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조승리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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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는 다짐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써야지.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거야. 그게 내가 정한 나의 사명이야.’

프롤로그에서 북토크 현장이 나온다. 한 독자가 “천지를 못 봤다면 실망했을 것 같냐"라고 묻자 작가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천지를 못 봤어도 저는 상관없어요. 오히려 기뻤을걸요. ‘나도 못 보는데 당신들도 못 봤지? 쌤통이다. 역시 세상은 공평하다니까.’ 하고 속으로 고소해했을 거예요.”

이 고약한 마음! 이 솔직함!! 나는 이런 작가님이 너무 좋다. 그렇게 고약한 마음을 품었다가도, 끝내 미안해하고 후회하지만 바로 사과하지 못하는 점. 배알이 꼴리는 상황에서 끝끝내 비꼬는 말을 하고 마는 모습.

책을 읽으면서 피식 웃다가, 아, 나도 이런 마음인데? 반성하다가, 고약한 속마음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결국엔 펑펑 울고 만다.


페낭, 베트남, 일본, 마카오, 위험천만했던 클라크, 그리고 무려 1,442개의 계단을 올라가야만 볼 수 있는 백두산 천지까지!

거기에 플라멩코를 배우고,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따내다니. 경험하고, 시도하고, 끝내 해내는 이 삶. 이것이야말로 '살아내는 삶' 아닐까?


나는 두 눈이 다 잘 보이는데도 늘 코앞만 본다.

반면 작가님은 “안 보인다"라고 말하면서도 나보다 더 멀리 바라본다.

나는 잘 보이지만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두는데, 작가님은 어두운 세계에서 당당히 세상을 향해 걸어간다.

나는 두 눈으로 겉모습만 보는데, 작가님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 모습을 보며 부끄럽기도, 부럽기도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작가의 글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소설도 쓰고 계신다니, 다음엔 어떤 행보로 우리 곁을 찾아올까. 또 어떤 경험담이 쏟아져 나올까.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까.

늘 기대하게 되는 사람. 나는 오늘도 두 손 모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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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의 인생 만화 - 이 시대 전방위 창작자들의 '최애' 만화 고백담
곽재식 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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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뒷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면, 내 뒤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린 앞만 보는 것보다 좀 더 괜찮은 선택들을 하게 될까. 잘 모르겠다. 어떤 것들은 시야 안에 있다고 해서 다 보이는 게 아니고, 시간이 지나야만 눈에 들어오는 법이니까.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나를 향해 웃고 있을 것 같았던 사람도 언젠간 나를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 사람이 보는 내 뒷모습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사람은 내 뒤에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몰랐다. 내내 나란히 걷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은 내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더 많이 봤을지도 모른다는 걸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서야 생각했다. 앞에 있는 것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돌아보지 못한 내 뒤에서,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주 잠깐이라도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즐거웠을까. 가끔은 나를 떠올릴까. - 뒤를 돌아보면 [룩 백] 오세연

나는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 만화를 볼 시간엔 엄마와 함께 드라마를 봤고, 만화책 대신 늘 소설책을 끼고 살았다.

‘나는 만화를 안 본다’며 펼친 책은, 목차에서부터 내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만화라는 형식을 떠나, 본인만의 것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만화가 가진 매력과 그 안에 녹아든 각각의 인생들, 툭 치면 나오는 명대사들과 지금 만들어가는 것들에 영감을 주는 이야기들까지. 지금의 작업에 영감을 주는 장면들까지.

한때 그들이 빠져들었던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건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고, 덕분에 영업당한 만화도 여럿 생겼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열정적으로, 애정 가득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멋지다고 느껴졌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이게 될 테고, 만화에 관심 없던 사람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몇 권쯤은 찾아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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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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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알-사알 가러서 참말로 눈결가티 가른 고흔 어름을 삽풋 떠서 혓바닥 우에 가져다 놋키만 하면 씹을 것도 업시 깨물 것도 업시 그냥 그대로 혀도 움즉일 새 업시 스르르 녹아버리면서 달콤한 향긋한 찬 긔운에 혀끗이 환-해지고 입속이 환-해지고 머리속이 환-해지면서 가슴속 배속 등덜미까지 찬 긔운이 돈다.

단순히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 각 음식이 어디에서 유래했고, 식민지 조선으로 어떻게 들어왔으며, 당시 얼마나 인기가 있었고, 어떻게 유행에서 멀어졌는지까지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작가는 국내 유일의 음식 문학 연구자답게 당시의 소설·잡지·신문 기사를 풍부하게 인용해 더욱 생생한 분위기를 만든다. 덕분에 마치 1920년대 이후의 경성의 거리로 직접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점은, 이 음식들이 식민지 조선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다.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먹을 것에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결국 돈 있고 경성에 사는 사람들만 이런 음식을 즐겼겠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텐데..." 하는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그 시기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듯 중국·일본과의 관련성을 짚어보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음식 소개와 함께 실린 당시의 삼화(사진)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더 읽을거리’ 코너에서는 신문과 잡지 속 기사를 직접 보여줘 읽는 재미를 더했다.

책을 읽는 내내 1920년대 식민지 시절의 종로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문학인들이 잔뜩 모인 다방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고학생이 되어 "만주노 호야호야!" 를 외치며 만주를 팔다가,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고급스러운 멜론을 구경하기도 했다. 여학생이 되어 밤중에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와 호떡을 사 먹고, 손가락으로 뚜껑을 꼭 눌러 라무네를 따 마시며 탄산의 톡 쏘는 맛을 느껴보기도 했다. 조선의 연인이 되어 초콜릿을 나눠 먹고, 겨울의 한복판에서 군고구마 한 봉지를 사 먹고, 땀이 뻘뻘 흐르는 여름날 속까지 시원해지는 빙수를 한 숟갈 떠먹으며 웃었다.

책을 덮고 나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경성이 너무도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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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시간 -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제43회 공식 선정작
델핀 파니크 지음, 이나무 옮김 / 초록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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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비 부인은, 저녁에, 쥐디트가 빌려준 트럼펫을 가지고 놀았다. 헨리 퍼셀과 프랑시스 풀랑크의 곡도 연주했다. 보비 부인이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한 것도, 스스로 선택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상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보비 부인은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느꼈다. 전쟁의 시간에.


홀로 남겨진 아내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남성이 없는 곳에서 새롭게 권력을 쥐게 된 여성들, 착취와 가혹한 노동 환경 속에서도 연대하는 여성들, 남편을 잃고 절망하는 여성, 그리고 군인과의 펜팔을 통해 첫사랑을 경험하는 여성까지 전쟁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폭넓게 담아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특히, 전쟁 때문에 혼자가 된 후에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기쁨을 알아가며, 처음으로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보비의 모습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전쟁이 끝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편들이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온 순간이 기쁨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림 속 남편들의 모습에는 전쟁이 남긴 깊은 상흔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마치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듯이.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제43회 공식 선정작!!인 만큼 특별한 점이 있다. 보통 전쟁을 다룬 보통 전쟁을 다룬 작품이라면 무기 공장 같은 노동 환경은 어둡고 칙칙한 색감으로 묘사할 법한데, 전쟁의 시간은 오히려 반대로 간다. 시종일관 컬러풀하고 여성들의 삶은 알록달록한 색채로 그려지며 심지어 무기 공장에서조차 색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전쟁의 시간은 그래픽노블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쟁이 남기는 흔적을 섬세하고도 강렬하게 그려낸다. 독특한 시선과 섬세한 묘사로 그래픽노블만이 가진 매력을 100% 뽑아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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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2025 한국출판평론상 수상작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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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오늘’은 ‘도서관의 어제’가 하루하루 쌓인 결과입니다. ‘도서관의 현재’를 만든 ‘도서관의 과거’를 만나기 위해 대한 제국부터 대한민국까지, 이 땅에 명멸했던 도서관을 찾아다녔습니다. 가끔은 도서관이 사라진 ‘폐도서관지’에서 그 자리에 있던 도서관을 상상하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했습니다. 때로는 우리 역사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던 도서관 이야기를 접하며, 흥분하기도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답사와 함께, 도서관조차 제대로 남겨두지 않은 ‘흔적’을 찾아 책과 논문을 뒤졌습니다. 그렇게 흩어진 퍼즐을 맞추듯, 도서관 이야기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 점점이 흩어진 ‘이야기’를 모아, 도서관에 서린 ‘역사‘를 선으로 이어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약탈, 전쟁과 독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도서관들. 친일파 엘리트를 양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식민지 시절의 도서관부터 어린이와 시민 복지를 위해 쓰여야 할 땅과 예산으로 민간인을 사찰하고 끔찍하게 고문하며 사리사욕을 채우던 도서관의 이야기. 강남이 그렇게 발전하는 동안 단 하나의 도서관도 짓지 않았던 현실. 그런데도 누군가는 “국권을 되찾으려면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라며 사비를 들여 도서관을 짓고 학생들을 지원했다.

읽는 내내 화가 나고, 욕이 절로 나오고, 억울하고, 열받다가도, 어떤 순간엔 감사함에 뭉클해졌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 한없이 부끄러웠다.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 메모하고,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보느라 책을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단순한 도서관의 역사가 아니라, 도서관과 얽힌 근현대사 이야기였기에 그 자체로 공부가 됐다.

들어가는 말에서 작가는 “도서관에 관심 있는 분에게 도서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라고 했는데, 1부의 첫 꼭지를 읽자마자 ‘이 책 쓰기 정말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방대한 자료를 언제 다 조사하고 연구하셨을까.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읽어봤으면 좋겠다. 사실 한국 사람이라면 남녀노소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이 널리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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