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쉽고 그럴싸한 요리책 - 파워블로거 벨루가가 알려주는 간단하고 맛있는 레시피
최해정 지음 / 미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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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나름 자취생활을 좀 했었기 때문에 지금도 어지간한 집안일은 잘 하는 편이다.

그런데 유독 지금까지도 자신없는 집안일이 바로 요리이다.

요리를 잘 하지 않는 핑계를 대자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나 스스로가 반찬투정을 일평생 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고

전업주부인 집사람이 음식을 꽤 하는 편이어서 그다지 불만이 없기 때문이 가장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나도 음식을 좀 만들어서 애 보느라 고생하는 아내와 어린 딸에게 대접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저녁에 뭐 먹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주부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라는 것이 공감이 간다.)

하지만 라면을 빼면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반은 인스턴트로 맛을 내는 떡만두국이나 간편한 계란말이 정도여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늘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던 차에 꼭 보고싶던 요리책을 만났다. 




보통 요리책 하면 뭔가 예쁘고 맛있지만 일반적인 집에는 잘 없는 재료들이나 특이한 장비, 독특한 향신료 같은 것들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요리책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책은 무언가 '쉽다'라는 이미지가 가장 크게 다가왔다.

게다가 최애 가전제품인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레시피나 시판 제품을 활용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방법들이 담겨있다고 하니

호기심이 일었다. 


책의 구성도 심플하니 좋았다.

좌측에 예쁘게 완성된 사진이 있고 우측에 재료와 요리법이 담겨있다. 

 

(pg 146-147)


집사람과 아이가 좋아하는 새우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있어서 반가웠다.

게다가 준비물들이 마침 다 집 냉장고에 있는 것들이었다. 

이 요리를 해서 멋지게 사진을 찍은 후 맛을 본 소감을 서평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요즘 직장에서 계속 늦게 끝나는데다 주말에도 집안 행사들이 있어서 요리할 틈이 없었다. 

이번 주말에는 꼭 저 요리를 해서 집사람과 아이에게 선사하고 싶다. 


저 요리 외에도 다양한 요리들이 의외로 쉬운 레시피들로 담겨 있다.

전자레인지를 활용한 꽈리고추 무침, 깻잎찜, 어묵 볶음 등은 밑반찬이어서 한번 해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요즘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에어프라이어를 활용한 음식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작가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블로거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후속책으로 발매해주리라 믿는다.

(솔직히 에어프라이어편이 나오면 바로 또 살 것 같다.)

주방 근처 선반에 두고 '오늘 뭐먹지' 싶을 때 한 페이지씩 열어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었다.

틈틈히 이 책에 나오는 요리들로 나름 음식도 좀 할 수 있는 애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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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이 설계한 사소하고 위대한 과학 - 슈퍼 히어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세바스찬 알바라도 지음, 박지웅 옮김 / 하이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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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라쿤의 발에는 예민한 수염이 돋아 있는데 보통 '강모'라고 부르며 상황에 따라 만지기도 전에 물체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라쿤의 발은 180도로 돌릴 수 있어 머리를 아래로 둔 채 나무에서 내려올 수 있다.

유연성과 예민한 촉각만 생각해봐도 로켓이 스타로드보다 좋은 조종사인 건 명백한 사실이다. (pg 72)



마블이 MCU로 세계 영화계를 지배한지도 10년이 넘었다.

한물 간 약쟁이 이미지였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CG로 보강된 아이언맨 수트를 입고 처음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가 같은 캐릭터를 10년간 연기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마블 영화는 썩 말이 되는 영화는 아니다. 

중년의 남성이 철로 만든 갑옷을 입었다고 해서 탱크가 쏘는 미사일을 맞고도 멀쩡할리 없다는 걸, 

갑자기 말하는 라쿤이 다가와서 우주 가본 사람 있냐고 묻는 일이 일어날리 없다는 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가 10년이 넘게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기대 어느 한켠에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들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과학자와 마블 덕후라는 양쪽의 시각을 가지고 마블 영화 속 다양한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현상들은 과학적으로 가능하고, 어떤 현상들은 불가능하며, 어떤 현상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실현된 것도 있다. 

과학이라는 것이 단순하게만 나누어도 물리, 생물, 화학 등으로 나뉠텐데 이 책에서는 이런 구분들을 모두 넘나들면서 

엄청난 양의 과학 지식을 쏟아낸다. 

물론 저자 소개에 생물공학자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저자 소개를 읽지 않았어도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주 전공이 생물쪽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는 있다.(자신의 전공 분야에서는 후술할 '서술의 불친절함' 수준이 올라간다.)

하지만 생명공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일반 독자 수준에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의 과학 지식들이 담겨 있다. 


흥미로운 주제를 통해 과학 지식을 전달하고자 한 시도 자체는 매우 좋았다.

나도 제목을 보고서는 너무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막상 읽고 보니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특히나 나에게는 조금(많이?) 어렵게 느껴진 책이었다. 


우리 몸의 세포에는 전기 센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분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Kir4.2와 같은 칼륨 통로는 흥분을 전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조직과 세포에 존재하는 양전하를 띤 폴리아민에 반응한다.

약한 전기력도 폴리아민을 분극화하고 통로가 이온을 투과하게 만들어 전기 자극을 유도할 수 있다. (pg 94)


위 문단은 스파이더맨이 스파이더 센스를 어떻게 발휘하게 되는지를 설명한 문단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난 위 문단이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설명이 다소 불친절하다는 것도 어려움을 더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일단 '양전하를 띤 폴리아민' 같은 과학 용어들을 별도의 설명 없이 당연히 독자가 알고 있을 것이라 간주한 채 서술하고 있다. 


물론 위 문단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책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상당량의 챕터에서 위와 같은 문단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책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야 하는 

독자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경험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내 과학지식의 부족이 저자의 탓은 아니지만)

마블이라는 소재를 굳이 차용한 이유(심지어 책 표지에 마블의 정식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도 표기되어 있는데도)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함이었다면 설명 역시도 친근하게 풀어쓰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한(?) 일이라면 책의 중반부인 기계공학쪽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저자의 전공 분야가 아니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수준의 서술이 이어진다. (사실 자신의 전공분야일수록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긴 하지만)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니 초반이 읽다가 다소 어렵다면 기계공학쪽으로 넘겨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이해가 가능하다면 상당한 재미를 주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헐크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물고기가 있다거나, 크기가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서라면 헐크의 펀치보다 

강력한 펀치를 내지를 수 있는 5센티짜리 새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팔콘의 레드윙이나 스타로드의 제트팩 같은 장비는 지금도 비교적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다는 사실도 가슴을 설레게 하기 충분하다. 


마블이라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제를 통해 과학이라는 비교적 어려운 주제에 접목하고자 한 시도는 정말 좋았으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쉽게 서술되었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최선이었다면 문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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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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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내가 언론에 대해 한 가지 아는 바가 있다면, 정부와 국민에게 뭐가 우선이고 뭐가 나중인지 결정하는 주체가 바로 뉴스라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대형 방송사들은 단수 보도에 충분한 분량을 할애하지 않을 것이다.

지붕이 바람에 날아가는 수준의 자극적인 자료 화면을 확보하지 않는 한. 

뉴스에서 심각하게 다루기 시작할 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pg 35)



직관적인 제목에 보기만 해도 목말라 보이는 여성이 그려진 표지.

책을 다 읽고 다시 보니 표지가 이 책의 내용을 잘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460페이지 정도로 살짝 두껍다는 느낌을 주는 책인데 출장길에 나선 기차 안에서 모조리 읽어 버렸을만큼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내용은 굉장히 심플하다.

미국 남부가 배경이며 십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느날 느닷없이 단수가 시작된다. 

가뭄이 계속 이어지고는 있었지만 물이 끊긴다는 것은 누구도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마트의 물도 동이나고, 물 없이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과 이웃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책의 핵심 줄거리이다. 


시작과 거의 동시에 단수가 시작되고 이어서 계속 사건들이 이어지기 때문에 한번 책을 잡으면 쉽게 놓지 못하는 마력이 있었다.

책 서두에 소설이 곧 영화화된다고 써 있던데 정말 영화로 만들어도 재밌을 내용이다. 

일단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이 영화로 만들기에 상당히 좋게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은 얼리사라는 십대 후반의 소녀이며 주인공 답게 남들을 설득하고 포용하는 리더십을 가진 성격으로 등장한다. 

얼리사에게는 몇 살 어린 개릿이라는 남동생이 있다. 

기본적으로 등장인물 중 가장 어리기 때문에 주로 사고치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고난을 겪으면서 훌륭하게 성장해가는 캐릭터다. 


물을 찾아 집을 나선 부모님이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자 남매는 부모님을 찾으러 길을 나선다.

이 때 옆집에 사는 얼리사의 친구 캘턴이 합류하는데 캘턴의 캐릭터도 상당히 독특하다.

일단 캘턴의 아버지는 비이성적일 정도로 세계 종말을 대비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덕분에 단수가 시작된 이후에도 상당히 풍족한(?) 생활을 누리지만, 금새 이웃들의 타켓이 되어 버린다. 

캘턴은 이런 아버지 밑에서 다양한 생존 스킬을 배웠으며 성격도 아버지와 비슷한 편이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에게는 다소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보다는 인정이 있는 편이다. 


길을 떠나면서 재키와 헨리 등 추가적인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재키는 혼자 정처없이 떠돌며 소소한 범죄로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이며 약간 '똘끼'가 있다. 

헨리의 경우에는 거래에 굉장히 능하며 사기도 잘치는 능글맞은 성격이다. 

이 둘의 경우에는 다소 현실적이지는 않은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을 찾는 여정에 있어서 마치 감초같은 역할을 하는 조연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각자의 개성이 너무도 다른 십대들이 모여 절망적인 현실을 헤쳐나가는 여정이기에 당연히 갈등과 불화가 이따른다.

때로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기도 하지만, 남은 물을 함께 나눠 마시며 서로의 생존을 돕기도 하고 

뒤쳐지는 친구를 안고 불길을 뚫기도 한다.  


물 부족으로 마치 좀비처럼 변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잔혹한 모습도 충격적이다. 서로 죽고 죽이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어려움을 헤쳐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우정과 인류애도 만만치 않은 분량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살짝 두껍게 느껴졌지만, 문장이 쉽고 간결한 편이며 내용 전개도 빠르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지루함 없이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죽는 내용이 있기는 하나 묘사가 잔인한 편은 아니었으며, 뭔가 끈적한 스킨십이 등장할 법한 장면에서도 그냥 농담으로 퉁치는 등

영화로 만들었을 때 심의까지 고려한 듯한 전개도 종종 보였다. 

내용 자체는 아주 재미있는 편이지만, 문학에서 기대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문장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아 이 부분은 좀 아쉬웠다. 

(물론 독자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일부러 문장을 쉽고 깔끔하게 쓴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었던 구절들을 남겨본다. 


어릴 때는 누구나 부모를 우러러본다. 우리 눈에 비친 부모님은 완벽하다. 

주변 세상과 나 자신을 재단하는 척도니까.

십 대가 되면 슬슬 부모님이 훼방꾼처럼 느껴진다. 더는 완벽하지 않을뿐더라 심지어 내 인생을 쥐고 흔드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부모님은 영웅도 아니고 악당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저 나약한 인간이라는 뼈아픈 진실을. (pg 180)


그렇다.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을 때 가장 괴로운 점은 절대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다.

유리를 깨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묵묵히 쓸어 담고 남은 유리 조각을 밟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다. (pg 376)


자연재해 중 가뭄으로 인한 단수란 피부에 와닿는 주제는 아닐 수 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단수가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가 많지 않고 태풍이나 해일에 비해 피해가 클 것이라 예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단수는 그리 호락호락한 재해가 아니었다.

단순히 물이 생존에 필수적이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인간이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 얼마나 위험하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비록 픽션이지만 그 속에서 본 인간의 생존을 위한 본능과 절박함 속에서의 심리변화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었다. 


자연을 보호하고 미리 예방하지 않으면 심각한 재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재해를 통해 인간 사회도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당연한 논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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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 오딘, 토르, 로키 이야기
케빈 크로슬리-홀랜드 지음, 제프리 앨런 러브 그림, 김영옥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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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상깊은 구절

"신이라고 모두 선하지는 않아. 그리고 거인이나 난쟁이라고 모두 나쁘지도 않지. 

 네가 최선의 모습일 때를 생각해봐, 강글레리. 그때가 바로 네가 가장 신과 같을 때야.

 이제, 네가 최악의 모습일 때를 생각해봐. 그때가 바로 네가 가장 거인과 난쟁이 같을 때지." (pg 27)



북유럽 신화가 이렇게까지 조명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마블 영화'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낯선 이미지였던 북유럽 신화 속 인물들을 우리가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영상물로 구현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에 적힌 '오딘, 토르, 로키 이야기'라는 문구만 보아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세 명의 배우를 떠올릴 수 있다.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 속 인물들이 실제 신화를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등장한 것 같아 얼른 보고 싶었다. 


일단 받아 들자마자 기분 좋은 묵직함이 있다. 

책의 페이지는 300페이지 미만으로 크게 두껍지는 않으나 종이의 크기 자체가 일반적인 책에 비해 굉장히 크다. 

책장을 휘휘 넘기다 보면 간결하지만 인상적인 색채들의 일러스트와 정갈하게 번역된 신화 이야기가 멋지게 어우러져 있다. 


 


특히 이 책을 소개하면서 일러스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책의 매 페이지마다 감각적인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검은색 위주로 마치 그림자처럼 표현하고 있고, 등장하는 장면들에 맞게 배경에 색채가 더해지는데,

그림을 보는 재주가 없는 편인 내 눈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깔끔하면서 주제를 잘 전달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었던 그림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아래 그림에서 맨 우측은 로키, 가운데는 토르인데 좌측에 기묘하게 생긴 신이 있다.

이 신이 '다리가 긴 자'라고 불리는 호니르이다. 누가 봐도 다리가 긴 자이다. 


 

(pg 172-173)


글씨가 작은 편이지만, 일러스트의 비중이 크므로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자녀가 있다면 함께 읽어도 재밌을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 신화 속 다양한 신과 거인, 난쟁이들이 등장하지만 부제에 충실하게 핵심 이야기들은 오딘과 토르, 로키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도 그런 편이지만, 북유럽 신화 역시 등장인물들이 인간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 

물론 묘사되는 외형적인 특징들이야 신과 거인, 난쟁이들이 각기 특이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그 행동의 동기들을 살펴보면 매우 인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아래와 같은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몸 담고 있는 조직이 평균적인 조직이라면 한번쯤 겪어본 일일 것이다. 


오딘은 한때 아스가르드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이제는 부서져버린 거대한 성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중략-

"우선, 아스가르드 전체를 두르는 성벽을 다시 지어야 합니다. -중략-"


오딘의 아내, 프리가가 물었다. 

"그럼 누가 건축을 담당하지요? 우리 중에 어느 신이 지을 건가요?"


초목과 황금의 신들을 이끄는 신, 프레이르가 말했다. 

"나는 작물을 자라고 익게 만들 수는 있지만 벽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청춘의 황금 사과를 지키는 신, 이둔이 말했다. 

"나는 건축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벽을 짓는 모든 이에게 매일 사과를 한 알씩 주겠습니다. 

 그러면 벽이 완성되는 날까지 처음 시작했던 때의 그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 거에요."


황금빛 머리칼이 돋보이는 토르의 아내, 시프가 말했다.

"우리도 하고 싶습니다. 

 거인들을 비롯해 저 아래 세상에 있는 음흉하고 무서운 존재들을 막아내려면 벽이 꼭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신들은 석공이 아닙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성벽을 지을 수 없을 겁니다."


토르가 외쳤다.

"심지어 나도 저 허물어진 성벽을 다시 짓진 못하겠습니다!"


오딘이 모두에게 말했다.

"다들 할 줄 아는 말이 '할 수 없다'와 '못 하겠다' 뿐인가 보군요." -후략- (pg 31)


다소 기니 3줄 요약을 하자면,

신들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아스가르드의 성벽이 무너지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재건을 하려고 하는데 모든 신들이 자신이 원래 하던 일이 아니므로 본인은 못하겠고, 

하겠다는 자가 있으면 도와는 줄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래서 결국은 할 수 있는 다른 자(난쟁이)를 찾는데, 이마저도 일을 다 끝내고 약속한 보상을 주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린다.

결국 신이 난쟁이를 등쳐먹는 엔딩으로 끝이 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는 근엄하기 그지 없는 오딘이지만, 토르가 자신을 구해준 아들에게 적이 타고 다니던 훌륭한 말을 선물하려고 하자

말을 탐낸 오딘이 손자 대신 나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다며 징징대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건 어지간한 인간 할아버지도 하지 않을만한 짓이다;;)

후반부에 이러한 신들의 모습을 조롱하는 로키의 독백이 등장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신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로키는 툭하면 신이 나서 야단법석인 신들을 경멸하듯 쳐다봤다.

'저런, 아주 어린애가 따로 없군. 절대 어른이 될 수 없는 존재들이야. 

 저들이 내 꾀에 매번 속아 넘어가는 것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니까.' (pg 203)


결국 우리는 신화라는 형태를 빌려 우리와는 다른, 보다 강하고 영속적인 존재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읽지만 

그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회의 단면들을 보게 된다. 

신화 역시 인간의 창작물이므로 이러한 면들이 인간이 가지는 상상력의 한계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신들이라 할지라도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은 욕구와 동기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화를 믿고 따르던 당시 사람들에게 위안으로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이 신화라는 이야기가 갖는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북유럽 관련 책을 두 번째 읽은 것인데, 이전에 접한 작품과는 그 형태가 아주 달라서 상당히 재미있었다. 

이전에 봤던 '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서평: https://blog.naver.com/qhrgkrtnsgud/220581182520)에서는

각 신화 속 인물 별로 세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방대한 양으로 훑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 책은 부제에 충실하게 세 명의 신 위주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흥미를 높였다. 

두 책을 굳이 비교하자면 정보의 양적인 측면에서는 이전에 본 책이, 독서의 즐거움 측면에서는 이 책이 더 훌륭했다. 


이 책 하나만 놓고 보자면, 이 책을 모두 읽고서 '아, 난 이제 북유럽 신화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라고 자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이 익숙하다면 다채로운 그림과 함께 즐겁게 읽으면서 

북유럽 신화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에는 더할 나위없이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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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의 발견 - 오늘부터 가볍게 시작하는 일상 우울 대처법
홋시 지음, 정지영 옮김 / 블랙피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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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는 제멋대로 세상에 태어나 제멋대로 죽는 존재다.

사실 살아가는 목적이나 사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이라는 커다란 시점에서 생각하면 자손을 남긴다는 목적이 있을 뿐이다. 

아무런 사명도 목적도 주어지지 않았다면 스스로 정하면 된다. (pg 161)



뭐 읽을 만한 책 없나 인터넷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던 중 눈에 띄는 책 소개를 발견했다.

요즘 의욕이 많이 없어져서 고민이었는데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우울증을 겪고 퇴사했다가 약물치료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자신에게 이런 저런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고, 

그 중 효과가 있었던 것들을 묶어 이렇게 책을 펴 내게 되었다고 한다. 


우울증.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젠 짜증이 나는 단어다.


최근에 우울증으로 친동생을 잃었다.

우울증을 겪는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도 있겠지만, 우울증을 가진 사람과는 말을 섞는 것 자체가 굉장한 스트레스다.

고민이 있는 것 같아서 듣고 있다 보면 끊임없는 자책과 세상에 대한 원망 속으로 빠져든다. 

위로하려고 하면 '니가 뭘 아느냐'고 하고 공감해주다 보면 '역시 나 같은 건 살 필요가 없지' 따위의 말들로 대화가 이어진다.

진짜 우울증 환자들 카운슬링 하는 심리치료사들은 죽으면 사리가 엄청 나올거다. 


동생이 우울증 진단을 처음 받은 것이 12, 13년 전이니 우리 식구들은 10년이 넘게 우울증을 가진 가족을 알고 지낸 셈이다.

물론 나도 동생도 집 나와 산지 오래 되서 사실 얼굴 볼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툭툭 올라오는 동생의 우울증은 굉장히 신경 거슬리는 일이었다. 


더욱 짜증나는 것은 동생 사후에 그 우울함이 다른 식구들에게도 전염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엄마도 내 딸 아이와 잘 놀다가도 가끔 눈물을 글썽이는가 하면, 나도 뭔가 요즘 의욕이 없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일이 한참 바쁠 시즌이어서 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팔, 이렇게 살아 뭐하나'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배송 오자마자 약간의 당혹감이 들었다. 

우울증 환자가 쓴 책이라고 해서 약간은 칙칙한 책을 떠올렸는데 귀엽기 그지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인사를 하고 있다. 

(집사람이 표지 귀엽다고 엄청 좋아했다.)

(앞 표지)


한없이 귀여운 표지였지만 책을 받아 들자마자 동생 얼굴이 떠올라 미간이 찌뿌려졌다. 

만약 한 1년 전에 내가 이 책을 알게 되어서 동생에게 선물했다면 그 자식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책 읽을 마음의 여유는 있었을까? 이런거까지 선물한다며 내 인생 갈 때까지 갔다고 더 싫어했을까?


여하간 찜찜한 마음으로 책을 폈다. 

우울증 환자들은 어떤 것 하나에 깊이 집중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한다고 저자도 밝히고 있기 때문인지, 

방법들 하나하나가 길지 않고 문장도 간결한 편이다. 

더구나 페이지 순서대로 쭉 읽을 필요도 없다. 

목차만 보고 땡기는 것만 읽어도 좋을 구성으로 되어 있다. 


책을 처음 접할 때에는 저자가 일본인인줄은 몰랐는데 책이 일본어 번역투여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흔히 말하는 오타쿠 말투가 더러 눈에 띈다.)


​책 뒷표지 날개 부분에 보면 자신의 우울 정도를 간단히 체크할 수 있는 리스트가 있다.

여기에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리스트를 보면서 '여기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있긴 한가?' 라고 생각했는데

집사람한테 물어보니 집사람은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단다;;;

여하간 난 두어개쯤은 해당되는 것 같아서 진지한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참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당사자가 직접 쓴 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현상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하면서 그 현상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제시하는 대책은 영 현실적이지 

못할 때도 많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 썩 신뢰가 가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저자가 나름대로 자신의 경험을 쉽고 간단하게 잘 풀어 설명해주고 있다. 

나름대로 난이도와 효과까지 자신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제시해주고 있다. 


슬프지만, 우울증을 앓아본 적 없으면서 이 병을 정말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인간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알지 못하는 법이다. -중략-

심지어 같은 우울증 환자라고 해도 서로 잘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중략-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도, 우울증도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를 세운 다음 "알아주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 정도만 알아줘도 충분해!"라고

스스로 긍정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pg 151)


다 읽고 난 소감이지만, 나는 걱정한 것처럼 그렇게까지 우울한 편은 아닌 모양이다. 

작가가 병을 앓고 있을 때를 서술한 부분들을 보면 난 그 정도까지 심각한 수준은 분명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작가가 제시한 해결책 중에서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들이 꽤 되었다.

무언가 집중할 거리를 찾아 책을 읽는다든지, 게임을 한다든지, 출퇴근 길에 되도록이면 걷는다든지 등등

나도 모르게 요즘 들어 자주 하는 것들이 해결책으로 많이 제시가 되어 있었다. 

최근에 음주하는 빈도와 강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점은 다소 우려스럽지만, 그래도 술 대신 다른 것들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조만간 이런 습관도 조금씩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덮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책이 좀 더 일찍 나왔었다면 동생에게 추천해줄 수 있었을텐데.

그랬다면 과연 동생의 삶에도 변화가 있었을까? 너무 궁금해진다.

내 동생과 같은 상황에 있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도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언급했듯이, 우울증 환자가 책을 진득하게 읽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이 이 글을 쓰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읽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울증 환자는 늘어가는 추세다.

출산율도 나날이 감소하는데 그나마 태어난 사람들 중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으니 정말 문제는 문제다.

이런 현상에 경종을 울리는 글들은 넘쳐나지만, 그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런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는지를 알려주는

책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의미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부분이 괜찮았지만, 번역에 있어서 원문을 너무 충실하게 살리느라 약간 일본어를 쓰는 오타쿠 느낌이 드는

문장들이 더러 눈에 띄여서 다소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서평에 채 담지 못했지만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을 인용하며 마치고자 한다. 


일기는 작은 행복을 줍는 훈련이다. (pg 093) 


세상에는 잘난 체하며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이 많고, 칭찬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지 않으면 인생이 괴로워진다. 

그러니 자신의 재능에도 눈을 돌려보자.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의 달리기 실력이나 피카소의 그림처럼 뛰어난 재능이 아니어도 된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잘하는 능력 정도는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다. (pg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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