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조절 못하는 부모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이정화 지음 / 메이트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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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아이들을 위해 경제적 환경을 만들기도 어렵고, 현대사회에서 뒤쳐지지 않는 아이로 키우기는 더 어렵다고 말이다.

그러나 사실 가장 힘든 것은 그 모든 스트레스 요소를 안고도 하루하루 충만한 기쁨을 느끼고 아이의 성장을 있는 그대로 봐주며 

박수 쳐줄 수 있는 부모의 감정적 역량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pg 8-9)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책은 봐야겠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쩍 '내가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장에서는 좋거나 나쁘거나 일절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신혼 때에도 아내와 별로 싸울 일이 없을 정도로 무던한 편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곧 두돌을 앞둔 딸을 보고 있으면 때론 이쁘고 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여전히 힘들고 지치고 화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이 아이가 삶의 이유라는 둥,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둘째도 곧 갖고 싶을 거라는 둥 하는 따위의 이야기들이

지금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고3때나 군대에서 발병했던 원형탈모가 다시 도져서 몇 달째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다른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이 뭘 잘못했거나 심기를 건들일 때에는 크게 화나거나 감정이 폭발하지 않는데, 

아이에게는 왜 유독 화가 난다. 왜 그런지 나도 잘 몰랐다. 

그런데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자가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폭력이 되물림 된다는 것은 여러 책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나 역시도 어릴 적 참 혼이 많이 나면서 자란 편이다.  

그 시절 대다수의 아버지들이 그랬듯 나도 아버지가 가정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이유로 엄마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150센티를 겨우 넘기는 작은 체구로 아들 둘을 키우려니 오죽했겠나 싶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 맞고 혼나며 지냈던 것들이

아직 내 뇌리에는 강하게 남아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당했던 것을 내 아이에게 앙갚음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아이에게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걸까?


(전략) 끊임없이 반복되는데도 당할 때마다 화가 나고, 볼 때마다 신경질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대와 원칙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매번 실망하고 입으로는 포기한 지 오래라고 하면서도 상대가 내가 원하는 그 모습이 되려 노력하고 애쓰고 변화하는 것을

기대하므로 부모는 오늘도 분노와 실망을 동시에 경험해야 한다. (pg 62)

 
생각해보면 다른 가족이나 직장 동료에게는 '기대감'이라는 것이 별로 없다.
원래 그런 사람이겠거니 하기도 하고 아내를 제외하면 집에 오면 안 볼 사이기도 하니까 그렇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다르다. 

'이렇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이 기대감이 나날이 시험을 받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기대감을 아예 갖지 않는 것이 원칙일까? 물론 그럴 리 없다. 


부모에게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확인받고 위로받으려는 의존감이 사람을 더 외롭게 할 수 있다. 

타인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위로와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일상에서 스스로 에너지를 회복하려면

자기를 포용력 있게 받아주고 이해하며 위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pg 43)


첫째, 나와 타인을 구별해야 한다. 여기서 타인은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다. (중략)

우리는 가족이 한 몸이어야 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내 속에서 낳은 내 자식조차 독립적 의견과 감정이 있음을 받아들어야 한다.

이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pg 177-178)


말은 쉽지만 사실 어려운 이야기다. 저게 쉬우면 이 주제로 저자가 책을 썼을 리도 없다. 

아이를 돌보면서 자기 자신도 돌봐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화를 부모가 다스려주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도 화를 내면 아이는 절망스러울 뿐 아니라 자신의 기분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울 기회도 없어진다.

때문에 부모가 더 포용력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방법부터 알아야 한다. 



(pg 201)


위 그림이 자신을 다스리는 내면 조절 5단계이다.

프로세스를 상세히 외워서 화가 날 때 이 그림을 떠올리면서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를 '의식'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저자도 강조하고 있다.


위 프로세스의 핵심은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에 멈춰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다.  

이는 이전 회사에서 배운 협상 과정에 있는 '발코니에 서서 바라보기'와 비슷한 과정이다.

자기 자신의 감정이 평상시 같지 않음을 마치 멀리서 타인의 눈으로 관조하듯이 바라보는 것이다. 

이 연습을 통해 화가 날 때 잠깐 감정의 흐름을 멈출수만 있어도 이후의 프로세스는 훨씬 쉽게 이어진다.  


나는 자녀의 강점을 찾는 워크숍에서 강점이 보이지 않을 경우 옆집 아이처럼 보면 보인다고 말한다.

감정 역시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그 감정의 색깔과 모양이 잘 보인다. 원하는 것도 보인다.

그러면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pg 205)


220여 페이지의 적당한 두께에 어려운 전문용어의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어서 읽기에 편하다.

목차의 구성이나 책의 흐름도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고 논리적이었다. 

육아로 바쁜 부모들이 지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텍스트를 여유있게 편집해서 편하게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는 아쉬움도 많이 느껴졌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진단은 좋은데 해결책의 제시가 너무 짧고 압축되어 있어서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적다는 것이다. 


 

(pg 224)


위 페이지에 나오는 사례 같은 것이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잘 되지 않는 것에 속했다. 

'지각'에는 부정적인 비판이 전제되어 있는데 '제 시간에 오지 못한 것'에는 부정적인 비판이 들어있지 않은가?

문장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어조나 표정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아래에 있는 예 역시 이전에 항상 뭘 해가면 '뭐 더 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 있어요?'라고 묻는 직장 상사 밑에서 일해 봤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 말이 아무 가치판단이 들어있지 않은 말로 들리지 않는다. 

보다 상세한 상황과 예가 있었다면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이처럼 진단에 대한 대책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책이었다. 

저자가 상담을 많이 해봤을테니 만나봤던 부모들의 사례를 이용해 보다 피부에 와닿는 대책을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이 아쉬움 역시 저자의 표현을 빌면 내 기대감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적응이 잘 안되는 내 감정 변화를 책 한권으로 정리되길 바랬던 내 욕심이 컸다.


그렇지만 이 책이 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책을 눈에 잘 띄는 거실장에 비치해두면, 아이에게 화가 나는 시점에 '아...내가 이러면 안되지' 하면서 

스스로 한 번 멈추게 되는 강력한 효과가 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내가 몇 번 겪어본 일이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는 만큼 육아를 알려주는 책도 많다.

자신이 자랐던 세상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지금 세상의 부모는 

스스로 공부하며 길을 만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 역시 그런 길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었다. 


"신발을 혼자 신으려는 마음이 생겼구나.", "쑥스럽지만 인사를 해보고 싶어졌구나.", "새로운 것을 볼 때 네 눈빛은 늘 반짝이는구나." 등 정말 애정을 가지고 아이를 관찰한 부모만이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읽어주기만 하면 되는, 어쩌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쉬울 수 있는 감정 표현이 인정기술이다. (pg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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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언덕
김조을해 지음 / 북인더갭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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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세상은 우리에게 부족함만을 가르쳐주었다.

당신이 이것을 처음 알았을 때, 자신의 이름이나 겨우 쓸 줄 아는 나이였다면 운이 좋았다. 

세상을 거의 마감하기 직전이었다면 차라리 속편했겠다.

그러나 숙덕이는 바람을 경계하던 시절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쉽지 않았겠다. (pg 181)



소설보다는 비소설을 좋아하는 취향상 소설 작가들을 많이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래서 기억나는 소설가도 몇 없는데, '김조을해'라는 작가명이 보이는 순간 '어, 나 이 작가 알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름이 특이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지만, 몇 년 전 읽었던 '힐'이라는 작품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읽을 당시에 굉장히 좋았던 작품으로 기억되서 이 책도 망설임없이 결재했다. 

('힐' 서평: https://blog.naver.com/qhrgkrtnsgud/220429352429)


이 책은 총 7개의 단편소설이 묶여있다. 

보통 단편들이 묶인 책들은 책에 대한 소감을 남기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다행히 작품들 사이를 흐르는 공통점들이 있었다.


다 읽고 느낀 점은 이 책은 우선 '사랑' 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대상이 그저 연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사랑, 음악이나 시에 대한 사랑, 절대자에 대한 사랑,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등 

7가지 이야기가 모두 다른 인물들의 모두 다른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모두 '사랑'과 이를 둘러싼 '상실'의 감정이 잘 드러난다.


상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작품들의 분위기는 다소 어두운 편이다.

그 중 가장 밝은 편이라고 하는 '비교감상학 시간' 역시 수업 중 일어나는 대화와 상념들이 주제지만 그 속에는 음악에 대한 애정과 

그로 인한 아픔, 자신의 음악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교수, 음악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이 담겨 있어서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특히 아이를 잃고 자신도 죽음을 앞둔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겨울 순서'는 눈물을 불러오는 작품이었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아무래도 헤어진 연인의 상실 보다는 아이를 잃은 상실이 더 아프게 느껴진 모양이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내 나름의 생각이니 저자의 의도나 다른 독자들의 생각과는 다를수도 있겠다.

보통은 당연히 내 블로그에 쓰는 글이니 위와 같은 말을 남기지 않는데, 굳이 이런 쓰는 이유도 이 책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누군가가 '이 책이 독특한가? '를 물으면 난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너무도 보편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참신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작가는 소외된(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계층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둘러싼 상실을 담아내면서 신적인 존재나 환상 등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끌어와 서술하는 방법을 취함으로써 참신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난 '그래서 이 책이 재미있었는가?'를 물으면 7가지 이야기가 모두 재밌지는 않았다고 대답하고 싶다. 

소설의 재미란 단순히 이야기가 즐겁고 유쾌하냐 수준이 아니라 비극을 다루더라도 소설 속 인물에 감정 이입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고 싶게 만드는 것을 의미할텐데 일부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그런 몰입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특히 작가의 첫 출판 작품이었던 '힐'이 보여줬던 몰입감이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어서, 

난 이 작가가 나와 스타일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서 약간의 당혹감도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난 현실성과 비현실성의 경계는 비교적 명확한 것이 좋다.

영화를 예를 들자면, 마블 영화들처럼 비현실을 말하고 싶으면 아예 비현실적으로 보여주고 

'똥파리' 같은 영화처럼 현실을 말하고 싶으면 아예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편을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다소 적응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면, 작품 '누군가'에서의 '누군가'는 모습을 계속해서 바꾸는 것으로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이 누군가가 그저 외로움에 지친 주인공의 눈에만 보이는 허상이라고 생각했다. (허상이라면 현실적이다.)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 헤어진 전 남자친구의 눈에도 이 '누군가'가 똑같이 보인다는 것을 보고 '이건 뭐지?'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전 남자친구가 방문한 것 역시 주인공이 헛걸을 본 게 아닐까도 생각했었다.)

갑자기 엑스맨의 미스틱 같은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비현실적이다.)

엑스맨처럼 배경 자체가 뮤턴트가 등장하는 비현실 속이라면 이해할만 하지만 철저하게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철저하게 현실적인 이유로 사랑을 잃은 주인공에게 갑자기 나타난 미스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책 후미에 담긴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부분이 '절대자'를 나름대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글쎄...내 가슴속까지 와닿지는 않았다.

(절대자가 주인공에게 나타난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데 왜 전 남자친구의 눈에도 똑같이 보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주인공은 이 미스틱으로 인해 상처를 치유받으며 끝난다.

현실적인 이유로 생긴 문제를 비현실로 치유하는 결말이라니 다소 힘이 빠진다. 


정리하면, 배경과 인물은 너무도 현실적인데 반해 그들의 대사나 생각, 이야기의 전개에 비현실적인 것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올 때가  

간혹 있었는데 이 때 느껴지는 이질감이 나에게는 작품에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폭이 좁을 뿐이다. 

책의 첫 작품인 '연금술사에게'는 처음에 읽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두 세번 읽어야했다. 

그런데 지금도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책 속에 실린 모든 이야기가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난 '겨울 순서'가 좋았다. 

삼대에 걸친 삶의 아픔을 정 가운데에서 느끼고 있는 최선생의 심정을 자장가 가사에 빗대어 아프지만 아름답게 표현했다.

혹시라도 이 책을 접해서 순서대로 '연금술사에게'를 읽고 나처럼 이해가 안되는 독자가 있다면 

'겨울 순서'를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어서 그런지 인상깊은 구절도 많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배고팠던 순간만 기억하잖아요. 배불렀던 때는 다 잊어버리잖아요.

 기쁜 일은 오래 기억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기뻐서 부른 노래도 오래 기억되지 않아요." (pg 125)


"꼭 훌륭해야 해?"

"그래야 최고가 되거든."

"꼭 최고가 돼야 해?"

"그럼, 최고가 돼야 사람들이 널 우습게 보지 않아."

"우스운 사람이 되면 안 돼?"

아이들은 고통스럽게 또다시 묻는다.

"우스운 사람이 많아야 재밌지 않아?" (pg 139 -140)


"아마도 네가 없었다면, 엄마는 세상살이 순서를 아직도 몰랐을 거야. 순서를 모른다는 건 뜻을 모른다는 것과 같은 말이거든.

 뜻도 모른 채 너를 키우고, 공장엘 가고, 이빨을 닦고, 밤낮 찌개를 끓이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그렇지?" -중략-

"근데, 뜻이 중요한거에요?" -중략-

"엄마처럼 밤에도 일해야 하는 사람에겐 뜻이 제일로 중요하지. 

 그래야 밀려오는 졸음을 참을 수 있거든. 참는 게 중요하거든." (pg 144)



사실 '일반적인 독자'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가진 배경지식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이 책은 나에게는 이해나 공감의 측면에서 다소 어려웠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작가의 전작인 '힐'의 팬으로서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또 사게 될 것 같긴 하다.   

작가 특유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힐'이 악성재고로 쌓여있다며 자학했지만 난 그 작품은 꼭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세상은 우리에게 부족함만을 가르쳐주었다.

당신이 이것을 처음 알았을 때, 자신의 이름이나 겨우 쓸 줄 아는 나이였다면 운이 좋았다. 

세상을 거의 마감하기 직전이었다면 차라리 속편했겠다.

그러나 숙덕이는 바람을 경계하던 시절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쉽지 않았겠다. (pg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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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심리실험
이케가야 유지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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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기억은 우리의 개성을 만드는 원형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 근거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내 기억은 내 인격을 형성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축적된 소중한 보물이다. 

잊지 말자.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억이 뇌 회로를 따라 미래의 자신에게 전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pg 137)



개인적으로 한 책에 여러가지 잡지식을 때려넣은 책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한 주제를 심도있게 다룬 책들보다는 상대적으로 깊이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제공되다 보니 

다 읽고 나서는 막상 머릿속에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그럼 읽지 않으면 될텐데 또 이런 종류의 책은 이상하게 한번쯤 들춰보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무래도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은 현대인에게 많은 지식을 단시간에 제공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상당히 크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특히나 책을 읽음으로써 무언가 '아는 체'를 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욕구인데 이 욕구를 채우기에

이런 형식의 책보다 더 좋은 형식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서점에 들르면 비슷한 책이 쏟아져 나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비슷비슷한 책들 가운데서도 이 책은 보기 좋은 표지가 먼저 이목을 끈다. 

게다가 뇌과학자가 쓴 심리실험 관련 책이라니.

도저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나 출판사가 나름 고민을 많이 하고 준비한 책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한 책에 63가지 심리실험을 심도있게 다루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할 뿐더러 일반적인 독자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지식을 짧게 전달하면서도 읽는 사람들이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 끝에 취한 전략이 사례들을 최대한 비슷한 카테고리로 묶는 것, 적절한 스토리를 섞는 것,

그리고 예쁘고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곁들이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책을 다 읽을 때 쯤 되니 그런 고민들을 한 흔적들이 느껴졌다.


모든 실험 결과들은 먼저 저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나 누구나 알법한 우화, 최신 기술 트렌드 등 일종의 '썰'을 풀어내며 시작된다. 

그런 뒤 관련된 실험 과정과 결과를 간략히 소개하고 저자의 생각과 결론을 제시하여 마무리하는 형식이다.

꼭지가 63가지나 되기도 하고 책 자체도 400페이지 정도로 약간 두꺼운 정도지만 한 꼭지의 길이가 3-4페이지 정도로 짧고

일러스트도 많은데다 서술에 있어서도 최대한 전문용어를 배제하고 있어서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워낙에 가짓수가 많다보니 실험들 하나하나를 소개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으니,

기억에 남는 것들만 관련된 구절과 함께 몇 개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지루함에 대한 연구가 기억에 남는다.

실험자들에게 전기충격기를 한번 쏘여 불쾌감을 느끼게 하고, 그 전기충격기를 작동시키는 버튼을 앞에 두었다.

그런 뒤 그 버튼 외엔 아무것도 없는 실험실에 15분동안 가만히 앉아있게 했다.

이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기충격기 작동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즉, 심심한 것 보다는 고통스러운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이 2배나 더 누른 빈도가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재미있었다.

생각해보면 요가나 명상 등 아무것도 없이 가만히 있기 위한 훈련을 따로 해야 할 정도로 요즘 사람들은 지루함에 노출될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또한 어린 아이의 기억에 대한 연구도 기억에 남는다.

과연 인간은 언제까지의 기억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을까?

연구를 해보니 놀랍게도 태아였을때의 기억도 의식적으로 꺼내지 못할 뿐 머릿속에 존재하기는 한다고 한다.


임신 후기에 어머니의 몸 밖에서 <반짝반짝 작은 별>멜로디를 일주일에 다섯 번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생후 4개월 된 아기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신기하게도, '반짝반짝 작은 별'을 들을 때만 뇌파에 반응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실험 결과는 우리가 '기억'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경험이 뇌 회로에 각인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pg 136)


기억은 우리의 개성을 만드는 원형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 근거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내 기억은 내 인격을 형성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축적된 소중한 보물이다. 

잊지 말자.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억이 뇌 회로를 따라 미래의 자신에게 전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pg 137)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불현듯 이제 22개월이 된 딸 생각이 났다.

딸 아이가 커서 지금의 일상을 의식적으로 기억해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내가 아빠로서 했던 모든 부족한 모습들도 이미 머릿속에 각인은 되어 있겠구나 싶어 지난 모습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위와 같은 사례 외에도 '뇌과학' 편 답게 줄기세포를 이용해 만들어낸 인공 뇌가 과연 인격을 갖는지, 인공지능이 점차 생활에 도입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인공지능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등 꼭지가 많은 만큼 다루고 있는 주제도 방대하다.

방대한 주제에 대해 짧막하게나마 생각하면서 읽어간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읽고 나서 기억에 많이 남는 책이었다는 느낌은 역시나 별로 들지 않는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읽기에 즐거운 책임에는 틀림없었다.


기억은 천천히, 약간 모호하게 습득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그래야 우리 뇌가 실패 경험을 통해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험 결과로 허츠펠드 교수팀은 '우리 뇌는 이번 실패를 과거의 실패 경험과 대조해 정확하게 인식하는 과정에서 발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러 의미에서 심오한 결론이다. (pg 84)


일반적으로 기분이 좋을 때는 'OO해서 좋았다' 등으로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잘 짚어낼 수 있다.

반면, 기분이 언짢을 때는 '이유 없으 짜증이 난다'와 같은 말이 있을 정도로 본인조차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유 없는 짜증은 무언가 '다른 일'을 참고 또 참으며 자아를 소모한 탓이다. 

다행스럽게도, 자아 소모를 극복하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포도당 보충'이다. (pg 78)

유전자로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우리 뇌는 유전자로 작성된 디폴트 상태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가능성'이라는 능력을 내재하고 있다.

그 능력이야말로 동물이 '뇌'라는 장기를 진화시킨 이유다. (pg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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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 차별과 혐오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나카노 노부코 지음, 김해용 옮김, 오찬호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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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란 배타적인 존재라는 점, 그것은 쉽게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인정하는 것, 인식하는 힘이 '메타인지력'입니다.

집단 괴롭힘은 뇌에 새겨진 기능입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뇌를 속이거나 그 기능을 조절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pg 177)




'학교 폭력'이라는 단어는 이제 보편적인 용어가 된 것 같다.

단순한 물리적 폭력행사 뿐 아니라 집단적인 괴롭힘이나 따돌림까지 넓은 의미의 폭력으로 부를 수 있다면 

학교 폭력이 없는 학교가 대한민국에 과연 존재할지 의문이 들 정도다. 

특히 왕따 문제는 많은 학생들이 이 문제로 삶을 마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를 예방하고자 하는 제도나 교육은 시행되고 있는 것 같지만,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 보다는 오히려 그 수법이나 방식이 점점 더 잔인하고 교묘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학교라는 조직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어릴 때부터 소속되는 조직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집단에 의한 폭력에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고 성장하고 나서는 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눈 앞에 두고도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그런 집단적인 괴롭힘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그 해결을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사실 문제가 심각한 만큼 이런 책들은 워낙에 많이 있다. 특히 '차별'이라는 주제를 다룬 책들은 관심이 많아 읽어본 경험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이 책의 색다른 시각과 접근 때문이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책은 대부분 사회적인 측면에서 고찰하고 문제의 원인을 문화나 역사, 경제 상황, 법 제도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특이하게 사회학자가 아닌 일본의 뇌 과학자이다.  

뇌 과학자의 책 답게 집단적인 괴롭힘의 문화가 사실은 우리의 진화 과정과 호르몬 작용에서 비롯된 것이라 서술하고 있다.

이는 제도나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개선하면 자연히 현상이 개선될 것이라 주장하는 다른 책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접근이어서 

관심이 갔다. 


책 내용을 내가 이해한 바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강한 발톱이나 이빨이 없는 인류는 진화하면서 사회, 즉 집단의 힘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집단의 힘으로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단이 생존에 필수라는 것을 깨달은 인류는 집단의 유지를 위해 불필요한 개체를 선별하고 배제하는 능력도 갖추기 시작했다.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이 과정이 바로 '생크션(sanction, 제재)' 과정이다. 


 

(pg 31)


이 과정에 우리의 호르몬들이 작용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이다.

옥시토신은 애정이나 친근감을 느끼게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호르몬인데, 이 호르몬이 충분히 있어야 집단을 구성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하면 질투나 시기의 감정도 높아지게 되는데, 주로 생크션의 대상을 색출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또한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있는데 이 호르몬의 작용을 돕는 '세로토닌 트렌스포터'가 일본인에게는 미국인에 

비해 유전적으로 더 적다고 한다. 

즉 일본인들이 미국인들에 비해 유전적으로 불안감을 더 잘 느낀다는 의미이고 때문에 생크션의 발현도 더 자주 나오게 된다. 

실제로 학교에서 발생되는 집단 괴롭힘의 빈도도 더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조사한 자료가 없지만 유전적으로 미국인보다는 일본인과 유사할 가능성이 더 높을테니 조사하면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위 두 호르몬이 생크션을 유발하는 간접적인 호르몬이라면 도파민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호르몬도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도파민은 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데, 생크션 과정에서 도파민이 나온다는 것이다. 

(즉 이 과정에 개입한 개인이 쾌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이는 단순히 약자를 괴롭히는 것에 대한 쾌감이 아니라, 생크션이라는 과정이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점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저런 녀석이 우리 반(집단)에 있는 것이 너무 싫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 존재 자체가 민폐다.'라고 규정된 대상을 

괴롭히고 배제하는 것은 집단으로 볼때는 정의로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호르몬들의 영향으로 생크션의 대상이나 정도가 과도하게 발현되는, 이른바 오버 생크션이 발생하게 되며 저자는 이것이 집단 괴롭힘의 본질이라 말하고 있다. 


여하간 나중에 기억나지 않을까 길게 정리했지만 짧게 말하면, 

우리의 DNA 속에 집단에 융화되지 못하는 존재를 감지하고 배제하고자 하는 매커니즘이 수 세대를 거쳐 쌓여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문화나 제도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시각이다.

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자를 찾아내고 이를 배제하고 싶은 충동이 '생물학적 본능'이라면 집단적 괴롭힘은 자연스러운 현상 아닌가?

그렇다면 그 자연스러운 현상을 없애려는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생물학적 본능을 느끼고 이를 충족시키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회나 제도로 규제된 틀 속에서 충족시키고 있다. 

배고프다고 해서 남의 음식을 빼앗아 먹지는 않는다. 또 음식을 도둑질한 자는 자는 처벌을 받는다. 

또한 한편으로는 분명히 배고픈 사람들을 줄이기 위한 정책도 함께 펼치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집단을 지키기 위한 심리 매커니즘이 작동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제도나 문화적으로 충분히 규제할 수도, 개선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개선을 위한 핵심은 바로 '공동체 의식'의 약화다.

난 이 포인트가 이 책이 읽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집단 괴롭힘 문제를 공동체 의식의 '강화'로 해결하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다 같은 우리 학교 학생, 다 같은 우리 반 친구, 다 같은 조직 구성원'이라는 측면이 약하기 때문에 괴롭힘이 일어나고, 

따라서 이를 강조하면 괴롭힘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공동체라는 점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 공동체의 목표에 조금이라도 적응하지 못하거나 발목을 잡는 구성원이 있으면 

이를 배제하는 경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모두가 비슷해야 하고 동료 의식이 강해서 집단 괴롭힘이 생기는 거라면, 각자의 개성을 살려 균일성이 낮은 집단을 만들면 

개인의 목표도 다르고 누가 무임승차를 했는지도 드러나지 않아 제재 행동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애당초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집단을 위해 누가 희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동조 압력도 없어집니다. (pg 148)


반에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있고, 모두가 자기 의견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교사가 조성해줘야 합니다.

협력해서 해야 할 교내 행사를 위해 일시적으로 동료 의식을 갖는 건 괜찮지만, 

전반적으로는 꾸준히 균질성을 낮추는 방법을 실행해야 집단 괴롭힘을 줄일 수 있습니다. (pg 149)



또한 학교 구석구석과 교실에 CCTV를 설치하는 등 보다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해결책도 함께 제시해주고 있다.

책 두께가 얇은 편인데 많은 정보를 담고 있고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어서 나름 알찬 느낌을 주는 책이다. 

게다다 어려운 생물학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고 문장도 구어체로 쓰여 있어서 술술 넘어가는 맛에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집단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법' 부분 등 다소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해당되는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질투할 건덕지를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인데...

집단 괴롭힘의 원인을 피해자의 귀책으로 돌리는 발상인지라 이 부분에서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차별'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줄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었다.

서평에 미처 담지 못한 좋은 구절들을 마지막으로 인용해 둔다. 


우리도 평소 일상적으로 '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리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죠. 문제는 그런 의식이 지나쳤을 때 발생합니다.

학급이나 동아리 활동에서 그룹 대립이 있는 경우 이 실험은 좋은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자'는 메시지나 함께 먹고 노는 것보다는 

어쩔 수 없이 두 그룹이 힘을 합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주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pg 44-45)


학급은 물리적인 구조나 심리적인 구속감 때문에 그 배제 행위에서 도망치는 게 어렵습니다.

이제는 그런 점을 고려해 학급으로 운영되는 구조의 한계와 동료 의식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어른들에게 1년은 순식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특히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에게 1년은 영원 같은 시간일 수 있습니다. (pg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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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완전판 스페셜 박스세트 - 전15권 이타카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미치하라 카츠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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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경로로 돌고 돌아 결국 사게 된 은하영웅전설 박스 세트.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딱히 봐야겠다는 생각은 안했었는데 어느 날 애니가 새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기존 애니는 워낙 옛날 느낌도 강하고 분량도 너무 많아서 생각도 없었는데 새로운 애니라면 이참에 한번 보자 싶어서 보게 되었다가...

"우주를 손에 넣겠다, 키르히아이스" 에 뻑가서 빨리 다음편을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무려 15권이라는 분량과 17만원이 넘는 가격 때문에 많이도 망설였다.

절충안으로 8권짜리 만화책 세트가 있길래 그걸 샀더니 왠걸 만화책 세트는 원작의 아주 일부분만 커버하고 있다는 걸 다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원작 소설을 봐야겠다 싶어 도서관에도 찾아보고 중고로 한 권씩 사는 방법도 생각해봤는데 결국에는 그냥 눈 딱 감고 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소설과 만화책 세트가 모두 책장에 꽃혀 있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정말 한 달 가까이 열심히 읽었다. 심지어는 애 재우고 늘 하던 게임도 멈추고 밤잠을 줄여가며 읽었다. 

본편만 10권에 외전까지 합하면 총 15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지만 읽는 동안 지루하기는 커녕 오히려 남은 책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이 작품과 더불어 SF대작으로 불리는 파운데이션을 읽은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 비교해가며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푸른 글씨는 원문에서 발췌하였다. 작품 중간중간 감명깊은 구절을 찍어 두었는데 몇 권에서 나오는지를 같이 기록하지 않아 부득이

 페이지만 수록하였다.)

(아래부터는 소설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음을 밝힌다.)



작품의 스토리라인은 길이에 비해 단순한 편이다.

우주를 손에 넣겠다며 혜성같이 등장한 독재자 라인하르트와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자 원치않는 전투를 이어가는 양 웬리.

이 숙명의 라이벌 두 사람의 대결이 소설의 기본 골자이다.


이 작품은 SF를 표방하고 있지만 앞서 읽은 파운데이션과 마찬가지로 함선간의 전투나 은하계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원정 등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물론 파운데이션에 비하면 함선간, 개인간의 전투장면이 비교적 많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비중이 다소 딱딱하게 흘러갈 수 있는 정치대결의 곁다리로 흥미를 이끌어가기 위한 정도이지 작품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전장의 묘사도 아주 구체적이라기 보다는 '전세가 이러저러 하다가 어떤 상황의 변화로 이렇게 흘러갔다' 정도로 간략히 묘사되는 편이다.

게다가 전투 장면 묘사의 대부분은 신념에 따라, 혹은 따르는 주군의 명령에 따라 전장에 나선 고위 군인들의 죽음은 물론,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쟁터로 끌려와 희생 당하는 병사들의 무수한 죽음을 허무하고 참혹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잔인함과 무의미함을 비판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작품을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내용은 라인하르트로 대표되는 전제정치와 양 웬리로 대표되는 민주정치 간의 이념 대립이다.

이 주제는 지금도 누구나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정치과정의 결과만 놓고 보자면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정치'가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좋은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정치에서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배웠다.

또한 '철인'이 등장할 가능성과 등장한다 하더라도 장기간 변질되지 않고 통치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더 우월하다고 믿는다.

이 책은 그런 배움과 믿음이 어디까지 확고할 수 있는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한 귀족이 죽어 1만 명 평민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이 짐에게는 바로 정의다.

 굶어 죽기 싫다면 일을 하라. 평민들은 500년간 그리 해왔으니까." (pg 253)


저런 말을 하는 평민 출신의 젊은 독재자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이성적으로는 그래도 민주주의가 갖는 우수함을 믿는다.

라인하르트라는 독재자는 너무도 이상적어서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매력적인 유혹인 건 사실이다.

정말 저런 독재자가 나타난다면 그를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도 제법 많지 않을까?


더욱이 소설 속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중우정치의 폐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국가 차원에서의 전략적 판단 보다는 차기 선거와 자신의 표를 의식해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몬다.


"인간 사회에 흐르는 사상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생명 이상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생각과,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야.

 인간은 전쟁을 시작할 때는 전자를 구실로 삼고, 전쟁을 끝낼 때는 후자를 이유로 들어.

 그걸 수백 년, 수천 년 동안이나 계속했단 말이지..." - 중략 -

"앞으로 몇천 년이나 그런 짓을 계속할까?" (pg 369)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사회가 더 바람직한 사회인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런 측면 때문에 이 작품이 장르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 내리며 명작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답을 정해두고 있다. 하지만 그 답을 받아들이거나 반박하는 것은 역시 독자의 자유이다.


"국민을 해칠 권리는 국민 자신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루돌프 폰 골덴바움, 또한 그보다도 훨씬 소인배지만

 욥 트위니히트 같은 자를 권좌에 앉힌 것은 분명 국민 자신의 책임입니다. 남을 책망할 수 없지요.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전제정치의 죄란, 국민이 정치의 해악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 죄악의 크기에 비하면 100명의 명군이 베푸는 선정도 조그맣게 보일 정도지요.

 하물며 각하처럼 총명한 군주가 출현하는 일이 지극히 드문 것을 고려해 본다면 장단점은 명백해지지 않을지요..." (pg 355)



역시 명성답게 주옥같은 구절들이 정말 많았다.

먼 미래의 상상 속 이야기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한번쯤 생각해봄직한 문구들이 다 옮겨적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추리고 추려 아래 정도로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추려보았다.


본디 인간이란 자기 의사만으로 역사와 세계를 움직이지는 못하는 법이다.

꽃가루를 날라 황무지에 새로운 꽃을 피우는 바람에 의지는 없으나, 이는 분명 바람의 공적인 것이다. (pg 31)


인간은 자신이 악이라는 인식을 견뎌낼 만큼 강하지 못하다.

인간이 가장 강하게, 가장 잔혹하게, 가장 무자비하게 변모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했을 때다. (pg 167)


지상에서 가장 단단한 탄소결정체 다이아몬드가 생성하려면 막대한 지질의 압력이 필요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

권력과 폭력에 저항해 자유와 해방을 갈구하는 정신이 함양되기에는 강자의 억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자유에 좋은 환경이란 자유 그 자체를 타락시킬 뿐 아닐까. (pg 359)


인간의 생명은 별빛이 반짝이는 한순간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정도는 예로부터 누구나 잘 안다.

그래도 별의 영원함과 인간사의 한순간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지, 별이 아니다. (pg 339)



명성에 걸맞게 좋은 스토리와 좋은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이었지만 10권이라는 긴 호흡으로 읽어가면서 그 결말이 용두사미처럼

끝나게 된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두 주요 인물이 모두 작품 속에서 최후를 맞게 되는데 양 웬리의 죽음 이후 작품의 몰입도가 급격히 감소하는 면이 없지 않다.

(실제로 그 이후 읽는 속도가 좀 느려졌었다.)

물론 양 웬리라는 인물에 잘 어울리도록 작가가 의도한 죽음이라는 점은 잘 와닿았다.

다만 그 이후 스토리 전개가 다소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주요 인물의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아쉬움은 오히려 라인하르트 쪽이었다.

소설을 끝내기 위해 약간은 툭 던져놓듯한 죽음이어서 허탈한 느낌도 들었다.  

이번 세트에서는 각 권의 후미에 작가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작가가 이 부분을 나름대로 설명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느낀 아쉬움이 덜어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 한번 보고 싶다고 한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었다.

(작품의 주요 소재가 전쟁이니만큼 다소 남성중심적인 세계관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이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다.)

재미도 보장되면서 아주 생각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대한 분량을 짧게 정리하느라 두 인물 외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양국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각각이 상당히 개성 넘치고

그들 사이에서 보이는 다양한 정략과 모략, 충성과 배신도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그들을 통해 권력과 사회 구조가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찰도 함께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난 해를 마무리하는 책으로 이 작품을 접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아주 기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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