' 편 답게 줄기세포를 이용해 만들어낸 인공 뇌가 과연 인격을 갖는지, 인공지능이 점차 생활에 도입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인공지능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등 꼭지가 많은 만큼 다루고 있는 주제도 방대하다.
방대한 주제에 대해 짧막하게나마 생각하면서 읽어간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읽고 나서 기억에 많이 남는 책이었다는 느낌은 역시나 별로 들지 않는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읽기에 즐거운 책임에는 틀림없었다.
기억은 천천히, 약간 모호하게 습득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그래야 우리 뇌가 실패 경험을 통해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험 결과로 허츠펠드 교수팀은 '우리 뇌는 이번 실패를 과거의 실패 경험과 대조해 정확하게 인식하는 과정에서 발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러 의미에서 심오한 결론이다. (pg 84)
일반적으로 기분이 좋을 때는 'OO해서 좋았다' 등으로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잘 짚어낼 수 있다.
반면, 기분이 언짢을 때는 '이유 없으 짜증이 난다'와 같은 말이 있을 정도로 본인조차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유 없는 짜증은 무언가 '다른 일'을 참고 또 참으며 자아를 소모한 탓이다.
다행스럽게도, 자아 소모를 극복하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포도당 보충'이다. (pg 78)
유전자로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우리 뇌는 유전자로 작성된 디폴트 상태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가능성'이라는 능력을 내재하고 있다.
그 능력이야말로 동물이 '뇌'라는 장기를 진화시킨 이유다. (pg 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