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부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7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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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삶의 절정을 이루는 황홀경이 있다.

그리고 삶은 그 황홀경 너머로 오를 수는 없다.

그런 점은 일종의 생존의 역설이다.

이 황홀경은 가장 생기 있게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다는 것을 완전히 망각했을 때 찾아온다.

이 황홀경, 생존에 대한 망각은 예술가가 창작열에 사로잡혀, 불타는 격정 속에 자신을 상실할 때 오는 것이고, 

전장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채 항복을 거부하는 병사에게 오는 것이다. (pg 57)



개인적으로 바쁜 일이 있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에는 책을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책 소개를 보니 호기심이 일어 도저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개 한 마리가 자신의 야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작가의 이력을 보아하니

개라는 동물을 통해 인간 사회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한 폰트로 적힌 강렬한 제목에 웬 EBS 다큐 썸네일 마냥 늑대 두 마리의 사진이 실린 표지.

개인적으로 책은 그 속의 내용으로 평가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6월에 받아 들기엔 다소 당혹스러운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그 당혹감도 책을 펼치고 1장을 읽으면서 싹 사라졌다.

뒤에 해설까지 포함해도 160여 페이지로 얇은 편인데다가 글씨가 조밀한 것도 아니어서 읽은 시간으로 따지면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것 같은데 읽으면서 화장실도 가지 않고 한 자리에서 다 읽었다.  

그 두 시간 동안 한 개의 삶을 스펙터클하게 지켜본 느낌이다.


읽기는 매우 즐거웠지만 소감을 쓰기는 다소 난해하다.

개를 통해 인간 사회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던 애초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벅이라는 개의 삶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혹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어지는 환경 변화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키며 삶에 대한 의지를 이어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것에 가까웠다.

 

평화로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인간에게 속아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 벅은 서서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익혀간다.

하지만 그 적응의 과정은 '새로운 것'을 깨닫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잊고 있던 무언가'를 되찾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경험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자신의 조상, 인간에게 길들여지기 그 이전 세대의 본성까지도 찾아 나서게 된다.

(블랙팬서 영화를 보았다면, 티찰라 왕이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어 선대 왕들에게 지혜를 전수받는 장면이 떠오르는 구절이 등장한다.) 


벅이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과정 중에 인간은 옆에서 때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때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벅의 주변환경을 변화시킨다.

환경의 변화는 벅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벅은 자신이 진정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즉 스스로를 자신이 원하는 최상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나간다. 


이리하여 삶이 얼마나 꼭두각시와 같은가를 증명이나 하듯, 원시의 노래가 벅의 몸속으로 파도처럼 흘러들었고 

그는 다시 본성을 되찾았다.

그가 이처럼 원시적 본성을 되찾게 된 것은 사람들이 북쪽 지방에서 황금을 발견했기 때문이며, 

매뉴얼이 자신의 임금만으로는 아내와 여러 자식들을 도저히 부양할 수 없는 정원사 조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pg 39)


삶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인다고 여기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도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국민들을 상대해야 하며 이재용도 검찰 조사를 피할 수 없었다.

하물며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오죽할까.


삶에서 변화는 내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찾아온다.

이런 변화 속에서 진짜 나 자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변화 속에서 함께 변화해야 할 모습과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모습은 무엇인가. 

이 책은 나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져 주었다.

짧고 굵은 소설이었지만 감상만은 가볍지 않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원문인 '콜 오브 더 와일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어 국내에도 개봉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가 주연이라 하니 더 관심이 간다. 

코로나 여파로 흥행에는 실패한 모양이지만, 예고편을 보니 원작의 스토리라인은 비교적 잘 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간이 아닌 개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인지라 개의 본성 찾기 과정을 얼마나 상세히 담아 낼 수 있었을지 걱정도 되지만)

극장에는 가지 못했으나 추후 스트리밍으로라도 접하게 되면 원작과 비교하며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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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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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복잡할 때 책을 읽고는 한다는데 나는 마음이 복잡하면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지난 3월에 이직을 하면서 거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여러모로 심란해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럴 때면 재밌는 소설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접하게 된 추리소설이다.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제목에 작가가 일본에서 손꼽히는 추리소설의 거장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작가는 대범하게 책 도입부에서 '이 책에서는 쌍둥이 트릭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히며 독자들에게 승부를 건다. 

책에서 등장하는 사건은 크게 두 가지이다.

둘이 너무도 똑같이 생긴 한 쌍둥이 형제가 외모를 이용한 강도 행각을 벌인다. 

이들은 형제 중 누구 하나로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는 한 둘 모두 함부로 체포할 수 없다는 법의 함정을 이용해 

얼굴도 가리지 않고 대범하게 범행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관설장이라는 한 시골 호텔에서는 서로 연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 6명이 무료 숙박이용권에 당첨되어 모이게 된다.

하지만 이는 누군가가 자신의 복수를 위해 일부러 모은 것이었으며 사람들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하나하나 살해당한다. 

이 두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가며 해결해가는 내용이다. 


얼핏 전혀 연관성 없이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사건이 실제로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그 배후에 있는 진짜 범인, 그리고 그 범인이 만든 트릭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가는 과정이 이 책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지나치게 상세히 적는 것은 추후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생략하고자 한다.)


두 사건 중 '살인'은 관설장 사건에서만 등장하고(물론 강도 사건에서도 후반에 우연히 사람이 죽게 되긴 하지만) 

고립된 공간에서 이어지는 연쇄살인이라는 점이 자극적이지만, 사건 그 자체의 흥미로움은 쌍둥이의 강도 쪽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범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잡을 수 없는 경찰의 답답함과 이를 조롱하듯 다음 범죄로 넘어가는 쌍둥이 형제들의 대담함 뒤에

이를 조종한 배후의 인물이 있다는 점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전체적으로 '재미'라는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작품이었다.

실제로 책을 받아든 후 다 읽을 때까지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빠른 서술과 전개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사건들에 빠져들 수 있었다. 


다만 장르적 한계라고 해야 할지...일반적으로 소설에서 기대하는 좋은 문구나 문장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 서평에는 인상적인 구절을 뽑을수가 없었다.)

또한 고립된 공간에 갇혀 죽음의 공포와 대면한 사람들의 심경 변화 같은 세부 묘사들이 적어서 다소 아쉬웠던 것 같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답게 사건 위주로 서술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라는 요소 하나만으로도 다른 단점들을 다 씹어 먹는다는 느낌이었다. 


사족이지만, 이 책을 접할 사람들이라면 책이 쓰여진 시기와 작품 속 배경이 모두 70년대라는 점을 염두해두기 바란다. 

휴대폰이 보급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가능한 상황 연출이 꽤 있기 때문이다. 

꽤 오래된 작품이어서 이후에 많은 작가와 작품들에게 영향을 주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관설장 연쇄살인사건 부분이 마치 예전에 좋아했던 만화인 소년탐정 김전일의 한 에피소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이 추리소설에서는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여하간 꽤 오래 책을 잡지 않았었는데 나의 책태기(?)를 한번에 깨준 고마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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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의 과학공부 -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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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에 들이는 노력은 눈물겹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대학 도서관에는 전공서적보다 영어책 보는 학생이 더 많다.

영어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불과 수천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일부가 사용한 언어에 불과하다.

영어에 들이는 시간의 10%만이라도 우주의 언어인 물리학과 수학에 써보면 어떨까? (pg 107)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최근들어 과학 관련 교양서적을 찾아 읽고 있다.

뭔가 새로운 시각에 대한 갈망이 커져서 그런 모양이다.

이번에는 김상욱 교수의 책을 골랐다.


사실 김상욱 교수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김상욱의 양자공부'라는 책을 통해 저자를 영상 매체가 아닌 책으로 처음 접할 수 있었다.

읽는 동안에는 뭔가 이해가 되는 것 같고, 뭔가 알아가는 것 같아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기억되는데

막상 내용을 정리하려고 블로그 창을 여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번 더 읽고 정리해 봐야지' 했지만 역시나 요즘처럼 읽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이 책을 읽고서는 그런 우려가 없었다.

무언가 우리가 평소에 모르고 있을법한 엄청난 과학적 사실들을 알려준다기 보다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일반 대중인 우리가 어떤 태도로 접근하면 좋을지에 대한 과학자의 진솔한 이야기에 가깝다.

특히 대학이라는 곳에 몸담고 있으면서 저자가 느낀 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 있다.


학문의 융합, 문이과의 통합이 요즘 학문과 교육의 화두이다.

하지만 교양이라는 관점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그동안 평등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을 교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함께 가기 위해 우선 평등해야 한다. 과학은 교양이다. (pg 14)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에 들이는 노력은 눈물겹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대학 도서관에는 전공서적보다 영어책 보는 학생이 더 많다.

영어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불과 수천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일부가 사용한 언어에 불과하다.

영어에 들이는 시간의 10%만이라도 우주의 언어인 물리학과 수학에 써보면 어떨까? (pg 107)


4차 산업혁명이다, AI 시대에 대한 대비다 하며 정부에서 강조하는 인재상이 창의적인 인재, 융복합적 사고가 가능한 인재이다.

그러다보니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도 이런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것이 미래의 대학 경쟁력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정부의 따뜻한 지원금이 당장 대학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면서 학제간 벽 허물기라던가 교과목 수준에서의 융복합 시도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에서 과학과 인문, 사회학이 정말 대등한 비율로 다뤄지고 있는지는

행정 측면에서 대학을 바라보는 내 수준에서 볼 때에도 충분히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문사철을 가르치면서 인문사회계 학생들에게는 고작해야 코딩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 입장에서도 반론할 여지가 많기는 하다.  

이공계가 취업이 월등히 잘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문사회계열을 선택한 이유를 조사해보면,

'인문사회계열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이공계열 공부가 싫어서'인 경우가 더 많다.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관련 강좌를 열어도 수강신청에서 인기가 없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이들 과목을 필수로 지정해서 수강하게 한다면 학생들의 중도탈락이 증가할 우려가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기도 어렵다.


때문에 일단 학생들이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보다 쉽고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이를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신은 성직자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독점되었다.

이는 성경이 라틴어로 쓰여 있어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의 독점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였고, 우리는 그 시기를 중세암흑기라 부른다. (중략)

과학적 지식 역시 독점되면 해악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과학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과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

과학에 관심을 갖지 않는 시민사회는 그 중요한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pg 166)


책 제목이 과학 공부이긴 하지만, 과학에 국한된 내용만 다루고 있지는 않다.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이라는 부제에 맞게 다양한 주제에 대한 과학자의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관에 대한 주장은 매우 신선했다.


역사시대의 역사는 이미 민족과 국가, 전쟁이 존재하는 세상을 다룬다. (중략)

역사를 역사시대에 국한하는 한, 민족과 국가의 이익에 따라 이용될 것이 자명하다.

이런 역사는 사회를 보는 우리의 관점을 애초부터 국가와 민족이라는 프레임 속에 가두게 된다. (중략)

이런 점에서 '빅 히스토리'라는 새로운 관점은 역사를 보는 신선한 틀을 제공한다.

모든 것은 빅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별과 원소의 탄생, 태양계와 지구의 탄생, 생명과 인류의 탄생, 농경의 탄생, 세계의 연결,

변화의 가속, 그리고 미래이다. (중략)

이런 관점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인류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21세기의 역사관이라 생각된다. (pg 47)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되는 범국가, 범민족의 역사관이다.

물론 국가와 민족이라는 프레임을 없애는 것이 과연 옳은가부터 가치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므로

이는 학문적인 논의가 꽤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이 없다면 전세계적으로 경제력에 바탕을 둔 계급사회가 부활할 가능성도 크므로 마냥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도 어렵다.)


그 밖에도 대학에 몸담고 있는 과학자로서 우리나라의 대학과 고등교육이 가야할 길에 대한 고찰도 빼놓지 않고 있다.


故 고현철 시인은 대학, 아니 우리 사회의 카나리아였다.

탄광의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광부들은 재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보고도, 그 많은 비민주적인 사건들을 보면서도 무감각해졌거나 애써 외면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중략)

부산대의 총장직선제는 지켜냈지만, 대학 민주화, 아니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이제 다시 시작점이다.

카나리아가 죽는 것을 보고도 가만 있는 광부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하다. (pg 101)


부끄럽지만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고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대학을 외부평가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이 직업이 되고부터는 총장 선출 방식이 재정지원사업 지표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개별 대학에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대학 현실에서 총장의 선출 방식은 대학의 수많은 고민거리 중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 이야기로 시작해서 대학의 민주화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에 걸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영상 매체에 등장하는 그와 마찬가지로 책도 쉽고 친절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읽기가 편했다.

그러면서도 과학적인 사고가 무엇인지를 맛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즐겁게 읽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과연 양자 공부는 언제쯤 완전히 이해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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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왕 무시무시 놀라운 동물 대백과 과학 학습 도감 최강왕 시리즈 16
시바타 요시히데 지음, 고경옥 옮김 / 글송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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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워낙 동물 사진이 들어간 책을 좋아하니 여러권 집에 구비해 두게 된다.

그 중에서도 계속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최강왕' 시리즈는 아이들의 이목을 끄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어른 눈으로 봤을 땐 뭔가 정신없어 보이는 책이지만 서점에서 이 시리즈가 진열된 곳에 가면 늘 관심을 보인다.


이렇게 생긴 표지를 하고 있다.

이 시리즈만 전문적으로 디자인하는 사람이 있는건가 싶을 정도로 시리즈 전체가 비슷한 디자인이라 

제목과 내용을 유심히 봐야 아이가 원하는 책을 고를 수 있다.

(물론 시리즈를 다 사주면 좋겠다만...)



이번 책의 가장 좋았던 점은 아래와 같이 평소에 동물원 등에서 구경하기 어려운 동물들의 사실적인 사진들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특히 먹이활동을 하는 사진들이 잘 나와있다.

일부 육식동물들의 경우 피가 잔뜩 묻은 동물들의 사진이 등장하기도 해서 '아이가 보기엔 다소 잔인하지 않은가?'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자연 그 자체는 잔인하지도 불쌍하지도 않은 것이므로 있는 그대로를 아이가 보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자에게 먹히는 얼룩말은 불쌍해보일 수 있지만 사냥을 하지 않으면 굶게 되는 새끼 사자도 불쌍하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연의 섭리를 아이와 함께 책을 보며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아래와 같이 동물을 보며 아이들이 궁금해할 수 있는 것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 점도 좋았다.

정신없는 디자인 탓에 정보적인 측면이 다소 약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아이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텍스트 양이 많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할 수 있도록 한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책을 막 시리즈로 전부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책만 구하고 있는데, 

이 책 시리즈는 아이에게 줄 때마다 너무 좋아해서 부모된 입장에서 매우 뿌듯하다. 

아직 글자를 읽지 못해서 내가 읽어줘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책을 잡고 집중하는 딸을 보면

읽어주는 노고가 충분히 보상되는 느낌이 든다.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원에 좀 데려가고 싶은데 춥지 않으면 미세먼지가 기승이고 최근에는 바이러스까지 난리니 

도무지 나들이를 갈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이와 함께 동물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책을 선물할 수 있어서 아이에게 좀 덜 미안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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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불평등 시점
명로진 지음 / 더퀘스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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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당신이 그들보다 수입이 좀 좋다고 해서 인생의 다른 분야에서 더 뛰어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당신은 사장이지 선생이 아니다. 어떤 사원은 당신보다 학력도 학벌도 학식도 더 좋다. (pg 110)



후련하다. 시원하다.

책을 덮으면서 떠오른 느낌이다.


살짝 얇은 두께에 내용도 대체로 심플하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허심탄회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러면서도 작가가 가진 고전 인문학 지식과 접목해 거침없이 펼쳐낸 책이다.


사실 한국 사회가 불평등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다만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지방 소도시 출신으로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처음 갔을 때 난 강남 8학군 출신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자기 친구들은 이런 학교 안온다며 자신의 인생을 한탄했다.

여기서의 이런 학교란 소위 S.K.Y 바로 아래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피터지게 경쟁하는 대학 중 하나였다.

나는 3년 내내 개같이 공부해서 겨우 온 학교였고 내 고등학교 동창들은 대부분 나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OT 자리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보며 인생 처음으로 불평등을 인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도 고등학교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사는 저 친구의 삶보단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내 인생이 낫다며 정신승리(!)를 하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이 책 역시 그렇다.

이 책을 읽는다고 불평등이 해소되지도, 내가 더 잘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껏 부자들을 씹기라도 해 보면 뭔가 뿌듯한 정신승리를 맛볼 수 있다.


작가는 원래 세상이 불평등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불평등한 세상을 수긍하고 살다보면 

이렇게 계속 불평등한 길로 갈 수 밖에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쉽고 진솔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이 하는 게 아니다. 백성이 하는 거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혁파하고 보다 나은 사회,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나라로 가는 길-그 진보의 도정은

대통령이 아니라 나와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pg 168)


전반적으로 재밌는 책이었지만 특히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사람들은 실명으로 등장하고, 

실명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들은 이니셜을 써가며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대목들이 아주 재미있다. 

그러다보니 들어가는 글에서 '박정희급'이 아니면 언급하지 않았으니 고소하진 말아달라며 엄살을 피우기도 한다.


남들보다 잘 사는 집 자제로 좋은 대학에 갔다면 조용히 지내라.

가난한 집 자식으로 같은 대학에 들어온 친구가 있다면 그 앞에서 입을 다물어라.

그들은 당신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감정노동을 겪으며 그 자리까지 왔다.

부잣집 자식이고 허우대 멀쩡하고 명문대까지 갔다면, 언젠가 청문회에 불려 나온 재벌 3세처럼 어리바리하게 굴어라.

그게 잘난 사람의 생존법이다. (pg 24)


누구라고 딱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대체로는 누군가의 얼굴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실명을 거론할 때에도 아래와 같이 통렬함을 잃지 않고 있다.


에스메랄다라는 인물 성격의 핵심은 결핍인데 함연지에게는 결핍이 결핍되어 있다. (중략)

3백억 원이 아니라 3조 원이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는 삶은 누구에게나 괴롭다.

다만 누군가 인정을 위해 애쓸 때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뿐이다. (pg 29)


당사자라면 기분이 살짝 나쁠지도 모르겠다.

다만 읽는 사람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면 느끼는 부분이 더 많을 수 있다.

직장생활을 비판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하는데 상당부분 공감이 되었다.


당신이 그들보다 수입이 좀 좋다고 해서 인생의 다른 분야에서 더 뛰어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당신은 사장이지 선생이 아니다. 어떤 사원은 당신보다 학력도 학벌도 학식도 더 좋다. (pg 110)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고전을 통해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것도 종종 등장하는데 하나만 소개하자면 아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 어떤 상태인지를 자가점검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pg 124)



아래부터는 사족이다.

작가가 한 말이 워낙 공감이 가고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보는 듯 했지만 딱 하나 공감이 안가는 구절이 있어 굳이 옮겼다.


아마 대학에도 그런 직원이 있을 거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아니, 체육관에 학생은 공짜로 들어간다고? (중략) 학생 1인당 월 3만 원만 받아도 1년에 십수 억이 생기는데!' (중략)

뭐 요런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직원 말이다. (pg 31)


내가 겪은 바, 대학의 직원들은 저런 힘이 없다. 

고작해야 위에서 '체육관에 회비를 얼마를 받아야 인건비 대비 수익이 나올지 계산해보라'는 명령을 이행하는 존재일 뿐이다.

물론 내가 전국의 대학을 대변하진 않으니 작가가 속한 대학의 직원은 그런 힘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저 작가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양반이니 대학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일 수도 있다.  


최근에 신상에 변화가 생겨서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가고 있어서 조금 부담되는 시점이었는데

책을 잡자마자 반절을 읽었을 정도로 즐겁게 읽은 책이었다.

이런 책의 소감을 쓰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그냥 내가 듣고 싶었던 말만 족족 써둔 것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하는데 이제는 나오는 즉시 찾아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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