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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 못하는 부모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이정화 지음 / 메이트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구절
아이들을 위해 경제적 환경을 만들기도 어렵고, 현대사회에서 뒤쳐지지 않는 아이로 키우기는 더 어렵다고 말이다.
그러나 사실 가장 힘든 것은 그 모든 스트레스 요소를 안고도 하루하루 충만한 기쁨을 느끼고 아이의 성장을 있는 그대로 봐주며
박수 쳐줄 수 있는 부모의 감정적 역량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pg 8-9)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책은 봐야겠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쩍 '내가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장에서는 좋거나 나쁘거나 일절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신혼 때에도 아내와 별로 싸울 일이 없을 정도로 무던한 편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곧 두돌을 앞둔 딸을 보고 있으면 때론 이쁘고 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여전히 힘들고 지치고 화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이 아이가 삶의 이유라는 둥,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둘째도 곧 갖고 싶을 거라는 둥 하는 따위의 이야기들이
지금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고3때나 군대에서 발병했던 원형탈모가 다시 도져서 몇 달째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다른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이 뭘 잘못했거나 심기를 건들일 때에는 크게 화나거나 감정이 폭발하지 않는데,
아이에게는 왜 유독 화가 난다. 왜 그런지 나도 잘 몰랐다.
그런데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자가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폭력이 되물림 된다는 것은 여러 책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나 역시도 어릴 적 참 혼이 많이 나면서 자란 편이다.
그 시절 대다수의 아버지들이 그랬듯 나도 아버지가 가정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이유로 엄마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150센티를 겨우 넘기는 작은 체구로 아들 둘을 키우려니 오죽했겠나 싶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 맞고 혼나며 지냈던 것들이
아직 내 뇌리에는 강하게 남아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당했던 것을 내 아이에게 앙갚음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아이에게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걸까?
(전략) 끊임없이 반복되는데도 당할 때마다 화가 나고, 볼 때마다 신경질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대와 원칙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매번 실망하고 입으로는 포기한 지 오래라고 하면서도 상대가 내가 원하는 그 모습이 되려 노력하고 애쓰고 변화하는 것을
기대하므로 부모는 오늘도 분노와 실망을 동시에 경험해야 한다. (pg 62)
생각해보면 다른 가족이나 직장 동료에게는 '기대감'이라는 것이 별로 없다.
원래 그런 사람이겠거니 하기도 하고 아내를 제외하면 집에 오면 안 볼 사이기도 하니까 그렇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다르다.
'이렇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이 기대감이 나날이 시험을 받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기대감을 아예 갖지 않는 것이 원칙일까? 물론 그럴 리 없다.
부모에게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확인받고 위로받으려는 의존감이 사람을 더 외롭게 할 수 있다.
타인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위로와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일상에서 스스로 에너지를 회복하려면
자기를 포용력 있게 받아주고 이해하며 위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pg 43)
첫째, 나와 타인을 구별해야 한다. 여기서 타인은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다. (중략)
우리는 가족이 한 몸이어야 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내 속에서 낳은 내 자식조차 독립적 의견과 감정이 있음을 받아들어야 한다.
이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pg 177-178)
말은 쉽지만 사실 어려운 이야기다. 저게 쉬우면 이 주제로 저자가 책을 썼을 리도 없다.
아이를 돌보면서 자기 자신도 돌봐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화를 부모가 다스려주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도 화를 내면 아이는 절망스러울 뿐 아니라 자신의 기분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울 기회도 없어진다.
때문에 부모가 더 포용력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방법부터 알아야 한다.

(pg 201)
위 그림이 자신을 다스리는 내면 조절 5단계이다.
프로세스를 상세히 외워서 화가 날 때 이 그림을 떠올리면서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를 '의식'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저자도 강조하고 있다.
위 프로세스의 핵심은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에 멈춰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다.
이는 이전 회사에서 배운 협상 과정에 있는 '발코니에 서서 바라보기'와 비슷한 과정이다.
자기 자신의 감정이 평상시 같지 않음을 마치 멀리서 타인의 눈으로 관조하듯이 바라보는 것이다.
이 연습을 통해 화가 날 때 잠깐 감정의 흐름을 멈출수만 있어도 이후의 프로세스는 훨씬 쉽게 이어진다.
나는 자녀의 강점을 찾는 워크숍에서 강점이 보이지 않을 경우 옆집 아이처럼 보면 보인다고 말한다.
감정 역시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그 감정의 색깔과 모양이 잘 보인다. 원하는 것도 보인다.
그러면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pg 205)
220여 페이지의 적당한 두께에 어려운 전문용어의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어서 읽기에 편하다.
목차의 구성이나 책의 흐름도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고 논리적이었다.
육아로 바쁜 부모들이 지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텍스트를 여유있게 편집해서 편하게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는 아쉬움도 많이 느껴졌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진단은 좋은데 해결책의 제시가 너무 짧고 압축되어 있어서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적다는 것이다.
(pg 224)
위 페이지에 나오는 사례 같은 것이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잘 되지 않는 것에 속했다.
'지각'에는 부정적인 비판이 전제되어 있는데 '제 시간에 오지 못한 것'에는 부정적인 비판이 들어있지 않은가?
문장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어조나 표정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아래에 있는 예 역시 이전에 항상 뭘 해가면 '뭐 더 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 있어요?'라고 묻는 직장 상사 밑에서 일해 봤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 말이 아무 가치판단이 들어있지 않은 말로 들리지 않는다.
보다 상세한 상황과 예가 있었다면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이처럼 진단에 대한 대책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책이었다.
저자가 상담을 많이 해봤을테니 만나봤던 부모들의 사례를 이용해 보다 피부에 와닿는 대책을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이 아쉬움 역시 저자의 표현을 빌면 내 기대감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적응이 잘 안되는 내 감정 변화를 책 한권으로 정리되길 바랬던 내 욕심이 컸다.
그렇지만 이 책이 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책을 눈에 잘 띄는 거실장에 비치해두면, 아이에게 화가 나는 시점에 '아...내가 이러면 안되지' 하면서
스스로 한 번 멈추게 되는 강력한 효과가 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내가 몇 번 겪어본 일이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는 만큼 육아를 알려주는 책도 많다.
자신이 자랐던 세상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지금 세상의 부모는
스스로 공부하며 길을 만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 역시 그런 길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었다.
"신발을 혼자 신으려는 마음이 생겼구나.", "쑥스럽지만 인사를 해보고 싶어졌구나.", "새로운 것을 볼 때 네 눈빛은 늘 반짝이는구나." 등 정말 애정을 가지고 아이를 관찰한 부모만이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읽어주기만 하면 되는, 어쩌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쉬울 수 있는 감정 표현이 인정기술이다. (pg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