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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 차별과 혐오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나카노 노부코 지음, 김해용 옮김, 오찬호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9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란 배타적인 존재라는 점, 그것은 쉽게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인정하는 것, 인식하는 힘이 '메타인지력'입니다.
집단 괴롭힘은 뇌에 새겨진 기능입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뇌를 속이거나 그 기능을 조절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pg 177)
'학교 폭력'이라는 단어는 이제 보편적인 용어가 된 것 같다.
단순한 물리적 폭력행사 뿐 아니라 집단적인 괴롭힘이나 따돌림까지 넓은 의미의 폭력으로 부를 수 있다면
학교 폭력이 없는 학교가 대한민국에 과연 존재할지 의문이 들 정도다.
특히 왕따 문제는 많은 학생들이 이 문제로 삶을 마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를 예방하고자 하는 제도나 교육은 시행되고 있는 것 같지만,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 보다는 오히려 그 수법이나 방식이 점점 더 잔인하고 교묘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학교라는 조직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어릴 때부터 소속되는 조직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집단에 의한 폭력에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고 성장하고 나서는 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눈 앞에 두고도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그런 집단적인 괴롭힘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그 해결을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사실 문제가 심각한 만큼 이런 책들은 워낙에 많이 있다. 특히 '차별'이라는 주제를 다룬 책들은 관심이 많아 읽어본 경험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이 책의 색다른 시각과 접근 때문이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책은 대부분 사회적인 측면에서 고찰하고 문제의 원인을 문화나 역사, 경제 상황, 법 제도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특이하게 사회학자가 아닌 일본의 뇌 과학자이다.
뇌 과학자의 책 답게 집단적인 괴롭힘의 문화가 사실은 우리의 진화 과정과 호르몬 작용에서 비롯된 것이라 서술하고 있다.
이는 제도나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개선하면 자연히 현상이 개선될 것이라 주장하는 다른 책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접근이어서
관심이 갔다.
책 내용을 내가 이해한 바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강한 발톱이나 이빨이 없는 인류는 진화하면서 사회, 즉 집단의 힘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집단의 힘으로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단이 생존에 필수라는 것을 깨달은 인류는 집단의 유지를 위해 불필요한 개체를 선별하고 배제하는 능력도 갖추기 시작했다.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이 과정이 바로 '생크션(sanction, 제재)' 과정이다.
(pg 31)
이 과정에 우리의 호르몬들이 작용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이다.
옥시토신은 애정이나 친근감을 느끼게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호르몬인데, 이 호르몬이 충분히 있어야 집단을 구성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하면 질투나 시기의 감정도 높아지게 되는데, 주로 생크션의 대상을 색출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또한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있는데 이 호르몬의 작용을 돕는 '세로토닌 트렌스포터'가 일본인에게는 미국인에
비해 유전적으로 더 적다고 한다.
즉 일본인들이 미국인들에 비해 유전적으로 불안감을 더 잘 느낀다는 의미이고 때문에 생크션의 발현도 더 자주 나오게 된다.
실제로 학교에서 발생되는 집단 괴롭힘의 빈도도 더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조사한 자료가 없지만 유전적으로 미국인보다는 일본인과 유사할 가능성이 더 높을테니 조사하면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위 두 호르몬이 생크션을 유발하는 간접적인 호르몬이라면 도파민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호르몬도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도파민은 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데, 생크션 과정에서 도파민이 나온다는 것이다.
(즉 이 과정에 개입한 개인이 쾌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이는 단순히 약자를 괴롭히는 것에 대한 쾌감이 아니라, 생크션이라는 과정이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점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저런 녀석이 우리 반(집단)에 있는 것이 너무 싫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 존재 자체가 민폐다.'라고 규정된 대상을
괴롭히고 배제하는 것은 집단으로 볼때는 정의로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호르몬들의 영향으로 생크션의 대상이나 정도가 과도하게 발현되는, 이른바 오버 생크션이 발생하게 되며 저자는 이것이 집단 괴롭힘의 본질이라 말하고 있다.
여하간 나중에 기억나지 않을까 길게 정리했지만 짧게 말하면,
우리의 DNA 속에 집단에 융화되지 못하는 존재를 감지하고 배제하고자 하는 매커니즘이 수 세대를 거쳐 쌓여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문화나 제도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시각이다.
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자를 찾아내고 이를 배제하고 싶은 충동이 '생물학적 본능'이라면 집단적 괴롭힘은 자연스러운 현상 아닌가?
그렇다면 그 자연스러운 현상을 없애려는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생물학적 본능을 느끼고 이를 충족시키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회나 제도로 규제된 틀 속에서 충족시키고 있다.
배고프다고 해서 남의 음식을 빼앗아 먹지는 않는다. 또 음식을 도둑질한 자는 자는 처벌을 받는다.
또한 한편으로는 분명히 배고픈 사람들을 줄이기 위한 정책도 함께 펼치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집단을 지키기 위한 심리 매커니즘이 작동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제도나 문화적으로 충분히 규제할 수도, 개선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개선을 위한 핵심은 바로 '공동체 의식'의 약화다.
난 이 포인트가 이 책이 읽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집단 괴롭힘 문제를 공동체 의식의 '강화'로 해결하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다 같은 우리 학교 학생, 다 같은 우리 반 친구, 다 같은 조직 구성원'이라는 측면이 약하기 때문에 괴롭힘이 일어나고,
따라서 이를 강조하면 괴롭힘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공동체라는 점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 공동체의 목표에 조금이라도 적응하지 못하거나 발목을 잡는 구성원이 있으면
이를 배제하는 경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모두가 비슷해야 하고 동료 의식이 강해서 집단 괴롭힘이 생기는 거라면, 각자의 개성을 살려 균일성이 낮은 집단을 만들면
개인의 목표도 다르고 누가 무임승차를 했는지도 드러나지 않아 제재 행동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애당초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집단을 위해 누가 희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동조 압력도 없어집니다. (pg 148)
반에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있고, 모두가 자기 의견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교사가 조성해줘야 합니다.
협력해서 해야 할 교내 행사를 위해 일시적으로 동료 의식을 갖는 건 괜찮지만,
전반적으로는 꾸준히 균질성을 낮추는 방법을 실행해야 집단 괴롭힘을 줄일 수 있습니다. (pg 149)
또한 학교 구석구석과 교실에 CCTV를 설치하는 등 보다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해결책도 함께 제시해주고 있다.
책 두께가 얇은 편인데 많은 정보를 담고 있고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어서 나름 알찬 느낌을 주는 책이다.
게다다 어려운 생물학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고 문장도 구어체로 쓰여 있어서 술술 넘어가는 맛에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집단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법' 부분 등 다소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해당되는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질투할 건덕지를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인데...
집단 괴롭힘의 원인을 피해자의 귀책으로 돌리는 발상인지라 이 부분에서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차별'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줄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었다.
서평에 미처 담지 못한 좋은 구절들을 마지막으로 인용해 둔다.
우리도 평소 일상적으로 '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리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죠. 문제는 그런 의식이 지나쳤을 때 발생합니다.
학급이나 동아리 활동에서 그룹 대립이 있는 경우 이 실험은 좋은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자'는 메시지나 함께 먹고 노는 것보다는
어쩔 수 없이 두 그룹이 힘을 합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주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pg 44-45)
학급은 물리적인 구조나 심리적인 구속감 때문에 그 배제 행위에서 도망치는 게 어렵습니다.
이제는 그런 점을 고려해 학급으로 운영되는 구조의 한계와 동료 의식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어른들에게 1년은 순식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특히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에게 1년은 영원 같은 시간일 수 있습니다. (pg 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