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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동화가 아이를 망친다 - 부모가 아차 하는 사이
유종민 지음 / 타래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자발적으로 동화를 고르지 못하는 아이들은 순전히 부모의 선택에 의지하며, 부모의 입을 통해 동화의 스토리를 파악한다. -중략-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강요하게 된다.
자신이 이미 어렸을 때 읽었고, 남들도 다 읽는 동화인데 뭐가 문제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스스로 중독된 사람은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야 하는데, 잘못된 선택을 남도 아닌 자신의 자식에게 대물림한다는 데 있다. (pg 29)
나는 틀리지 않았다.
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들었던 생각이다.
아이가 슬슬 말귀를 알아 들어감에 따라 책을 읽어주는 일이 많아졌다.
읽어주다 보니 어릴적 나도 봤던 내용인데 이상하게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많았다.
기억나는 것중에 하나가 '완두콩 공주'라는 동화였다.
침대에 콩을 숨겨놓고 그 콩 때문에 불편해서 잠을 자지 못하는 공주만이 진정한 공주라는 황당무계한 내용이었다.
그때도 한번 보고서는 다신 같이 보지 말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이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그 동화가 무려 동화의 거장 '안데르센'의 동화였다.
이 책에서는 거장 안데르센은 물론, 동화로 유명한 그림형제의 작품들과 우리나라의 고전문학까지 아우르며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들이 아이들에게 의도되지 않은 부정적인 영향들을 미치게 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악영향이 바로 '성 역할의 고착화'일 것이다.
이 부분은 최근들어 이 책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분이어서 그렇게까지 새롭게 들리진 않았다.
신데렐라도, 백설공주도, 콩쥐도, 춘향이도 항상 여성은 스스로 해결하기 버거운 어려움에 빠지고
어디선가 왕자나 장원 급제한 남성이 나타나 구해준다. 그러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
남성은 아무 연관성도 없지만 아름답긴 한 여성의 어려움을 기꺼이 제거해주고 여성은 마치 보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을 내어준다.
(심지어 초면에 키스도 서슴치 않는데 여성은 그 사실을 알고서도 화 한번 내지 않는다.)
이런 동화 속 스토리 전개는 비단 동화 뿐만 아니라 아직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사라져가는 추세라지만)
이런 현상에 대한 설명은 이 책에 저자가 잘 해두어서 관련 페이지를 꼭 인용하고 싶었다.
(pg 187)
이 책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진 '성 역할의 고착화'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심어주는
다양한 편견들에도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동화에서 주인공이나 선한 인물이 여자라면 아름답게, 남자라면 잘생기게 그린다.
반면 악당이나 주변 인물의 경우 못생기게 그린다.
특히 그림 동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포맷이 주를 이루면 아이는 못생기고 추한 것은 악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pg 42)
이런 인식은 매우 심각할 수 있다.
아이 입장에서는 이런 동화에 노출되다 보면 은연중에 예쁘고 잘생긴 아이는 뭘해도 좋게 보이고,
못생긴 아이는 왠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생기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그런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
최근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PC방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얼굴을 공개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댓글로 그의 외모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살인하게 생겼다는 둥, 게임이나 애니 같은 것만 보는 히키코모리 같다는 둥 그의 외모를 둘러싼 조롱이
그의 반인륜적인 범죄행위 자체나 경찰의 미흡했던 초기 대처에 대한 규탄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 만약 그 용의자와 닮은 아이가 주변에 있다면 어떻겠는가?
혹은 나 자신이, 혹은 내 아이가 그 용의자와 닮았다면 어떻겠는가?
외모를 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는 안도감만으로 사람의 외모를 행동의 결과와 매칭시키는 오류를 범한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러한 언행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인식하지 못한다.
좀 더 생각해 보면, 비단 좋고 나쁜 이미지만 편견을 갖게 하는 것도 아니다.
안경을 쓰면 똑똑하다, 키가 크면 우유부단하다, 뚱뚱하면 지저분하다, 마르면 신경질적이다 등등
외모와 등장인물의 성격을 매칭시켜 고착화하는 동화가 생각보다 많다.
이런 매체들을 접하다보면 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을 외모로 분류하게 되고,
상대방과 이야기 한번 나눠보기도 전에 선입견을 갖게 된다.
이런 편견 외에도 고전 문학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폭력성도 지적하고 있다.
문맥상 백설 공주와 왕자는 일면식도 없다. 당연히 본 적도,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남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백설 공주는 의식이 없는 상태다.
그런데 왕자는 단지 백설 공주의 미모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키스하는 것으로 나온다.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의식이 없는 여자에게 키스를 한 것은 엄연히 성추행이다.
비록 그 키스를 받아 백설 공주가 잠에서 깨긴 했지만, 그렇다고 왕자의 잘못이 정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pg 123)
요즘 같아서는 바로 왕자 미투 사태로 언론을 떠들썩하게 해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이지만 백설 공주는 그에게 사랑에 빠진다.
심정지 상태여서 인공호흡을 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왕자 자신의 욕망에 의한 키스였는데도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전 동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계모는 하나같이 폭력적이다.
정말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주인공을 괴롭힌다.
그런 작품들을 보며 자라온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니 '계모라면 으레 성격이 나쁘겠지' 하는 편견이 자리잡는다.
어른들도 그런데 하물며 아이가 갖는 편견은 어떻겠는가. 반에 계모와 사는 아이가 있다면 어떤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겠는가?
물론 저자가 고전 동화들이 갖는 교훈적인 측면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편견이나 폭력성을 심어주지 않고도 교훈을 줄 수 있는 동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고전 동화들이 이미 몇 세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요즘 세상에는 맞지 않으니
요즘 세상에 맞는 동화가 많이 나와줘야 한다고도 강조하고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애들 보는 동화를 가지고 너무 민감하게 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곧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도 배우게 될테고 남들 다 보는데 우리 애만 안보면 뒤쳐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다.
여기 흠잡을 데 없이 멋진 스포츠카가 있다. -중략-
그런데 딱 한가지 결함이 있다.
전체 주행거리가 5천 킬로미터가 넘을 경우 특정 속도에서 브레이크가 정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결함이 더러 발생한다는 점이다. -중략-
단한번이라도 브레이크가 정상 작동이 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pg 283)
이미 중고등학생만 되더라도 자리잡힌 생각을 깨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때문에 되도록이면 아이에게 편견이 아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미 이러한 동화를 아이가 알고 있다면, 아이 스스로 모순되는 부분이나 문제점을 찾아볼 수 있도록
같이 질문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디톡스'하는 것이 중요하다.)
굳이 까다롭게 동화를 고르면서 읽어주고 싶지 않은 부모라도 위 디톡스는 함께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아직 우리 아이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지만, 나도 이 책을 읽고난 뒤부터는 같이 책을 보다 거슬리는 구절들을 발견하면
아이에게 한마디씩 덧붙이려고 한다.
'굳이 왕자를 만나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 아냐', '계모라서 나쁜게 아니라 이 사람이 나쁜거야' 등등.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읽고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