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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 몸에 밴 상처에서 벗어나는 치유의 심리학
다미 샤르프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나는 심리치료사에 대한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중략)
그런데 사실 이들의 고통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대감, 자기 조절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왜 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는지 정말 의문이다. (pg 247)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과거에 트라우마 하나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많겠나 싶기도 하고 과거의 일들을 지금 들춰내 인식한다고 한들
지금의 내 삶이 어떤 방식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이 별로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책 뒷표지에 적힌 문구들 때문이었다.
물론 위 리스트 전부에 해당하진 않겠지만, 위와 같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달리 생각해보면 누구나 어느 한가지 정도는 해당할 법한 문장들이기는 하다.)
내 생각에 나는 한 서너 가지 정도는 해당되는 것 같아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저자는 아래와 같은 사람들이라면 어릴 적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절감,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 삶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
생애 초기에 상처 받은 사람들의 특징이다.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다.
- 이 세상은 위험한 곳이다.
- 나는 환영받지 못한다.
-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
-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
-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pg 66)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트라우마는 흔히들 말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겪은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가지게 된
'정신적 결함' 정도로 심각한 수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하는 부정적인 반응들이 사실은 어릴 적 트라우마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는
정도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특정한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반응을 설명하면서 어릴 적 경험에 기반하여 설명하는 책들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이 이런 비슷한 종류의 책들과 조금 다른 점은 이 '어릴 적 트라우마'를 대하는 태도이다.
보통은 그 트라우마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인 태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트라우마가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아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인식하는 것 자체는 문제 해결의 출발점일 뿐이지 인식하는 것 자체로 치유가 되진 않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은 어릴적에 겪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트라우마가 있어 현재 다양한 부정적인 증상이 생길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내 상태에 더욱 집중하라고 말하고 있다.
조금 더 상세히 말하자면 특히 지금 '내 신체 상태'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몸이 쉬어야 한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결국 과로하게 되고 번아웃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이들은 몸의 상태가 아주 심각해진 이후에야 비로소 자기 상태를 자각하게 된다.
여기서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보는 능력을 '신체 내부 감각'이라고 한다.
이렇듯 자신의 몸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게 되고 결국 욕망을 충족하지도 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체념하거나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pg 68)
저자가 말하는 몸은 정신과 함께 나를 구성하는 요소인데, 현재의 우리가 지나치게 정신에만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어
몸은 소외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이런 현상을 '몸과 정신이 해리'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우리의 몸은 스트레스에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게 된다.
시간이 더 흐르면 이러한 해리 현상은 정신은 물론 몸에도 건강상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몸과 마음이라는 것이 서로 떨어져 각기 기능할 수 있는 별도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그냥 있는 그대로 우리의 몸이다.
그리고 내가 내 몸과 어떤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지를 더 의식해야 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 몸을 대한다.
장담하건대 절대로 타인의 몸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g 153)
어릴 적 이런 트라우마가 생기는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특히나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들은 곁에 부모가 없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독일인인데 만약 저자가 우리나라의 가장 '일반적인' 육아의 시작이 생후 2주동안 부모와 물리적으로 격리되는 조리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되면 한국인의 태반은 이러한 트라우마를 기본적으로 안고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트라우마의 원인들 중에는 현재 만 3세가 덜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 자신도 반성하게 되는 것도 있었다.
대게 사람들은 아이들의 경계선을 잘 지켜주지 않는다.
거리에서 낯선 강아지를 만질 때보다도 더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을 만진다. (중략)
어른의 경우에는 서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함부로 경계선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아이라면 이런 룰을 무시하기 일쑤다. (중략)
아이일 때 이런 경계선을 일상적으로 침범받으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언제든지 나의 공간에 침범할 수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게 된다. (pg 231-232)
아이를 예뻐해준다는 명목으로 아이가 놀고 있을 때에도 습관적으로 아이를 끌어 안거나 뽀뽀를 하고는 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사실은 아이가 스스로 지키고 싶은 사회적 경계선을 무시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육아가 정말 어렵긴 한 것 같다. 어릴 적에 워낙 부모님 사랑을 잘 못받고 자라서 내 아이는 꼭 원없이 안아주리라 마음 먹었는데...)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사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개인 입장에서 어떻게 이러한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게 사실 가장 심각한 단점이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는 해결책은 해리된 정신과 몸이 다시 통합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동양에서 말하는 명상법처럼 자신의 신체가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를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진짜 자신이 원하는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충족시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의 욕구란 단순히 '배가 고프다, 자고 싶다' 같은 생리적 욕구라기 보다는,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애써서 그 사람과도 잘 지내려고 노력하지 말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다가가 보라는 의미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무의식적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려움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점에서 다소 맥이 빠질 수 있는데 육체적 상처의 치료도 병원에 가면 더 잘 치료받을 수 있듯이,
정신적 상처의 치료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더 잘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 자명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트라우마가 생긴 과거의 배경에만 이성적으로 집중하는 기존의 치료방법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치료사와 내담자가 단순히 서비스 제공자와 구매자라는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진정성 있는 인간 관계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치료사와 맺는 관계는 성적인 요소가 배제된 한정된 기간의 사랑 관계이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거나 포옹해주는 것은 유대 관계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스킨십이다.
이런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는 심리치료가 과연 어떤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많은 내담자가 치유 과정에서 또다시 혼자 버려졌다고 느끼면서 유년기의 경험을 반복한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관계 지향적이고 신체 지향적인 심리치료를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pg 244)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무슨 말인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나 현실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해결책인 아닌 것 같다.
특히나 우리나라도 낯선이와의 신체 접촉 자체를 굉장히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유아기가 지나고 나면 가족과도 신체접촉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에서 심리 치료사와 스킨십을 나누는 치료 과정에 동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의견에 머리로나마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래의 구절 때문이었다.
나는 심리치료사에 대한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중략)
그런데 사실 이들의 고통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대감, 자기 조절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왜 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는지 정말 의문이다. (pg 247)
나도 위 주장에는 100% 동의한다.
정신질환이 점점 더 일반화되어 가는 현상은 물론 정신과 치료 자체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숫자 역시 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독서 후 많은 것을 얻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심리를 치료함에 있어서 몸이 중요하다는 시각 자체는 매우 신선하고 좋았다.
또한 정신적인 상처 역시 신체적 상처와 마찬가지로 전문가와 함께하면 더 쉽게 치료될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